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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형수 고재봉 이야기
한 서리집사의 간증
0…1963년 10월 19일 새벽 2시, 강원도 인제군 남면 어론리에서 이덕주 중령 일가족 6명을 도끼로 몰살시킨 사건이 발생했다. 이른바 고재봉 사건이다.
신문들은 대서특필했다. 이 충격적 보도에 세상 사람들은 경악했다.
이런 고재봉이를 전도한 사람은 당시 교회 서리집사였다.
대한성서공회의 성경을 전하는 전도인의 일을 하고 있었다. 신문기사를 보고 충격을 받아 한 동안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던 나는 주님께서 십자가에 못 박히셨을 때 옆에 달린 강도를 보고 하신 말씀이 생각났다.
“네가 나와 함께 낙원이 있으리라” 순간 나도 모르게 “주님, 제게도 힘을 주시옵소서. 세상이 모두 깜작 놀라는 이 엄청난 강도를 제가 구원하게 힘을 주시옵소서.” 그는 새벽기도 때마다 입버릇처럼 기도했다.
“주여! 그 강도는 제가 구원하도록 힘을 주시옵소서.” 하면서 고재봉을 구원해 주시기를 기도하며 그에게 전도할 수 있는 길을 알아보았다. 그러던 중에 서울 구치소의 담당 검찰관의 배려로 그를 전도할 수 있는 기회를 얻게 됐다.
구치소에 도착해 잠시 기다리고 있자니 잠시 후, ‘5000’이란 수인 번호를 달고 있는 죄수가 여덟 명의 간수에게 호위돼 뒤따라 들어왔다.
“새벽마다 너를 위해 기도해 준 분이다. 좋은 말씀 많이 듣고 깨닫는 바가 있기를 바란다.”고 한 검찰관이 고재봉을 나에게 소개했다.
그와 눈길이 마주치자 갑자기 소름이 쫙 끼쳤고, 그의 눈에 살기가 있음이 느껴졌다.
나는 엉겁결에 손을 내밀고 악수를 청했다. 처음 해 보는 교도소 전도였기 때문에 약간 당혹감을 느끼면서도 모든 것을 주님께 맡기기로 마음먹고 가방에서 성경을 꺼냈다.
“자, 요한복음 3장 16절을 폅시다.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는 저를 믿는 자마다 멸망치 않고 영생을 얻게하려 하심이니라.…’” 21절까지 큰 소리로 읽었다. 그리고는 “형제여! , 세상 사람들은 누구나 다 죽습니다.” 하고 외쳤다.
정말 주님의 힘은 놀라왔다. 그토록 나오지 않던 말들이 나도 모르게 술술 나오기 시작한 것이다. 설교를 마치고 불쌍한 죄인을 구원해 달라고 기도를 드렸다. 기도가 끝나자 고재봉은 벌겋게 달아오른 얼굴로 고개를 쳐들었다.
그가 갑자기 얼굴을 쳐드는 바람에 주위의 분위기가 순간적으로 긴장됐다. 흉악무도한 살인마가 수갑을 푼 채로 나왔으니 어느 순간에 어떤 일이 벌어질지 모를 일이었다. 그 때 제일 당황한 사람은 다름 아닌 구치소의 소장이었다.
소장과 고재봉과의 사이에는 어떤 일이 있었던 것이다.
어느 날 구치소장이 고재봉이 수감돼 있는 방을 들여다보다가 살인마 고재봉이 손가락으로 눈을 찌르는 바람에 안경이 깨지면서 질겁하지 않을 수 없었다는 것이었다.
그는 눈알이 달아나는 줄 알았다고 했다.
그 후 부터는 고재봉의 방 앞으로는 아무도 지나가려고 하지 않았다고 한다.
