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현필이 예수를 믿고 등광리 이공(李空, 이 세종)을 찾아다니며 성경을 배울 때 부친은 아들을 보고 미치광이를 찾아다닌다고 꾸짖었다. 이 현필이 차차 나이가 들어 성년이 되어가면서 다도면 면서기 시험에 그 형님과 함께 합격을 했으나 이 현필은 그만 두고 형은 다도면 면장까지 지냈다.
21세 때 이 현필은 광주재매교회 전도사 일을 보기도 했고, 틈틈이 영어공부를 하다가 한때는 서울에 상경하여 YMCA에서 영어공부를 하기는 했다. 그때 서울에서 만난 원경선하고 평생 친구로 사귀었다. 그가 서울에 있는 동안 아현동 굴레방 다리 근처에서 특이한 목회를 하던 소위 기둥교회 누더기 교회(아현교회)의 김 현봉 목사를 만났다.
이 현필은 스승 이 세종을 배신하듯 23세 때 결혼 하고야 말았다. 아내는 황 종원 씨로 광주의 좋은 가문의 딸이었다. 그러나 아내와의 동거 2년도 채 못 되어 자기의 이상과 현실 사이에서 싸우다가 아내를 보고 부부로 말고 남매로 살자고 요구했다. 그 다음 부터 아내를 보고 매씨라 불렀다.
그런데 그의 스승 이 세종 역시 그런 전력을 가지고 있다. 이 세종은 어린 아내가 두 번이나 자기를 버리고 딴 남자에게 시집을 갈 때 아내의 살림 도구를 지게에 지고 따라가 날라다 준 분이다. 그 아내가 다시 돌아오니 곧 받아 주고 남매 사이로 살았다. 그러나 이 현필의 부인은 남편을 놓지 않으려고 몹시도 애를 많이 썼으나 끝내는 한 동안 여순경 노릇을 하다가 다른데로 개가해 소생 없이 살았고, 비록 개가는 했으나 이현필의 인격만은 존경하고 그를 변호했다고 한다. 이와 같은 순결 사상은 본래 이공(이 세종)의 사상이었다.(『맨발의 성자』엄 두섭 저. 은성 간. 1992.p.13-2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