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남 이승만 대통령의 아리랑 시 외
우리의 건국 대통령은 파란만장한 생애를 살아가셨습니다. 어렵고 외로운 길목을 수도 없이 지나가면서, 그분은 겨레의 심금을 울리는 시(詩)를 남기셨습니다. 탄신 144주년을 맞이하는 오늘, 우남(雩南)이 남기신 노래를 함께 추억하고 싶습니다.
우남이 최초로 이루신 일을 헤아리면, 행렬이 길어집니다. 최초의 영어 연설, 한국인이 만든 최초의 신문, 최초의 일간지, 최초의 연좌 농성, 국내 최초의 개신교 개종, 아시아인 최초의 프린스턴 대학교 국제법 박사, 최초의 남녀공학, 한국인이 쓴 최초의 영어 베스트셀러, 최초의 민주국(民主國) 건국, 우리 역사 최초의 농지 개혁, 최초의 의무 교육, 동양인으로서는 최초의 미국 상하원 합동 연설, 이처럼 찬란한 업적들이 모두 우남의 발자취와 함께 이루어졌습니다.
1898년 3월 9일자 <협성회회보>에서 우남은 또 한 번 최초의 지위를 획득합니다. 한국 최초의 근대시인 우남 이승만의 “고목가(枯木歌)”가 신문에 수록되었습니다.
한국 시인 협회장을 지내신 김종해 선생은 2004년 10월 24일자 <중앙일보> 인터뷰에서 이렇게 말했습니다. “1898년 <협성회회보>에 ‘고목가’가 발표된 것으로 미루어 1898년부터를 한국 현대시의 기점으로 잡을 수 있다.” 우리의 건국 대통령은 한국 현대시의 선구자이셨습니다. ‘고목가’라는 제목을 우리말로 풀면 “늙고 병든 나무의 노래”입니다.
고목가(古木歌)
슬프다 저 나무 다 늙었네 / 병들고 썩어서 반만 섰네
심악한 비바람 이리저리 급히 쳐 / 몇 백 년 큰 나무 오늘 위태
원수의 땃작새(딱따구리) 밑을 쪼네 / 미욱한 저 새야 쪼지 마라
쪼고 또 쪼다가 고목이 부러지면 / 네 처자 네 몸은 어디 의지(依支)
버티세 버티세, 저 고목을 / 뿌리만 굳박혀 반근(盤根)되면
새 가지 새 잎이 다시 영화(榮華) 봄 되면 / 강근(强根)이 자란 뒤 풍우 불외(不畏)
쏘아라, 저 포수 땃작새를 / 원수의 저 미물, 남을 쪼아
비바람을 도와 위망(危亡)을 재촉하여 / 넘어지게 하니 어찌할꼬
늙고 병들고 부러지고 썩은 나무는 망신창이처럼 무너지던 대한제국을 상징합니다. 그렇지 않아도 쓰러져가는 나무를 쪼아대는 못된 딱따구리는 당시의 집권층이었던 매국 관료들을 지목합니다. 고목을 흔들어대는 비바람은 나라를 위협하는 외세를 의미합니다.
쓰러져가는 나무 같은 대한제국을 못된 딱따구리같은 매국노들이 쏘아댑니다. 외세는 바람처럼 나무를 흔들어댑니다. 나무를 지키려면 먼저 딱따구리부터 쏘아야합니다. 왜냐하면 나라는 내가 먼저 해친 뒤에야 남이 해칠 수 있기 때문입니다.
“고목가”는 매국노를 제거하고 외세를 물리쳐서 조국을 수호해야 한다는 투사의 노래입니다. 한국 최초의 신체시를 낳은 시심(詩心)은 젊은 우남의 뜨거운 애국심(愛國心)이었습니다.
개혁자요 혁명가였던 우남은 스물 세 살에 한성감옥에 갇힙니다. 감옥에서 그의 몸은 매였지만, 마음은 시의 세계를 자유롭게 노닐었습니다. 감옥에 함께 있었던 유성준은 우남이 시를 짓는 정황을 멋스럽게 들려줍니다. “교교한 달빛이 철창으로 들이치는 밤이면, 시를 지어 들려주었다.” 한성감옥에서 지은 우남의 시, “죄수복을 입고 감옥살이를 하며”를 소개합니다.
