죄송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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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개가 짙은 아침이다.
그렇다고 비는 내리지 않으니 짐을 챙긴다.
오늘은 어리목에서 어승생악으로 올랐다가
한라산 어리목탐방로를 들머리, 돈태코탐방로로 내려올 작정이다.
우비와 따뜻한 여벌 옷,
특히 아이젠을 다시 한 번 확인하고 집을 나선다.
들머리와 날머리가 달라
옆지기에게 배웅과 마중을 부탁한다.
숙소에서 약 50여 킬로미터 떨어진
어리목 탐방안내소에 내린 시간이 10시다.
이동하는 차 안, 이슬비가 내리는지
간간히 와이퍼를 작동한다.
차에서 내리는데 옆지기 걱정이 많다.
우비를 준비했으니 안심하라 달래니
마지못해 차 문을 닫고 한동안 출발하지 않는다.
먼저 발걸음을 돌린다.
가까운 곳 봉우리는 깨끗하게 보이는데
왼쪽, 어리목탐방로 방향은 짙은 구름이 조망을 가렸다.
해발 970미터 탐방안내소에서 출발하여
어승생악으로 향한다.
날씨가 쾌청한 날 추자도, 비양도, 성산일출봉이 조망되는데
정상까지 약 1.3킬로미터 거리다.
입구에서 시작되는 계단,
정상까지 1.3킬로미터, 고도차 약 2백미터라
그리 급한 경사는 아닐 것으로 짐작된다.
좌우로 제주조릿대가 빽빽하다.
가장자리 흰무늬가 온통 제색인양
대체적으로 흰빛이 강하다.
얼음처럼 뭉쳐진 눈이
채 녹지 못하고 계단을 붙잡고있다.
나무 둥치에 이끼가 기세를 키워간다.
생명수를 찾아 땅으로 뿌리를 뻗어가던 나무가
바위를 부둥켜 안고 떨어질 수 없는 한몸이 되었다.
계절을 알 수 없어
늘 푸른 옷을 입고 있는 구상나무 군락 지나
씨앗 몇 개가 발아하여 뿌리를 내린 바위,
성장을 멈추지 않는 나무가 버거운듯 창백하다.
이어지는 계단 오르막,
길이는 길고 높이는 낮아 힘든줄 모른다.
3월 첫 날, 1000고지 밤바람이 살을 에일텐데
밤새 얼었던 얼음은 녹았다.
바위와 나무를 덮은 이끼는
아직 성장을 멈추지 않은채
시나브로 영역을 넓혀간다.
평지가 한동안 이어진다.
그리고 다시 완만한 계단,
그 끝에서
하늘이 열린, 아니 구름속에 갖힌 하늘이
그나마 푸른 빛을 띄고있다.
해발 1,169미터 어승생악 정상이다.
화구는 짙은 구름에 가려 주변을 분간할 수 없다.
그나마 짧은 코스 중 한라산을 느낄수 있는 곳이라
비옷을 입고 오른 사람들이 제법 보인다.
부탁하여 정상 인증샷을 담는다.
정상 데크에서 계단을 내려가 지하로 들어간다.
1945년 구축된 일본군 동굴진지다.
제주도 주둔 일본군 최고 지휘부인 58군 사령부 주둔지인
한경면 청수리 소재 가마오름 진지가 함락될 경우를 대비해 구축한
최후의 저항 거점이다.
참호를 통해 서로 연결되어
어승생악 허리 지하요새와 통하였으나 지금은 함몰되어 막혔다.
진지 안, 외부를 관측하고
유사시 총포를 발사할 수 있는 총안이다.
어승생악등산로 입구,
어리목탐방안내소 주차장으로 다시 내려온다.
도착했을 때 보다 안개는 더 짙어졌다.
한라산 표지석이다.
한라산 어리목탐방로는 안내소를 출발하여
어리목계곡, 사제비동산, 만세동산, 윗세오름 대피소, 남벽순환로를 거쳐
해발 1,600미터 남벽분기점까지 이어지는 총 6.8km의 탐방로다.
