子夜吳歌 四首(자야오가 사수)-李白(이백)
봄의 노래-春歌(춘가)
秦地羅敷女(진지라부녀) : 진나라 땅 나부라는 여인
採桑綠水邊(채상록수변) : 푸른 물가에서 뽕잎을 따고 있었네
素手青條上(소수청조상) : 하얀 손은 푸른 가지 위에 움직이고
紅妝白日鮮(홍장백일선) : 붉은 화장은 밝은 햇빛에 더욱 선명하네
蠶飢妾欲去(잠기첩욕거) : 누에가 배고파 저는 빨리가야 해요
五馬莫留連(오마막류련) : 태수여 나 붙들지 마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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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제 및 어구(語句)
본래 진대(晉代)에 오(吳) 땅에 살던 자야(子夜)라는 여인이 임을 그리며 만들었다는 애절한 노래인 〈자야가(子夜歌)〉가 남조시대에 크게 유행하면서, 〈자야사시가(子夜四時歌)〉, 〈대자야가(大子夜歌)〉, 〈자야경가(子夜警歌)〉, 〈자야변가(子夜變歌)〉 같은 여러 변주곡들이 생겨났다. 이백은 〈자야오가(子夜吳歌)〉에서 본래 5언 4구의 절구(絶句) 형식은 6구 형식으로 바꾸면서도, 사시가(四時歌)로서의 성격은 유지하여 각각 춘하추동의 정경을 담았다. 청상곡사(淸商曲辭) 중의 하나이다.
羅敷 : 전국시대 趙(조)의 서울 河北省 邯鄲(하북성 한단) 사람 秦氏의 미인 딸. 그녀가 뽕을 따고 있을 때 楚王(초왕)이 그녀의 미모에 반하여 사또라 자칭하며 정조를 빼앗으려 하니 ‘陌上桑(맥상상)’ 노래를 지어 거절했음.
素手 : 희고 아름다운 손.
紅裝 : 연지 등 화장품으로 붉게 화장함. 여인의 화장.
五馬 : 사또. 太守(태수, 지방관). 태수의 행차에는 말 다섯 필이 수레를 끌었기에 하는 말임.
流連 : 노는 재미에 빠져 집에 돌아가지 않음.
감상(鑑賞)
자야오가의 봄노래. 누에치느라 뽕잎을 따는 나부의 아름다운 모습을 그리고 나서, 나부가 말하는 형식으로 ‘누에가 뽕잎을 찾으니 나는 급히 집으로 가거니와, 태수께서도 남의 부인을 희롱할 생각 말고 댁으로 돌아가라’고 충고하는 말로 맺었다.
‘맥상상’에 보면 나부가 태수로 가장한 임금에게 “使君自有婦 羅敷自有夫(사또에게는 부인이 계시고, 나 나부에게도 지아비가 있소)”라 말한 구절이 있다.
‘맥상상’은 27연 53구의 古樂府(고악부)로 나부가 지어 초왕을 물리쳤다고 하나〈古今注〉, 내용을 보면 나부가 지었다고 보기 어려운 점도 있다.
해설
고운 아씨 나부(羅敷)가 헌헌장부 제 낭군을 자랑하며 지체 높은 관리의 유혹을 거절한다는 한(漢) 악부 〈맥상상(陌上桑)〉의 내용을 축약시킨 작품이다. 녹색, 흰색, 푸른색, 붉은 색, 그리고 눈부신 햇빛 등 갖가지 고운 색깔을 풀어 아가씨의 아름다움을 채색하고, 천진스럽고 단호한 거절의 말을 덧붙여 정결한 마음씨를 강조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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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름의 노래-夏歌(하가)
鏡湖三百里(경호삼백리) : 거울 같이 맑은 호수 삼백리
菡萏發荷花(함담발하화) : 연봉오리에서 연꽃이 피는구나
五月西施採(오월서시채) : 오월에 서시가 연꽃을 캐는데
人看隘若耶(인간애약야) : 사람들이 약야에 몰려 길이 막혔구나
回舟不待月(회주불대월) : 달이 채 떠지도 않았는데
歸去越王家(귀거월왕가) : 월나라 왕궁으로 데려가 버리는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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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구(語句)
鏡湖 : 浙江省 紹興市(절강성 소흥시)에 있는 호수.