이런 일이 있고나서 세간에서는 고재봉을 가리켜 ‘눈깔 파먹는 지옥의 염라대왕’이라고 했다고 한다. 긴장된 얼굴로 “뭐냐?”고 묻는 검찰관의 물음에 고재봉은 약간 머쓱한 표정으로 고개를 떨어뜨리면서 “검찰관님, 이제 모든 것을 자백하겠습니다.”라고 말하면서 솔직하게 모두 진술하기 시작했다.
0…그의 진술은 다음과 같았습니다. 고재봉은 부대에서 부대장 박 중령의 사택에 자주 갔다고 한다. 그가 하는 일은 주로 물을 긷거나 장작 패는 일, 청소와 이것저것 잔심부름을 하는 일이었다.
그러던 어느 날, 고재봉은 그 날도 박 중령의 사택으로 가서 청소와 장작 패는 일을 끝내 놓고, 박 중령의 서재에 들어가 잠시 쉬고 있었다. 견물생심이라고나 할까, 문제의 발단은 고재봉이 박 중령의 서재에서 작은 물건 하나를 집어 들고 나오는 것을 가정부가 보고, 길길이 뛰면서 야단을 치는 일로 시작됐다.
가정부가 고재봉을 저번에 박 중령 군화도 훔쳐간 도둑놈이라고 몰아붙였다. 졸지에 고재봉은 박 중령 집안의 모든 도난사건의 도둑으로 몰렸다.
화가 난 고재봉은 순간 옆에 있는 도끼를 집어 들고 까불면 죽이겠다고 위협했다. 그 때문에 살인미수의 형을 받고 7개월 간 육군형무소에 복역하게 됐다.
그는 이 일로 인해 박 중령에게 이를 갈았다고 했다. 드디어 7개월의 형기를 마치고 나온 고재봉은 원수 박 중령을 죽이겠다고 결심했다.
그래서 예전에 박 중령이 살았던 사택으로 찾아갔다. 그런데 그가 수감돼 있는 동안 박 중령은 다른 곳으로 전속을 가고, 그 사택에는 이덕주 중령이 들어와 살고 있었다.
그러나 고재봉은 오로지 박 중령에 대한 원수를 갚겠다는 생각에 사로잡혀 박 중령의 사택으로 찾아가 무작정 도끼를 휘둘러 어이없게도 박 중령이 아닌 다른 가족들을 무참히 살해했다.
이런 그가 그동안 묵비권을 행사해 온 것은 수사가 지연되는 동안 기회를 봐 탈출해 기어이 박 중령을 살해하겠다는 결심때문이었다고 했다.
0…그는 검찰관의 질문에 모두 답변을 했다. 나는 주님께 그가 회개한 것에 대해서 정말 감사했다. 그 후부터 끊이지 않고 나는 고재봉에 대해서 기도하고 틈만 있으면 면회를 갔다.
사형을 언도받은 고재봉은 공소를 포기했다. 왜 공소를 포기했냐는 질문에 그는 또 다시 공판정에 나가는 것은 시간낭비일 뿐이라고 하면서 공판정에 나가고 싶은 생각이 없다고 말했다.
그래서 공소하겠다는 생각은 갖지 않았다는 것이다. 그 이유에 대해 이렇게 말했습니다. “저 같은 놈은 빨리 죽어야 합니다. 제가 살아있다는 그 자체가 이미 부끄러운 일입니다. 매일 제가 받아먹는 4등급의 급식도 제 마음 같아서는 저 담 밖에서 배를 곯고 있는 거지들에게 주었으면 합니다. 제가 지금 숨을 쉬고 있는 이 공기 한 줌마저도 저와 같은 쓰레기에게는 아까운 것입니다.” 그의 말을 들으면서 눈시울이 뜨거워졌습니다. 그 후에도 계속 나는 자주 면회를 갔다.
하루는 일찍 면회를 갔으나 순서를 기다리다 보니 하루 종일 떨고 있어야 했다.
연말인 겨울 날씨는 혹독할 정도로 추웠다. 면회 마감시간이 거의 다 되어갈 무렵에야 이름 부르는 소리가 들렸다. “고재봉!” 그 이름을 부르는 소리에 나도 모르게 내가 큰 소리로 대답했다.
