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고 싶을 때 볼 수 없다는 것
양승곤
어릴 적 어머니와 달리기를 많이 했던 기억이 난다. ‘네 이놈, 잡히기만 해봐라,’ 쫓아오는 어머니와 도망가던 우리. 학교 갈 때마다 돈 때문에 어머니와 신경전을 벌여야 했던 어릴 적 가난했던 기억들, 그 가난과 몇 번의 위기를 이겨낸 어머니의 생활력이 오늘의 우리를 키워내셨다 ‘열 손가락 깨물어 안 아픈 손가락 없다.’ 어머니는 그런 말씀을 자주 하셨다 3남 3녀를 낳으시고 모두 다 똑같이 사랑하셨던 어머니. 자식 자랑할 일이 많은데도 자식 걱정이 더 많으셨던 어머니를 기억한다. 그게 어머니의 사랑 표현이었다. 그런 사랑 표현 때문에 저는 가끔 난처함에 빠지기도 했다. 세련되지 못한 어머니의 사랑 표현, 그때 저는 겉만 보았지 어머니의 속마음을 읽지 못했다. 깊은 헌신적인 사랑, 그게 어머니의 사랑이었다. 뒤늦게 그 사랑을 깨닫게 되었다.
보고 싶을 때 볼 수 없다는 것이 마음 저리도록 아픔이라는 것을 이제 깨닫는다. 어머니! 보고 싶습니다. 그립습니다. 어머니 앞에서는 나도 어린 아이가 될 수 있었는데 지금은 정녕 그럴 수가 없다 때론 어리광도 부리고 싶은데 이제는 그냥 어른으로만 살아가야 한다. 나도 아이들을 키우고 이제 할아버지가 되니, 부모의 마음을 하나 둘 이해하고 품을 수 있게 되었다 어머니를 이해하는 데에는 상당한 시간이 필요했다 다 이해하려면 더 많은 시간이 필요할 것 같았다.
자식들 중에서 내가 어머니를 가장 많이 닮았다고 한다. 거울을 놓고 보면 저의 모습에서 어머니를 발견하곤 한다. 어머니의 신앙도 닮았다. 어머니께 감사드린다. 어머니께서는 돌아가시기 전에 두 가지 진실을 말씀하셨다 늘 입버릇처럼 “죽고 싶다, 죽고 싶다. 하나님은 왜 나를 빨리 데려가시지 않나?” 하시더니, 병원에서 돌아가시기 얼마 전에 며느리에게 “아가, 나 좀 더 살고 싶다.” 어머니의 첫 번째 진실이다 삶에 대한 애착은 어머니의 삶이 그만큼 아름다웠다는 말씀인 줄 안다. 또 하나는 아버지를 그렇게 미워하시는 것 같더니, 아버지에게 말씀하셨다. “ 다음에 만나더라도 당신, 내 남편 또 해줘.” 어머니의 두 번째 진실이다. 아버지에 대한 감사의 표현은 어머니의 결혼 생활이 감사로 가득 찼다는 말씀인 줄 안다.
그 어느 여인보다도 어머니는 행복하셨던 분이다. 그 곁에는 늘 아버지가 계셨다. 온갖 어머니의 푸념에도 아버지는 묵묵히 참으시며 헌신적이셨다. 남편의 지극한 사랑을 받으신 여인, 부모님을 귀하게 여기며 섬기는 자식들, 무엇보다도 하나님의 사랑을 많이 받으셨다. 병상에 누워서도 찬송을 따라 하시던 마지막 모습이 자식 된 우리에겐 얼마나 고마운지 모른다. 아픈 몸을 이끌고 교회에 나가 예배드리기를 소원하셨고 어머니의 마지막은 복되고 아름다웠다. 장례식을 마치고 조의금을 어머니의 뜻을 기리는 마음으로 헌금하셨다. 고맙게도 교회에서는 강대상과 아버지 학교 방을 꾸미는데 그 헌금을 쓰셨다. 교회를 가면 어머니의 생각을 더 많이 하게 됐다.
어머니로 인해 저희 가족이 예수님을 믿게 되었다. 어머니는 우리에게 강한 삶의 흔적을 남기셨다. 바로 신앙이다. 우리가 모태 신앙을 가지고 태어났다는 게 생각할수록 대단한 축복임에는 틀림없다. 어머니는 우리에게 검소를 가르쳤다. 환경에 굴하지 않는 강인함을 가르쳐 주셨다. 오늘 어렵더라도 내일을 준비하는 마음을 배웠다. 가족에 대한 책임감을 배웠다.
어머니 장례를 마치고 화장하고 뿌렸다. 우리는 그 어떤 흔적이나 상징물도 남기지 말자고 했다. 어머니는 우리 마음에 계신다. 하늘에 계신다.
어머니! 사랑하던 손녀 유진이가 어머니에게 하던 말을 제가 다시 하게 되는군요.
‘천국에서 만납시다.’ 먼저 천국에 가셔서 우리를 기다리시는 줄 믿습니다.
우리 가족 모두가 하나님의 은혜로 구원을 받아 천국에서 만나길 기도합니다.
어머니, 사랑합니다. 그리고 오늘은 몹시도 그립습니다.
-어머니를 추모하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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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승곤
조선 대학교 약학대학
중앙대학교 의과대학
연세대학교 세브란스 병원 전문의 과정
일본 관동체신병원 통증클리닉과 연수
호주 John Hunter병원연수
대한 통증학회 및 대한 척추통증 연구회 정회원
통증의학 전문의, 통증의학 인정의
(현) 연세대학교 의과대학 외래교수
(현) 목포 양승곤 통증클리닉 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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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선 소감
어머니께서 돌아가신 후 어머니의 존재를 다시 생각하며 어머니에게 편지를 써 보았다.
쓰면서 느끼게 된 것은, 살아 계실 때보다 돌아가신 후에야 어머니를 더욱 더 이해하게 되었다는 사실이다. 깊이 이해할수록 더 사랑하게 되고 더 그리워하게 되었다.
이 편짓글을 다른 글과 함께 병원 대기실에 붙여 두었더니, 어느 날 김자향 시인께서 보시더니 많은 사람이 읽었으면 좋겠다며 월간 모던포엠에 보내시겠다고 했다. 그분의 권유로 이 글이 세상에 나오게 되었다.
신인상에 당선되었다는 이야기를 듣고 사실 어안이 벙벙했다.
기쁨보다는 내가 그런 자격이 되나 하는 염려의 마음이 앞섰다.
그러나 아내의 말 한 마디에 용기를 얻는다. ‘당신의 글에는 감동이 있어.’
곰곰이 생각해 보니, 고등학교 때 난 문과반이었고, 문학소년의 꿈도 있었다. 대학 때부터는 이과의 길을 걸어 한동안 잊어버렸던 그 꿈이 다시 꿈틀거린다. 그래 다시 시작하자. 백 마디 말보다는 한 줄의 글이 더 많은 이야기를 하는 그런 글을 쓰고 싶다.
“세상 사람을 위해서는 의사가 되었고, 나 자신을 위해서는 시인이 되었다.” 닥터 지바고의 말이다. 지바고처럼 글을 사랑하며, 나 자신의 마음의 밭을 일구며 글을 쓰자.
부족한 작품을 하나의 가능성으로 보아주시고, 용기를 주신 심사위원들에게 감사의 말씀을 드린다. 하늘에 계신 어머니께서 기뻐하실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