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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실(皆悉)의 이자(二字)는 만행만선(萬行萬善)·제바라밀(諸波羅蜜)을 구족(具足)한 대양약(大良藥)인 남묘호렌게쿄(南無妙法蓮華經)이니라. 색향(色香) 등(等)이란 일색일향(一色一香)·무비중도(無非中道)로서 초목성불(草木成佛)이니라. 그러므로 제목(題目)의 오자(五字)에 일법(一法)도 구족(具足)하지 않았다고 하는 것이 없으니 만약 복용(服用)하는 자(者)는 속제고뇌(速除苦惱)이니라. 그러므로 묘법(妙法)의 대양약(大良藥)을 복용(服用)함은 탐진치(貪瞋癡)의 삼독(三毒)의 번뇌(煩惱)의 병환(病患)을 제거(除去)하느니라. 법화(法華)의 행자(行者) 남묘호렌게쿄(南無妙法蓮華經)라고 봉창(奉唱)하는 자(者)가 방법(謗法)의 공양(供養)을 받지 않음은 탐욕(貪欲)의 병(病)을 제거(除去)하느니라. 법화(法華)의 행자(行者)가 매리(罵詈)를 당(當)한다 해도 인욕(忍辱)을 행(行)함은 진에(瞋恚)의 병(病)을 제거(除去)하느니라. 법화경(法華經)의 행자(行者)는 시인어불도결정무유의(是人於佛道決定無有疑)라고 성불(成佛)을 각지(覺知)함은 우치(愚癡)의 번뇌(煩惱)를 치유(治癒)하느니라. 그러므로 대양약(大良藥)은 말법(末法)의 성불(成佛)의 감로(甘露)이니라. 지금 니치렌(日蓮) 등(等)의 동류(同類)가 남묘호렌게쿄(南無妙法蓮華經)라고 봉창(奉唱)함은 대양약(大良藥)의 본주(本主)이니라.
어의구전(御義口傳) 미노부에서 57세에 술작법통상속(法統相續)에 대해서는 가족 특히 자식들의 성장에 큰 영향력을 갖는 어머님의 신심의 자세와 자식에 대한 근행이 몸에 배이도록 이끄는 것이 중요한 것입니다.
특히 어린 자식에 대해서는 ‘세 살 때 버릇이 백 살까지…’ 라고 일컬어지듯 유아 때 착실하게 신앙을 심어두는 것이 어른으로 성장한 후에도 ‘소중한 것을 소중히 한다.’, ‘존경해야 할 것을 존경한다.’라는 인간으로서의 바른 마음가짐으로 통하는 것이라 생각합니다.
어릴 때는 모친의 무릎 위에 올려놓고 근행을 들려주고 성장함에 따라서 함께 앉히고서 행하도록 하는 것입니다.
그리하여 어느 시기를 봐서(아이가 말을 할 수 있을 때) 아이가 발성하는 속도에 맞추어서 느긋하고 끈기 있게 근행을 함께하여 길들여가는 노력이 중요합니다.
아이가 아직 어리기 때문에 좀 더 커서부터라는 것으로는 이미 늦은 것입니다. 매일 매일 거듭 실천함으로 해서 자연히 근행의 중요성과 어본존의 위대한 공덕을 체득해 갈 수가 있는 것입니다.
자신이 성인이 된 후에 입신한 가정도 같은 이치로서 조석의 근행을 될 수 있는 한 가족이 함께 모여서 하고 도사를 하는 중심자는 근행이 끝나면 모두를 향해서 ‘안녕하십니까? 좋은 저녁입니다.’라고 힘찬 인사를 함과 동시에 어서의 금언을 모두가 배독하게 했으면 합니다.
이것이 법통상속의 최초이며 그 뒤는 연령에 상응한 조직활동에 참가나 가족이 함께 모여서 보은어강 참예, 각종 회합에 참가 등으로 자연히 신심이 몸에 배이게 되는 것입니다.
불법승(佛法僧)의 삼보에 대한 신앙심을 잃지 않는 자식이라면 깊은 인연으로 맺어진 친자 가족의 관계를 망각하고 부모나 연세가 많은 분을 나 몰라라 하는 등의 일은 생기지 않을 것입니다.
즉 불법에서 설하는 「부모(父母)로 되고 그 자식으로 됨도 반드시 숙습(宿習)이니라.」(신편어서 p.1393)에 따른 것이며, 타인에게는 없는 깊은 인연이 있다는 것을 인식해서 비로소 가족이 서로 도우는 마음이 생기며, 이 친자(親子)의 깊은 연결 위에 있어서 부모가 자식에게 신심을 전하고 법통상속을 확실히 하는 것이 부모 자신을 지키는 일인 것이며 나아가서는 광선유포에 대한 중요한 역할을 다해 나가는 것으로도 되는 것입니다.
고로 법통상속을 확실하게 해나간다는 것은 자신을 포함해서 가족 모두의 장래의 행복을 위한 것이라는 것을 심간에 새겨 서로가 힘을 합쳐나가도록 합시다.미륵보살(彌勒菩薩)의 유가론(瑜伽論)·용수보살(龍樹菩薩)의 대론(大論)을 보아하면, 정업(定業)의 자(者)는 약(藥)이 변(變)해서 독(毒)이 되고 법화경(法華經)은 독(毒)이 변(變)해서 약(藥)이 된다고 쓰여있소. 니치렌(日蓮) 불초(不肖)의 몸으로 법화경(法華經)을 넓히려고 하니 천마(天魔)가 다투어 음식(飮食)을 빼앗으려 하는가라고 생각하여 한탄(恨歎)하지 않고 있었는데, 이번에 생명(生命)이 구조(救助)됨은 오로지 석가불(釋迦佛)이 귀하(貴下)의 몸에 들어가 바뀌시어 구조(救助)하심일까.
시조깅고전답서(四條金吾殿答書) 미노부에서 57세에 술작신(信)·행(行)·학(學)의 세 번째에 해당하는 교학은 대성인이 「행학(行學)의 이도(二道)를 면려할지어다. 행학(行學)이 끊어지면 불법(佛法)은 있을 수 없도다……」(신편어서 p.668)라는 말씀과 같이 중요한 실천항목입니다.
흔히 ‘나는 교학이 없으므로…’라든가. ‘절복에는 교학이 필요치 않으므로…’와 같이 말하는 사람이 있으나, 대성인의 금언에서 배(拜)한다면 자기 자신의 해태방법(懈怠謗法) 이나 계아방법(計我謗法)을 피력하고 있는 것으로 됩니다.
