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렘13:15-27절) 어두운 흑암이 찾아오기 전에 2-72. 그 때라도 빨리 그 버스에서 내려면 되는데, 어렵게 앉은 자리가 아까워서 계속 의자에 앉아 있다가 나중에 캄캄한 밤에 먼 길을 한참 걸어서 집에 돌아간 적이 있었습니다. 무엇인가 이상했을 때, 빨리 그 자리를 포기하고, 그 버스에서 내렸더라면, 고생을 덜 했을 것입니다. 우리는 이 세상에 살면서 여러 가지 기회(機會)를 만나게 됩니다. 그런데 그 기회들 중에서는 좋은 기회도 있고, 나쁜 기회도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인간인 이상 조금도 실패하지 않고, 똑바로 성공의 길로만 갈수는 없습니다. 때로는 실수할 수도 있고, 때로는 잘못된 길에 빠질 수도 있습니다. 그런데 성공할 수 있는 방법은 잘못된 길이라고 생각될 때는 할 수 있는 대로 빨리 그것을 포기하는 이것입니다. 우리 일생에 좋은 기회는 한두 번 찾아올까 말까 합니다. 그 대신 나쁜 기회들이 훨씬 더 많이 찾아옵니다. 그런데 내가 나쁜 길에 빠졌다고 생각될 때는 아무리 좋은 것이 있어도 그것을 빨리 포기하고, 털러버리는 것이 새로운 삶을 살 수 있는 기회가 되는 것입니다. 사람이 병(病)에 걸린다고 해서 모두 죽는 것은 아닙니다. 그러나 어떤 사람은 고집을 부리다가 병(病)을 키우는 바람에 나중에 치료를 받아도 소용이 없고, 결국 목숨을 잃는 경우도 있습니다. 그러나 할 수 있는 대로 우리는 병원(病院)에 가서 치료를 받으면, 얼마든지 병(病)을 고칠 수 있습니다. 청년기에 잘못하면, 죄(罪)에 빠질 수도 있고, 실패하는 길로 갈 수도 있습니다. 그런데 누군가가 그 길로 가면, 안 된다고 할 때, 한 순간이라도 빨리 돌아서면, 적은 피해를 보고, 얼마든지 새로운 삶을 살 수 있습니다. 본문을 보면 유다 백성들이 잘못된 길에 빠져서 거의 망하게 되었습니다. 이제 얼마 있지 않으면, 바벨론 군대가 쳐들어와서 유다와 예루살렘의 씨를 남기지 않고 모든 것을 멸망시킬 것입니다. 이때 하나님은 예레미야 선지자를 통해서 유다 백성들에게 더 늦기 전에 빨리 돌아서라고 말씀하십니다. 하나님은 아주 다급하고, 진지하게 지금이야말로 그들이 돌이킬 수 있는 마지막 기회라고 말씀하십니다. 하나님이 이렇게 말씀하시는 것은 너무나도 감사한 일입니다. 왜냐면 적어도 이때까지는 예루살렘이 망하지 않을 방법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유다 백성들은 이 기회를 놓치는 바람에 결국 완전한 패망(敗亡)의 길로 들어서고 말았습니다. 그 이유가 어디에 있습니까? 작은 것을 놓치기 싫었기 때문입니다. 즉 세상이 주는 약간의 유익들을 포기하기 싫어서 하나님의 큰 축복을 빼앗기고 말았던 것입니다. Ⅰ.빛의 나라 하나님은 유다 백성들에게 아주 심각하게‘너희는 들을지어다.‘귀를 기울일지어다.‘교만하지 말지어다.’라고 말씀하십니다. 그런데 들을지어다. 와 귀를 기울일지어다.’는 같은 뜻인데, 갑자기 왜‘교만하지 말지어다.’라고 말씀하시는 것일까? 그것은 교만한 마음으로 하나님의 말씀을 가볍게 생각하지 말라는 뜻입니다. 유다는 빛의 나라였습니다. 여기서 빛은 하나님이 주신 은혜와 축복을 말합니다. 성경에는 여러 가지 빛으로 표현합니다. 즉 하나님이 주시는 지각(知覺), 하나님이 주시는 영광(靈光)을 빛으로 말하기도 합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백성으로서의 아름다운 삶을 빛으로 표현하기도 합니다. 그러나 이 모든 것들은 하나님의 주시는 은혜요, 축복입니다. 유다에는 이 세상에는 없는 하나님의 은혜(恩惠)가 있는데, 그것은 하나님의 죄 용서입니다. 이 세상에는 죄(罪)를 지었을 때, 무서운 처벌이 있을 뿐, 죄 용서라는 것이 없습니다. 