간수는 나에게 그와 어떤 관계냐고 물었다. 고향은 어디고, 나이는 몇이며, 부대에서 함께 있었냐는 등, 아마도 내가 혹시 공범이라고 생각하는 듯 심문하는 것 같았다.
나는 꾹 참고 간수의 질문에 아는 대로 대답하고, 질문이 끝나자 간수는 그가 면회를 거절한다고 말해 줬다. 나는 기분이 썩 좋지 않았지만 준비해 갔던 포켓용 신약성경을 간수에게 주면서 전해달라고 부탁했다.
간수는 성경을 받더니 “여기 아무것도 안 쓰여있죠?” 하면서 뒤적거려 보았다.
그리고 성경은 고재봉의 손에 전해졌다.
0…독방에 홀로 있던 그는 심심하면 성경책을 뒤적거리곤 했는데, 하루는 이런 구절이 눈에 띄었다고 한다.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그러다가 말하기를… “아니? 이 구절은 요전에 왔던 어떤 목사님이 읽어 준 말이 아니야?” 그저 신기한 생각이 들었던지 그는 계속 읽어 내려갔다.
“이는 저를 믿는 자마다 멸망치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니라.” 그는 또 생각했다. “맞다, 그 때 그 목사가 나에게 읽어 준 바로 그 말씀이다.” “그 목사가 그 때, 너도 죽고 나도 죽고, 너도 죄인이고 나도 죄인이고, 세상사람 모두 다 죄인이고, 예수 십자가 한쪽 편 강도… 너도 예수 믿으면 구원받는다고 했는데, 그 말이 정말이긴 정말인 모양이구나….” “구원이 도대체 뭐야?” 그는 그 때부터 신약성경을 읽기 시작했다. 성경의 글씨들은 차츰 살아있는 말씀으로 고재봉에게 다가가기 시작했다.
성경을 읽고 나서 그는 그동안 거절했던 면담을 다시 청했고, 내가 근무하는 대한성서공회로 연락이 왔다.
나는 기대를 안고 다시 구치소로 향했다.
일반 면회와는 달리 시간의 제한이 없이 자유스럽게 만난다는 것이 오히려 나는 좋았다.
고재봉은 대뜸 나를 보자, “지난 번 면회를 거절해서 죄송합니다.”라고 정중하게 인사했다. 참 이상한 일이었다. 무슨 말인가를 하긴 해야 할텐데 도무지 생각이 떠오르지 않아 잠시 망설이다가. “저 지난 번에 성경책을 드렸는데 받아 보았습니까?” 하고 서두를 꺼냈다. “예, 이것 말씀이지요? 잘 받았습니다.” 그는 바지 주머니에서 성경을 꺼냈다.
나는 반색을 하면서 물었다. “몇 장이나 읽어 보셨나요?” 그러자 그는 우물쭈물하더니 작은 소리로 이렇게 대답했다.
“예, 한 다섯 번 쯤…” 나는 놀라운 표정을 감출 수가 없었습니다. 그 짧은 시간 동안에 다섯 번이나 읽었다니 대단한 일이었다. “저 이것 말고 큰 책 있지요?” “이거 말이오? 지난 번에 드린 것은 신약전서이고, 이 큰 책은 신약과 구약을 합본한 성경전서요. 내가 다시 사드리겠습니다.” 다음 날 나는 성경과 찬송가를 사서 고재봉에게 건네줬다.
그는 몇 번이나 고맙다는 말을 되풀이 했다. 그는 시간가는 줄 모르고 성경을 읽었다. 시간의 아까움을 새삼 느낀 것이었다. 급식을 갖다 줘도 성경에서 눈을 떼지 않았다. 읽던 곳은 끝까지 읽은 후에 밥을 바라보았고, 밥 먹는 것보다 성경을 더 좋아하게 된 것만 봐도 심정이 바뀐 것을 알 수 있었다. 면회를 갈 때마다 그는 눈물을 글썽이며, 성경이 얼마나 귀한 책인지 깨달았다고 했다.