교학은 올바른 신심의 방향성을 어긋나게 하지 않기 위해서 절대로 배우지 않으면 안 되는 것입니다. 그를 위해서 조석근행 후에 어성훈(御聖訓)의 일절을 배독하는 습관을 몸에 익히도록 하는 일부터 시작하는 것입니다.
「이 경(經)은 상전(相傳)이 아니면 알기 어렵다.」라고 말씀하시고 있는 그대로 신심을 근본으로 해서 공부를 하는 모임 등에서 지도교사인 주직(住職)으로부터 정확하게 사리를 세워서 가르침을 받는 것이 중요한 것이며, 「신(信)은 학(學)을 구하고 학(學)은 신(信)을 깊게 함」이라 말하여지고 있는 것과 같이 교학에 의해서 왜 불법의 신심을 하지 않으면 안 되는 것인가? 왜 신심을 하면 세간의 사람들로부터 악구(惡口)를 받게 되는 것인가 등등 불법에 대한 스스로의 의문을 해결하고 스스로의 신심을 지탱해 나갈 수가 있게 됩니다.
또 독단(獨斷), 아견(我見)이 없는 올바른 신심의 자세나 절복홍교에 필요한 지식도 점차로 몸에 배어가게 됩니다. 그러므로 교학의 필요성은 신심을 돕고 지탱시키며 보충해 나가는 것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교학이 없는 신심은 부박(浮薄)한 맹신(盲信)으로 되어 종종 아견(我見)을 써서 신심의 자세를 어긋나게 한다든가, 또는 난(難)을 만났을 때는 간단하게 퇴전을 해버리는 것입니다.
대성인은 『시조깅고전답서(四條金吾殿答書)』에서 「받기는 쉽고 가지기는 어렵다, 그러므로 성불(成佛)은 가지는데 있으며 이 경(經)을 수지(受持)하는 사람은 난(難)을 만난다고 심득(心得)해서 갖는 것이니라.」(신편어서 p.775)라고 말씀하셨듯이 올바른 불법에 대해 무지한 어리석은 범부는 의심이 깊어서 도중에 불도수행에 태만하고 의혹이나, 아견을 품어 좀처럼 일생애에 신심을 지속하는 것은 어려운 것입니다.
교학이 단순한 세간의 학문과 다르다는 것은 신(信)의 일자(一字)를 가지고 배워나갈 때 깊이 있고, 정확하게 이해가 부쩍부쩍 늘어나 진전되어 가는 점에 있습니다.
대체로 「불법(佛法)이라 말함은 도리(道理)」(신편어서 p.1179)로 관철된 가르침이며, 또한 「일체(一切)는 현증(現證)을 따를 것이 없도다.」(어서1279면)라고 할 정도로 실증(實證)을 중시하는 가르침인 것이므로 의심을 위한 의심, 비판을 위한 비판의 사악한 자세를 버리고 신(信)을 가지고 배운다면 반드시 문제는 빙해(氷解)되고 심심한 교의(敎義)를 회득(會得)해 나갈 수가 있는 것입니다.대성인은 『시조깅고전답서(四條金吾殿答書)』에서 「받기는 쉽고 가지기는 어렵다, 그러므로 성불(成佛)은 가지는데 있으며 이 경(經)을 수지(受持)하는 사람은 난(難)을 만난다고 심득(心得)해서 갖는 것이니라.」(신편어서 p.775)라고 말씀하셨듯이 올바른 불법에 대해 무지한 어리석은 범부는 의심이 깊어서 도중에 불도수행에 태만하고 의혹이나, 아견을 품어 좀처럼 일생애에 신심을 지속하는 것은 어려운 것입니다.
교학이 단순한 세간의 학문과 다르다는 것은 신(信)의 일자(一字)를 가지고 배워나갈 때 깊이 있고, 정확하게 이해가 부쩍부쩍 늘어나 진전되어 가는 점에 있습니다.
대체로 「불법(佛法)이라 말함은 도리(道理)」(신편어서 p.1179)로 관철된 가르침이며, 또한 「일체(一切)는 현증(現證)을 따를 것이 없도다.」(어서1279면)라고 할 정도로 실증(實證)을 중시하는 가르침인 것이므로 의심을 위한 의심, 비판을 위한 비판의 사악한 자세를 버리고 신(信)을 가지고 배운다면 반드시 문제는 빙해(氷解)되고 심심한 교의(敎義)를 회득(會得)해 나갈 수가 있는 것입니다.지(地)에는 삼십육기(三十六祇)·천(天)에는 이십팔수(二十八宿)가 수호(守護)하시는데다가·사람에게는 반드시 두 가지의 천(天)이 그림자처럼 따르느니라. 소위(所謂) 一을 동생천(同生天)이라고 하며, 二를 동명천(同名天)이라고 하는데, 좌우(左右)의 어깨에 붙어 있으면서 사람을 수호(守護)하므로 죄(罪) 없는 자(者)는 천(天)도 벌(罰)하는 일이 없으니·하물며 선인(善人)에 있어서랴. 그러므로 묘락대사(妙樂大師) 가로되 「반드시 마음의 견고(堅固)함에 따라서 신(神)의 수호(守護) 즉 강(强)함이라」 등 운운(云云). 사람의 마음이 견고(堅固)하면 신(神)의 가호(加護)도 반드시 강(强)하다 함이라. 이는 당신을 위해서 말하느니라. 옛날의 신심(信心)은 말할 나위도 없지만·그보다도 지금 한층 강성(强盛)히 신심(信心)을 가지시라. 그 때는 더욱더 십나찰녀(十羅刹女)의 수호(守護)도 강(强)해지리라고 생각하시라. 예(例)를 타(他)에서 인용(引用)치 말지어다. 니치렌(日蓮)을 일본국(日本國)의 상일인(上一人)으로부터 하만민(下萬民)에 이르기까지, 한 사람도 빠짐없이 해(害)치려고 하였으나·지금까지 이토록 살아 있는 것은 혼자이지만 마음이 강(强)한 때문이다 라고 생각하시라.
오토님어소식(乙님御消息) 미노부에서 54세에 술작‘교학(敎學)’이라면 듣기만 해도 어렵다고 생각하는 분도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교학은 단순한 지식이 아닙니다. 불법자로서 인생의 철학을 가지는 것입니다.
구체적으로 말하면, 먼저 처음은 어려운 어서(御書)가 아니어도 좋으니까 착실히 배독하여 자기 자신의 몸으로 읽어 가도록 제안하고 싶습니다.
