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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리둥절한 원영, 텐트 밖으로 얼굴 내밀면.
병호: (화내며) 야, 너 그 머리 좀 어떻게 할 수 없어? 자르든지, 묶든지! 에이!
원영: 화났어?
병호, 말없이 담배만 뻑뻑..
다가가 병호의 팔을 잡고.
원영: (순한 양처럼) 화 내지마. 묶을게. (하며 아무 끈으로나 대충 머리 묶는다)
그러곤 병호의 등을 껴안는다.
병호: (나직하게 충고하듯) 정 주지 마라. 나 곧 떠나.
원영: (슬픈 어조로) 싫어…….
옥상 층계참 어두운 벽에 붙어 두 사람의 이야기 엿듣고 있는 수.
아찔한 표정 지으며 얕게 숨을 고른다.
씬46 동. 방
어두운 방안.
살금살금 들어오는 원영.
두 눈 총총하게 뜬 채 등 돌리고 누워있는 수 옆에 조용히 눕는다.
갑자기 원영의 손목 홱, 잡아채는 수.
원영: (깜짝 놀라며) 뭐야? 안 잤어?
수, 대답 않고 다짜고짜 원영의 옷을 벗기기 시작한다.
원영, 당황스럽다.
원영의 아랫도리에 머리를 파묻고 입으로 애무하기 시작하는 수.
갑자기 킁킁대며 냄새 맡는다.
비릿한 정액 내음 맡았는지.
가만히 고개 들어 원영을 바라보는 수의 눈 차갑다.
원영, 그런 수의 태도에 갈피를 잡지 못하고 불안하게 마주 본다.
그러나 수, 이내 원영의 아래에 머리를 묻고 다시 애무하기 시작한다.
조용히 눈을 감고 그 간지러움에 몸을 맡기는 원영.
씬47 동. 방. 아침
밥 먹고 있는 세사람.
모두 말이 없다.
원영: (갑자기) 나 머리 잘라줘.
수, 무슨 말이냐는 듯 원영을 쳐다보면,
원영: 이젠 이 놈의 머리 지겨워.
씬48 수의 회상 12년전
지금의 이발소 자리의 미장원에 앉아 있는 수(10살)와 수의 엄마.
수: 엄마, 나 머리 자르면 안돼요?
엄마: 왜? 우리 수 이렇게 예쁜데?’
수: (울먹이듯) 애들이 놀려요, 기집애래요…….
엄마: (단호하게) 안 돼, 수! 그럼 누나가 싫어하잖니.
수: (울먹이듯 약한 소리로) 누나가 어디있어요? ……. 다른 사람 머리는 다 잘라주면서…….
엄마: (정신병적으로 소리치며) 싫어!
씬49 이발소. 방 (다시 현실)
수: (다시 밥 먹으며) 싫어.
원영: (어이없이) 싫어?
수: 그래, 싫어.
하더니, 수저 탁 내려놓고 밖으로 나가버린다.
그 모습 보며 의미심장하게 웃는 병호와 홱 닫히는 미닫이문 노려보는 원영.
씬50 동. 이발소
방문 와락 열리더니 원영 나온다.
신경질적인 태도로 신을 신고 배달 조끼 입고 하더니.
원영: (갑자기 수를 향해) 싫어? 흥! 내가 너 아니면 머리 못 자를 줄 알아? 두고 보자! 오늘 아주 확 밀어버리고 올테니!
하더니, 이발소문 박차고 나간다.
화나면서도 슬픈 눈으로 원영이 차고 나간 문 바라보는 수.
그런 둘의 모습 여유있게 바라보고 서 있는 병호.
씬51 이발소 앞
가게 앞에 세워진 원영의 오토바이.
오토바이에 올라탄 채 흘러내린 머리 대충 둘둘 말아 올리는 원영.
그 위에 헬멧 눌러 쓰고 오토바이 타고 떠난다.
원영의 등뒤로 맞은편 집 옥상의 나무,
그 나무의 잎들이 햇빛에 반짝이며 부서질 듯 춤을 춘다.
씬52 대학가
오토바이 천천히 몰며 건물들 기웃거리는 원영.
[헤어파크]라고 써 있는 간판을 본다.
그 건물 앞에 오토바이 세우는 원영.
마땅히 세워둘 곳이 없어 이리저리 살핀다.
그 때 조끼 주머니속 무전기에서 무전 호출이 온다.
무전 수신기에서 흘러나오는 본부의 음성.
무전(F): ‘여기는 본부. 현재 충무로 5분 거리 라이더 송신-’
멈칫하는 원영.
이내 할 수 없다는 표정으로 무전기 꺼내 송신 스위치 누른다.
원영: 여기는 공공. 충무로 3분거리 위치-
원영의 시야에 더욱 크게 들어오는 [헤어파크] 간판.
씬53 이발소
뭔가 계산하는 표정으로 멀뚱히 앉아 있는 병호.
뒷 마당쪽에서 수, 들어온다.
병호: (던지는 말처럼) 야~ 그거 괜찮은데? 하루에 학생 열 명, 으른 열 명만 잡아: 도 사만원, 육만원, 합이 십만원이네? (수 쳐다보며) 그치?
수: (귀찮은 듯 대꾸) 뭐가?
병호: (혼잣말처럼 계속) 햐~ 한달이면 삼백에, 지네 건물, 지네 집이니까……. 적어도 이백은 넘어 건진단 소리구만. (농담처럼) 야, 너 이 이발소 세 줄 생각 없냐? 내가 인수해서 제대로 한 번 해볼께.
수: 쓸데없는 소리 말고, (인상 구기며) 너! 원영이한테.
병호: (뜨끔하지만) 뭐?
수: (노려보다) 쓸데없는 소리 하고 그러지 마. 진짜라고 믿으니까.
병호: (어이없어) 무슨 소리? 아아.. 그 얘기? 자식, 내가 없는 얘기 했냐, 그럼?
수: 자꾸 그러면 너랑 같이 있는 게 너무 힘들어져.
병호: (오히려 비꼬듯) 무슨 소리야? 난 즐겁기만 한데. 오늘은 드디어 해바라기를 심을: 생각이야.
하고 뒷문으로 나가버린다.
저도 모르게 주먹 부르르 쥐는 수.
씬54 A미용실
안으로 들어오는 원영.
종업원: 어서 오세요!
꽤 넓은 가게 안에 손님이 많다.
낯선 분위기 어색한 듯 쭈뼛하는 원영.
종업원이 다가온다.
종업원: 파마 하실려구요?
원영: 아뇨. 자르게요.
종업원: (친절하게) 네. 잠깐만 기다리십시오, 손님. (머리 자르고 있는 남학생 가리키며) 저 분 끝나고 금방 해드릴게요.
고개 끄덕하는 원영.