들머리를 지난다.
나목이 시린 몸을 떨지만
곧 품게될 새생명을 위해 잔뜩 수분을 머금고 있다.
한라산 서북벽에서 발원한
무수천이 흘러가는 어리목계곡을 가로지르는 어리목목교를 건넌다.
제법 둥글게 마모된 크거나 자잘한 돌이
계곡을 가득 메웠다.
하류 방향도 크게 다르지 않다.
어리목목교를 건넌 데크가 계단을 따라 올라간다.
다시 완만한 산 길,
해발 1,000미터 지점을 통과한다.
오르막을 이어가는 계단을 지나
1,100미터 지점도 이내 지난다.
계속되는 계단,
1,200고지를 지나고
1,300미터를 지나면서
겨울의 자취, 눈의 흔적을 드러낸다.
사방을 떠도는 안개는
그 미세한 입자를 공기중에 흩어 놓는다.
수분을 함유한 부유물이 옷을 적시지만
비옷을 꺼내입고 참아야 할 불편을 감수하기엔 아직 이르다.
위로 오를수록
눈은 흔적이 아닌 현실이 된다.
1,400미터를 지난다.
한라산 백록담을 중심으로
해발 1400이상 고지대에 자생하는 구상나무가
넓고 길게 펼쳐지는 군락이다.
구상나무군락과 어우러진 소나무군락이
검푸른 숲을 이루었다.
사철나무 숲을 지나
사제비샘물에 도착한다.
수질검사 성적서 결과는 '적합'이지만
최근 내린 비 때문인지 물이 탁하다.
계단을 올라서니
평원이 펼쳐진다.
안개에 가리긴 했지만
엄청 넓은 것으로 보이는 사제비동산이다.
단괴 레일 옆으로 등산로가 이어진다.
화산석을 평평하게 배치한 등산로,
울퉁불퉁한 돌기부분이 발걸음을 조심스럽게 한다.
하지만 평탄지형이라 불편함은 상쇄된다.
해발 1,500미터 지점을 통과한다.
곳곳에 쌓인 눈무더기가
기온이 낮지않은지 축축하게 녹아간다.
시야를 답답하게 가리는 안개가 아쉬운 한편,
흔히 볼 수 없는 풍경에 매료된다.
노루오름, 바리메, 붉은오름...,
오름풍경을 안내하는 그림을 지난다.
아쉽지만 오늘은 누구도 담을 수 없는 경치다.
만세동산에 다다른다.
왼쪽 끄트머리에 만세동산 전망대가 보인다.
조망이야 기대할 수 없지만
잠시 다녀오려 등산로를 빠진다.
민대가리동산, 장구목, 백록담 화구벽 등,
조망이 펼쳐지는 곳,
역시 베일을 드리운듯 하얗게 지워졌다.
살아 백 년을 사는 구상나무와
죽어 백 년을 사는 구상나무가
푸르름과 무욕, 서로를 부러워하며 서있다.
평탄하게 이어지는 길이
탐방로코스 가장 높은 1700고지를 향해
완만하게 경사를 만든다.
한라산 고지대까지 세력을 넓히는
제주조릿대를 효율적으로 관리하기 위해
만세동산 일대에 말을 방목하여 연구를 진행하고 있다.
넓은 만세동산은
긴 평지로 펼쳐지며
흐릿한 실루엣을 연출하였다.
데크 끝,
등산로에 쌓인 눈이 제법 길게 이어진다.
배낭을 내려 아이젠을 착용하고
눈길을 밟으며 앞으로 나아간다.
완만한 능선이 안개 뒤로 보인다.
위세누운오름과 위세족은오름으로 보인다.
비탈에 구상나무 고목이 고고한 기품을 뽐낸다.
안개속으로 건물이 보인다.
해발 1,700미터,
우리나라에서 가장 높은 곳에 소재하는 윗세오름대피소다.
윗세오름 연달은 봉우리 셋 중,
건물 뒤에 자리잡은 붉은오름 역시 사라져버렸다.