賀監湖(하감호), 鑑湖(감호), 太湖(태호).1)
菡萏 : 연꽃 봉오리.
荷花 : 연꽃.
西施 : 춘추시대 월의 미인.2)
若耶 : 약야계.3)
越王家 : 월나라 임금의 궁중.4)
감상(鑑賞)
회화성이 강한 이백의 악부 중에는, 꽃과 미인이 한 폭의 그림 속에 함께 담겨 있는 경우가 허다하다. 연꽃이 만발한 가운데 서시가 꽃을 따는 정경을 묘사한 이 작품을 비롯하여, 천하절색 양귀비 옆에 모란이 웃고 있는 〈청평조사〉나, 분단장이 한창인 왕후의 방문 앞에 갓 붉은 꽃이 피어 있는 〈양춘가〉도 그러하다. 활달한 동작도 없고 말도 없다. 단지 하늘에서 내려온 선녀처럼 우아하고 꽃다운 자태만이 있을 뿐이다.
자야오가의 여름 노래. 3백 리 넓은 경호에 연꽃은 만발했는데, 5월이라 덥지 않은 철에 서시는 연밥을 따고 있다.
그 아름다운 자태를 보려고 사람들은 약야계에 구름처럼 몰려들었다.
그러나 서시는 그들에게 눈길 한 번 주지 않은 채 달이 뜨기에 앞서 배를 돌려 월 나라 궁중으로 들어가고 만다.
그러한 서시는 오만하게 비칠 수도 있고 고귀한 귀족적 품위가 보이는 양면성을 지니었다.
하기는 왕의 총애를 받으니 일반 서민들이 가까이할 수 있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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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을의 노래-秋歌(추가)
長安一片月(장안일편월) : 장안에는 한 조각 달 밝은데
萬戶搗衣聲(만호도의성) : 집집마다 다듬이 소리 들려오네
秋風吹不盡(추풍취불진) : 가을바람 끊임없이 불어오니
總是玉關情(총시옥관정) : 모두가 옥문관의 임 그리는 정이라오
何日平胡虜(하일평호로) : 어느 날에나 오랑캐들 평정하고
良人罷遠征(양인파원정) : 내님은 먼 부역에서 돌아오실지.
어구(語句)
長安 : 당 나라 서울. 陝西省(섬서성)에 있음.
片月 : 조각달.
萬戶 : 썩 많은 집들.
擣衣聲 : 다듬이 소리. 다듬잇방망이로 옷을 두드려 다듬는 소리.
總是 : 이 모두.
玉關 : 玉門關(옥문관). 甘肅省 燉煌(감숙성 돈황) 서쪽에 있는 관문. 新疆省(신강성)을 거쳐 서역으로 통하는 교통의 요지이며 陽關(양관)의 서북에 있음. 玉門(옥문).5)
胡虜 : 중국 서북쪽 오랑캐. 北狄(북적). 匈奴(흉노).
良人 : 남편.
遠征 : 먼 곳으로 싸워 치려고 나감.
감상(鑑賞)
자야오가의 셋째 수로 가을을 읊은 노래. 앞 세 구는 敍景(서경)으로 서울 장안의 모습이다.
