- *♥* 겸손해야 사랑할 수 있다 *♥* -
찬미 예수님!
사랑하올 형제 자매님,
요즘은 정말 가을 날씨 같죠?
가족들 나들이 하기도 좋겠습니다.^^*
오늘 저희 신학교는
남산동 하양 신학생 모두
한티 성지순례를 다녀왔습니다.
송림사에서 걸어서 한티까지
순례를 하고 왔습니다.
오늘 교구에서는 진목정에서 도보성지순례를 했습니다.
순교자 성월도 끝나가는데
형제 자매님은 어디 순례를 다녀오셨나요?
형제 자매님,
오늘 제 1독서는 바빌론에서 유배생활을 하던
신앙의 위기에 직면한 유대인들을 새 삶의 길로 초대하는 말씀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예루살렘이 파괴되고 바빌론에서 유배생활을 하게 된 것이
자기 조상들의 죄 때문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조상들이 잘못했기에 하느님께서
이스라엘 백성들과 맺었던 계약을 파기하셨다고 원망하면서
자신들이 회개해야 한다는 것을 인정하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에제키엘은 이러한 백성들의 잘못된 고정관념을 완전히 뒤엎어 놓습니다.
그들이 현재 당하고 있는 고통은 바로 그들 자신의 잘못 때문이라고 선언합니다.
그리고 하느님께서는 죄인의 죽음을 원하지 않으시고
회개하여 살기를 원하시기 때문에 지금이라도 죄악을 버리고
하느님의 초대에 응한다면 죽지 않고 새 삶을 누리게 된다고 선언합니다.
이러한 새 삶에로 나아가기 위해서는
초대하시는 하느님을 말씀을 잘 들어야 합니다.
복음에서는 지금도 우리를 새 삶에로 초대하시며
우리의 응답을 기다리시는 하느님의 모습을 그려주고 있습니다.
둘째 아들에 비유되는 대부분의 유대인들은 하느님의 백성으로 선택되었고
하느님을 주님으로 모시고 그분의 말씀만 따라 살겠다고 약속했으나
그들의 행실은 하느님의 뜻과는 거리가 먼 것이었습니다.
그들은 율법을 충실히 지킨다고 자부하고 있었지만,
말씀을 깊이 묵상하는 것이 아니라 랍비들이 작업을 해놓은 전승 곧
그들의 관습에 충실했던 것입니다.
그리고 그것으로 충분하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사랑을 실천하는 것이 하느님의 뜻이라는
예수님의 말씀을 받아들일 수가 없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당연히 사랑의 실천을 위한 회개의 필요성을 느끼지 못했던 것입니다.
그러나 하느님의 뜻을 실천하는데 있어서 자신이 부족하다고 느끼고 있던
세리나 창녀는 회개에로의 초대에 응했고 예수님께로 나아왔습니다.
형제 자매님,
형제 자매님 생각으로 형제 자매님은 비유에 나오는 맏아들입니까?
둘째 아들입니까?
형제 자매님,
우리는 비유에 나오는 둘째 아들이 되어서는 안 됩니다.
그렇다고 이미 “예”라고 대답했기에 맏아들도 아닙니다.
우리는 하느님의 초대에 “예”라고 응답함으로써
세례를 받고 하느님의 자녀가 되었습니다.
주님의 초대에 “예”라고 대답했으니 그분의 말씀을 그대로 “행해야”합니다.
그러니까 두 아들의 잘한 점을 모으면 우리가 되어야할 참된 아들의 모습이 됩니다.
내 생각대로 하느님을 움직이려고 할 것이 아니라
하느님의 뜻에 내 자신을 맡겨드리고 그분의 뜻을 실천해야 합니다.
형제 자매님,
우리가 하느님의 뜻을 제대로 받아들이고 실천할 수 있기 위해서는
자신을 비우는 겸손을 지녀야 합니다.
그래서 제 2독서에서 바울로 사도는
하느님의 뜻에 철저히 순종하신 예수님의 모습을 전해주면서
“그리스도 예수님께서 지니셨던 바로 그 마음을 여러분 안에 간직하십시오.”
라고 당부하면서 무엇보다
“겸손한 마음으로 서로 남을 자기보다 낫게 여기십시오.”라고 촉구하고 있습니다.
겸손은 하느님께 모든 것을 맡겨 드리는 회개와
그분의 뜻을 실천하는 사랑의 첫걸음이기 때문입니다.
형제 자매님,
참된 겸손이 어떤 것인지 잘 보여주는 예화가 있습니다.
미국이 독립을 하고 세월이 좀 흐른 후,
군복을 멋지게 차려입은 젊은 장교가 말에서 내려 시골길을 걸어가고 있었습니다.
그의 말은 먼 길을 달려오느라 지쳐 있었던 것입니다.
마침내 징검다리가 놓인 냇가에 다다랐습니다.
그런데 비 그친 직후여서 징검다리가 물속에 잠겨 있었습니다.