건물 오른쪽으로 돌아가면
비교적 짧은 코스 영실탐방안내소로 내려갈 수 있다.
해발 1,700미터 윗세오름표지석을 뒤로
인증샷을 남긴다.
안개 입자가 머리를 적셨다.
윗세오름통제소를 지나
앞으로 계속 진행한다.
숲을 지나
계곡으로 내려선다.
머지않은 곳에서 발원한 무수천이 흘러가는 계곡이다.
한라산을 둘러싼 외륜벽을 둘러싼 구름,
이중의 벽 앞에서 선 기분이 묘하다.
다시 계곡 건너
숲으로 들어간다.
언덕을 넘어서자 다시 평원이 펼쳐진다.
한라산 정상을 가린 구름은 여전하다.
폭설이 등산로를 지워도 빨간 깃발이 길잡이가 될 터,
특수한 부류 인간은
어떠한 악조건도 즐길 채비를 갖추었다.
다시 짧은 숲을 지나
남벽분기점을 향해 앞으로 나아간다.
산등성이 갈색 평원을 띠처럼 두른
구상나무 숲이 때로 짙어진다.
흘러가듯 떠도는 안개가
시야를 점점 좁혀간다.
잘 정비된 등산로는
갈림길없이 구비구비 돌아
방아오름전망대에서 잠시 틈을 만든다.
역시 전망대가 표시하는
남벽과 웃방아오름은 그 방향조차 짐작할 수 없다.
비탈과 평원을 가득 덮은 갈색은
가장자리 흰띠를 두른 제주조릿대다.
서서히 고도를 낮춰
해발 1,600미터 남벽분기점 전망대로 다가간다.
아직 1600고지인데 등산로에 눈이 거의 없다.
동남향 사면이라 해를 많은 받은 영향이다.
남벽이 가까이 다가선다.
돈내코코스와 어리목코스가 만나는
남벽분기점 전망대다.
향후 여정은 이 곳에서 출발하여 평궤대피소, 살채기도를 지나
돈내코담방안내소로 하산할 예정이다.
약 7킬로미터 거리다.
오른쪽 건물이 남벽통제소다.
백록담 남벽의 웅장한 모습을 가까이 볼 수 있는데,
아무래도 좋은 날이 아니다.
그나마 정상부를 덮었던 짙은 구름이 다소 걷혀
전체적인 모습을 조망할 수 있어 다행이다.
전망대 오른쪽에,
사진 오른쪽 가운데 하얀 기둥이 세워져있다.
CCTV가 설치되어있다.
1987년 개설된 남벽등산로 탐방로 붕괴와 훼손이 심해
1994년 자연휴식년제에 지정되며 폐쇄되었다.
폐쇄된 옛등산로를
무단으로 넘어가는 것을 감시하기 위한 용도로 짐작된다.
어느 새 안개가 걷혔는지
아랫쪽 전망이 깨끗해졌다.
바위에 오석을 박아넣고
거리를 표시한 이정표가 어리목탐방로와 다르다.
정상부는 아직도 안개에 가려있다.
등산로 사정을 예측할 수 없어 착용중이던
아이젠을 제거한다.
돌을 딛는 둔탁한 느낌과 마찰음으로
불쾌함마저 느껴지던 것이 사라진다.
다시 하산을 재촉한다.
한라산 남벽에서 발원하여
돈내코유원지, 쇠소깍을 지나 바다로 흘러드는
영천 최상류 계곡을 건너는 목교를 지난다.
계곡 내부 모습이다.
올라왔던 어리목탐방로와는 달리
편하게 정비된 모습은 아니다.
언제 몰려들었을까?
안개가 다시 시야를 흐린다.
원형 목책을 두른 데크가 놓여있다.
넓은드르 전망대다.
서귀포 앞바다에 떠있는
네개의 섬, 섶, 문, 새, 범섬을 조망할 수 있는 포인트지만
역시 짙은 구름속에 가려 앞을 분간할 수 없다.
제주조릿대 사이
키를 높은 나무가 치열한 싸움을 이기고
견고한 영역을 넓혀나가길 응원한다.