“진작 이 책을 보았더라면 아마 제 인생도 변했을 것입니다.” 하고 감격적인 목소리로 말했다. 그는 새벽마다 단정히 일어나 앉아 교회의 종소리가 들리는 것을 신호로 찬송가를 부른다고 말했다. “인애하신 구세주여 내 말 들으사 죄인 오라 하실 때에 날 부르소서~” 그러던 어느 날, 고재봉의 방에서 큰 소리가 들렸다. “어렸을 적 우리 동네에도 교회가 있었는데, 그 교회가 나에게 예수를 알려주지 않았기 때문에 사람을 죽이게 된 것이 아니냐! 교회가, 교회가…" 그는 흐느껴 울기 시작했다.
0…그러던 어느 날 그가 한참 기도하고 있는데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입에서 이상한 언어가 튀어 나왔다. 자기도 그 말이 무슨 말인지 뜻도 모르면서 마치 큰 힘에 이끌려서 한참 했다는 것이다. 한국말도 미국말도 아닌 이상한 말이 계속 쏟아져 나오며 온 몸이 땀으로 흠뻑 젖었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마음은 포근하고 기쁨이 몸 전체를 감싸는… 그는 참으로 희한한 일도 다 있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그는 어느 순간에는 갑자기 머리에서부터 발끝까지 온 몸이 불덩이처럼 뜨거워지며, 마치 고압선에 감전된 것처럼 오장육부가 뒤틀리고 온 몸이 마비된 듯 한 적도 있었다고 했다. 그것은 마치 거대한 힘이 자신의 몸과 정신을 운전하고 있는 듯한 느낌이었다고… 또한 누군가 자신의 일거수일투족 속속들이 들여다보고 있는 것 같아 몸이 부들부들 떨렸다고 했다.
“그렇다. 목사님 말대로 다른 사람에게 좋은 일을 하는 거다.” “복음을 전해야 한다. 모든 죄 많은 사람들에게 복음을 전해야 한다.” 고재봉은 이렇게 새사람으로 거듭나기 시작했다.
그는 자기의 심경변화와 전도의 목적을 교무과에 알려 구치소의 배려로 다른 방으로 이감됐다.
감방마다 자상, 실장, 감방장 같은 계급이 있고, 신입생에게는 신고식을 갖게 돼 있었다. 물론 이것은 죄수들이 비밀리에 그렇게 자기들 나름대로의 규칙을 정해놓은 것이다.
신입생 신고식은 옷 벗기는 일부터 시작돼 발가벗겨진 채로 거꾸로 매달기도 하고 비행기를 태우기도 한다. 그 때 만약 신입생이 반항하거나 고분고분하지 않으면 벌칙이 주어지거나 즉석 심판이 행해져 큰 고통을 겪는 것이다. 이윽고 고재봉이 들어왔다.
그러나 한참을 지나도 신고할 기미가 없는 것이 아닌가? 자상은 호통을 치려고 감고 있던 눈을 떴다. 그랬더니 5000번을 달고 있는 살인강도 고재봉이었다. 순간 모두 조심스럽게 고재봉의 행동을 살펴보고 있을 뿐이었다. 가만히 묵상을 하고 있던 고재봉은 큰 소리로 찬송을 부르기 시작했다.
“인애하신 구세주여 내 말 들으사, 죄인 오라하실 때에 날 부르소서…” 찬송이 끝나갈 무렵 그는 눈물을 흘리기 시작했다. 모두를 넋을 잃고 바라보고만 있었다. “저렇게 맑은 눈빛을 가진 사람이 어떻게 사람을 죽였을까?”
