형님이 학살당하시던 날(시 스타일 산문)
53.8.18. 나는 그날을 잊지 못한다.
우리 형님이 돌아가신 날이다.
얼마나 억울하랴.
피하라고 동네 어른들의 끈질긴 설득에도 끝내 ‘남자가 어떻게 피해 다니느냐’고 죽창에 찔려 학살당 하시던 그 용기를!
그는 우리의 진정한 지도자였다.
그가 우려했던 것은 건넌방 굴뚝 속에 숨겨 두었던 교장 선생님과 그 일행이 걱정되었으리라.
그래서 그 교장 선생님이 돌아가실 때까지 형님 산소에 벌초를 하였나?
그는 의리의 사나이였다.
53.8.18. 나는 그날을 정말 잊지 못한다.
우리 형님이 돌아 가시던 날이었다.
얼마나 억울하랴.
동네 어구에 공산도당들이 들이닥쳐 형을 찾던 그날에 ‘잘못한 게 있어야 피하지 그렇지 않느냐고’ 한 용기를!
그는 우리의 끝내 진정한 지도자였다.
부모들은 막내도 끔찍이 위했다. 그래서 막내에게 영향이 갈까보아 형님사진 등 모든 서류를 버렸다.
그리고는 막내를 혼자 서울로 보냈고 족보에도 막내가 큰 아들이 되었다.
얼마나 아버지의 두 눈에선 피눈물이 났으랴. 그날 등기는 불론 족보에도 지웠으니! 그때 형님이 취직시켜준 그 사람은 그 직장에서 은퇴하였다.
53.8.18. 나는 그 날을 정녕 잊지 못한다.
우리 형님이 돌아가신 날이다.
얼마나 억울하랴.
동네는 아직 파란색이라고 해도, 온 동네가 6.25. 전쟁을 경험하지 않은 붉은 색으로 물들은 동네에 포위당한 것을! 자기들끼리만 소근 대던 이야기의 주제가 그거였나. 그동안 잡고 있던 푸른색들의 잘못이었나! 아니 그게 시대적 조류지요. 외국 특히 선진국의 물결이지요.
큰형은 정녕 우리의 지도자였다. 부모님은 막내에게 모든 희망을 걸었다. 그래서 한학자라는 어려운 수입에도 막내아들을 서울로 보냈다.
형님이 돌아가시고 반세기, 온통 붉은 세상이 된다 해도 죽산리 만큼은 안 된다. 내가 외국을 돌다가 돌아와 보니 이 꼴이 되었다.
그래서 정신무장을 하려고 외교전시관 사업을 시작하였다.
그러나 환영 하리라던 처음과는 달리 관에서 반대가 심하였다.
2014-10-25
권영민 배상
아버지 연세가 70세(산문 스타일 시)
아버지 연세가 벌써 70세 이시란다. 금년이 고희(古希)란다.
권영민(權寧民) 대사께서 벌써 만 69세 이시라니 이해가 안 간다.
대사로 오랜 동안 봉직하셨던 아버지 권 대사는 우리를 매우 엄격하게 키우셨고, 그 많은 외교관들이 자기의 자손들을 후계자로 만들어, 워싱턴 등을 보내는 것을 보고 느꼈다.
‘외교관에도 다른 직업처럼 새로운 계급이 만들어지고 있다.’
우리 아버지도 자식들이 외교관이 되길 원하셨지만, 우리 형제들은 어릴 적부터,
여러 나라를 돌아다니며 매번 바뀌는 환경에 적응하는 것이 쉽지 않았다
저는 원래 Architect 가 꿈 이어서 아버지의
이 희망에 부응하지 못 하고, 공무원이 되질 못하였다.
그래서 일찍이 저는 아는, 미국 학교 근처에 정착하였다.
그리고 동생도 마찬가지이다.
동생은 어려서부터 아버지가 고생만 하시는 공무원을 보아왔다.
그래서 동생은 일찍이 민간 레벨을 동경하였다.
그리고 민간회사에 들어간 것이다. 우리 둘은 이렇게 하여 우리들의 뜻으로 불효를 하였다.
아버지가 외교부 퇴임식 때 말씀하시었다. 2007년 7월이었다.
‘나는 지난 69년 외무부에 들어가 세계 이곳저곳을 다닌 생각을 하면, 세계 모든 사람들에게 고마워해야 한다.’ 그리고 또한 감사해 하고 있다.
지금은 저런 분이 어떻게 주독대사를 하셨을까 하고, 이미 연세가 들어 스산해 지셨지만, 그 전에는 목소리도 쩌렁쩌렁하셨다. 내가 아는 한, 나보다도 나은 영어는 물론이고 독일어도 구사하셨는데, 연설을 하실 때면, 언제나, 언어가 살아났다. 정말이지 일품이시었다.
아버지 또래의 여러분들은 이 나라를 0에서 남의 나라를 돕는 풍요한 나라로 발전을 시키었다. 이것이야 말로 위대한 전환이다. 이 분들에게는 가능한 한 많이 보내드려야 마땅하다고도 생각하였으나, 여러 가지 이유로 그렇게 못한 점을 사죄드린다. 그 것이 아버지 뜻이었다.
정말 고생들 많이 하셨습니다. 저희들도 저희 들 시대에 그만큼 해야 되겠는데, 걱정이 앞섭니다. 솔직한 심정 입니다.
2015.4.11. 오인, 오중 배상
첫댓글 대사님...잘계시지요````````````````````
잘 못 계있어요.박소행씨 떠나고부터 쭉 침대에서 보내고 있여요.
빨리 건강 찾으셔야지요`````대사님은 아직 할일이 많으시잖아요````````````````````
그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