휘-하고 가게 안 둘러본다.
씬55 이발소 옥상
널빤지로 만든 나무 상자 가득 채워져 있는 검은 흙.
그 곁에 뿌리 채 뽑아온 해바라기 몇 그루 누워 있다.
딴 생각하며 말없이 내려다보던 병호, 이윽고 해바라기를 통째 흙속에 파묻고 일어나 내려가 버린다.
씬56 이발소 근처 골목
신경질적인 걸음걸이로 걷는 병호.
무작정 걷다가 어디로 가야할지 몰라 멈춰서 담배 피워 문다.
길가 공중전화 보이자 반갑게 다가가려다가,
병호: (멈춰서며 실망스럽게) 하~ 그 못난이 기집애 전화번호를 안 가지고 왔네.
씬57 A미용실
거울 속 파마중인 사람을 멍하니 들여다보는 원영.
종업원이 다가온다.
종업원: 손님, 이쪽으로 오세요.
원영, 문득 쳐다보면 비어있는 미용 의자를 가리키는 종업원.
일어나 의자로 다가가는 원영.
의자에 앉는다.
원영의 배달원 조끼를 내려다보는 종업원.
여기저기의 주머니들이 불룩불룩하다.
종업원: (불편해 보이는지) 손님, 조끼 벗으시구요.
원영: (자신의 조끼를 보고) 아-
원영, 조끼 벗으려는데 또다시 무전이 온다.
무전(F): (삑-) ‘라이다 넘버 공공, 현재 위치 송신-’
멈칫하는 원영.
조끼를 벗을까 말까, 무전을 받을까 말까..
다시 재촉하는 무전음.
무전(F): (삑-) ‘라이다 넘버 공공, 현재 위치 송신하세요-’
종업원: (무전기 가리키며) 뭐라고 하네요?
원영: 네? 네…….
할 수 없이 무전을 받는 원영.
원영: (무전기를 입에 대고) 여기는 공공. 현재 위치 화양리-
무전(F): ‘이동중인가?-’
원영: 잠시 휴식중-
무전(F): ‘본부로 즉시 전화 요망-’
원영: (기운없이) 오케이-
원영, 무전을 끄고 종업원을 쳐다본다.
미소 잃지 않으며 참을성 있게 기다리는 종업원.
원영: 미안해요…….
핸드폰 꺼내 전화 거는 원영.
원영: ……. 여보세요? 공공인데요.
사장(F): (다짜고짜 화내며) ‘야, 이 멍청아! 너 대체 일을 어떻게 하는 거야? 서류하: 나를 놓고 갔다고 난리가 났잖아! 손에 쥐어줘도 못 챙기냐, 넌?’
원영: (당황) 무... 슨 서류요?
사장(F): ‘당장 충무로로 다시 가! 거기 봉투 하나 놓고 갔대, 니가!’
원영: 저 두 개 배달했는데요?
사장(F): ‘멍청아! 아휴, 이 또라이 새끼! 세 개라잖아, 봉투 세 개! 10분내로 빨리 가: 봐!’
전화 끊긴다.
말없이 핸드폰 플립을 닫는 원영.
의자에서 일어선다.
원영: (면목이 없다) 미안해요. 가봐야 돼요.
종업원: (웃음 잃지 않고) 괜찮아요. 나중에 들르세요.
재빨리 헬멧을 챙겨 들고 밖으로 나가는 원영.
벽시계에서 뻐꾸기가 튀어나와 뻐꾹- 한다.
2시.
씬58 청계천 고가 밑
승용차, 화물차들로 꽉 막혀 있는 도로.
여기저기를 비집고 앞으로 진행해 가려 애쓰는 오토바이의 원영.
씬59 한남대교 위
질주하듯 달려가는 원영의 오토바이.
더운 햇볕이 검은 헬멧, 검은 조끼의 원영을 향해 내리쬐는 것 같다.
씬60 영화사 사무실
안으로 들어서는 원영.
전화 통화중인 여직원과
마찬가지로 전화통화 중인 남직원1.
그리고 핸드폰 통화중인 남직원2.
문 앞에 서서 누군가의 통화가 끝나기를 기다리는 원영.
여직원의 통화가 먼저 끝난다.
원영: (여직원에게) 안녕하세요. 퀵서비슨데요…….
다시 울리는 전화벨소리.
전화 받는 여직원.
다시 기다리는 원영.
한참 후, 핸드폰 끊는 남직원2.
다시 어딘가로 전화 걸기 위해 핸드폰 다이얼을 누른다.
원영: (틈을 타서) 안녕하세요. 아까 서류하나 덜 가져 온 거 있었죠?
남직원2, 여직원에게 얘기하라는 듯 손가락으로 여직원을 가리킨다.
다시 기다리는 원영. 입술 질끈 깨문다.
전화 끊는 남직원1. 여직원도 전화를 끊는다.
그러나 다시 울리는 전화벨.
남직원1: (원영에게) 무슨 일로 오셨다구요?
전화 받는 여직원.
원영: 네, 저 퀵서비슨데요…….
여직원: (남직원1에게) 한실장님 1번 전화 받으세요.
다시 전화 받는 남직원1.
팩스가 온다.
씹을 듯 입술 깨물며 여직원을 향해 다시 돌아서 보는 원영.
급히 팩스로 걸어가는 여직원.
팩스의 내용 살피며 팩스 받고 있다.
전화 받는 남자들과 팩스 받는 여자를 쳐다보고 서있는 원영.
여러 말소리들 겹치는 그 소란스런 상황.
원영, 지쳐가는 얼굴.
여직원, 무심코 고개 들다가 원영의 입술에서 피 흐르는 것 본다.
여직원: (놀라) 어머?
그 소리에 따라서 고개 드는 남직원들.
원영이 피흘리는 것 보고 어이없다.
여직원: 아가씨, 입에서 피 나요.
원영: (손등으로 입술 쓱 훔치고 내뱉듯) 서류가져 왔어요.
씬61 이발소
뒷문 쪽 열린 공간 사이로-
뒷마당에서 낡은 탈수기 돌아가는 소리와
탈수기에 양손 짚고 기대어 그 안을 바라보고 있는 수.
생각은 딴 곳에 있는 것 같다.
씬62 동. 옥상
빨랫줄에 세탁한 수건들을 너는 수.
같은 모양, 같은 색의 수건들이 한여름 오후 햇살아래 가지런히 널린다.
문득 건너편 집 옥상의 나무를 바라보면.
나무는 여전히 빛을 내며 그 파랗고 예쁜 잎들을 하늘거리고 있다.
멀리 오토바이 소리.
옥상 난간으로 다가와 아래를 내려다보는 수.
오토바이를 탄 중국집 배달원이 인위적인 S자 곡선을 그리며 길을 가로질러 간다.