예를 들면 『묘이치니어전어소식(妙一尼御前御消息)』의 「법화경을 믿는 사람은 겨울과 같다. 겨울은 반드시 봄이 되느니라.」(신편어서 p.832)는 유명한 어문이라도 좋습니다. 또는 「젖은 나무에서 불을 내고 마른 흙에서 물을 얻으려 하듯」(신편어서 p.718)이라는 어문도 좋습니다.
그 말씀을 믿고 마음을 정하여 어문대로 정진해 가는 것입니다. 그렇게 하면 ‘정말로 그대로다!’고 실감하여 본존님에 대한 대 확신을 가질 수 있습니다.
그것이 진정한 의미에서 어서를 배독하는 것이며 ‘실천하는 교학’인 것입니다. 하나의 어문을 몸으로 읽고 자기 것으로 할 수 있다면 자연히 다른 어서도 이해하게 되며, 모든 것에 통하게 됩니다.대저 인신(人身)을 받기는 희귀(稀貴)한 일이니라, 이미 희귀(稀貴)한 인신(人身)을 받았으며 또한 만나기 어려움은 불법(佛法)·이것 또한 만났노라, 같은 불법(佛法) 중에서도 법화경(法華經)의 제목(題目)을 삼가 만나서 결국(結局) 제목(題目)의 행자(行者)가 되었으니, 참으로 참으로 과거십만억(過去十萬億)의 제불(諸佛)을 공양(供養)한 자(者)이니라.
니치렌(日蓮)은 일본(日本) 제일(第一)의 법화경(法華經)의 행자(行者)로다.
자쿠니치보어서(寂日房御書) 미노부에서 58세에 술작■ 교학연찬 ■
(3) 어서란?
니치렌대성인께서 법론이나 서장으로 내려주신 모든 문서
우리들이 살아가는 일상생활에서,
괴로움 또는 슬픔 속에서도 용기와 힘을 주고 희망이 솟아나게 해서 소생의 길을 열어 인도해주는 것이 어서이다
어서야말로 참으로 우리들에게 무상의 그리고 근원의 일서이다
어서란
니치렌대성인께서
사종사의와의 격투의 와중에서 쓰신 법론이나 서장이며
법리, 자신의 행위를 기술하시어 제자, 단나 등에 내려주신 모든 문서를 말한다대저 인신(人身)을 받기는 희귀(稀貴)한 일이니라, 이미 희귀(稀貴)한 인신(人身)을 받았으며 또한 만나기 어려움은 불법(佛法)·이것 또한 만났노라, 같은 불법(佛法) 중에서도 법화경(法華經)의 제목(題目)을 삼가 만나서 결국(結局) 제목(題目)의 행자(行者)가 되었으니, 참으로 참으로 과거십만억(過去十萬億)의 제불(諸佛)을 공양(供養)한 자(者)이니라.
니치렌(日蓮)은 일본(日本) 제일(第一)의 법화경(法華經)의 행자(行者)로다.상행보살(上行菩薩)이 홍통(弘通)해야 할 비법(秘法)을 니치렌(日蓮)이 앞서서 이것을 홍통(弘通)하는 당자(當者)라고 하는 뜻이 아닐손가, 상행보살(上行菩薩)의 대관(大官)의 일분(一分)이니라. 결국(結局) 말법(末法)에 들어와서 천진독랑(天眞獨朗)의 법문(法門)은 무익(無益)하니라. 조행(助行)으로는 사용(使用)할 것이로되, 정행(正行)에는 오직 남묘호렌게쿄(南無妙法蓮華經)이니라. 전교대사(傳敎大師) 가로되 「천태대사(天台大師)는 석가(釋迦)에 신순(信順)하여 법화종(法華宗)을 도와서 진단(震旦)에 부양하고 에이산(叡山)의 일가(一家)는 천태(天台)에게 상승(相承)하여 법화종(法華宗)을 도와서 일본(日本)에 홍통(弘通)함이라」 지금 니치렌(日蓮)은 탑중상승(塔中相承)의 남묘호렌게쿄(南無妙法蓮華經)의 칠자(七字)를 말법(末法)의 시(時)에 일본국(日本國)에 홍통(弘通)하니 이 어찌 시국상응(時國相應)의 불법(佛法)이 아니겠느뇨. 말법(末法)에 들어와서 천진독랑(天眞獨朗)의 법(法)을 홍통(弘通)하여 정행(正行)으로 하려는 자(者)는 반드시 무간대성(無間大城)에 떨어질 것은 의심(疑心)이 없도다. 귀하(貴下)는 연래(年來)의 권종(權宗)을 버리고 니치렌(日蓮)의 제자(弟子)가 되셨으니 진실(眞實)로 시국상응(時國相應)의 지인(智人)이니라, 통틀어 나의 제자(弟子)들은 나와 같이 정리(正理)를 수행(修行)하시라, 지자(智者)·학장(學匠)의 몸이 되었어도 지옥(地獄)에 떨어지면 무슨 보람이 있을손가, 결국(結局) 시시염념(時時念念)에 남묘호렌게쿄(南無妙法蓮華經)라고 봉창(奉唱)할지어다.
십팔원만초(十八圓滿抄) 미노부에서 59세에 술작귀하(貴下)는 연래(年來)의 권종(權宗)을 버리고 니치렌(日蓮)의 제자(弟子)가 되셨으니 진실(眞實)로 시국상응(時國相應)의 지인(智人)이니라, 통틀어 나의 제자(弟子)들은 나와 같이 정리(正理)를 수행(修行)하시라, 지자(智者)·학장(學匠)의 몸이 되었어도 지옥(地獄)에 떨어지면 무슨 보람이 있을손가, 결국(結局) 시시염념(時時念念)에 남묘호렌게쿄(南無妙法蓮華經)라고 봉창(奉唱)할지어다.
십팔원만초(十八圓滿抄) 미노부에서 59세에 술작우리는 대성인이 나타내신 어본존의 빛을 쬐는 것만으로 자유자재의 강한 생명의 경계를 얻을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매일 조석근행과 창제를 빠뜨리지 않고 실천하며 많은 사람에게 대성인의 가르침을 넓혀나가는 것이 중요합니다.
그것들을 실행했을 때 어본존으로부터 우리 범부(凡夫)가 짐작할 수 없을 정도의 ‘성불(成佛)’이라는 큰 공덕을 받을 수 있는 것입니다.
