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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 동아일보 신춘문예 당선작]
사력 / 장희수
할머니가 없는
할머니 집에선
손에서 놓친 휴지가 바닥을 돌돌 굴렀다
무언가 멀어져가는 모습은
이렇게 생겼다는 듯
소금밭처럼 하얗게 펼쳐지고
어떤 마음은 짠맛을 욱여가며 삼키는 일 같았다 그중 가장 영양가 없는 것은
포기하고 싶은 마음일 것이라 생각해본 적 있다
포기하고 싶을 때마다
포기할 수 있었다면
또다시 포기하고 싶은 마음 같은 건, 생길 리 없을 테니까
할머니도 이제야 뭔들
관두는 법을 배운 거겠지
다 풀린 휴지를 주섬주섬 되감아보면 휴지 한 칸도 아껴 쓰라던 목소리가,
귓등에서 자꾸만 쏟아지는 것 같았는데
쏟아지면 쏟아지는 것들을 줍느라
자주 허리가 굽던 사람의 말은
더 돌아오지 않는 거지
죽을힘을 다해본다 해도
사람들은
영정 앞으로 다가와
국화꽃을 떨어트리고 멀어져 간다
정갈하고 하얗게 펼쳐지는
꽃밭처럼,
무언가 떠나는 모습은 이렇게 생겼다는 듯
할머니가 있었던
할머니의 집에서는
당선소감
기쁘지만 겁도 난다면 배부른 소릴까요. 그래도 배고픈 것보단 나은 거겠죠? 당선 소식에 광막해지는 기분입니다. 이제부턴 네 글을 읽는 게 누군지 모를 수도 있어, 말하는 것 같았거든요. 그 이제가 지금이고요. 99.99%의 확률로 나는 당신이 누군지 모릅니다. 그래서 아무나 붙잡고 말해볼 겁니다. 읽어줘서 고마워요. 나도 잘 지내고 있습니다.
한때는 천재로 불리는 사람들을 부러워했어요. 일필휘지, 촌철살인, 영감과 미문. 근데 따라 해 봐도 안 되더라고요. 그래서 그냥, 나는 바보다 생각하고 쓰기로 합니다. 나는 제일의 바보다. 놓으면 놓아지는 두루마리 휴지처럼, 잡으면 잡힌다는 푸른발부비새처럼. 너무 무지해서, 누군가를 미워하는 방법도 모른다는 양.
알던 것도 모를 거고, 울면 안 되는데 울 거고, 이태리산 스파게티 면은 두 동강 내어 삶을 겁니다. 있지도 않은 원수들을 하나하나 찾아가 나는 당신을 용서해요, 라고 너무 쉽게 말하는 일을. 쟤는 어쩜 멍청한 말 하기론 제일이네, 소리를 듣는다면 칭찬으로 여길 겁니다. 뭔들 일등이면 좋은 게 아니던가요.
물론, 암만 생각해 봐도 시가 되는 것들은 기쁨과 거리가 멀었습니다. 그럼에도 시를 쓰는 건, 기쁨일 거예요. 나는 지금 푸른 발바닥을 신은 기분입니다. 어디로 가는지 몰라도 어딘가로 가고 있을 겁니다. 생각과 태도가 비슷해 편한 형준. 쓸수록 이어지던 글처럼 인연이 되어준 용준, 민성, 준형, 예은, 연덕. 마지막 퇴고를 도와준 지민. 나를 짚어주신 심사위원분들과 당선 자리를 내어준 수많은 문우들에게 감사합니다. 철딱서니 없지만 악함도 없어 자랑스러운 영찬, 태선, 선기와 윤곤. 천국을 본떠 만든 게 분명한 나의 가족. 그리고 기도하는 마음을 알려주신 이학순 여사께도 두고두고 감사합니다.
△1992년 대전 출생
심사평
소소한 이미지로 삶-죽음에 대한 사유 성공적 이끌어내
시에 더욱 많은 것을 요청할수록 오히려 무게를 덜어내야 한다는 역설을 생각해 보게 하는 심사 과정이었다. 현대시가 그 어떤 때보다 ‘실재(혹은 실제)에 대한 열정’을 감당해 내야 하는 무게와 싸우고 있다는 것은 널리 알려진 일이다. 그러나 그것은 단지 상당한 질량을 보유했으리라는 기대를 담은 관념어의 나열로도, 언어 경제를 잃은 장황함으로도 해결될 수 없다. 이번 본심 대상작을 중심으로 단적으로 말하자면 늘이고 포개는 것보다 오히려 줄이고 깎는 일이 더욱 관건이라는 사실이 확연히 눈에 띈다.