고재봉이 오면서부터 이 방안의 공기는 완전히 달라지고 있었다. 시끄러움도 없었고, 새벽이 되면 의례히 모두 일어나 교회 종소리를 신호로 찬송을 불렀다. 찬송이 끝나면 고재봉은 성경을 펼쳐들고 큰 소리로 읽곤 했다.
이런 일이 반복되는 동안에 어느 사이엔가 이 방안의 사람들은 성경 읽고, 찬송 부르는 일에 흥미를 느끼게 됐으며, 돌아가면서 성경퀴즈도 하게 되었던 것이다.
고재봉의 성경봉독과 전도의 여파는 철창을 타고 옆방으로 퍼져나가기 시작했다.
그리고 얼마 후에는 교도소 안이 온통 찬송가 소리에 묻히게 됐다. 참으로 엄청난 일이, 주님의 놀라운 능력이 서울 구치소에 강하게 일어나고 있었다. 구치소 측은 고재봉을 마치 무슨 전도사처럼 생각했다.
그는 삶이 다하는 마지막 순간까지 한 사람이라도 더 전도해야겠다는 일념으로 바쁜 일과를 보냈다. 틈만 있으면 기도했다. 그의 눈물의 기도는 대단한 힘이 있었다. 지금까지 예수가 뭔지도 모르고 있었던 많은 사람들이 그의 변화된 모습을 보고 차츰 성경에 관해 흥미를 가지기 시작했으며 기도하는 사람들도 점차 늘어나기 시작했다.
사형날짜가 가까워옴에 따라 더욱 자주 면회를 갔다. 하루는 그가 이런 말을 했다.
0…“나 어제 이상한 것을 보았습니다. 갑자기 어디서 ‘재봉아!’ 하는 소리가 들리는 것이었습니다. 제가 그 소리를 찾아 사방을 두리번거리는 사이 어디선가 다시 ‘재봉아! 이 밧줄을 받아라!’ 하는 소리가 들려 주위를 보니 밧줄은 보이지 않고 웬 거미줄 같은 것이 한 가닥 있었는데, 그 거미줄을 꽉 잡으니 끊어지지 않고 동동 매달려서 올라가는 것이었습니다.
올라갈수록 깜깜한 암흑세계였습니다. 그런데 그곳은 이상한 아우성이 들리고 해골들이 부딪히는 소리와 함께 그것들이 일제히 나를 쳐다보는 것이었습니다. 바로 옆의 아저씨에게 물으니 그는 여기 온지 꼭 3년 째 된다고 했습니다. 왜 그렇게 하고 있느냐고 물었더니 밥을 못 먹어서 그렇다는 것이었습니다. 3년 동안 밥을 못 먹으면 죽어야 할텐데 아무리 죽을래야 죽을 수 없는 곳이 바로 이곳이라고 했습니다.
어떻게 이곳에 오게되었느냐고 물으니까 그의 부인 때문이라고 했습니다. 아주머니는 교회 종소리가 나면 늘 혼자 교회에 가면서도 자기한테는 단 한 번도 교회에 나가자는 소리를 한 적이 없었다는 것이었습니다.
자기도 어떤 때는 가고 싶었지만 이끌어주지 않아서 갈 수 없었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다가 그 아저씨가 병이 들어 그제나마 교회에 가려고 했으나 아주머니가 텃세를 부리면서 젊을 때는 오지 않고 있다가 늙고 병든 후에 왜 오느냐고 호통을 쳤다는 것입니다.
무슨 염치로 병든 몸을 이끌고 오느냐고 하면서, 우리 교회가 무슨 송장 치워주는 곳인 줄 아느냐고 핀잔을 주어서 갈 수 없었다고… 그 때 억지로라도 갔었더라면 이곳으로 오는 것을 면했을텐데… 결국 용기가 없어서 교회에 가지 못해 여기 오게 된 것이 너무 억울하다”고 했습니다.
“저는 또 다른 곳으로 갔습니다. 이번에는 눈이 부시고 화려한 가운데 공기가 맑고 상쾌한 곳이 나타났습니다.