조각달이 뜬 장안의 가을 밤, 다듬이질 소리가 바람결에 실려 온다. 겨울이 다가오니 멀리 추운 곳에서 수자리 사는 낭군의 솜옷을 마련하는 아낙네의 손길은 바쁘기만 하다. 낭군의 무사귀환을 바라는 마음이야 또 오죽하랴. 마지막 두 구절은 염려 섞인 이백의 말소리 같기도 하고, 간곡한 바람이 담긴 아낙의 혼잣말 같기도 하다. 높은 데서 내려다보이는 장안의 밤 풍경을 시원스럽게 그려낸 제1, 2구, 그리고 가을바람에 여울지는 뭇 여인네들의 그리움을 형상화한 제3, 4구는 예로부터 천하의 명구로 회자되어 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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겨울의 노래-冬歌(동가)
明朝驛使發(명조역사발) : 내일 아침 역사가 떠나니
一夜絮征袍(일야서정포) : 온 밤을 서방님 솜옷을 짓는다네
素手抽針冷(소수추침랭) : 흰 손은 바늘 노려 차갑고
那堪把剪刀(나감파전도) : 차가운 가위를 어찌 갑을까
裁縫寄遠道(재봉기원도) : 옷을 지어 먼 길에 부치니
幾日到臨洮(기일도림조) : 몇 일만에야 임조에 닿을까
어구(語句)
驛使 : 驛站(역참)에서 사방으로 통신하는 물건을 전달하는 사람, 곧 우체부.
絮 : 솜.
征袍 : 싸움터에서 입는 옷, 곧 전투복. 袍는 ‘도포’임.
素手 : 흰 손.
抽針 : 바늘을 잡음.
那堪 : 어찌 견디랴.
剪刀 : 가위.
臨洮 : 甘肅省(감숙성) 임조현. 蘭州(난주) 남방에 있음.
감상(鑑賞)
자야오가 마지막 넷째 수로 겨울을 읊은 노래. 편지나 소포를 먼 곳까지 배달하는 역참의 우체부가 내일 아침이면 떠난다니, 추운 겨울이지만 먼 싸움터에 가 있는 남편을 위해 솜옷 한 벌을 이 밤 안에 지어 보내야 한다. 바늘만 만져도 냉기가 손에 스미는데 가위질이야 온 몸을 오돌오돌 떨게 한다. 그러나 어찌하랴, 추위를 견디어 가며 만든 옷이 완성되었다. 역사 편에 보내면서도 이 옷이 언제 임이 계시는 임조 군진에 도착될는지 불안감을 떨쳐 버릴 수 없다. 남편을 향한 아내의 애틋한 사랑과 그를 위하여 애쓰는 마음을 그렸다. 당시에는 玄宗(현종)이 변경 정벌을 그치지 않아 백성들이 모두 징병에 시달리던 시기였다.
남조(南朝) 때 배타고 떠난 임을 그리던 노래였던 남방의 노래 〈자야가(子夜歌)〉가, 이제는 북방에서 수자리 하는 병사를 위한 솜옷을 지으며 부르는 내용으로 바뀌었으니, 노래란 실로 당대의 대중 정서를 반영하며 변화해 나아가게 마련인가 보다.
당대(唐代)의 민요 〈장두화(牆頭花)〉에 "임을 위해 춤옷을 마르나니, 날씨 차가워 가위도 싸늘하다.[爲君裁舞衣, 天寒剪刀冷.]"라는 구절이 보이며, 시인 최국보(崔國甫; 741전후)의 〈자야동가(子夜冬歌)〉에도 "밤 깊어지자 등불 심지 자주 돋우는데, 서리 차가워 가위도 싸늘하다.[夜久頻挑燈, 霜寒剪刀冷.]"라는 표현이 있다. 이 셋 중에 어느 것이 가장 먼저 나왔는지를 가늠하기는 쉽지 않다. 〈자야가〉가 오래된 민요이고 이백이 민요 가사를 부지불식간에 수용했다는 악부 〈장상사(長想思)2〉에 얽힌 뒷이야기도 있지만, 당대 여러 유행가에 시인들의 시를 가사로 사용한 경우도 많기 때문이다. 겨울철 불도 변변치 않은 방에서 '바늘이나 가위가 얼마나 차가울까'란 표현은 여염집 아낙보다도 남성 시인들의 감각을 더 반영하고 있는 듯이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