다음 장면의 전화벨 소리 선행되며-
씬63 동. 이발소 안
울리는 전화기.
다가와 전화 받는 수.
수: 여보세요? ……. 그런데요. ……. 병호, 지금 잠깐 좀 나갔는데요? 누구시죠? ……. (반색하며) 아, 예. 제가 대신 메모해 드리죠. 잠깐만요.
메모지와 볼펜 찾는 수.
수: (적을 준비하고) 네. 부르세요. ……. 목포……. 제2항구요, 내일 오후 4시……. 아, 네: 전화번호요? …….0172142336. (펜 내려 놓으며) 네, 알겠습니다. 전해 드리지요.
전화 끊는다.
기분 좋게 웃으며 별 생각없이 주머니에 메모지 집어넣는 수.
씬64 주유소
기름 넣고 있는 원영.
헬멧 손에 들고 주유중인 여자 주유원의 모습을 바라보고 있다.
주유원은 짧게 자른 머리를 노랗게 염색하고 있다.
주유원, 오토바이에서 주유호스 뽑아 주유대에 걸고.
주유원: (친절하게 말끝 올리며) 6000원입니다.
원영 조끼 주머니에서 돈을 꺼낸다.
꾸깃꾸깃한 지폐가 한뭉치 나온다.
그 속에서 천원짜리들 찾는 원영의 머리를 신기한 듯 바라보는 주유원.
주유원: 와, 언니 머리 되게 기시네요.
원영: (계속 돈을 찾으며) 네…….
주유원: 얼마나 기르신 거예요?
원영: (건성으로) 이년, 삼년쯤?
주유원: 와, 정말 부럽다.
원영: (돈을 건넨다) 오늘 자를 거예요.
주유원: (짐짓 놀라는 말투로) 네? 왜요? 아깝게…….
원영: (혼잣말처럼) 이 것 때문에 어떤 사람이 떠날 지도 몰라서요.
주유원: (무슨 말인지) 네? (알겠다는 듯) 아~ 남자친구가 자르라 그러는 구나? 난 이제부터 기를려고 하는데.
원영: (헬멧을 가리키며) 우리 같은 직업엔 이런 머리는 거추장스러워요.
주유원: (자랑스레) 난 이달 말까지만 여기서 일해요. 다음주에 오디션 있는데 거기 떨: 어져도 이 일은 더 안 할 거예요.
원영: 왜요? 이 일은 그래도 편하잖아요.
주유원: 답답해요. (웃으며) 사실 제 꿈은 삐걸이거예요. 배달일 힘드심 여기서 일하세: 요. 아무나 할 수 있어요. 이 일은 별로 어렵지도 않고 누가 습격만 하지 않으면 (장난처럼 웃고) 위험할 것도 없거든요.
별 생각없이 고개 끄덕하는 원영.
그 때 승용차 한 대가 들어온다.
그리로 뛰어가는 주유원.
원영, 다시 헬멧 쓰고서, 주유원 바라 보다 오토바이 출발시킨다.
씬65 B미장원
여주인 혼자서 일하는 조그만 미용실.
원영, 가운 두르고 미용의자에 앉아 있다.
여주인: 어떻게 해 줄까?
원영: 잘라 주세요.
여주인: 어떻게? (어깨를 짚으며) 여기까지?
원영, 거울속 자신과 여주인의 모습을 보다 고개를 가로젓는다.
원영: 아니요. 완전히 다 밀어주세요.
여주인: (놀라며) 뭐?
원영: 아예 다 잘라 주세요. 박박이요.
여주인: (기가 막힌 듯) 아니…….
여주인, 갑자기 원영이 입고 있는 가운을 거칠게 벗긴다.
여주인: (냉담하게) 딴 데 가서 하세요.
원영: (당황) 왜, 왜요?
여주인: (화내며) 어디서 머릴 박박 밀어달래? 기집애가.
원영: (영문을 몰라) 그러면 안 돼요?
여주인: 아, 재수 없으니까 딴 데 가서 자르라니까!
떠밀리듯 자리에서 일어나는 원영.
여주인은 기분이 상한 듯 가운으로 자기 옷을 툭툭 털며 원영을 외면한다.
원영, 여주인의 태도를 이해할 수 없지만.
힘없이 조끼 집어들고 나간다.
씬66 도로
오토바이를 타고 달리는 원영.
핸드폰 벨이 울린다.
길가에 오토바이를 세우고 핸드폰 받는다.
원영: 여보세요.
수(F): 나야!
원영: (퉁명스레) 왠일이야?
수(F): 아침에 미안했다고.
원영: …….
수(F): (전화 끊겼나?) 여보세요?
원영: 그래.
수(F): (기분 좋게) 일찍 들어와. 오늘 파티 하자.
원영: (왠일일까 하며) 파티는 왜?
수(F): (머뭇대다가) 오, 오늘이 복날이래잖아. 말복이라더라?
원영: 그래, 알았어……. (망설이다) 저기 병,……. 아냐, 알았어.
전화 끊는 원영.
훅-하는 한숨.
씬67 이발소
천천히 전화기 내려놓는 수.
그 때 들리는 이발소 밖으로부터 확성기를 통해 들려오는 수박 장수의 호객.
수박: (소리) 자, 수박이 왔어요. 한통에 5000원. 잘-익은 설탕 수박이 한통에 5000원.
문쪽 바라보는 수.
씬68 동. 부엌
좁은 부엌 구석에 놓인 낡았지만 제법 큼직한 냉장고.
이발사, 냉장고 문 연다.
가지런히 정리되어 있는 몇 가지의 음식들.
그 음식들 한쪽으로 치워 공간 만들고 수박을 밀어 넣는다.
냉장고 문 닫고.
손 털며 조용히 미소 짓는다.
씬69 도로
달리는 원영의 오토바이.
그 위로 무전 내용 덮히며-
무전(F): ‘라이더 공공! 전자 상가 앞에서 공일과 합류-’
씬70 전자상가 앞
원영의 오토바이에 화물을 실어주는 배달원1.
배달원1: 잘 따라 와!
고개 끄덕이고 사내처럼 바닥에 침 퉤 뱉는 원영.
자신의 오토바이로 가 올라타는 배달원1.
그의 오토바이에도 원영의 오토바이에 실린 것만큼의 화물이 실려 있다.
배달원1이 먼저 출발한다.
원영, 그 뒤를 따른다.
씬71 도로
승용차와 버스를 피해 요리조리 잘 빠져나가는 배달원1.
그를 놓치지 않기 위해 원영의 오토바이도 필사적이다.
씬72 터널
위험한 터널 안을 곡예하듯 질주해 가는 배달원1의 오토바이.
저만큼 멀리 있다.
뒤에서 그를 바라보는 원영.
헬멧 속 얼굴이 잔뜩 긴장해 있다.
