故 반피득 선교사 추도예식이 22일 오후 2시 경안고등학교 경안관에서 엄숙히 거행되었습니다.
추도예식장 - 경안고등학교 경안관
강당을 메운 추모객
故 반피득 선교사와 오랜 기간 동역하신 하대성 목사님 설교 - "사후 위로와 격려"
경안학원 김태진 이사장의 추모사
추도식 순서지 (클릭하면 크게 보임)
추 모 사 (반피득 박사 영전에 올립니다)
사랑하는 경안학원 교직원 및 학생 여러분! 또한 원근 각처에서 찾아주신 동문, 그리고 학교운영위원 및 학부모님을 비롯한 내외 귀빈 여러분! 늦더위와 가을 장마로 일기가 좋지 못함에도 본 경안학원을 설립하신 반피득 박사님의 추모예배에 함께하여 주심을 감사드립니다.
반피득 박사님께서는 1949년 31세의 나이로 미 북장로교가 한국에 파송한 선교사로 안동에 오셨다가, 6•25 한국전쟁이 발발하여 잠시 일본으로 가셔서 센다이 대학에서 2년간 강의를 하시다가 전쟁의 상흔이 채 가시지 않은 1952년에 안동으로 다시 부임하셨습니다.
회고해보면 불과 60년전의 일들입니다. 일본의 식민지를 막 벗어난 대한민국에 전쟁은 너무나 가혹했습니다. 8•15 해방의 기쁨은 잠시였고, 동족 상잔의 6•25는 우리의 모든 것을 앗아가 버리고, 어느 누구도 내일이나 미래 같은 희망의 말들을 입에 담을 수 없는 생존을 장담할 수 없는 참담하고 암울한, 국민소득이라야 겨우 76달러인 시기에 다시 안동에 오셔서 경북북부지역 9개 시군의 불우한 청소년들의 교육을 위해, 중학교가 없는 각 지역 면소재지에 성경구락부를 설립하여 7,000여 명의 청소년들을 대상으로 초,중학교 과정의 교육을 이수시키셨고, 배움의 열망에 불타는 이들의 촐망촐망한 눈길을 외면치 못해서, 이들에게 체계적인 기독교 교육을 더 시켜 사회에 배출 시켜야겠다는 일념으로, 1954년 경안고등학교를 설립하시고, 초대 이사장 및 교장으로 봉직 하셨습니다.
옛 선현들은 10년을 내다보려면 나무를 심고, 100년을 내다보려면 사람을 키우라는 말씀을 하셨습니다. 상담학과 교육학을 명문 피츠버그를 비롯한 유수한 대학에서 전공, 연구하신 반 박사님께서는 선각자로서 미래를 꿰뚫어 보신 명철한 혜안으로 대한민국의 100년 대계를 위한 교육의 필요성을 인식하시고, 폐허의 한국 땅에 내일을 가꾸는 심정으로 불우한 청소년들의 교육을 시작으로 우리 경안학원과 연세대학에서 기독교 교육을 위해 일생을 바치셨습니다.
그동안 우리나라는 제2차 세계대전 후 독립한 국가 중 유일하게 산업화와 민주화를 동시에 달성한 나라가 되었고, 또한 최단기간에 세계 최빈국에서 경제규모 세계 12위, 세계 7대 교역국으로서, 국민소득 2만불을 상회하는 선진국가 대열에 들게 되었으며, 지난 주 폐막한 런던 올림픽에서도 세계인들을 깜짝 놀라케하는 결과를 도출하여 우리를 보는 국제사회는 21세기의 기적이라고 말하며 부러워합니다.
이런 기적의 원동력은 국가가 교육을 위해 투자할 여력이 없었던 암울한 시대에, 반 박사님과 같은 교육만이 살길이라는 신념을 가지신 수 많은 선교사님들의 피땀어린 희생과 선진국가들의 도움의 손길들이 그 기초가되어 연세대학을 비롯한 수많은 기독교 대학들과, 우리 경안을 비롯한 100여 곳의 중등 기독교 학교들이 세워진 것과 또한 우리 국민들의 열성적인 교육열 때문이었다고 생각합니다.