금년은 우리 연합회가 창립한 지 60년이 되는 해입니다. 모두가 어본존의 공덕을 받는 생활을 하고, 절복1+1파동과 대결집(大結集) 달성을 목표로 매일 정진(精進)해 나갑시다.우리들의 악업(惡業)은 금강(金剛)과 같고, 이구류수(尼俱類樹)와 같으며, 법화경(法華經)의 제목(題目)은 양(羊)의 뿔과 같고, 초료조鷦鷯鳥)와 같다. 호박(琥珀)은 먼지를 빨아들이고, 자석(磁石)은 철(鐵)을 끌어당기는데, 우리들의 악업(惡業)은 먼지와 철(鐵)과 같고, 법화경(法華經)의 제목(題目)은 호박(琥珀)과 자석(磁石)과 같으니라.
이렇게 생각하고 항시 남묘호렌게쿄(南無妙法蓮華經)라고 부를지어다.
법화경제목초(法華經題目抄) 기요스미에서 45세에 술작어서의 문체에 대해서는 한문체와 한자와 가나(假名)의 혼용 문장으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당시, 공문서는 한문으로 쓰고 있었으며, 히라카나문은 사적인 일기나 쉬운 이야기 등에 사용하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당시의 대부분의 사람들은 문자를 제대로 읽지 못했습니다. 대성인께서는 이러한 상황에서 사람들에게 이해할 수 있도록 쉬운 히라카나 혼용 문장으로 당시의 속어(俗語)나 이해하기 쉬운 비유 등으로 현실에 일어나는 사건, 그리고 쉬운 불법 설화 등을 자유자재로 구사하시고 있습니다.
이러한 어서에 대하여 중요성을 인지하고 수집과 정리에 착수하신 분은 제2조 닛코상인입니다. 이 수집과 정리에 있어서 중요 어서 열편 즉 ‘십대부(十大部)를 정한 것은 『후지일적문도존지지사(富士一跡門徒存知之事)』(신편어서 p.1870)에 명백합니다.
또한 어서의 서사(書寫)도 하시고 『입정안국론(立正安國論)』, 『여래멸후오오백세시관심본존초(如來滅後五五百歲始觀心本尊抄)』 등의 중요한 어서 외에 답서의 대부분이 사본으로서 오늘날에 전해져 오고 있어 그 진가는 타의 추종을 불허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대성인 멸후, 닛코상인 이외의 오노승은 천태사문(天台沙門)이라 칭하며 스승에게 적대하였으며 대성인의 어서에 관해서는 히라카나 혼용의 답서를 후세에 남기는 것은 대성인의 수치라 하여 녹여서 다시 종이로 만들거나 소각했습니다.(신편어서 p.1870)고 하니 이 얼마나 한심한 일인가요?
오직 닛코상인께서 혼자서 대성인을 본불님이라 받들고 그 가르침을 후세에 올바르게 전하기 위해 어서를 결집하신 노력의 존귀함을 새삼 통감하게 됩니다.
그리고 지금 우리들이 어서를 그릇됨 없이 배독할 수가 있는 것은 「이 경(經)은 상전(相傳)이 아니고서는 알기 어렵도다.」(신편어서 p.92)라고 말씀하신 것과 같이 역대의 법주상인의 상전에 의한 지남이 있었기 때문이란 것을 우리들은 명심해야 됩니다.사람마다 혀를 차고, 귀를 막았느니라. 그 때 나의 편은 한 사람도 없고 유아(唯我)와 니치렌(日蓮) 여아(與我) 닛코(日興)뿐이니라.
물어 가로되, 수량품(壽量品)·문저(文底)의 대사(大事)라고 하는 비법(秘法)은 어떠한가. 답(答)하여 가로되, 유밀(唯密)의 정법(正法)이니 비장(秘藏)하고 비장(秘藏)할지어다. 일대응불(一代應佛)의 경지(境地)에 머무르는 쪽은 이상(理上)의 법상(法相)이므로 일부(一部) 공(共)히 이(理)의 일념삼천(一念三千)이며, 적상(迹上)의 본문수량(本門壽量)이라고 득의(得意)시키는 것을 탈익(脫益)의 문상(文上)이라고 하느니라. 문저(文底)란 구원실성(久遠實成)의 명자(名字)의 묘법(妙法)을 여행(餘行)에 걸치지 않고, 직달(直達)의 정관(正觀)·사행(事行)의 일념삼천(一念三千)의 남묘호렌게쿄(南無妙法蓮華經) 이것이니라. 권실(權實)은 이(理) 금일본적리(今日本迹理)이며 본적(本迹)은 사(事) 구원본적사(久遠本迹事)이니라, 또한 권실(權實)은 약지약교(約智約敎) 일대응불본적(一代應佛本迹) 본적(本迹)은 약신약위(約身約位) 명자신(名字身) 구원본적(久遠本迹) 또 가로되, 수탈재현(雖脫在現)·구등본종(具騰本種)이라고 했느니라. 석존(釋尊)·구원명자즉(久遠名字卽)의 위(位)의 자신(自身)의 수행(修行)을 말법(末法) 금시(今時)·니치렌(日蓮)의 명자즉(名字卽)의 몸에 옮겼노라. 이(理)는 조작(造作)이 아니니라, 고(故)로 천진(天眞)이라 하고, 증지원명(證智圓明)인 고(故)로 독랑(獨朗)이라 하는 행의(行儀)·본문입행(本門立行)의 혈맥(血脈) 이것을 기술(記述)하니, 비장(秘藏)하고 비장(秘藏)할지어다.
본인묘초(本因妙抄) 미노부에서 53세에 술작권실(權實)은 이(理) 금일본적리(今日本迹理)이며 본적(本迹)은 사(事) 구원본적사(久遠本迹事)이니라, 또한 권실(權實)은 약지약교(約智約敎) 일대응불본적(一代應佛本迹) 본적(本迹)은 약신약위(約身約位) 명자신(名字身) 구원본적(久遠本迹) 또 가로되, 수탈재현(雖脫在現)·구등본종(具騰本種)이라고 했느니라. 석존(釋尊)·구원명자즉(久遠名字卽)의 위(位)의 자신(自身)의 수행(修行)을 말법(末法) 금시(今時)·니치렌(日蓮)의 명자즉(名字卽)의 몸에 옮겼노라. 이(理)는 조작(造作)이 아니니라, 고(故)로 천진(天眞)이라 하고, 증지원명(證智圓明)인 고(故)로 독랑(獨朗)이라 하는 행의(行儀)·본문입행(本門立行)의 혈맥(血脈) 이것을 기술(記述)하니, 비장(秘藏)하고 비장(秘藏)할지어다.
본인묘초(本因妙抄) 미노부에서 53세에 술작닛코상인을 비롯해서 옛사람들의 노고에 의해 어서(御書)에 수록되어 있는 어서만 해도 사백수십편이 오늘날에 전해지고 있습니다.