터널의 붉은 조명이 원영의 눈을 어지럽힌다.
원영은 배달원1을 놓치지 않기 위해 필사적으로 눈을 부릅뜬다.
원영의 눈가로 땀이 주르륵 흘러내린다.
차례대로 원영을 덮치는 터널 조명의 아찔한 속도감.
드디어 멀리 시야에 들어오는 터널 바깥의 빛.
원영, 빨려들 듯 그 빛 속으로 달려간다.
씬73 도로
터널 빠져 나온 원영.
배달원1, 저만치서 좌회전을 하고 있다.
신호가 바뀌기 전에 그를 따라잡기 위해 세 개 차선을 한꺼번에 옮겨가는 원: 영의 오토바이.
삑- 교통경찰의 호각소리.
원영의 오토바이가 지나가기 전에 이미 사라져 버린 좌회전 신호 화살표.
-사이-
경찰에게 딱지 떼는 원영.
침울한 얼굴로 지나가는 차들만 바라보고 있다.
씬74 A이발소 앞
조금은 퇴폐적으로 보이는 이발소 전경.
잠시 망설이듯 서성대는 원영.
손가락을 입술에 대고 주저주저하다-
결국 이발소 문 열고 안으로 들어간다.
씬 75 A이발소 안
후지고 퇴폐적인 분위기의 실내.
희고 짧은 유니폼을 입고 있는 여종업원.
역시, 흰 이용사 가운에 사장으로 보이는 사내와 소파에 앉아 킬킬대고 있다가-
문 열리는 기척에 일어선다.
여종업원: (상냥한 목소리) 어서오세요!
원영을 보더니.
여종업원: (금새 웃음기 사라지고) 무슨 일로 오셨어요?
원영, 예상밖의 이발소 분위기에 당황스럽다.
수의 이발소와 다르다…….
원영: (뭔가 틀렸다) 저…….
원영을 힐끔 쳐다보고 괜히 신문에 시선을 주는 사장.
여종업원: (손님 아니라 생각하고 짜증섞어) 무슨 일로 오셨냐니까요?
원영: (당황스레) 아, 아니예요.
하고 말없이 뒤돌아가다 갑자기 반항적으로 이발소 문 뻥 차고 뛰어나가는 원영.
‘뭐야!’하는 얼굴로 벌떡 일어서는 여종업원, 사장.
씬76 A이발소 앞
거칠게 이발소 나오는 원영.
조금 과장된 동작으로 오토바이에 오르면.
조끼 속 무전기에서 무전 지시가 온다.
무전(F): (치익-) 여기는 본부. 현재 시립대 부근 운행중인 라이더 송신-
무전기 꺼내 바로 송신하는 원영.
원영: (또박또박 큰 소리로) 여기는 공공. 현재 위치 중화2동. 시립대 10분 거리-
무전(F): 시립대 정문 우측 20m 지점 <삼호인쇄> 서류배달. 전화 492-5515번.
원영: (거칠 것 없이) 여기는 공공. 제가 갑니다-
재빨리 오토바이에 올라타고 사라진다.
씬77 다방
다방 아가씨와 한가하게 노닥거리는 병호.
병호: (호기롭게) 야, 이 오빠 며칠 있다 멀리 출장 가잖냐. 갔다 언제 올지도 모르는데: 오늘 이 오빠랑 밤새도록 술이나 마시자.
아가씨: 출장가서 왜 언제 올 지를 몰라? (정곡 찌르며) 배타러 가나보지?
병호: (껄껄 웃고) 하, 기집애. 눈치밥만 먹고 살았나? 어때, 오늘!
아가씨: (애교 떨며) 팁만 잘 챙겨주면 오늘밤이 문제야?
좋다고 웃는 두 사람.
씬78 이발소
이발소 벽시계 6시 정각을 가리키고 있다.
담배 피우며 열린 이발소 문밖 내다보고 앉아 있는 수.
맞은편 집 옥상의 나뭇잎들이 지는 햇빛을 받아 반짝인다.
그 나뭇잎들 말없이 바라보는 수.
씬79 동 뒷마당
수돗가에 쭈그려 앉아 부엌칼 갈고 있는 수.
평온함에 가까운 무감한 얼굴과 기계적인 팔의 움직임.
갑자기 움찔하는 얼굴 표정.
이발사의 손가락에서 선홍색 피가 흘러나온다.
매끈한 갈돌 위를 물과 섞여 흘러내리는 피.
수, 눈을 가늘게 움츠린다.
씬80 수의 과거 회상. (12년전)
수, 엄마의 미장원.
거울 아래 모셔진 엄마의 영정 사진 앞.
사람들, 방에서 수를 데리고 나와 머리를 자르려 한다.
거칠게 반항하는 수.
그러나 기운 센 어른들에 눌러 앉혀진 채,
잘려나가는 수의 머리.
수, 울며 반항해 보지만 소용 없다.
-사이-
홀로 남겨진 수.
짧게 잘린 머리가 이제야 수를 사내 아이로 보이게 한다.
눈물 뚝뚝 흘리며 거울 바라보는 수와.
노한 얼굴로 그런 수를 보는 듯한 영정 사진 속의 엄마.
씬81 이발소. 뒷마당
갈돌 위에 칼 다시 잡는 수의 손.
그 위로 손가락 사이의 피를 씻으며 흘러 내려가는 물.
수, 천천히 수돗물 잠그면,
뚝-뚝- 사이를 두고 떨어지는 핏방울.
핏방울이 칼날 위를 미끄러져 흐른다.
그 모습, 무심하게 바라보는 수.
씬82 전자상가 뒤 배달원 대기소
원영이 오토바이 타고 들어온다.
배달원 5~6명 각자 오토바이를 세워 놓고 앉아서 쉬고 있다.
배달원1이 원영을 보고 또 짖궂은 얼굴이 된다.
원영, 의자쪽으로 터덜터덜 걸어온다.
원영을 보고 키득키득 웃는 배달원들.
배달원1이 원영에게 박카스 한 병을 내민다.
원영, 다가가서 병을 받으면 사내들 와르르 웃는다.
원영의 얼굴이 굳어진다.
가볍다. 빈 병이다.
빈 병 손에 쥐고 있는 원영.
배달원2: 야, 너 오늘 딱지 뗐다매?
원영: …….
배달원3: (비아냥) 하루 얼마나 번다고 노상 딱지냐, 넌?
원영: …….
배달원1: 제대로 따라붙지도 못하면서 딱지나 떼고 다니고……. 경찰한테 니 젖탱이라도: 한 번 보여 주지 그랬냐?
원영: …….
배달원4: 보여준다구 쟤, 뭐 볼 거 있겠어?
또다시 좌중에 터지는 웃음.
원영의 얼굴이 붉어지며 경직된다.