‘귓속’은 단정한 진술과 매끄러운 비유로 우선 관심을 끌었다. 경청의 무게와 깊이가 절실한 이즈음의 사정과도 잘 부합하는 주제다. 그러나 ‘이 대목이 반드시 필요한가?’ 하는 의문을 감당하기 어려워 보이는 대목들이 특히 시의 후반부에 여럿 눈에 띄었다. 시는 일자천금의 세계이기도 하거니와 절제를 화두로 언어와 씨름하는 장르이다. ‘결심과 결실’의 경우도 사정은 비슷했다. 시의 내적 논리가 무리 없이 전개되며 종반부의 전언을 독자가 수긍하게 만드는 작품이다. 그러나 종반부로 치닫기 직전에 제시된 부분의 느슨함과 평이함 그리고 장황함이 두고두고 아쉬움으로 남을 법하다.
‘사력’은 그런 점에서 최종적으로 검토의 대상이 될 만했다. 할머니의 죽음을 중심 소재로 하되 사건을 세세히 묘사하는 대신 소소한 이미지들을 그러모아 사건에 육박하게 하는 자연스러움이 돋보였다. 이를 통해 삶과 죽음에 대한 독자의 사유를 이끌어내는 것에도 성공하고 있다. 군더더기 없이 능숙하게 쓰인 작품이다. 그 숙련에 더 많은 모험이 함께하기를 기대하며 축하의 악수를 건넨다.
정호승 시인·조강석 문학평론가(연세대 국어국문학과 교수)
챗.GPT 분석(참고만)
장희수의 **「사력」**을 요청하신 대로 제목, 주제, 상징 분석, 문장별 분석 순으로 상세히 분석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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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제목을 그렇게 붙인 이유: "사력"
**사력(死力)**은 문자 그대로 "죽을힘"을 뜻하며, 본문에서 다음과 같은 맥락으로 작용합니다:
"죽을힘을 다해본다 해도"라는 표현과 연결되어, 죽음과 관련된 모든 노력을 상징합니다.
할머니의 생애를 회상하며, 끝까지 삶을 살기 위해 애쓴 모습을 나타냅니다.
동시에, 화자가 상실의 고통 속에서 기억을 붙잡으려 애쓰는 모습, 죽음을 극복하려는 노력을 나타냅니다.
이 제목은 할머니의 삶, 죽음 이후의 상실, 그리고 남겨진 자들의 감정을 함축적으로 표현합니다.
2. 주제
가족의 상실과 기억, 죽음 이후에도 계속되는 삶의 흔적을 통해 남겨진 자의 애도와 그리움, 삶과 죽음의 순환성을 다룹니다.
죽음으로 인한 공백을 느끼는 화자가 상실의 의미를 되새기며, 삶의 무게와 소중함을 회상합니다.
"포기하고 싶은 마음", "죽을힘"과 같은 표현은 죽음이 단순히 끝이 아니라, 남은 자들에게도 지속적인 영향을 준다는 것을 강조합니다.
3. 상징 분석
1. 휴지:
통제할 수 없는 시간의 흐름과 상실의 불가피성을 상징합니다.
풀리거나 굴러가는 모습은 화자가 붙잡으려는 기억과 멀어지는 감정을 나타냅니다.
2. 소금밭:
하얗게 펼쳐진 소금밭은 죽음과 공허함을 시각화한 이미지입니다.
동시에 짠맛은 슬픔과 고통을 상징하며, 이를 삼키는 것은 감정의 억눌림과 극복을 의미합니다.
3. 꽃밭과 국화꽃:
"정갈하고 하얗게 펼쳐지는 꽃밭"은 죽음 이후의 평온함과 장례 의식을 나타냅니다.
국화꽃은 전통적으로 애도의 상징으로, 죽음 앞에서 남겨진 자들의 마음을 반영합니다.
4. 할머니의 목소리:
과거의 회상과 기억 속에서 계속 들려오는 "휴지 한 칸도 아껴 쓰라던 목소리"는 할머니의 삶의 방식과 가치관을 담고 있습니다.
이는 화자에게 남겨진 소중한 유산입니다.
4. 문장별 분석
1연: 할머니가 없는 / 할머니 집에선
분석:
"없는"은 부재를 강조하며, 화자가 느끼는 상실의 시작을 알립니다.
반복된 "할머니"는 애도의 중심 대상이자, 그리움의 초점입니다.
