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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범이 되는 교회
데살로니가전서1:1-4 24/01/21 주현 후 제3주
1:1 바울과 실루아노와 디모데는 하나님 아버지와 주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는 데살로니가인의 교회에 편지하노니 은혜와 평강이 너희에게 있을지어다
1:2 우리가 너희 모두로 말미암아 항상 하나님께 감사하며 기도할 때에 너희를 기억함은
1:3 너희의 믿음의 역사와 사랑의 수고와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소망의 인내를 우리 하나님 아버지 앞에서 끊임없이 기억함이니
1:4 하나님의 사랑하심을 받은 형제들아 너희를 택하심을 아노라
평안의 인사를 드리겠습니다.
하나님의 은총과 평화가
우리 모두에게 그리고 우리 자녀와 이웃들에게
늘 함께 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신약 성서에서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하는 것은 바울의 편지들입니다.
어떤 것들이 있는지, 기록된 순서대로 살펴보겠습니다.
1.데살로니가전서(49-51) 데살로니가 교회에 보낸 첫 번째 편지
2.데살로니가후서(49-51) 데살로니가 교회에 보낸 두 번째 편지
3.갈라디아서(52) 갈라디아 교회에 보낸 편지
4고린도전서(53-55) 고린도 교회에 보낸 첫 번째 편지
5.고린도후서(53-55) 고린도 교회에 보낸 두 번째 편지
6.로마서(57) 로마 교회에 보낸 편지
7.빌립보서(62) 빌립보 교회에 보낸 편지
8.골로새서(62) 골로새 교회에 보낸 편지
9.빌레몬서(62) 빌레몬에게 보낸 편지
10.에베소서(62) 에베소(소아시아) 교회에 보낸 편지
11.디모데전서62-64 디모데에게 보낸 첫 번째 편지
12.디도서62-64 디도에게 보낸 편지
13.디모데후서64-67 디모데에게 보낸 두 번째 편지
그렇다면 이방인의 전도자 바울은 왜 이렇게 많은 편지들을 써야만 했을까요?
그것은 각 지역에 세워진 교회들이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하나가 되지 못하고, 여러 문제들로 갈등을 겪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특히 나뿐 말과 행동으로, 서로가 서로에게 상처가 되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바울이 내내 강조한 것이 하나 있었습니다.
바로 교회의 정체성입니다.
‘교회란 무엇인가?’ 이지요.
교회
무엇을 교회라고 부를까요?
일단 교회란, 어느 특정 장소에 있는 건물을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그래서 우리 신앙 선배들은 우리가 일반적으로 알고 잇는 교회를 예배당 이라고 구별해서 불렀습니다.
장정예배당이지요.
장정구역 장정예배당입니다.
그러면 교회란, 도대체 무엇을 두고 하는 말일까요?
교회란
하나의 아주 존귀한 인격체로
그리스도의 몸이자 동시에 그리스도의 지체인 사람을 가리키는 말합니다. 그러니까 엄밀히 말하면, 여러분 자신 하나하나가 교회인 셈입니다.
그래서 사도 바울이 교회를 이렇게 정의했던 것입니다.
엡1:23 교회는 그의 몸(인격체)이니
따라서 교회의 존재 이유는 하나님의 아들이자 그리스도이신 예수님의 손과 발이 되는 데 있습니다. 그러면 우리가 그리스도의 어떤 손과 발이 되어야 할까요?
① 사랑으로, 서로 용납하는 손과 발이 되어야 합니다.
엡4:1 그러므로 주 안에서 갇힌 내가 너희를 권하노니 너희가 부르심을 받은 일에 합당하게 행하여
4:2 모든 겸손과 온유로 하고,
오래 참음으로 사랑 가운데서 서로 용납하고
거부하는 손이 아니라 환영하는 손이 되는 것입니다.
가로 막는 손이 아니라 용납하는 손이 되는 것입니다.
② 오늘 우리가 그리스도의 몸이라면,
오늘 우리는 그리스도의 어떤 손과 발이 되어야 할까요?
하나 되게 하는, 평화의 손과 발이 되어야 합니다.
엡4:3 평안의 매는 줄로 성령이 하나 되게 하신 것을 힘써 지키라
그래서 저는 치유가 필요하고 회복이 필요한 사람들을 만날 때 마다 꼭 이 찬양을 소개합니다.