그리고 한 번 죄를 지으면, 죄인이라는 딱지를 평생 달고 다녀야만 합니다, 그러나 유다 백성들은 아무리 죄를 지어도 하나님 앞에 나와서 죄를 자백(自白)하고 용서를 구하면, 죄가 용서가 되었고, 새로운 삶의 기회가 주어졌습니다. 그리고 유다에는 자유(自由)가 있었습니다. 하나님은 결코 이스라엘 백성들을 노예처럼 강요하지 않으셨습니다. 누구든지 자기 믿음의 분량에 맞게 살면 되는 것이지, 절대로 억지로 충성을 강요하지 않으셨습니다. 그래서 유다는 이 세상 어느 곳에서도 찾아볼 수 없는 사랑이 있었고, 높은 도적적인 삶을 사는 나라였습니다. 그런데 유다 안에 교만(驕慢)이 들어왔습니다. 그들이 보기에 바벨론이나, 애굽 사람들이 훨씬 더 행복하게 사는 것 같았습니다. 그리고 유다 사람들은 하나님이 자기들이 세상으로 나가는 것이 두려워서 아무것도 하지 못하게 하신다고 생각한 것입니다. 이것이 곧 교만(驕慢)입니다. 유다 백성들이 생각한 것은 지금까지 우리는‘우물 안 개구리였다’는 것입니다. 즉 이 세상에는 잘사는 길이 많이 있는데, 그들은 하나님의 말씀에 속아서 세상의 좋은 것들을 아무것도 하지 못했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현실에 뒤떨어지고, 무능한 신(神)이라고 생각하여 아예 하나님의 말씀을 들으려고 하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유다 백성들에게 이미 그들이 가진 축복이 얼마나 귀한 축복인지 생각해 보라고 하십니다. 비록 그들은 세상 사람들처럼 화려하고, 사치스럽게 살지는 못 하지만, 그들에게는 하나님의 자유(自由)와 하나님의 용서(容恕)가 있었습니다. 그리고 언제든지 기도하기만 하면, 하나님은 그 기도를 응답하셨습니다. 그러나 유다 백성들은 어떻게 하든지, 세상 나라처럼 되고 싶어서 열심히 세상을 따라갔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유다 백성들에게‘너희는 들을지어다. 귀를 기울일 지어다. 교만하지 말지어다.’라고 아주 심각하게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유다 백성들에게 중요한 것은 과연 그들이 세상 나라처럼 되면, 어떻게 되느냐? 는 것입니다. 즉 하나님의 백성들이 신앙을 버리면, 세상 사람들처럼 자유롭게 욕심대로 살 수 있을까? 하나님은 그것이 불가능하다고 말씀하십니다. 유다 나라가 존재할 수 있었던 것은 하나님의 은혜(恩惠)가 있었기 때문인데, 하나님의 은혜가 없어지면, 이 나라는 빛의 나라가 아니라, 어두움의 나라로 변하며, 하나님으로부터 받은 모든 은혜와 축복을 반납하게 됩니다. 일단 가나안 땅부터 반납해야 합니다. 그리고 자유와 죄 용서와 기도 응답을 반납해야 하며, 결국은 나라가 해체되고, 노예로 붙들려 갈 수 밖에 없습니다. 유다 백성들이 하나님을 버릴 때는 하나님으로부터 받은 모든 축복을 반납할 각오로 세상으로 가야지, 그냥 그 상태에서는 살 수가 없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빛의 나라의 반대는 어두움의 나라라고 말씀하십니다. 즉 죄용서와 하나님의 은혜가 전혀 없는 상태입니다.‘너희 발이 어두운 산에 거치기 전.’이라는 것은 그들이 캄캄한 밤을 다시 정처 없이 걸어야 함을 의미합니다. 또 그들이‘바라는 빛’은 유대인들이 생각했던 세상 나라와 같은 행복을 말합니다. 그러나 그들은 결코 세상 나라 사람들이 될 수는 없습니다. 이상한 것이 곧 이것입니다. 다른 사람들은 하나님을 믿지 않아도 얼마든지 돈 벌고, 출세하면서 잘사는데, 왜 나는 그 사람들처럼 해도 안 되는가? 라는 것입니다. 그것은‘종자(種子)’가 틀리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은혜가 이 세상의 돈이나, 출세보다 얼마나 귀중한 것인지 알아야 합니다. 이 세상 사람들의 행복은 마치 노예들의 행복과 같습니다. 