지금 우리들이 사용하는 『신편(新編) 니치렌대성인(日蓮大聖人) 어서(御書) 다이세키사판(大石寺版)』은 1994년 7월에 일련정종 총본산 제67세 어법주 닛켄(日顯)상인의 엄정한 감수(監修)를 거쳐 새롭게 편찬된 것입니다.
종전의 어서전집은 1952년 4월에 편찬된 것으로 당시 도다(戶田) 대강두의 간곡한 뜻에 의한 일련정종 제59세 호리니치고상인(堀日享上人)의 고심에 찬 편찬으로 완성을 보게 된 것입니다.
당시의 어서 편찬은 일련정종 종문의 중요한 의미를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 내용 중에서 연도의 착오, 어서의 진위 판정기준, 어서 본문과의 교정, 미수록 어서 등 많은 점들이 있었습니다. 이를 올바른 연구로 정리하여 술작 연대순으로 새로운 편찬을 이루게 된 것이 『신편(新編) 니치렌대성인(日蓮大聖人) 어서(御書)』입니다.
이와 같은 어서 속의 중요한 어서 ‘십대부’ 중에서도 더욱 중요한 다섯 편을 ‘오대부’라 하는데 거기에 대해서 간단히 언급해 둡니다.
『입정안국론(立正安國論)』은 1260년 7월 16일 성수 39세 때, 가마쿠라에서 저술하시어 막부(幕府)의 사실상의 최고 권력자인 호조도키요리(北條時賴)에게 제출하신 제일회의 간효서(諫曉書)입니다. 정법에 의해 나라를 안온하게 하는 방법을 밝힌 내용입니다.
『개목초(開目抄)』는 1272년 2월, 51세 때 사도(佐渡)에서 시조킹고와 문하 일동에게 주어진 것이며 대성인께서 주사친(主師親) 삼덕(三德)을 구비하신 말법의 본불님이시란 것을 선언하신 인본존(人本尊) 개현서(開顯書)입니다.
『여래멸후오오백세시관심본존초(如來滅後五五百歲始觀心本尊抄)』는 1273년 4월, 52세 때 사도에서 저술하시어 도키조닌에게 주셨습니다. ‘수지즉관심(受持卽觀心)’의 원리를 교시하고 미증유(未曾有)의 법본존(法本尊)을 개현하신 어서입니다.
『선시초(撰時抄)』 는 1275년 54세 때 ‘시時’에 대해서 논하시고 말법의 묘법광포를 밝히시고 있습니다.
『보은초(報恩抄)』는 1276년 7월 55세 때의 저작으로 진실한 보은에 대해서 설하시고 삼대비법을 밝히시고 있습니다.
답서를 받은 신도들은 일본 각지에 걸치며 시모후사(下總) 에 도키조닌과 소야교신이 있었으며 가마쿠라에 시조깅고, 부슈(武州) 이케가미(池上)에 이케가미 형제, 쓰루가(駿河)에 난조도키미쓰, 마쓰노로쿠로사에몬, 사도(佐渡)에 아부쓰스님, 센니치니 등 모두에게 대성인으로 부터의 깊은 법문이 담긴 대자비가 넘치는 격려의 서장을 받고 있습니다.
이와 같이 『신편(新編) 니치렌대성인(日蓮大聖人) 어서(御書)』는 위대한 불법을 수행하는 우리들에게 있어서 신심수행의 실천 속에 자신의 일생성불을 향한 도리로 안내하는 지침서로서 본존님과 함께 우리들 곁에 늘 함께 있어야 하는 신심 속의 보배인 것입니다.생각하실지어다, 법화경(法華經)을 아는 승(僧)을 불가사의(不可思議)한 뜻으로 한번이라도 공양(供養)한다면 악도(惡道)에 가지 않느니라. 어찌 하물며 열번·이십(二十)번 내지(乃至) 오년(五年)·십년(十年)·일기생(一期生)동안 공양(供養)하는 공덕(功德)은 부처의 지혜(智慧)로써도 알기 어렵도다. 이 경(經)의 행자(行者)를 한번 공양(供養)하는 공덕(功德)은 석가불(釋迦佛)을 직접 팔십억겁(八十億劫)동안·무량(無量)한 보(寶)를 다하여 공양(供養)한 공덕(功德)보다 백천만억(百千萬億) 뛰어났다고 부처는 설(說)하셨느니라. 이 경(經)을 만났으므로 기쁨은 몸에 넘치고 좌우(左右)의 눈에 눈물이 고여 석존(釋尊)의 은혜는 다 보답(報答)하기 어렵다. 이와 같이 이 산(山)까지 여러번의 공양(供養)은 법화경(法華經)과 석가세존(釋迦世尊)의 은혜를 보답(報答)하게 되나이다. 더욱더 면려(勉勵)하시라. 게을리 해서는 안 되느니라. 모든 사람이 이 경(經)을 믿기 시작할 때는 신심(信心)이 있는 것 같이 보이지만 중간쯤에는 신심(信心)도 약(弱)하고 승(僧)도 공경(恭敬)하지 않고 공양(供養)도 하지 않으며, 자만(自慢)하여 악견(惡見)을 하니 이는 두려워할지어다, 두려워할지어다. 처음부터 끝까지 더욱더 신심(信心)을 해 나가시라. 그렇지 않으면 후회(後悔)하게 되리라. 비유(譬喩)컨대 가마쿠라(鎌倉)에서 교토(京都)까지는 십이일(十二日)의 도정(道程)이니라, 그런데 십일일(十一日)남짓 걸어가서 이제 일일(一日)을 남겨두고 걸음을 멈춘다면 어떻게 수도(首都)의 달을 바라볼 수 있겠느뇨. 어떻게 하든 이 경(經)의 뜻을 아는 승(僧)에게 가까이 하여 더욱더 법(法)의 도리(道理)를 청문(聽聞)해서 신심(信心)의 걸음을 옮길지어다.
니이케어서(新池御書) 미노부에서 59세에 술작모든 사람이 이 경(經)을 믿기 시작할 때는 신심(信心)이 있는 것 같이 보이지만 중간쯤에는 신심(信心)도 약(弱)하고 승(僧)도 공경(恭敬)하지 않고 공양(供養)도 하지 않으며, 자만(自慢)하여 악견(惡見)을 하니 이는 두려워할지어다, 두려워할지어다. 처음부터 끝까지 더욱더 신심(信心)을 해 나가시라. 그렇지 않으면 후회(後悔)하게 되리라. 비유(譬喩)컨대 가마쿠라(鎌倉)에서 교토(京都)까지는 십이일(十二日)의 도정(道程)이니라, 그런데 십일일(十一日)남짓 걸어가서 이제 일일(一日)을 남겨두고 걸음을 멈춘다면 어떻게 수도(首都)의 달을 바라볼 수 있겠느뇨. 어떻게 하든 이 경(經)의 뜻을 아는 승(僧)에게 가까이 하여 더욱더 법(法)의 도리(道理)를 청문(聽聞)해서 신심(信心)의 걸음을 옮길지어다.