죄수복을 입고 감옥살이를 하며
선비가 궁해지면 독서를 후회하니
벼슬이 빚어낸 삼년간의 감옥살이
쇠줄에 묶여 다니며 새롭게 정들지만
죄인 얼굴을 가린 용수를 쓰니 옛 친구도 낯설구나
예부터 영웅은 옷 속에라도 이가 있다는데
지금은 고기 없이 밥 먹는 나그네 신세
때가 되면 모든 일이 뜻대로 되리니
죽을지언정 장부의 마음 변함이 있으랴
나라를 위해서 헌신했건만, 돌아온 것은 역적이라는 죄목입니다. 감옥살이를 하면서 선비는 지나간 세월을 후회합니다. 죄인이라 얼굴을 가려야 하니, 옛 친구를 보아도 낯설게 느껴집니다. 하지만 죽을지언정, 나라를 사랑하는 장부의 마음에는 변함이 없습니다. 선비요 지사(志士)였던 우남 이승만의 절개를 보여주는 노래입니다.
1919년 상해에 대한민국 임시 정부가 수립됩니다. 초대 대통령으로 하와이에서 활동하시던 이승만 박사가 추대되었습니다. 1920년 이승만은 하와이를 떠나서 상해로 가는 배에 오릅니다.
당시 일본 제국주의는 독립 투사들을 가혹하게 탄압했습니다. 특히 독립 운동의 최고 지도자였던 이승만에게는 30만 달러의 현상금이 걸려있었지요. 곳곳에 감시의 눈이 번득이는 상황에서 상해로 가는 긴 여정은 대단히 위험했습니다.
그때 우남을 도와준 분이 하와이의 미국인 친구 보스윅이었습니다. 보스윅의 기발한 도움이 있어서 우남께서는 상해까지 무사히 갈 수 있었습니다.
그런데 보스윅의 직업이 장의사였습니다. 그가 도와준 방법은 시체들 틈에 숨겨준 것이었습니다. 당시에 미국에서 일하던 중국인 노동자가 숨을 거두면, 그 시신을 중국으로 보냈습니다. 고향으로 돌아가는 중국인의 시체를 담은 관들의 틈에, 살아있는 우남이 몰래 숨었습니다. 이때의 경험을 읊은 시입니다.
황천객의 망명
민국(民國) 2년 동짓달 열 엿셋 날
하와이서 남몰래 배를 탔다네
겹겹의 판자문에 화로불은 따듯하니
사면이 철벽이라 칠흑같이 어두웠네
내일 아침이면 산천도 아득하리니
이 밤엔 세월도 어찌 길다냐
태평양 바다 위를 둥실 떠가니
이 안에 황천객을 누가 알리요
황천객들 틈에 망명객이 숨어들었습니다. 죽은 사람들 틈에 산 사람이 끼어있었으니, 얼마나 무섭고 불편하고 힘들었을까요. 밤을 지새우며 기다려야하는 그 시간은 얼마나 길게 느껴졌을까요. 그래서 우남은 노래했습니다. “이 밤엔 세월도 어찌 길다냐.”
일제는 서슬이 퍼런 감시의 눈빛을 반짝이고 있습니다. 그러나 바다 위를 두둥실 떠가는 황천객들 사이에 있는 우남을 누가 알겠습니까. 동시에 시체들 틈에 섞여 있어야 하는 독립지사의 마음을 또 누가 알아주겠습니까. 그래서 우남은 노래했습니다. “태평양 바다 위를 둥실 떠가니 / 이 안에 황천객을 누가 알리요.”
나라를 구하기 위한 우남의 일생은 끝없이 길을 떠나야 하는 여정이었습니다. 당시의 한국인으로서는 드물게 세계를 누비신 분이셨습니다. 정처 없는 나그네처럼 떠돌면서 많은 곳을 보셨지만, 그분이 늘 그리워하셨던 땅은 조국이었습니다. 우남은 어린 시절을 보낸 남산을 떠올리는 노래를 지으셨습니다.