하나님 눈길 머무신 곳 그곳에 내 눈 머물고
하나님 손길 닿으신 곳 그곳에 내 손 닿으리
하나님 마음 두신 그곳 그곳에 내 맘도 두고
하나님 계획하신 그곳 그곳에 내 삶 드리리
나 경배합니다 주님 주님만 닮게 하소서
나 예배합니다 주님 주님만 좇게 하소서
그러면 우리가 왜 분열이라는 상처, 원망이라는 아픔을 뒤로하고,
그리스도의 손과 발이 되어 주님만을 경배하고 찬양해야할까요?
바로 이런 이유 때문입니다.
엡4:4 몸이 하나요 성령도 한 분이시니 이와 같이 너희가 부르심의 한 소망 안에서 부르심을 받았느니라
4:5 주도 한 분이시요 믿음도 하나요 세례도 하나요
4:6 하나님도 한 분이시니 곧 만유의 아버지시라 만유 위에 계시고 만유를 통일하시고 만유 가운데 계시도다
두 번째, 사도 바울이 말한 교회의 정의합니다.
다시 에베소서 1장 23절로 돌아갑니다.
엡1:23 교회는 그의 몸이니
만물 안에서 만물을 충만하게 하시는 이의 충만함이니라
바울은 교회를
‘만물 안에서 만물을 충만케 하시는 분의 충만함’이라고 정의하는데,
무슨 뜻일까요?
바로 자비하신 하나님
그 하나님의 은혜가 이 시대에 충만하도록 나타나게 하는 것이 교회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바울은 이렇게 말을 이어갑니다.
(새)엡2:7 그것은, 하나님께서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우리에게 자비로 베풀어주신 그 은혜가 얼마나 풍성한지를 장차 올 모든 세대에게 드러내 보이시기 위함입니다.
2:8 여러분은 믿음을 통하여 은혜로 구원을 얻었습니다. 이것은 여러분에게서 난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선물입니다.
2:9 행위에서 난 것이 아닙니다. 그러므로 아무도 자랑할 수 없습니다.
2:10 우리는 하나님의 작품입니다. 선한 일을 하게 하시려고, 하나님께서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우리를 만드셨습니다. 하나님께서 이렇게 미리 준비하신 것은, 우리가 선한 일을 하며 살아가게 하시려는 것입니다.
요약하면 이런 것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작품이다.’
따라서 하나님의 작품답게, 우리가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선한 일을 하며 살아가면, 장차 올 세대에 하나님의 충만한 은혜를 드러내고, 보여주는 교회로서의 사명을 감당하게 된다는 것입니다.
과연 이런 모범적인 교회, 있을까요?
있었습니다.
바로 데살로니가교회입니다.
주후 50년경 일입니다.
바울이 이끈 전도 팀(실라/디모데)은 그리스 북쪽 데살로니가에 도착하자, 유대인 회당을 찾아 들어갑니다. 그리고 그곳에서 성경을 가지고 3주에 걸쳐 여러 사람들과 토론합니다.
그때 바울이 제시한 토론의 주제는 유대인들의 최대 관심사인 (메시야)그리스도였습니다.
① 선지자 이사야의 예언처럼 그리스도가 고난 받는 종으로 오셨는데 그분이 바로 얼마 전 십자가에서 죽임을 당한 나사렛 예수였다는 것입니다.
사53:2 그는 주 앞에서 자라나기를 연한 순 같고 마른 땅에서 나온 뿌리 같아서 고운 모양도 없고 풍채도 없은즉 우리가 보기에 흠모할 만한 아름다운 것이 없도다
53:3 그는 멸시를 받아 사람들에게 버림 받았으며 간고를 많이 겪었으며 질고를 아는 자라 마치 사람들이 그에게서 얼굴을 가리는 것 같이 멸시를 당하였고 우리도 그를 귀히 여기지 아니하였도다
53:4 그는 실로 우리의 질고를 지고 우리의 슬픔을 당하였거늘 우리는 생각하기를 그는 징벌을 받아 하나님께 맞으며 고난을 당한다 하였노라
② 선지자 호세아의 예언에 따르면, 사망을 이기시고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아나신 분이 있는데 그분이 바로 나사렛 사람 예수였다는 것입니다.