사랑하는 경안 가족 여러분! 세계에서 인도 다음으로 최고 못 사는 국민소득 76달러의 풍토병이 만연하고, 살기 불편하기 짝이 없는 나라에, 세계 최강 부국인 미국에서 명문대학을 졸업한 장래가 보장되고 촉망되는 젊은 부부가 고생을 자처하고 찾아와 희생과 봉사로 이룩한 터전, 경안학원에서의 “먼저 하나님”이라는 청교도 정신의 건학이념에 입각한 기독교 교육은 오늘의 우리를 있게한 소중한 가치이며 자산인 동시에 삶의 나침반입니다.
또한 오고오는 후대들에게 이 정신을 계승발전 시켜야 할 사명과 의무는 우리들의 몫임을 명심해야 할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나라는 물론, 지구촌 구석구석마다 배출된 우리 경안인들이 인류를 위해 기여하며, 빛과 소금으로서의 희생과 봉사의 삶으로 예수그리스도의 이름을 높이며 증거하는 역사를 줄기차게 써가도록 교육의 발전적인 변화를 위해 우리는 최선을 다해야 할 것이며, 이렇게함이 이 어른에게 진 빚을 갚는 유일한 길일 것이며 또한 이유일 것입니다.
지금 우리는 우리를 위해 그토록 기여하고 배려하며 아끼며 사랑과 기도해 주시던 참으로 소중한 후원자 한분을 졸지에 잃고 슬퍼하고 있습니다. 그 인자하신 모습을 이 땅에서는 더 이상 뵐 수 없음이 서운함을 더합니다.
2010년 10월8일 저희들이 미국 시카고 크리스찬 빌리지 요양병원으로 찾아 뵈었을 때 당신이 젊었을 시절 설립한 학교의 관계자들이 왔다고 주변 분들에게 자랑하시며 저희들이 들고간 학교 졸업앨범을 쓰다듬으며 펼쳐보시며 천진난만한 소년같은 표정을 지으시며 기뻐하시던 모습, 경안고등학교의 뺏지를 제작하여 미국으로 가져가셔서 경안고등학교 본관 건물 건축비 모금을 하셨던 기억을 되살리시며, 12,000달러를 미국의 교회, 형제들이 기꺼이 보내줘서 완공하셨다는 자상하신 설명을 더 이상 들을 수 없음에 저희들은 안타깝습니다. "왕중 왕”이라는 영화를 상영하며 선교하셨던 회고담을, 촐망촐망한 소년들의 눈길을 외면할 수 없어서 경안학원을 설립하게 되었다는 사랑의 메세지를 이젠 더 이상 들을 수 없어서 저희들은 허탈해 하고 있습니다.
도로가 확장되어 학교 부지가 줄어져서 할수없이 중학교가 외곽으로 이전됨으로 모금하여 학생들과 함께 손수 설계하여 건축한 본관 건물이 없어지고 그 자리에 아파트가 들어섰다는 설명을 들으시고, 흥분하시며 몹시도 섭섭해 하시며 못마땅해 하시던 모습을 뵈면서 송구스러워 어쩔줄 몰라했던 기억들을 우리는 잊을 수가 없습니다.
한국을 떠나신 지 30년이 지났건만, 한국말을 잊지 않으시고, 한국병풍과 갓을 쓴 노인의 그림과, 산수화 액자와 한국 대통령으로부터 받은 훈장증을 벽에 걸어 한국사람의 주거공간 같이 꾸며 놓으시고 요양원 생활을 하시며, 우리들과 헤어질 때는 우리를 위해 한국말로 축복기도 하시며 경안의 무궁한 발전을 기원하시던, 대한민국과 경안을 사랑하셨던, 안동을 다시 가고 싶다고 하시며 이별을 못내 아쉬워 하시던 반피득 박사님! 부디 염원하시던 천국에서 면류관 받아 쓰시고 예수님과 함께 영생복락 누리시길 빌며 또한 사랑하는 남편을, 아버지를 갑자기 떠나 보내시고 슬픔에 힘들어하는 엘레노어 사모님과 자녀들에게 성령님의 위로와 평강이 함께 하시길 기원하며 추모사에 가름합니다.
2012. 8. 22
학교법인 경안학원 이사장 김 태 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