니이케어서(新池御書) 미노부에서 59세에 술작불도수행의 기본은 신행학의 실천에 있습니다. 즉 조석근행과 좌담회와 절복의 실천, 그리고 교학을 배우는 것입니다.
정도지는 우리가 교학을 배우는 데 있어서 가장 근본이 되고 유일한 교과서라고도 할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불법을 배우기 위해서는 정도지를 반드시 읽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정도지를 읽음으로써 첫째는 우리 각자가 깊은 불법 철리를 배울 수 있고, 둘째는 다른 사람에게 보여 줌으로써 불법을 이해하고, 절복을 할 수 있게 됩니다. 셋째는 정도지를 통해서 우리 일련정종의 이념과 지도 방향을 알 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
우리들이 정도지를 읽고 또 읽어서 인간변혁, 생활변혁, 그리고 나아가서는 광선유포 달성을 위해서 용맹정진하는 것만이 이 정도지를 발전시키는 것이 되며, 자기 자신을 성장시키는 것이 됩니다.
그러므로 가정에서, 좌담회에서, 절복하는데서, 개인지도하는 자리에서 항상 정도지가 떠나서는 안됩니다.
정도지는 범음성(梵音聲)이며, 즉 말법의 어본불이신 니치렌대성인의 음성이기 때문에 정도지를 읽는다고 하는 것은 곧 대성인과의 대화가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러한 점을 충분히 이해하여 선배님의 눈물과 땀의 결정으로써 이 만큼 발전되어 왔고 또한 앞으로 무한히 발전하게 될 정도지를 아끼고 사랑하여 애독함으로써 우리들의 소원을 성취하도록 합시다.어의구전(御義口傳)에 가로되, 이 경문(經文)은 공가중(空假中)의 삼제(三諦) 계정혜(戒定慧)의 삼학(三學)이니라. 색향미미(色香美味)의 양약(良藥)이다. 도(擣)는 공제(空諦)이며 사(簁)는 가제(假諦)이고, 화합(和合)은 중도(中道)이다, 여(與)는 수여(授與)이며 자(子)는 법화(法華)의 행자(行者)이고, 복용(服用)한다고 하는 것은 수지(受持)의 의(義)이니라. 이것을 차대양약색향미미개실구족(此大良藥色香美味皆悉具足)이라고 설(說)하였느니라. 개실(皆悉)의 이자(二字)는 만행만선(萬行萬善)·제바라밀(諸波羅蜜)을 구족(具足)한 대양약(大良藥)인 남묘호렌게쿄(南無妙法蓮華經)이니라. 색향(色香) 등(等)이란 일색일향(一色一香)·무비중도(無非中道)로서 초목성불(草木成佛)이니라. 그러므로 제목(題目)의 오자(五字)에 일법(一法)도 구족(具足)하지 않았다고 하는 것이 없으니 만약 복용(服用)하는 자(者)는 속제고뇌(速除苦惱)이니라. 그러므로 묘법(妙法)의 대양약(大良藥)을 복용(服用)함은 탐진치(貪瞋癡)의 삼독(三毒)의 번뇌(煩惱)의 병환(病患)을 제거(除去)하느니라. 법화(法華)의 행자(行者) 남묘호렌게쿄(南無妙法蓮華經)라고 봉창(奉唱)하는 자(者)가 방법(謗法)의 공양(供養)을 받지 않음은 탐욕(貪欲)의 병(病)을 제거(除去)하느니라. 법화(法華)의 행자(行者)가 매리(罵詈)를 당(當)한다 해도 인욕(忍辱)을 행(行)함은 진에(瞋恚)의 병(病)을 제거(除去)하느니라. 법화경(法華經)의 행자(行者)는 시인어불도결정무유의(是人於佛道決定無有疑)라고 성불(成佛)을 각지(覺知)함은 우치(愚癡)의 번뇌(煩惱)를 치유(治癒)하느니라. 그러므로 대양약(大良藥)은 말법(末法)의 성불(成佛)의 감로(甘露)이니라. 지금 니치렌(日蓮) 등(等)의 동류(同類)가 남묘호렌게쿄(南無妙法蓮華經)라고 봉창(奉唱)함은 대양약(大良藥)의 본주(本主)이니라.
어의구전(御義口傳) 미노부에서 57세에 술작법화(法華)의 행자(行者) 남묘호렌게쿄(南無妙法蓮華經)라고 봉창(奉唱)하는 자(者)가 방법(謗法)의 공양(供養)을 받지 않음은 탐욕(貪欲)의 병(病)을 제거(除去)하느니라. 법화(法華)의 행자(行者)가 매리(罵詈)를 당(當)한다 해도 인욕(忍辱)을 행(行)함은 진에(瞋恚)의 병(病)을 제거(除去)하느니라. 법화경(法華經)의 행자(行者)는 시인어불도결정무유의(是人於佛道決定無有疑)라고 성불(成佛)을 각지(覺知)함은 우치(愚癡)의 번뇌(煩惱)를 치유(治癒)하느니라. 그러므로 대양약(大良藥)은 말법(末法)의 성불(成佛)의 감로(甘露)이니라. 지금 니치렌(日蓮) 등(等)의 동류(同類)가 남묘호렌게쿄(南無妙法蓮華經)라고 봉창(奉唱)함은 대양약(大良藥)의 본주(本主)이니라.
어의구전(御義口傳) 미노부에서 57세에 술작어강(御講)이란 어보은어강(御報恩御講)을 줄여서 말하는 것으로 총본산에서는 고래(古來)로 니치렌대성인님·닛코상인(日興上人)님·니치모쿠상인(日目上人)님의 명일(命日)인 매월 7일, 13일, 15일에 보은어강을 봉수(奉修)합니다.
한편 각 말사에서는 매월 둘째 주 일요일에 보은어강을 집행하는데, 사원에 따라서는 매월 둘째 주 일요일 외에도 13일 등에 행하는 곳도 있습니다.