원영, 천천히 뒤돌아 자신의 오토바이로 걸어간다.
등뒤로 배달원들 소리 들린다.
배달원5: (소리) 쟤 좀 그만 좀 놀려먹어라.
배달원1: (소리) 미쳤어? 이게 내 유일한 낙인데?
다시 터지는 웃음소리.
자신의 오토바이에 걸린 헬멧 집어드는 원영.
갑자기 뒤돌아 헬멧 손에 쥔 채 배달원1 향해 돌진한다.
농짓거리하던 배달원들, 갑작스런 상황에 놀라 입 떡 벌어지면.
그대로 들고 간 헬멧으로 배달원1의 머리 갈겨대기 시작하는 원영.
당황한 배달원1, 두 손으로 막고 피하고 하지만 이마 한쪽에선 피가 흐른다.
놀라 주춤하던 다른 배달원들이 말리는 것 상관없이 미칠 듯이 배달원1을 공격하는 원영.
배달원1: (피하며) 아, 이 쌍년이 미쳤나! 왜 이래, 미친년아!
아무 대꾸없이 계속 공격하는 원영.
배달원들 억센 팔에 겨우 말려지면, 손에 들고 있던 헬멧 바닥에 홱 던져: 부숴버린다.
그리곤 뒤돌아 오토바이로 뛰어가는 원영.
배달원1: (이마의 피 만져보며) 아, 내 머리.. 저년 잡아, 잡아 죽여!
당황한 사내들 두고 오토바이 몰아 빠르게 사라져 버리는 원영.
씬83 도로
달리는 원영의 오토바이.
원영의 풀어헤친 긴 머리가 바람에 휘날린다.
시원하게 바람 맞는 원영의 얼굴.
원영의 조끼 속 무전기에서 본부로부터 날라온 무전음 들린다.
무전(F): (치익-) ‘여기는 본부. 라이더 공공. 현재 위치 송신-’
무전 무시하고 그냥 오토바이 몰아가는 원영.
다시 반복되는 무전음.
무전(F): ‘여기는 본부. 라이더 공공, 현재 위치 송신 바람-’
그대로 정처없이 달려가는 원영의 오토바이.
씬84 변두리 상가
오토바이의 시동 끄고 내리는 원영.
C미용실이 있는 건물 쪽으로 걸어간다.
씬85 C미용실
문 열고 들어오는 원영.
한산한 실내.
대화중이던 미용사 두 명이 원영을 반긴다.
종업원들: (일제히) 어서 오세요!
-사이-
미용 의자에 앉아 있는 원영.
미용사1: 어떻게 해드릴까요?
원영: (지친 목소리) 다 밀어주세요.
미용사1: (놀라며) 네? 정말요?
미용사2: 어머, 손님. 왜요. 너무 아까워요…….
미용사1: 손님, 그냥 단발이나 커트로 자르세요.
감정 억누르는 눈으로 미용사1,2 쳐다보는 원영.
난처한 듯 서로 마주보는 미용사 1과 2.
‘어떻게 해?’하는 표정.
결심이 굳은 얼굴로 말없이 앞을 응시하고 있는 원영.
미용사1: 손님, 저 저희들은 올커트 한번도 안 해봤거든요? 정말 자신 없어요.
원영: (발끈하여) 내가 괜찮다는데 왜들 그래요? 난 정말 이 머리가 지겹다니까!
미용사 1, 2 그래도 안 되겠다는 표정으로 고개 설레설레 한다.
울컥, 울고 싶은 심정이 되는 원영.
스스로 어깨에 두른 미용가운을 벗고 말없이 일어선다.
문쪽으로 되돌아 나오는 원영.
그 때, 뒤에서 미용사1이 부른다.
미용사1: (소리) 저, 손님!
힘없이 뒤돌아보는 원영.
미용사1: 그럼 한 시간만 있다가 다시 들려 주실래요? 마감 시간에 저희 사장님 오시면: 아마 잘라 주실 거예요.
시계를 쳐다보는 원영.
7시 25분 가리키는 시계.
씬86 단란주점
#75의 다방 아가씨와 술마시는 병호.
한껏 흥에 겨워 있다.
병호: (취기 올라) 마셔! 마셔! 오늘이 니 생애 마지막 날이라 생각하고 마셔……. 마셔!
좋다고 마시는 아가씨.
씬87 도로
또 다시 달려가는 원영의 오토바이.
헬멧을 쓰지 않아 머리카락은 바람에 마구 날리고, 눈에 바람이 들어가 따가운지 두 눈을 꼭 감는다.
씬88 한강 다리 위
오토바이 세워둔 채 다리 난간에 서 있는 원영.
조끼 주머니에서 치직대는 무전기 꺼내 한강에 던져 버린다.
다른 쪽 주머니에서 배달 확인서와 볼펜을 꺼내 그것도 강물에 버린다.
이어 배달 조끼 벗어 투포환 선수처럼 강물에 힘껏 던지는 원영.
원영: (강에 대고 힘껏 소리쳐) 야! 이 씨발아~
씬89 이발소. 부엌
저녁 준비 하고 있는 수.
냄비 뚜껑을 열자 푹익은 닭에서 뜨거운 김이 확- 올라온다.
인상 찌푸리며 김을 피한 후.
숟가락 들어 국물 떠 먹어본다.
무덤덤한 표정.
숟가락 내려놓고 다시 솥뚜껑 닫는다.
냉장고 문 열어보는 수, 수박을 만져본다.
차가워 졌나…….
역시 무덤덤한 표정으로 다시 냉장고 문 닫고.
커튼 사이로 기웃해서 이발소의 벽시계를 본다.
8시 10분.
씬90 변두리 상가
멀리 C미용실 보인다.
오토바이 세워두고 그리로 가는 원영.
씬91 C미용실 앞
원영이 미용실의 문을 당긴다.
열리지 않는다.
통유리로 보이는 불꺼진 실내.
원영, 고개를 갸웃하며 유리를 통해 안을 들여다보려 애쓴다.
어두워서 잘 보이지 않는 미용실 내부.
다시 한번 세차게 미용실 문을 흔들어 본다.
잠겨 있는 문은 꿈쩍도 않는다.
울컥-하는 원영의 얼굴.
씬92 C미용실 내부
아무도 없는 어두운 실내.
쨍그랑 유리 깨지는 소리.
잠시 후, 문 열리는 소리 나고 원영이 터벅터벅 걸어 들어온다.
씬93 C미용실 앞
오토바이에 올라타는 원영.
아무일도 없는 얼굴로.
씬94 C미용실 내부
여기저기 부서지고 깨져서 난장판이 되어 있는 실내.
씬95 이발소 앞
문앞에 나와 원영을 기다리는 수.
고개 내밀고 골목 저 쪽을 기웃하며 보고 있다.