손에서 놓친 휴지가 바닥을 돌돌 굴렀다
분석:
"놓친 휴지": 기억과 감정이 손에서 흘러가듯, 상실감과 화자의 무력감을 상징합니다.
"바닥을 돌돌 굴렀다": 통제할 수 없는 시간과, 화자가 느끼는 허무함을 드러냅니다.
무언가 멀어져가는 모습은 / 이렇게 생겼다는 듯
분석:
"멀어져가는 모습"은 죽음을 암시하며, 물리적 부재가 주는 심리적 거리감을 나타냅니다.
"이렇게 생겼다는 듯": 화자는 상실의 모습을 구체화하려 하지만, 그것이 모호하고 막연하게 느껴짐을 표현합니다.
소금밭처럼 하얗게 펼쳐지고
분석:
"소금밭": 죽음과 고요함을 상징합니다. 하얗게 펼쳐진 모습은 죽음 이후의 정적 상태를 시각적으로 드러냅니다.
어떤 마음은 짠맛을 욱여가며 삼키는 일 같았다
분석:
"짠맛": 슬픔과 상실의 고통을 비유합니다.
"욱여가며 삼키는 일": 감정을 억누르고 감내하는 화자의 애도 방식을 묘사합니다.
그중 가장 영양가 없는 것은 / 포기하고 싶은 마음일 것이라 생각해본 적 있다
분석:
"포기하고 싶은 마음": 상실 속에서 느껴지는 무력감과 절망을 나타냅니다.
"영양가 없는 것": 이러한 절망이 아무런 도움도 되지 않음을 화자가 인식합니다.
포기하고 싶을 때마다 / 포기할 수 있었다면
분석:
반복된 "포기"는 화자가 느끼는 슬픔의 반복적이고 고통스러운 본질을 강조합니다.
포기하지 못하고 계속 끌려가는 상황이 상실의 지속성을 나타냅니다.
또다시 포기하고 싶은 마음 같은 건, 생길 리 없을 테니까
분석:
슬픔을 극복하지 못하는 자신에 대한 자조와 한계를 표현합니다.
상실의 감정이 끝없이 반복됨을 암시합니다.
할머니도 이제야 뭔들 / 관두는 법을 배운 거겠지
분석:
"관두는 법": 죽음을 삶의 마무리로 표현하며, 죽음 자체를 수용하려는 화자의 태도가 담겨 있습니다.
다 풀린 휴지를 주섬주섬 되감아보면 / 휴지 한 칸도 아껴 쓰라던 목소리가, / 귓등에서 자꾸만 쏟아지는 것 같았는데
분석:
"다 풀린 휴지": 상실과 과거의 시간들이 되돌릴 수 없음을 상징합니다.
"주섬주섬 되감아보면": 기억과 흔적을 붙잡으려는 화자의 시도를 나타냅니다.
"귓등에서 자꾸만 쏟아지는 목소리": 할머니의 삶의 지혜가 화자의 기억 속에서 계속 살아 있음을 보여줍니다.
쏟아지면 쏟아지는 것들을 줍느라 / 자주 허리가 굽던 사람의 말은
분석:
"쏟아지는 것들을 줍느라": 할머니의 헌신적인 삶과 희생을 상징합니다.
"허리가 굽던 사람": 노년기의 노동과 헌신적 삶을 묘사합니다.
더 돌아오지 않는 거지
분석:
단호한 문장으로, 할머니의 부재를 영원히 되돌릴 수 없다는 사실을 강조합니다.
죽을힘을 다해본다 해도
분석:
"죽을힘": 상실을 되돌리거나 극복하려는 노력의 한계를 나타냅니다.
사람들은 / 영정 앞으로 다가와 / 국화꽃을 떨어트리고 멀어져 간다
분석:
"영정 앞으로 다가와": 죽음 앞에서의 인간의 의례적 태도를 묘사합니다.
"국화꽃을 떨어트리고 멀어져 간다": 상실을 애도하는 행위와 떠남의 아이러니를 강조합니다.
정갈하고 하얗게 펼쳐지는 / 꽃밭처럼,
분석:
"꽃밭": 죽음 이후의 평온함과 장례식의 장면을 은유적으로 표현합니다.
무언가 떠나는 모습은 이렇게 생겼다는 듯
분석:
떠남의 모호한 이미지를 반복하며 상실감을 재차 강조합니다.
할머니가 있었던 / 할머니의 집에서는
◦ "있었던": 과거 시제를 통해 할머니의
부재를 확고히 드러냅니다.
◦ 마지막 구절은 처음 구절과 수미상관을
이루며 상실의 고리를 완성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