옛날에 노예들도 주인에게 오래 충성하면, 좋은 옷을 입고, 좋은 직책을 맡았습니다. 또 직책이 높은 노예는 맛있는 음식도 실컷 먹고, 옷도 비단으로 된 것을 입고, 밑에 있는 다른 노예들을 부릴 수도 있었습니다. 그러나 근본적으로 그들의 신분은 노예이고, 언제든지 주인이 시장에 팔 수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백성들은 마치 가난한 자유인과 같습니다. 즉 돈은 별로 없고 집은 화려하지 않아도 어느 누구의 간섭을 받지 않는 자유인이 얼마나 귀한 것입니까? 죄를 짓지 않는 이상 팔려 갈 것을 걱정하지 않습니다. 얼마든지 가족을 사랑할 수 있고, 자기의 일을 하면서 살 수 있습니다. 오늘날도 우리가 예수님을 믿고, 하나님을 믿는 순간 우리는 빛의 아들들이 됩니다. 세상의 화려한 노예가 아니라, 가진 것은 없지만, 자유인으로 새로운 인생을 출발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백성들은 자유 없이 세상의 욕심으로 화려하게 치장한 노예들을 부러워하면 안 됩니다. 그들이 오히려 우리를 부러워해야 합니다. 그리고 우리 안에 있는 하나님의 은혜와 축복이 얼마나 귀합니까? 우리에게는 양심의 자유와 죄의 용서가 있습니다. 또 하나님의 말씀은 우리의 영혼을 살리는 약(藥)이요, 양식(糧食)입니다. 왜 이 귀한 것들을 버리고, 세상의 잘사는 노예가 되려고 하겠습니까? 하나님은 유다 백성들에게 이런 어둠의 날이 오기 전에‘너희 하나님 여호와께 영광을 돌리라.’고 말씀하십니다. 이것은 더 늦기 전에 지금 살아가는 방향과 정반대되는 방향으로 돌이키라는 것입니다. 지금 유다 백성들은 자신들의 부귀와 영광을 위해 전속력으로 달려가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 길을 급선회해서 정반대되는 하나님의 영광을 위한 삶으로 돌아서라는 것입니다. 지금 유다 백성들의 상태는 절벽을 향해 전력 질주하고 있는 자동차와 같습니다. 여기서 차를 멈추어서 돌릴 수는 없고, 모든 것을 버리고, 차에서 뛰어내려서 심한 부상을 입는다면, 목숨만은 살릴 수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백성들은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존재합니다. 그래서 우리 하나님이 주신 것들을 최고 영광으로 생각해야 하고, 그것들을 다른 어떤 것과도 바꾸어서는 안 됩니다. 그리고 이 세상에 좋은 것들이 아무리 많아도 그것들을 욕심내지 말고, 단지 하나님이 주시는 것으로 만족해야 합니다. 그러나 세상적인 욕심에 많이 빠졌을 때는 많이 손해를 보더라도 신앙 하나라도 제대로 건져야 합니다. 이것이 하나님께로 돌아오는 것입니다. Ⅱ.표범의 반점을 없애라 여기서 구스인은 흑인(黑人)을 말합니다. 흑인이 피부색을 희게 할 수 있을까? 그리고 표범이 몸에 있는 반정을 없앨 수 있을까? 정상적으로는 검은 피부를 희게 하거나 표범의 반점은 없앨 수 없습니다. 바로 이것입니다. 하나님은 유다 백성들이 단순한 피부이식이나, 색을 덧칠하는 것으로는 검은 색이나, 반점을 절대로 없앨 수는 없다고 하십니다. 즉 흑인이 밀가루를 뒤집어쓰면, 일시적으로 백인이 될 수 있겠지만, 비를 맞거나 물로 씻으면, 도로 흑인으로 돌아갈 수밖에 없습니다. 요즘 우리나라 많은 청년들이 머리를 노랗게 염색을 합니다. 그러나 몇 주 지나고 보면, 속에서 까만 머리카락이 올라오는 것을 보게 됩니다. 하나님이 유다 백성들의 죄를 흑인의 피부나, 표범의 반점에 비유하시는 이유가 어디에 있을까? 그것은 그들의 죄가 그만큼 뿌리가 깊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단순한 피부 이식이나, 밀가루를 뒤집어쓰는 방법으로는 불가능하고, 유다 백성들이 살 수 있는 유일한 길은 인종(人種)과 짐승의 종류 자체를 바꾸어 버리는 것입니다. 