문득 앞집 옥상의 나뭇잎들 보는 수.
석양을 받은 나뭇잎들은 그림처럼 예쁘다.
바람이 휭-하고 지난다.
그 바람에 각기 작은 새의 날개처럼 몸을 떨어대는 나뭇잎 하나하나.
쭈그려 앉아 담배 피우던 수.
담배 끄고 일어나 이발소 안으로 들어가려 할 때, 터덜거리며 속력을 낮춘 오토바이 엔진 소리 들린다.
수, 뒤돌아보면
지치고 기운 빠진 원영이 오토바이를 탄 채 다가오고 있다.
헬멧도, 배달 조끼도 입지 않았다.
원영의 긴 머리카락이 나풀거린다.
우울한 표정이 처량해 보이기까지 한다.
수와 시선이 마주치는 원영.
아무 말도, 아무런 표정도 보이지 않는다.
씬96 이발소. 방
해질녁의 어두운 방안.
웅크리고 앉아 있는 원영.
땀에 절은 흰색 나시 차림에 풀어헤친 머리.
다가와 옆에 앉는 수.
그대로 꼼짝 않고 앉아 있는 원영.
수, 원영의 기분을 살핀다.
수: 아직도 화났어?
원영: …….
말없이 수를 노려본다.
수, 난처해진다.
씬97 동. 이발소
소파 탁자 위에 저녁상을 차려놓고 앉아있는 원영과 수.
벽시계, 벌써 9시 30분을 가리키고 있다.
말없이 수저 드는 원영, 밥을 먹기 시작한다.
수도 수저를 든다.
씬98 동. 옥상
텐트 앞에 깔아둔 돗자리에 엎드려 있는 원영.
건너편 집 옥상의 나무를 바라보고 있다.
대각선 맞은편 새로 지은 건물의 노래방건물에서 흘러나오는 노랫소리가 시끄럽게 울린다.
쿵짝쿵짝- 옥상 바닥이 다 들썩들썩할 정도다.
가만히 고개 돌려 한쪽에 세워둔 병호의 짐가방을 응시한다.
씬99 단란주점
쿵짝쿵짝하는 노랫소리.
무대에 올라가 멋들어지게 부산 갈매기를 부르는 병호.
기분이 한껏 고조되어 있다.
씬100 이발소. 부엌
설거지하고 있는 수.
무표정한 옆얼굴.
-사이-
냉장고 문 열어 낮에 사 두었던 수박을 꺼내 통째로 쟁반에 담는 수.
식혀둔 맥주를 꺼내고, 낮에 갈아 두었던 싱크대 위의 칼을 쟁반에 얹는다.
씬101 동. 옥상
여전히 엎드린 채 앞집 나무들만 바라보는 원영.
수가 옥상을 올라와 자기쪽으로 걸어오는 소리를 듣는다.
원영의 옆에 수박쟁반을 내려놓는 수.
원영은 상관없다는 듯이 바라보던 곳만을 보고 있다.
수도 말없이 가만히 앉아 있다.
한참 후 수, 입을 연다.
수: ……. 오늘, 힘들었어?
원영: …….
수: 나도……. 힘들었어.
가만 있다가-
슬며시 수를 돌아보는 원영.
수는 공허한 표정으로 먼 곳을 응시하고 앉아 있다.
다시 원래대로 고개 돌리는 원영.
수: 병호 내일 떠날꺼야.
원영: (깜짝 놀라며) 뭐라구?
수: ……. 왜 그렇게 놀래? 귀찮은 놈이 가는 것 뿐야.
원영: (입술 떨며) 나쁜 놈……. 다 너때문이야!
수: (놀라며) 뭐, 뭐?
원영: 니가 뭐라고 하던 이제 상관 없어. 넌 이기적이야. 머리를 자르는 일 따윈 너: 한테 아무 것도 아니잖아!
수, 진정하듯 담배를 피워 문다.
원영: (점차 감정 고조되어 머리 잡아 뜯으며) 이것 때문이야. 진작 알았어야 했는: 데……. 이 머리카락 때문에 모든 게 엉망이 돼.
수, 담배 연기를 내뿜으며 딴 곳을 쳐다본다.
원영, 수의 무반응에 화가 난다.
원영: (퍼붓듯) 상관없다 이거지……. 이젠 니가 날 사랑한다는 사실조차 의심스러워!
홧김에 발로 수박을 힘껏 차버리는 원영.
떼굴떼굴 굴러가는 수박. 옥상 시멘트벽에 맞고 퍽- 깨진다.
무의식적으로 수박을 잡기 위해 손 뻗는 수.
한발 늦는다.
안타까움과 원망이 섞인 눈으로 원영을 바라보는 수.
부서진 수박의 먹을만한 부분을 주섬주섬 주워 쟁반에 담는다.
그 와중에 분을 삭이려 애쓰는 원영.
별 생각없이 부서진 수박 한 조각을 입에 넣어 씹는 수.
씹다가 입에 손가락을 넣어 작은 돌조각을 꺼낸다.
돌조각 버리고.
칼과 수박이 든 쟁반을 들고 일어선다.
원영을 한 번 힐끗 보고, 말없이 옥상을 내려가는 수.
그 뒷모습 쓰아한 표정으로 노려보는 원영.
건너편 옥상의 나뭇잎이 조롱하듯 바람에 살랑댄다.
씬102 동. 이발소 안
파에 앉아 TV 스포츠 뉴스 보고 있는 수.
탁자 위에는 쟁반 위의 수박이 그런대로 가지런히 썰려 있다.
그리고 그 옆에 캔음료 몇 개와 과자들..
음식은 손도 대지 않은 채다.
TV를 보는 그의 얼굴 왠지 공허해 보인다.
11시 45분을 가리키고 있는 벽시계.
씬103 동. 옥상
혼자 맥주를 마셔대는 원영.
기운없는 어깨가 축 쳐져 있다.
대각선 신축건물 노래방에서 들려오는 유행하는 댄스음악.
원영은 노래방에서 퍼져 나오는 불빛들을 비참한 표정으로 바라본다.
원영의 눈에 낡은 테니스 공이 들어온다.
공을 주워드는 원영.
맞은편 옥상을 향해 힘껏 던진다.
공은 원영을 조롱이라도 하듯 예쁘게 잎사귀 춤을 추고 있던 앞집 옥상의 나무 사: 이로 날아가 떨어진다.
씬104 동. 이발소 안
TV 켜져 있는 실내.
수는 소파에 쓰러져 곤히 자고 있다.
그 앞에 서서 말없이 수를 내려다보는 원영.
그 시선 느꼈는지 수, 부시시 눈을 뜬다.
천정에 매달린 형광등 불빛에 눈이 부셔 얼굴 찡그리고 보면.
그 빛 역광으로 받고 서 있는 원영.