대성인님께서는 『사은초(四恩抄)』에 「불법(佛法)을 익히는 몸으로는 반드시 사은(四恩)에 보답해야 하니라.」(신편어서 p.267) 고 말씀하시어, 불법을 신앙하는 사람은 먼저 첫 번째로 지은보은(知恩報恩)을 명심해야 한다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래서 우리들은 말법의 삼보(三寶)를 으뜸으로 하는 역대의 어법주상인 예하의 대자비로 인해 공덕을 쌓을 수 있다는 대은(大恩)을 알고, 그 대은에 보은하기 위한 법요가 바로 어강(御講)입니다.머리를 흔들면 머리털이 흔들리고, 마음이 작용(作用)하면 몸이 움직이고, 대풍(大風)이 불면 초목(草木)이 조용하지 않고, 대지(大地)가 움직이면 대해(大海)가 소란(騷亂)하고, 교주석존(敎主釋尊)을 움직이시게 하면 흔들리지 않는 초목(草木)이 있으랴, 소란(騷亂)하지 않는 물이 있을손가.
니치겐뇨조립석가불공양사(日眼女造立釋迦佛供養事) 미노부에서 58세에 술작우리들이 본존님에 대한 보은의 행사인 어강에 참예해, 법화를 청문하는 것에는 커다란 공덕이 있습니다.
석가세존은 고령의 신도가 먼 곳에서 만나러 왔을 때, “그대가 밟고 걸어온 국토를 갈아서 티끌로 만들어, 그 티끌 하나에 일겁(一劫)이라는 오랜 시간 동안 지은 죄가 소멸할 것이다. 또 그 티끌 수만큼 다시 태어나 몇 번이나 부처님을 만나실 것이다.”라고, 실로 무량무변(無量無邊)한 공덕이 있다는 것을 밝히셨습니다.
또한 법화경에는 팔십억겁(八十億劫)이라는 긴 시간동안 무량한 재보(財寶)를 부처님께 공양하는 공덕보다도 법화경을 설하는 승려를 공양하고 아주 잠깐이라도 법화경의 법문(法門)을 청문하는 공덕이 실로 크다고 설해져 있습니다.
그리고 일상생활에서 여러 가지 고민을 갖고 있어도, 어강참예로 인해 신기하게 고민을 극복할 수 있었다는 등 많은 신도들의 소중한 체험이 계속해서 발표되고 있습니다.
이렇게 우리들이 매월 어강에 참예하는 공덕은 가늠할 수 없다는 것을 확신하며, 꼭 어강에 참예합시다.미륵보살(彌勒菩薩)의 유가론(瑜伽論)·용수보살(龍樹菩薩)의 대론(大論)을 보아하면, 정업(定業)의 자(者)는 약(藥)이 변(變)해서 독(毒)이 되고 법화경(法華經)은 독(毒)이 변(變)해서 약(藥)이 된다고 쓰여있소.
시조깅고전답서(四條金吾殿答書) 미노부에서 57세에 술작어강(御講)에서는 독경·창제 후에 법화(法話)가 있습니다. 우리들은 미혹이 많은 범부입니다. 아무리 존귀한 신앙의 체험이 있었다고 해도 자신의 머리로 불법(佛法)을 판단하게 되어 올바른 불법의 길에서 벗어나게 되어 버립니다. 그러니까 항상 법화(法話)를 청문하여 신심의 자세를 바로잡아 나가야 합니다.
대성인님께서 『니이케어서(新池御書)』에서「어떻게 하든 이 경(經)의 마음을 아는 승(僧)에게 가까이 하여, 더욱 더 법(法)의 도리(道理)를 청문(聽聞)해서 신심(信心)의 발길을 옮길지어다.」(신편어서 p.1457)라고 말씀하신 것처럼, 법화(法話)를 이정표로 해서 신심의 발걸음을 한 걸음 한 걸음 옮겨가는 것이 가장 중요합니다.
우리들은 바깥일과 가정일, 그 외에도 여러 가지의 잡다한 일에 쫓겨 바쁜 나날을 보내고 있습니다. 그 때문에 ‘어강에 갈 시간이 없다’는 등의 이유를 붙여 어강(御講)에 참예하지 않는 사람도 있는 것 같습니다.
이런 이유를 달고 참예하지 않는 사람은 결국 ‘뭔가 사원에 참예하지 않을 이유가 없을까?’하고 생각하게 되어 버립니다. 그럴 때는 이것이 바로 마(魔)의 작용이라고 자신을 되돌아보고 반성하며, 시간을 잘 조절해서 어강에 꼭 참예할 수 있도록 합시다.지(地)에는 삼십육기(三十六祇)·천(天)에는 이십팔수(二十八宿)가 수호(守護)하시는데다가·사람에게는 반드시 두 가지의 천(天)이 그림자처럼 따르느니라. 소위(所謂) 一을 동생천(同生天)이라고 하며, 二를 동명천(同名天)이라고 하는데, 좌우(左右)의 어깨에 붙어 있으면서 사람을 수호(守護)하므로 죄(罪) 없는 자(者)는 천(天)도 벌(罰)하는 일이 없으니·하물며 선인(善人)에 있어서랴. 그러므로 묘락대사(妙樂大師) 가로되 「반드시 마음의 견고(堅固)함에 따라서 신(神)의 수호(守護) 즉 강(强)함이라」 등 운운(云云). 사람의 마음이 견고(堅固)하면 신(神)의 가호(加護)도 반드시 강(强)하다 함이라. 이는 당신을 위해서 말하느니라. 옛날의 신심(信心)은 말할 나위도 없지만·그보다도 지금 한층 강성(强盛)히 신심(信心)을 가지시라. 그 때는 더욱더 십나찰녀(十羅刹女)의 수호(守護)도 강(强)해지리라고 생각하시라.
오토님어소식(乙님御消息) 미노부에서 54세에 술작초창기 때부터 좌담회나 교학, 광포법요회를 비롯한 여러 회합들을 축으로 하여 활동해 왔습니다. 그 중에서도 좌담회(座談會)는 전국 각지에서 반단위로 개최하는 가장 중요하고도 기본이 되는 행사입니다.
일련정종의 신앙을 통해 니치렌대성인의 불법(佛法)이 인생과 사회 그리고 생활 속에 엄연히 행복이라는 가치를 창출한다는 사실을 증명하는 장(場)이었습니다.
지금도 ‘좌담회는 체험중심’이라 할 정도로 신앙으로 괴로움이나 과제를 극복한 수많은 체험이 전국 각지에서 이야기되고 있습니다.