아름답게 흘러내기는 생명수 물가에는 과일나무들이 줄지어 늘어서 있었고 황금길 저 멀리 열 두 진주 문 가운데는 하나님의 보좌가 있었고, 그 옆에는 우리를 위해 중보의 기도를 하고 계시는 예수님이 이름을 부르고 계셨습니다.
주위에는 천군 천사들이 같이 화답하고 꽃들이 사방에서 아름다운 향기를 뿜어내고 있었습니다. 이것 좀 해몽해 주세요.” 나는 그에게 그것은 성령이 임하사 천국과 지옥이 있음을 증거해 준 것이라고 가르쳐 주었습니다.
0…그리고 얼마 후 또 면회를 갔다.
그 날이 마지막 면회라는 것을 알고 있었기에 약간 착잡했다.
다음 날이 주일이고, 월요일에는 사형이 집행되는 날이었다. 그는 평소와 다름없는 표정으로 말을 했다. 그 날 새벽, 이상한 소리를 들었다고 했다. “재봉아! 너는 56일이면 죽는다.”준엄하게 들려오는 목소리에 깜작 놀라 잠을 깼다는 것이다.
“성경에는 날짜를 어떻게 풀이합니까?” “형제여, 그것은 아무도 모르는 일입니다. 오직 아버지만 그 날과 기한을 아신다고 하셨는데 내가 어찌 성경의 날짜를 풀이합니까?”
그랬더니 그는 약간 누그러지는 기색을 보이고는, “안 전도사님을 만난 지도 56일이 지났고, 성령의 체험을 받은 날도 지났고, 세례 받은 날도 지났으니 이제부터 56일 후도 아닐 것이요, 이제부터 내 집행날짜가 길면 100일 정도 일 것이요, 짧으면 2, 3일 밖에 안될텐데…” 하며 힘없이 56일, 56일 하더니 갑자기 소리를 질렀다. “혹시 56시간?” 이 말을 들은 간수와 나는 깜짝 놀랐다. “그렇지 않을 것이요.” 간수가 나직하게 위로해 주었다. 나도 그를 위해 한 마디 해야겠다고 생각했다.
“아직도 죽음에 대해 그다지도 미련이 많습니까?” “그 문제에서 아직도 헤어나지 못하고 있기 때문에 늘 죽는다, 죽는다 하는 것인데, 왜 죽음을 두려워합니까?” 그는 눈을 껌뻑거리고 듣고 있었다. “형제여, 내가 예전에 한 말을 다시 한 번 기억하고 대답해 주시오.” “다름 아니라 박 중령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고 있느냐는 얘기입니다. 아직도 원한을 품고 있나요?” “전도사님, 그게 무슨 말씀이십니까? 저는 조금도 그런 생각을 갖고 있지 않습니다.”
“그럼 됐어요. 이제 이 세상 사람들에 대한 원한 같은 것은 없겠지요.” 그는 나의 팔을 꽉 잡았다. “오늘은 시간도 많이 갔고 하니 이만하지요.” 간수가 부드러운 목소리로 말했다.
“이 간수는 사형 집행 날이 언제인지 알고 있을까?” 우리는 붙잡은 손을 놓고 떨어졌다. 한 발짝, 두 발짝 물러서며 자꾸만 서로를 쳐다보았다.
이윽고 고재봉은 문 앞까지 갔다. 그리고 문을 막 나서려다가 갑자기 휙 돌아섰다. “전도사님!” 힘 있는 목소리가 울려 퍼졌다. "“전도사님, 용기를 내세요! 천국에 가서 다시 만나요!” 그가 오히려 내게 용기를 북돋아 주었다.
0…그 이후로 나는 고재봉의 목소리를 다시는 들을 수 없었다.
그날이 되었다. 물론 고재봉은 그 사실을 알 까닭이 없었다. 평상시와 다름없이 그는 새벽에 일어나서 찬송가를 부르고 성경을 읽기 시작했다.