아직까지 해발 1,400미터 지점,
나무 숲이 점점 깊어진다.
앞 쪽에 난간을 두른 전망대처럼 보이는
구조물이 보인다.
올라가야 전망도 없을 터,
지나친다.
조금 더 내려가니 반달형 목책을 두른
전망대같이 보이는 데크가 있다.
평궤대피소 지붕이다,
가운데 굴뚝처럼 보이는 것이
내부 공기를 순환시키는 환기통 같다.
습기를 잔뜩 머금은 내부가
천정에서 떨어진 물방울로 젖어있다.
한동안 관리되지 않은 듯,
내부 바닥도 지저분하여 곰팡이같은 자욱이 즐비하다.
아마도 탐방객이 적고 불순한 날씨에
찾는 사람이 없을 터이다.
'궤'는 제주어로 작은 동굴이나 용암함몰지를 이르는데
자연동굴인 평궤 원형을 유지하면서 무인대피소를 만들었다.
하지만 내부 안쪽 천정과 벽 일부 구간
암벽을 그대로 드러낸 것 외에는
이곳이 동굴임을 알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
안개속으로 이어지는 길,
눈이 녹아 스며들지 못하고 등산로에 고여있다.
서서히 고도를 낮춰간다.
한라산 해발 900미터에서1,400미터에 자생하는 해송(곰솔),
제주도 전역에서 볼 수 있는 해송과 조금 다른 모습이란다.
나무껍질이 벗겨지고 붉으며,
겨울눈이 붉은 색을 띈단다.
온통 조릿대가 뒤덮은 산,
이미 키를 높여 하늘을 향한 나무들은
더 이상 자손을 퍼트리기 힘든 여건이다.
살채기도를 통과한다.
해발 1,100미터 지나 내려오니
다른 종 나무가 보이기 시작한다.
밑으로 잎이 쳐진 모습이 굴거리나무다.
도화지에 푸른 나무 한그루 한그루 그려넣듯
푸른빛이 짙어진다.
해발 800미터,
지난 가을 떨군 낙엽이 바닥을 메운
또 다른 모습의 한라산 산록을 지난다.
연초록 새싹이 날개를 펼친다.
등산로 오른쪽으로 물이 고여있다.
한라산둘레길 코스 중 무오법정사에서 돈태코탐방로,
길이 13.5킬로미터 동백길이 시작되는 갈림길이다.
평탄하게 이어지는 길을 따라
넓은 공터가 나타난다.
지정탐방로를 반드시 이용하라는 안내문,
인근에 '용재수종의 유전 검정 시험장'으로 해송이 관리되고있다.
탐방로를 따라
숲을 나선다.
멀리 서귀포 앞 바다 위에 떠있는 섬이
왼쪽부터 섶섬, 문섬, 범섬이다.
계단으로 이어진 탐방로를 내려서
탐방로입구를 지나
둘레길 갈림길에서 우측을 따라
삼나무를 지나
돈내코지구안내소에 이르며 산행을 마친다.
주차하기 어중간한 장소라 여겨
서귀포공설공원묘지에 있는 충혼묘지 주차장 인근
버스정류장으로 오라 이른터라
공동묘지를 가로질러
도로를 지나
충혼묘지광장 버스정류장에 도착해
여정을 마치며 산길샘 앱 기록을 마친다.
첫댓글 잔설이 남아있는 삼월에..대장정의 생생한 기록....갚이 느끼며 잘 보았습니다. ^^
돈내코 다니시는거유~지두 돈내코 다녀왔슈.....^^쩌번에유~
일본놈의 의한 아픔이 가슴을 저리게 합니다
비밀글 해당 댓글은 작성자와 운영자만 볼 수 있습니다.20.06.20 10:35
첫댓글 잔설이 남아있는 삼월에..
대장정의 생생한 기록....
갚이 느끼며 잘 보았습니다. ^^
돈내코 다니시는거유~
지두 돈내코 다녀왔슈.....^^
쩌번에유~
일본놈의 의한 아픔이 가슴을 저리게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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