조국의 땅 남산
하늘과 물 사이를 이 한 몸이 흘러서
그 끝없는 바다를 얼마나 여러 번 오갔나
닿는 곳곳에는 명승지도 많더라만
내 꿈의 보금자리는 서울 남산뿐
참으로 넓은 세상을 휘휘 돌아다니셨지만, 우남의 꿈은 언제나 고향의 언저리를 맴돌았습니다. 꿈에 사무치도록 보고 싶어 했던 곳은 조국의 강토였습니다. 하지만 30년 넘는 세월을 망명자로 살았던 건국 대통령은 타국에서 생을 마치셔야 했습니다. 그것은 우리 역사의 씻을 수 없는 아픔이요 치욕입니다.
한국인이 있는 곳에는 아리랑이 있습니다. 일제 시대에 종군 위안부들이 머물렀던 마을의 주민들은 조선 여자들이 불렀던 아리랑의 가락을 기억합니다. 조선 남자들이 일했던 탄광에는 “어머니”라는 글자와 “아리랑”이라는 글자가 새겨져있습니다.
우남 이승만에게도 아리랑이 있었습니다. 독립운동을 위해서 동분서주하다가 우남은 오스트리아 여인 프란체스카를 만납니다. 제네바의 숲속을 거닐면서, 우남은 그녀에게 한국어를 가르쳐줍니다. 그것은 “사랑”이라는 단어였습니다.
1940년과 41년, 우남 이승만은 미국의 워싱턴에서 <Japan Inside Out>을 집필했습니다. 태평양 전쟁을 예언해서 세계적인 주목을 받았던 불후의 명저이지요. 그 책의 타이피스트는 프란체스카 여사였습니다. 쓰고 고치고 쓰고 고치는 작업을 반복하면서, 훗날의 첫 번째 영부인은 어깨 통증에 시달렸습니다.
통증이 너무 심한 날이면, 우남은 프란체스카 여사와 함께 포토맥 강변으로 갔습니다. 아내의 어깨를 주무르면서, 우남이 부르신 노래가 아리랑이었습니다.
아리랑
아리랑 아리랑 아라리요, 아리랑 고개를 넘어 간다
청천하늘엔 별들도 많고, 우리네 가슴속엔 시름도 많다
아리랑 아리랑 아라리요, 아리랑 고개를 넘어 간다
오다 가다가 만난 님이지만 살아서나 죽어서나 못잊겠네
마지막 줄은 우남이 직접 지으신 가사였습니다. “오다 가다가 만난 님이지만 살아서나 죽어서나 못잊겠네” 나라를 되찾기 위해서 나그네로 떠돌다가 운명적으로 만난 님을 우남은 참으로 아름답게 사랑하셨습니다.
“가장 큰 계명이 무엇입니까?” 하고 묻는 사람들에게 예수님은 대답하셨습니다. “첫째는 마음을 다하고 뜻을 다하고 힘을 다하여 주 너의 하나님을 사랑하라, 둘째는 네 이웃을 네 자신과 같이 사랑하라”, 예수님의 대답은 사랑이었습니다.
이 나라 건국 대통령의 거대한 생애를 추적하면서, 우리는 사랑을 발견합니다. 우남은 하나님을 사랑하셨고 조국을 사랑하셨습니다. 우리의 강산을 사랑하셨고 한국인의 혼과 얼을 사랑하셨습니다. 이 땅의 백성들을 사랑하셨고 생애의 반려자였던 여인을 사랑하셨습니다.
우남 이승만의 위대한 생애는 사랑의 씨앗에서 자라난 거목이었습니다. 그 거목의 그늘이 5천년 고난의 역사를 이어온 한민족에게 안식처가 되었습니다. 우남의 탄신 144주년을 맞이하여서, 이 나라 건국 대통령의 영혼에 깃들었던 사랑이, 그분이 그토록 사랑하셨던 우리 국민들의 가슴에도 심어지기를 기원합니다.
하느님을 사랑하고 나라를 사랑하고 사람을 사랑하며, 우리의 강산을 사랑하는 마음으로, 위기에 처한 대한민국을 마침내 지켜내는 애국자들이 되시기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