그런 후 방안의 모든 사람들을 차례로 붙잡고 위로했다. 한 사람, 한 사람 붙들고 격려의 말을 건넬 때마다 같은 방을 쓰는 일동은 한결 같이 그에게 감사해 했다.
아침 식사를 끝내고 모두들 앉아서 성경책을 뒤적거리고 있는데, 밖에서 간수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고재봉! 전방” ‘전방’이라는 말은 방을 옮긴다는 뜻이다.
그러나 그는 이미 그 말의 의미를 알고 있었다. 그는 마치 면회 온 사람을 만나러 갈 때와 똑 같은 표정으로 뚜벅 뚜벅 복도를 걸어갔다.
철장 안에서는 “고형!” 하면서 울음을 터뜨리는 사람도 있었다.
그는 철장 앞에 손을 내밀고 있는 사람들에게 다가가서 조용히 미소 지으며 격려해 주었다. “예수 잘 믿어! 나가서 교회 꼭 다니고…” “고형, 잘 가요.” 구치소 안은 삽시간에 눈물바다가 되었다. 평소에 가끔 재판정이나 검찰청에 갈 때 타고 갔던 차와는 다른 군대 병원차가 그를 기다리고 있었다. 몇 몇 간수도 같이 탔지만 차 안은 아주 조용했다.
어디로 달리는지 그를 실은 차는 상당히 흔들리면서 자꾸만 달리고 있었다. 그의 머리속에는 아마 주님의 십자가 옆에 달린 강도가 생각났을 것이다. “오늘 너와 함께 낙원에 있으리라.” 한참 동안 달리던 차가 멈추었다.
어느 군부대 뒷산이었다. 많은 간수들과 군목, 검찰관과 총을 가진 9명의 헌병들이 미리와 줄을 지어 기다리고 있었다. 간수 두 사람이 그를 양 옆에서 부축하고 가서 말뚝에 기대게 하고 밧줄로 가볍게 묶었다. “마지막으로 하고 싶은 말이 있는가?” 그는 잠시 침묵을 지키고 있다가 입을 열었다.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는 저를 믿는 자마다 멸망치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니라(요3:16).” 그의 목소리는 한적한 주위공간을 울렸습니다. “또 할 말 있는가?” “검찰관님, 제가 웃을 때 방아쇠를 당겨 주세요.” 그는 침착했다.
그리고는 소리를 높여 찬송을 부르기 시작했다. “인애 하신 구세주여, 내 말 들으사 죄인 오라 하실 때에 날 부르소서…” 차마 총의 방아쇠를 당길 수 없었다.
그가 울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자신에게 총을 겨눈 헌병들에게 죽어가는 순간까지 ‘예수’를 전하던 그가 이제, “주여, 주여 내 말 들으사 죄인 오라하실 때에 날 부르소서…” 후렴을 부를 때 그는 웃고 있었다.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웃음으로… 방아쇠가 당겨지고 있었다.
살인마 고재봉은 그렇게 갔다. 이 세상의 온갖 근심을 다 털어버리고 오직 사랑으로 뭉쳐진 알맹이만을 가지고 하늘나라로 갔다. 그가 주님을 영접한 후에 구치소에서 전도한 숫자는 무려 1천800명이 넘는다고 한다.
그의 죽음을 형장에서 지켜 본 간수들과 헌병들은 깊은 감명을 받고 더 많은 사람들에게 고재봉의 마지막 광경을 전했다고 한다. 나는… 아직도 천하를 깜짝 놀라게 했던 그가 남긴 한 마디를 잊지 못한다. “내가 일찍이 예수를 알았더라면 사람을 죽이지는 않았을텐데…” “이 말은 아직도 내 가슴에 살아 움직이고 있다. 아마도 주님의 부름을 받는 그 순간까지도 잊지 못할 것이다.
“한 번 죽는 것은 사람에게 정하신 것이요 그 후에는 심판이 있으리니…” (히브리서 9장 27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