즉 흑인 자체를 백인이나, 황인종으로 바꾸고, 표범 자체를 개나 양(羊)으로 바꾸어 버리는 것입니다. 이것은 사람이 할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오직 하나님만이 하실 수 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근본적으로 불가능하다고는 말씀하지 않으십니다. 그러면 어떻게 해야 할까? 이 세상에 대해 완전히 죽어야 합니다. 다시 말해서 지금까지 욕심을 부리던 세상에 대해 완전히 죽었음을 선언하는 것입니다. 유다 백성들은 다른 나라에 대한 모든 관계를 끊어야 합니다. 그러면 다른 나라들은 여러 가지로 많은 불이익을 주고, 보복할 것입니다. 그래도 조금도 움직여서는 안 됩니다. 무조건 하나님 앞에서 죽었다고 생각하고, 엎드려 있어야 합니다. 그러면 하나님이 유다의 모든 좋은 것들을 도둑들에게 주실 것입니다. 돈도 가져가게 하시고, 집도 불태워 버리실 것입니다. 그래도 죽은 사람은 움직여서는 안 됩니다. 그러면 결국 세상 사람들이 유대인들이 재수가 없다고 하면서 포기해 버리게 됩니다. 이것이 유다가 사는 길입니다. 원래 바벨론 사람들은 미신(迷信)이 심한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들이 유다를 업신여기게 된 것은 이들이 여호와의 신앙을 버리고, 자기들의 친구가 되었기 때문입니다. 바벨론이 왜 히스기야 왕 때, 사신(使臣)을 보냈습니까? 앗수르 군대 십팔 만 오천 명이 죽고, 히스기야의 병(病)이 나은 것은 여호와라는 신(神)의 능력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여호와라는 신(神)에 대해 알아보려고 사신(使臣)을 보냈던 것입니다. 만일 그 때 히스기야 왕이 보물 창고를 보여 주지 말고, 기도하는 성도들과 피가 흐르는 성전을 보여 주었더라면, 바벨론은 절대로 예루살렘으로 쳐들어오지 않았을 것입니다. 그러므로 유다 백성들은 지금이라도 목숨을 걸고 여호와만 의지해야 합니다. 다른 나라들이 아무리 좋은 조건으로 통상(通商)을 요구하고, 위협하고, 협박을 해도 죽었다고 믿고, 하나님만 의지하는 것입니다. 그러면 흑인의 검은 피부에서 검은색이 없어지고, 표범의 반점이 빠지면서 표범이 양(羊)으로 변하는 기적이 일어나게 됩니다. 20-22절)너는 눈을 들어 북방에서 오는 자들을 보라 네게 맡겼던, 양 떼, 네 아름다운 양 떼는 어디 있느냐 너의 친구 삼았던 자를 그가 네 위에 우두머리로 세우실 때에 네가 무슨 말을 하겠느냐 네가 고통에 사로잡힘이 산고를 겪는 여인 같지 않겠느냐 네가 마음으로 이르기를 어찌하여 이런 일이 내게 닥쳤는고 하겠으나 네 죄악이 크므로 네 치마가 들리고 네 발뒤꿈치가 상함이니라.” 우선‘북방에서 오는 자들’은 바벨론 문화를 말합니다. 유다 백성들이 바벨론 사람들의 풍족함을 부러워했고, 그들의 친구가 되기를 원했습니다. 그러나 바벨론 사람들이 잘사는 것은 열심히 농사를 지어서가 아니라, 다른 나라를 침략해서 모든 것을 약탈(掠奪)했기 때문입니다. 요즘으로 치면 마피아나 범죄 조직이 매춘이나, 도박이나, 마약을 팔아서 호화롭게 사는 것과 같습니다. 어떻게 하나님의 백성들이 그런 사람들의 부(富)를 부러워 할 수 있겠습니까? 그러나 이들은 이미 죄악에 많이 오염되었습니다. 그러면 결국 한 번은 죽어야 살 수 있습니다. 이것은 바벨론에 대하여 죽는 것입니다. 아직 기회가 있을 때, 쉬운 것은 아니지만, 지금 누리고 있는 것들을 모두 다 포기하고, 다시 한 번 인생 밑바닥에서부터 새 출발하는 것입니다. 그러면 하나님의 양떼를 건질 수 있습니다.‘네게 맡겼던 양 떼’라는 것은 하나님의 은혜요, 하나님의 백성들을 말합니다. 이 세상에 대하여 죽어야 즉 한 번 죽어야 하나님의 양떼를 건질 수 있습니다. 