수, 조금 후 자신을 내려다보고 있는 원영을 알아챈다.
원영의 머리카락이 온통 아무렇게나 잘려나가 있다. 그리고 바닥에 어지럽게 널려있는 원영의 머리카락.
원영: (괴로운 듯) 돌아오지 않으려나 봐. 같이 바다에 가기로 하구선.
놀란 눈으로 일어나 앉는 수.
수: (깜작 놀라 원영의 팔을 잡으며) 왜 그래? (머리보며) 머리는 도대체……. (소리 버럭) 어떻게 한거야?
진정하듯 주머니에서 담배를 꺼내 입에 문다.
불붙이고 고개를 들면 눈물 흘리고 있는 원영.
다시 놀라는 수.
씬105 이발소 맞은편 건물 옥상
나무의 시선으로 이발소 안의 광경이 보인다.
윗부분 30cm 정도만 제외하고 온통 검게 썬팅된 이발소 통유리.
그 30cm 틈새로 내려다보이는 수와 원영의 모습.
이발소 안의 소리는 전혀 들리지 않는다.
신축 건물의 노래방 신나는 음악소리만 들릴 뿐.
수가 원영의 등을 두드리고, 원영에게 음료수를 마시게 하고, 원영은 입을 크게 벌려 뭐라뭐라 떠들고 있고, 수는 가만있지 못하고 몸을 들쑥날쑥.
방안의 내용을 모르고 보면 둘은 즐겁고 은밀한 파티라도 열고 있는 것 같다.
원영의 동작이 연극배우처럼 점점 커지고, 수를 향해 무언가를 계속해서 격렬하: 게 이야기한다.
소파에 털썩 앉는 수.
소파 등받이에 등을 기대고 원영을 말없이 바라보고 있다.
둘이 싸운다는 것을 모른다면 노래방 음악의 분위기대로 원영의 즐거운 이야기를: 수가 유심하게 듣고 있는 것으로 보이는 풍경이다.
씬106: 이발소
이제는 소파에 기대앉아 지친 얼굴로 원영을 응시하고 있는 수.
그 위로 폭포수처럼 쏟아지는 원영의 히스테리.
원영: (빠르고 격렬) …….니들까지 우습게 알면 나는 대체 뭐지? 나같이 하찮은 애는: 이 세상에 우습게 여길 사람조차 없는데 말이야! 내가 이세상의 끝이야, 바닥: 이라구! 그건 너도, 병호도 마찬가지 아냐?
수, 가슴속에서 치밀어 오르는 것을 꾹 참는 것처럼 보인다.
그의 희디흰 얼굴이 더 희게 보인다.
순간 또 다시 가위를 집어드는 원영.
자신의 남은 머리카락들을 마구 자르려 한다.
원영: 내 머리를 잘라 줘. 너도 내 말을 좀 들어! 아니, 누구라도 내 말을 한 번만 들어줘! 제발…….! (소리 질러) 내 머리를 잘라달란 말이야!
씬107 포장마차
다방 아가씨와 주거니 받거니 소주 마시는 병호.
잔뜩 취해 있다.
씬108 이발소
원영의 히스테릭컬한 가위질이 계속되면서 수의 얼굴이 격앙된다.
이제 그도 더 이상 참기 힘들어 보인다.
수: 그만해! 언제부터 알았다고 병호, 병호, 병호야! 너 정말 어떻게 된 거 아냐?
원영: (홱 뒤돌아) 내가 어떻게 됐다구? 어떻게 된 건 바로 너야! 너네 엄마도 정신 나간 여자였잖아!
수의 얼굴 근육이 씰룩거린다.
원영: (흥, 하는 표정으로) 병호가 원하는 대로 이발소에 남게 해!
수: 싫어.
원영: 싫어? (비꼬듯) 넌 뭐든 다 싫지. 이제 알았는데, 난 이 세상에서 니가 제일 싫어! 알아?
분노하는 수의 표정.
원영: (발악 절정에 달해) 어서 내 머리를 잘라! 내 머리를 잘라 줘!
수, 벌떡 일어선다.
수: (그답지 않게 흥분한 목소리로) 그래, 알았어.
원영, 순간 멈칫, 하는 표정.
원영에게 거칠게 다가가는 수.
원영을 이용의자에 사납게 앉힌다.
수, 그리고 쟁반 위에 놓인 부엌칼을 집어든다.
수: 잘라줄께.
순간, 놀라는 원영의 얼굴.
망설임없이 원영의 목을 힘껏 칼로 내리치는 수.
팍- 원영의 목에서 튀는 피.
붉다.
아주 짧은 순간.
놀라움과 고통으로 일그러지는 원영의 얼굴.
자기 몸을 흐르는 피를 내려다보며 놀란다.
자신의 피가 이렇게도 붉을 줄 몰랐다는 듯.
거칠 것 없이 칼로 원영의 목을 계속해서 내리치는 수.
원영의 몸에서 원영의 목이 떨어져 나갈때까지 수의 잔인한 칼질이 계속된다.
원영의 몸이 이발 의자 한쪽으로 쓰러지고
목이 바닥으로 굴러 떨어진다.
흥건하게 바닥으로 퍼져나가는 원영의 피.
수, 그제야 칼질을 멈추고 바닥에 떨어진 원영의 목을 내려다본다.
점차로 수의 흥분이 잦아든다.
다시 소파에 주저앉는 수.
방금 일어난 일을 기억하지 못하는 사람처럼 멍한 표정이다.
그제야 시끄러운 뭔가를 치워버린 것을 안도라도 하듯 한숨을 내쉬고 피묻은 손으로 이마를 짚는다.
피곤해 보인다.
말없이 한참 그렇게 앉아 있는 수.
그 동안에도 이발소 바닥엔 원영의 피가 점점 넓게 퍼지고 있다.
씬109 동. 부엌
냉장고 정리라도 하듯, 꼼꼼하게 음식 빼내는 수의 손.
씬110 동. 방
병호의 가방에 짐을 싸는 수.
어디 여행이라도 가려는 사람처럼 그의 태도는 차분하다.
씬111 동네 길
비틀비틀 걸어오는 병호.
취해서 정신이 없어 보인다.
씬112 이발소. 옥상
옥상 난간 곁에 서서 담배 피우는 수.
비올 것처럼 흐릿하게 밝아오는 새벽.
내려다 보면, 저 멀리서 비틀거리며 걸어오는 병호 보인다.
싸늘한 수의 얼굴.
씬113 이발소
넘어질 듯 문 열고 들어오는 병호.
제 집인 양 타박타박 걸어 옥상으로 올라간다.
씬114 동. 옥상
올라오자마자 돗자리 위에 대자로 뻗어 눕는 병호.
그대로 코를 골며 늘어진다.
잠시 후-
조용히 올라오는 수.