또 대성인의 불법과 이념, 활동에 대한 이해를 깊이 하는 기회로 되고 있습니다. 좌담회를 비롯한 각종 회합을 중시해 왔던 것은 그것이 ‘열려진 대화의 광장’이기 때문입니다. 가장 단적인 예가 좌담회입니다.
장년, 부인, 청년 등 모든 세대의 사람들이 온갖 직업, 사회적 입장의 차이를 초월하여 한 자리에 모여서 신앙의 기쁨을 서로 이야기하고 새로운 목표를 향해 결의를 굳건히 다져가는 것입니다.
연령이나 입장을 초월한 대등한 인간간의 대화 이것이 연합회 전통의 좌담회 정신입니다. 따라서 처음 참석한 사람이나 신앙에 의문을 가지는 사람에게도 울타리를 치는 일은 없습니다. 또한 무언가를 강요하는 일방통행도 없습니다.
마음과 마음이 통하는 대화나 인간과 인간의 접촉을 통해 내일을 향한 희망과 인생과 일상생활에 있어서의 새로운 목표에 대한 결의가 생겨납니다.
서로 격려하고 계발하며 촉발하면서 신앙의 심화와 인간성 향상을 목표로 하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회합은 기쁨이 솟아나고 밝은 희망에 가득찬 장場이 되는 것입니다.이 경(經)을 듣고 받는 사람은 많지만, 진실(眞實)로 듣고 받은바와 같이 대난(大難)이 오더라도 억지불망(憶持不忘)하는 사람은 드무니라. 받기는 쉽고 가지기는 어렵다, 그러므로 성불(成佛)은 가지는데 있으며 이 경(經)을 수지(受持)하는 사람은 난(難)을 만난다고 심득(心得)해서 갖는 것이니라, 「즉위질득(則爲疾得)·무상불도(無上佛道)」는 의심(疑心)없느니라. 삼세(三世)의 제불(諸佛)의 대사(大事)인 남묘호렌게쿄(南無妙法蓮華經)를 염(念)함을 갖는다고 하느니라. 경(經)에 가로되 「호지불소촉(護持佛所屬)」이라 하였느니라. 천태대사(天台大師)가 가로되 「신력(信力) 때문에 받고 염력(念力) 때문에 가짐」 운운(云云). 또 가로되 「이 경(經)은 가지기 어렵도다, 만약(萬若) 잠시(暫時)라도 가지는 자(者)는 내가 바로 환희(歡喜)하노라, 제불(諸佛)도 또한 그러하니라」 운운(云云). 불에 장작을 가(加)할 때는 성(盛)하니라. 대풍(大風)이 불면 구라(求羅)는 배증(倍增)함이라. 소나무는 만년(萬年)의 수명(壽命)을 갖는 고(故)로 가지가 구부러뜨려진다. 법화경(法華經)의 행자(行者)는 불과 구라(求羅)와 같으며 장작과 바람은 대난(大難)과 같다. 법화경(法華經)의 행자(行者)는 구원장수(久遠長壽)의 여래(如來)니라, 수행(修行)의 가지를 잘리고 구부러뜨려지는 것은 의심이 없느니라, 이 이후(以後)는 차경난지(此經難持)의 사자(四字)를 잠시(暫時)도 잊지 않고 생각 하실지어다.
시조깅고전답서(四條金吾殿答書) 미노부에서 54세에 술작그러나 최고로 결집된 좌담회는 활기가 넘치고 화제도 풍부해서 반드시 성공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면 좌담회의 결집이 잘되게 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이에 대한 대답은 ‘개인지도를 철저히 한다’라고 하는 한마디로써 그치는 것입니다.
간부가 착실하게 개인지도를 실천하고 있는 곳에서는 모든 신도들이 힘차게 제목을 봉창하게 되고 환희에 차게 되는 것입니다. 또한 좌담회에 모인 사람들은 개인지도를 통해서 인간관계가 긴밀하게 되어 있기 때문에 자연히 서로가 부드럽게 이야기를 주고받게 되는 것입니다. 따라서 화제도 풍부하고, 명랑하며, 충실한 회합이 되는 것입니다.좌담회를 추진하는데 있어서 가장 어려운 것이 결집인데, 결집이란 그 반에 소속된 모든 회원이 좌담회에 참가하는 것을 말합니다. 물론 전 회원이 한 사람도 빠짐없이 다 참가하는 것이 이상적이라고 하겠으나 그중에는 불가피한 사정으로 인하여 참가하지 못하는 사람도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최고로 결집된 좌담회는 활기가 넘치고 화제도 풍부해서 반드시 성공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면 좌담회의 결집이 잘되게 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이에 대한 대답은 ‘개인지도를 철저히 한다’라고 하는 한마디로써 그치는 것입니다.
간부가 착실하게 개인지도를 실천하고 있는 곳에서는 모든 신도들이 힘차게 제목을 봉창하게 되고 환희에 차게 되는 것입니다. 또한 좌담회에 모인 사람들은 개인지도를 통해서 인간관계가 긴밀하게 되어 있기 때문에 자연히 서로가 부드럽게 이야기를 주고받게 되는 것입니다. 따라서 화제도 풍부하고, 명랑하며, 충실한 회합이 되는 것입니다.
그러나 반대로 개인지도를 착실하게 하지 않고 좌담회 때만 많은 사람들이 모이게 해서 숫자에만 사로잡힌 형식적인 결집으로써 만족한다면 절대로 성공할 수 없을 것이며, 오히려 앞길이 막혀버리고 마는 것입니다.
개인지도에 전력을 다해야만 합니다. 그것이 핵폭발이 되는 것입니다. 개인, 개인에 대한 지도가 없는 곳에는 모든 것이 공전하고 말기 때문입니다.
다음에는 신래자(新來者)를 한 사람이라도 더 많이 참가시킨다고 하는 것도 중요한 것입니다. 좌담회는 절복을 하는 곳이며 법전장(法戰場)이기 때문에 항상 신래자를 참가시켜서 활발하게 절복을 추진해야 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신래자를 오게 한다는 것도 결국은 개인지도를 철저하게 해서 한사람, 한사람에게 좌담회의 의의와 절복의 중요성을 이야기해 주는 것이 전제가 되는 것입니다. 요는 신심의 세계는 어디까지나 개인지도가 근본이 된다는 것을 깊이 명심해야 할 것입니다.
니치렌 대성인께서도 많은 개인지도를 하셨는데 그것을 모아 놓은 것이 어서(御書)입니다. 우리들은 개인지도를 철저히 함으로써 최고로 결집된 명랑하고 충실한 좌담회를 가질 수 있다고 하는 것을 다시 한번 명심하도록 합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