이것이 이스라엘 백성들의 영원한 갈등이었습니다. 일단 양이 되면, 세상에서 힘이 없습니다. 공격할 발톱이나, 이빨이 없기 때문에 맹수에 대해 무방비상태입니다. 그러므로 양(羊)은 언제나 목자가 필요하고, 목자가 양떼들을 지켜 주는 것입니다. 그러나 유다 백성들은 목자가 눈에 보이지 않기 때문에 언제나 불안했습니다. 우리도 마찬가지입니다. 세상에서 하나님 한분만 의지하고, 살아가기에는 매우 불안할 때가 많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도움 없이도 이 세상에서 살아갈 수 있으려면, 양을 포기하고, 표범이 되어야 하는데, 그 때는 몸에 반점이 생기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표법을 지켜 주시지 않습니다. 얼마 있지 않으면, 표범은 사냥꾼에게 잡혀가게 됩니다. 예레미야는 유다 백성들에게 옛날의 그 양떼들은 다 어디 갔느냐 고 질문합니다. 하나님의 양떼들은 다 없어지고, 이리떼나, 표범들만 남아 있으므로 바벨론 군대가 표범을 사냥하러 오는 것입니다. 그래서 아직 시간이 조금이라도 남아 있을 때, 이빨도 뽑고, 발톱도 뽑아서 다시 양(羊)이 되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하나님을 전적으로 의지하는 성도들을 끝까지 책임지십니다. 여기에 우리의 믿음이 필요합니다. 그러므로 우리 양(羊)들은 하루하루를 사는 심정으로 살아야 합니다. 그리고 아무리 주위에서 맹수들의 울부짖는 소리가 들려도 목자가 우리와 함께 있다는 것을 믿어야 합니다.
마찬가지로 유다 백성들만 모를 뿐, 온 세상은 유다의 어리석음과 죄를 다 아는 것입니다. 결국 유다는 바벨론과 주위 나라에 속아서 망한 것입니다. 그리고 발뒤꿈치가 상한다는 것은 붙들려가지 않으려고 뒷발질을 하는데, 뒤에도 가시철조망이 있어서 자기 발만 아프고, 아무소용이 없다는 뜻입니다. 즉 유단 백성들이 아무리 몸부림을 쳐봐도 한 번 올무에 걸린 후는 빠져 나올 길이 없는 것입니다. 그 이유는 그들이 하나님을 상대로 해서 싸웠기 때문입니다. 바울은 예수님을 만나기 전에 믿는 성도들을 핍박했습니다. 예수님은 다메섹으로 가는 길에서 바울을 만나셔서 행26:14절)...사울아, 사울아 네가 어찌하여 나를 박해하느냐 가시 채를 뒷발질하기가 네게 고생이니라.”고 말씀하셨습니다. 하나님을 상대로 해서 싸우는 것은 가시 채를 뒷발질하는 것과 같습니다. 결국은 아무 소용도 없는 것을 위해서 몸부림을 쳤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소용없는 일을 위해 몸부림을 치면, 안 됩니다. 철저하게 기다리고 있다가 하나님이 하라고 하시는 일만 열심히 하면, 큰 축복(祝福)을 받을 수 있습니다. 우리는 하나님을 붙들어야지, 하나님을 상대로 해서 싸우면, 절대로 남는 것이 없습니다. Ⅲ.다윗의 등불이 꺼지다. 17-18절)너희가 이를 듣지 아니하면 나의 심령이 너희 교만으로 말미암아 은밀한 곳에서 울 것이며 여호와의 양 떼가 사로잡힘으로 말미암아 눈물을 흘려 통곡하리라 너는 왕과 왕후에게 전하기를 스스로 낮추어 앉으라 관 곧 영광의 면류관이 내려졌다 하라”유다 백성들이 마지막으로 돌이킬 수 있는 기회를 놓치고, 망하게 되면, 이 세상에 유일하게 하나님의 은혜가 임하는 나라가 없어지고 마는 것입니다. 이것은 마치 풍랑이 이는 바다에 유일하게 서 있던 등대가 재정난으로 인해 꺼버리고 폐쇄해 버리는 것과 같습니다. 물론 그 등대가 불을 끄는 것은 자기들 사정이겠지만, 그 후에는 그곳을 지나가는 모든 배들은 빛을 보지 못해 암초에 부딪혀서 수없이 침몰하게 될 것입니다. 지금까지 매우 어렵게 진리의 등대를 지켜왔는데, 이제 더 이상 이 등대를 지킬 수 없게 된 것입니다. 그래서 예레미야는 그들의 교만 때문에 은밀한 곳에서 통곡할 것이라고 합니다. 이것은 소리를 죽여서 울음을 참아가면서 우는 것을 말합니다. 