손에는 병호의 짐가방 든 채.
가만히 병호 내려다보던 수, 자신의 호주머니에서 이발소 열쇠를 꺼내 병호의 손에 쥐어주고 일어선다.
씬115 동. 이발소
수, 문열고 나가려하면 장대처럼 쏟아져 내리는 비.
하늘 보고 얼굴 찌푸리다가, 한쪽에 세워둔 우산 집어 들고 나간다.
씬116 이발소 앞
수, 걸어가려는데.
갑자기 앞집 옥상에서 빗살을 견디지 못한 나무 하나가 떨어진다.
원영이 그토록 즐겁게 바라보던 그 이쁜 나무엔 무슨 까닭인지 밑둥이 없다.
다가가 나무를 자세히 보는 수.
발로 툭툭 차 보면, 나무는 힘없이 굴러간다.
나무는 플라스틱으로 만들어져 있다.
잠시 동안 멍하니 나무 내려다 보고 서 있는 수.
씬117 기차
달리는 기차 안.
병호의 가방을 옆에 끼고 수가 앉아 있다.
창밖으로 굵은 장대비 쏟아져 내린다.
수는 말없이 그 비 바라보며 무슨 생각에 잠겨있다.
씬118 이발소 옥상
갈증느끼며 일어나는 병호.
손에서 열쇠가 구러 떨어지자 뭔가,하고 보다가 그냥 주머니에 넣는다.
술이 덜 깬 걸음으로 비틀대며 옥상을 내려 간다.
씬119 동. 부엌
냉장고 문 열고 물병꺼내 병째 마시는 병호.
물병 대충 넣어 놓더니 방으로 들어간다.
씬120 동. 방
대자로 뻗고 누운 병호의 발.
그 발바닥에 발갛게 피가 묻어있다.
씬121 동. 부엌
냉장고 아래에 흥건하게 배어나와 있는 붉은 피.
씬122 동. 옥상
옥상에서 내다보이는,
이웃집 옥상의 가짜 나무들.
비맞아 더욱 푸르다.
엔딩 크레딧-
<세계로 가는 퀴즈 여행 8월분-오키나와편>
*우리는 지금 아시아나가 취항하는 어느 한 도시를 찾아가고 있습니다. 이 도시의 한 초등학교에 다니는 5학년 어린이 네명이 이 도시에 관한 문제를 낼 것입니다. 여러분이 어린이들의 문제를 모두 맞춘다면 이 도시가 어디인지를 알 수 있게 됩니다. 다음의 문제들을 풀고 이 도시의 이름을 맞춰보세요.
1. 1번 어린이.
“아래 보이는 세 동물들은 우리 도시 고유의 동물들이랍니다. 그런데 조금 이상하게 생겼지요? 제가 동물들 몸의 부분을 해체해서 마구 섞어 놓았기 때문이예요. 그래도 평소에 동물에 관심이 많으신 분은 알아 맞출 수 있을 거예요. 이 동물들은 무엇일까요?”
<출제자 주>
딱따구리, 뜸부기 그리고 살쾡이는 오키나와의 고유한 동물로 유명합니다. 그 동물들의 머리, 몸통, 다리 부위를 분리하여 새롭게 조합해 주세요.
2. 2번 어린이.
“저희 집은 시내 중심에 있습니다. 이 중심부의 동서 약 1.6km에 이르는 거리는 패션 빌딩이나 백화점등이 즐비한 번화가입니다. 제2차 세계대전의 참화로부터 폐허가 된 도시를 시민들이 힘을 합쳐 순식간에 부흥시켰기 때문에 ‘기적의 1( )이라고 불렸답니다. ( )안에는 어떤 거리 단위가 들어가는데 그것은 네 개의 철자로 된 영어입니다. 참고로 1( )=1.61km입니다. 아래 글상자의 철자들을 조합해 ( )안에 들어갈 단어를 맞춰보세요.”
<출제자 주>
정답은 MILE입니다. 오키나와 나하의 메인스트리트는 ‘기적의 1마일’로 불렸던 곳입니다. 전쟁의 포화로 가장 처절하게 폐허가 되었던 그 곳이 지금은 오키나와에서 가장 번화한 곳 중의 한 곳이 되었지요. 아래 글상자를 문제 아래에 그려넣어 주세요.
3. 3번 어린이
“우리 도시는 옛부터 투우 대회로 유명합니다. 스페인처럼 말이죠. 하지만 스페인의 투우 경기와 같게 생각해서는 안됩니다. 스페인에서는 소와 사람이 싸우는 것이지만 우리 도시에서는 소와 이 동물이 싸움을 하거든요. 아래 세 마리의 동물 얼굴이 있습니다. 그 중 정답이라고 생각되는 동물을 택해서 사다리를 타보세요. 만약 당신의 추측이 맞았다면 당신은 정답에 도착하게 될 것입니다.”
<출제자 주>
정답은 소입니다. 위에 제가 그린 것처럼 문제 아래에 소, 사자, 호랑이 그림을 그린 후 정답에 이르는 사다리를 그려 주세요.
4. 4번 어린이.
“우리가 사는 본도로부터 남서쪽으로 430km 떨어진 야에야마 제도는 세계적으로 유명한 이 보석의 생산지입니다. 이 곳에서 생산되는 이 보석은 특히 산호의 영향으로 검은색을 띠는 데요, 보통의 이 보석은 부드러운 크림색이랍니다. 이 보석은 1년 중 어느 달(月)과 관련이 있는데요, 아래 그림의 것들도 마찬가지로 그 달을 상징하고 있습니다. 이 보석은 무엇일까요?”
<출제자 주>
정답은 진주입니다. 진주는 6월의 탄생석입니다. 문제 아래에 6월의 탄생화인 장미와 양력 5월 하순부터 6월 말경까지 하늘에서 볼 수 있는 별자리인 쌍둥이좌의 그림을 그려 넣어 주세요. 오키나와의 부속섬인 이시가키지마의 가비라완은 흑진주 양식으로 유명합니다.
<예비문제>
“우리 도시는 아라야치와 조야치라는 두 가지의 이것을 가지고 있습니다. 전통적으로 이것이 유명했던 우리 도시는 1618년 그 제조 역사에 중대한 전환을 맞게 됩니다. 그것은 한국에서 온 세 명의 기술자가 가져온 유약이라는 것 때문이었는데요, 이 유약이란 것으로 인해 우리 도시의 이것 기술은 한층 발전할 수 있었다고 합니다. 아래 그림은 위에서 바라본 이것의 모습입니다. 이것은 과연 무엇일까요?”
<출제자 주>
정답은 짐작하셨겠지만 도기입니다. 여러 가지 모양의 도기를 위에서 내려다 본 모양을 그려 넣어 주세요.
출제자 김 성 실
- 끝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