사방을 휘 둘러보던 장교의 눈에 저 멀리서 밭을 매고 있는 노인이 보였습니다.
장교는 큰 소리로 그를 불렀고, 노인이 다가왔습니다.
“노인장, 내 말이 지쳐서 그러니 미안하지만 나를 업어서 냇가를 건너 주어야 하겠소.
이 멋진 군복이 물에 젖어서야 되겠소?”
의기양양하게 말하는 젊은이에게 노인은 미소를 지었습니다.
그리고 그를 업었습니다.
노인이 힘겹게 냇가를 건너고 있는데 등에 업힌 장교가 물었습니다.
“노인장은 군대에 나간 적이 있소?”
그러자 노인이 땀에 젖은 얼굴로 빙그레 웃으면서 말했습니다.
“젊었을 때엔 저도 군대 생활을 했었지요.”
그러자 장교가 말했습니다. “계급이 뭐였소? 일병이었소?”
노인이 조용히 말했습니다. “그것보다는 조금 높았지요.”
“그럼 상병이었소?” “그것보다도 조금 높았습니다.”
“그렇다면 … 당신은 하사관이었군. 흠 … 꽤나 공을 세운 모양이구려.”
그 말에 노인이 웃으면서 조용히 말했습니다.
“공이라야 보잘 것 없었습니다만 … 그것보다는 좀 더 높았지요.”
그러자 장교의 눈이 휘둥그레졌습니다.
“그렇다면 당신도 장교였다는 말이오?”
노인은 젊은 장교의 군복이 물에 젖지 않도록 조심스럽게 시내를 건너며 대답했습니다.
“보잘 것 없는 능력이었음에도 그것보다는 조금 높았습니다.”
그러자 젊은 장교의 얼굴이 파랗게 변했습니다.
그가 떨리는 목소리로 다시 물었습니다.
“그 … 그렇다면 장군이었습니까?”
노인의 얼굴에 인자한 웃음이 떠올랐습니다.
“하찮은 저에게 조국과 하느님께서는 그것보다도 높은 직위를 허락했지요.”
젊은 장교는 혀가 굳어서 더 이상 말을 잇지 못했습니다.
마침내 시내를 힘겹게 건넌 노인이 젊은이를 맨 땅에 내려놓았습니다.
땀에 젖은 노인의 얼굴에는 온화한 미소가 퍼져 있었습니다.
“안녕히 가십시오. 젊은 장교님. 저는 밭을 마저 매야겠습니다.”
그가 총총히 뒤 돌아서 다시 시냇물을 건너가고 있었습니다.
그에게 업혀 시냇가를 무사히 건넌 젊은 장교가
노인을 향하여 정중하게 경례를 했습니다.
이 이야기는 미국 독립의 아버지이자 초대 대통령이었던
조지 워싱턴이 대통령 퇴임 후 자신의 고향 마을에 돌아와
농사를 지으며 살던 시절의 이야기입니다.
이 일화는 한 인간이 사람들을 가르치고 이끌 수 있는
기본적인 힘이 어디에서 생겨나는지,
그리고 그 힘이 주위 사람들에게 어떤 모습으로 다가오는 지를 잘 보여줍니다.
형제 자매님,
우리는 쉽게 외모만 보고 그 사람을 판단합니다.
오늘 액자에 올린 밭둑외풀은 꽃 지름이 5mm 정도의 아주 작은 꽃입니다.
그래서 주의를 기울이지 않으면 있는지 없는지도 모릅니다.
그런데 자세히 들여다보면 이렇게 모든 걸 다 갖춘 예쁜 꽃입니다.
그 젊은 장교는 노인의 외모만 보고
시골의 무지한 영감이니 무시해도 된다고 생각을 했겠죠?
사실 밭을 매고 있는 시골 영감이 전직 대통령이었다고 어떻게 알 수 있겠습니까?
형제 자매님,
오늘 우리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가 만나는 사람이 사실 얼마나 대단한 인물인지 우리가 알 수 없습니다.
그래서 내 기준으로 사람을 보고 판단하면 많은 실수를 할 수가 있습니다.
그러나 내가 만나는 사람은 모두 그리스도라고 생각하고 대하면
내가 참으로 겸손해질 수 있고 사랑할 수 있습니다.
형제 자매님,
모든 것의 주인이신 하느님께서 우리 모두를 당신의 자녀로 초대해 주셨고
우리는 응답했습니다.
그러니 이제 우리는 하느님의 자녀로 살아야 합니다.
즉 예수님처럼 사랑을 구체적으로 실천해야 합니다.
형제 자매님,
이번 한 주간 동안 내가 만나는 모든 사람을 예수님이라 생각하고 잘 사랑해봅시다.
그러면 예수님께서도 그 사람들 안에서 형제 자매님을 더욱 사랑해주실 것입니다.
대구 남산동 신학교에서 안드레아 신부 드림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