왜 예레미야는 마음껏 소리를 내어서 통곡하지 못합니까? 아직 완전히 유다가 죽은 것은 아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이제부터는 급격하게 내리막길로 달려가게 될 것입니다. 그러므로 18절)왕과 왕후에게 스스로 낮추어 앉으라.’고 말합니다. 왜냐면 이제 다윗의 영광의 면류관이 끝났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이제 다윗의 왕위를 포기하시는 것입니다. 이 모든 것은 하나님의 백성들이 하나님이 주신 것이 얼마나 귀한지 생각하지 못하고, 세상의 쓰레기와 같은 탐욕과 바꾸어 버렸기 때문입니다. 즉 유다의 왕들이 세상의 왕관을 쓰려고 욕심을 내다가 하나님의 영광의 면류관을 빼앗기게 된 것입니다. 하나님이 함께 하시지 않는 유다 백성들은 어떻게 됩니까? 검불같이 바람에 여기 저기 날려 다니게 됩니다. 24절)그러므로 내가 그들을 사막 바람에 불려가는 검불 같이 흩으리로다.” 검불은 뿌리가 없는 지푸라기이므로 바람이 부는 대로 온 세상을 날아다니게 됩니다. 그들의 뿌리는 하나님인데, 자기 스스로 뿌리를 잘라버렸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조금 정착하려고 하면, 또다시 바람이 불어서 날아가고, 또 정착하려고 하면, 또다시 바람이 불어서 다른 곳으로 날려가게 됩니다. 25절)여호와의 말씀이니라. 이는 네 몫이요 내가 헤아려 정하여 네게 준 분깃이니 네가 나를 잊어버리고 거짓을 신뢰하는 까닭이라”하나님의 백성들은 끝까지 하나님을 의지해야 합니다. 그러면 우리의 몫이 분명히 준비되어 있습니다. 그 몫은 아주 영광스럽고, 높은 것이어서 다른 사람들은 손도 대지 못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그것을 믿지 못하고, 우상(偶像)과 세상 사람들을 따라갔을 때는 타락한 자의 몫으로, 이 세상에서 가장 비참한 사람이 됩니다. 자기에게 준비된 축복(祝福)은 그것대로 받지 못하고, 세상 사람들이 누리는 복(福)도 누리지 못하고, 이것도 아니고, 저것도 아닌 상태에서 가장 비참하게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유다 자손들을 미워하시는 것은 가증한 위선(僞善)때문입니다.
우리도 죄를 짓고서 감추어 두면, 안 됩니다. 모두 하나님 앞에 가지고 가서 토해내고, 죄 씻음을 받고, 깨끗한 양심으로 살아야만 하나님이 우리를 지켜주시고, 축복(祝福)해 주실 것입니다. 우리는 죄에 대해서는 절대로 미련을 가지면, 안 됩니다. 어떤 무리한 방법을 써서라도 잘라버려야 하고, 하나님이 주시는 좋은 것들은 열심히 취하도록 합시다. 특히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신 진리(眞理)의 등불을 생명처럼 지켜야 합니다. 그것이 우리가 사는 길이고, 이 세상도 사는 길입니다. 특히 우리는 이 세상의 욕심에 대해 죽어야만 하나님의 은혜(恩惠)를 붙들 수 있습니다. 아무리 세상의 유혹(誘惑)이 우리를 손짓해도 나는 죽었다 생각하고. 하나님을 의지할 때, 하나님이 우리에게 준비하신 귀한 축복(祝福)들을 누리게 될 것입니다. 하나님은 유다 백성들에게 언제나 너희들이 정결해 질수 있겠느냐? 고 말씀하십니다. 이것이 유다 백성들이 바벨론에 끌려가는 이유입니다. 하나님은 유다 백성들을 정결케 하시려고, 바벨론이라는 거대한 세탁기를 사용하십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정결한 사람이 되기를 원하시고, 정결하기만 하면, 세상의 도움을 받지 않고서도 우리를 가장 복(福)된 사람으로 만들어 주실 것입니다. 찬송가 182장 *강물같이 흐르는 기쁨*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