호13:14 내가 그들을 스올의 권세에서 속량하며 사망에서 구속하리니 사망아 네 재앙이 어디 있느냐 스올아 네 멸망이 어디 있느냐 뉘우침이 내 눈 앞에서 숨으리라
그러자 아주 놀라운 일이 벌어집니다.
행17:1 그들이 암비볼리와 아볼로니아로 다녀가 데살로니가에 이르니 거기 유대인의 회당이 있는지라
17:2 바울이 자기의 관례대로 그들에게로 들어가서 세 안식일(21일 동안)에 성경을 가지고 강론하며
17:3 뜻을 풀어 그리스도가 해를 받고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아나야 할 것을 증언하고 이르되 내가 너희에게 전하는 이 예수가 곧 그리스도라 하니
17:4 (회당 공동체 안에 있는)그 중의 어떤 사람 곧 경건한 헬라인의 큰 무리와 적지 않은 귀부인도 권함을 받고 바울과 실라를 따르나
그렇게 해서 유대인과 헬라인과 귀부인으로 구성된 새로운 신앙공동체
바로 데살로니가 교회가 탄생하게 됩니다.
그런데 곧 문제가 생깁니다.
회당공동체에 속한 디아스포라 유대인들이 새로운 신앙 공동체인 교회를
곱게 보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유대인 회당에 속한 디아스포라 유대인들이 동네 불량배를 사주해서 바울 일행의 전도를 대놓고 방해합니다. 심지어 바울이 머물고 있던 야손의 집을 습격해 행패를 부립니다. 이들의 방해는 이 뿐만 아니었습니다. 오늘날로 말하면, 국가보안법으로 로마정부에 고발을 합니다.
행17:6 발견하지 못하매 야손과 몇 형제들을 끌고 읍장들 앞에 가서 소리 질러 이르되 천하를 어지럽게 하던 이 사람들이 여기도 이르매
17:7 야손이 그들을 맞아 들였도다 이 사람들이 다 가이사의 명을 거역하여 말하되 다른 임금 곧 예수라 하는 이가 있다 하더이다 하니
결국 전도의 일을 매듭지지 못하고 도망치듯 바울은 데살로니가를 떠나야만 했습니다. 그로부터 몇 년이 지나 데살로니가 교회로부터 바울에게 좋지 못한 소식이 전해집니다. 거짓 전도자들, 거짓 교사들의 가르침으로 인해 데살로니가 교인들의 믿음이 뿌리부터 흔들리고 있다는 소식이었습니다. 그때 바울이 즉시 펜을 들어 쓴 편지가 바로 데살로니가전서입니다.
편지의 시작, 이렇게 됩니다.
살전1:1 바울과 실루아노와 디모데는
하나님 아버지와 주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는 데살로니가인의 교회에 편지하노니 은혜와 평강이 너희에게 있을지어다
그런데 이 부분이 좀 특이합니다.
왜냐하면 바울의 거의 모든 편지들은 예수 그리스도의 종(사도) 바울 곧 자신의 소개로 시작하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데살로니가전서에서는 그런 공식적인 수식어가 빠지고, 그 대신 동역 자들이 이름이 나란히 등장합니다.
왜 그랬을까요?
두 가지 이유 때문입니다.
하나는 동역 자에 대한 깊은 존중이고
또 하나는 세 명의 이름을 나란히 기록함으로 개인의 소견이 아니라 공동체적 견해임을 밝히기 위함이었습니다. 다시 말해 개인의 사견이 아니라 함께 입증할 수 있는 공동의 의견이라는 강조입니다.
자, 다음은 편지의 수신입니다.
살전1:1 바울과 실루아노와 디모데는 하나님 아버지와 주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는 데살로니가인의 교회에 편지하노니 은혜와 평강이 너희에게 있을지어다
여기서 우리는 바울이 말하고 있는 교회의 또 다른 정의와 만나게 됩니다. 하나님 아버지와 주 예수 그리스도 안에 머물러 있는 교회입니다.
그러니까 교회란 무엇인가, 다시정리하면
①그리스도의 몸이다.
②하나님 은혜가 만유가운데 충만하게 나타난 것이다.
③하나님 아버지와 주 예수 그리스도 안에 머물러 있는 것이다.
그리고 이들 교회에 늘 역사하는 하나님의 사랑이 있었는데,
바로 하나님의 은혜와 평강이었습니다.
살전1:1 바울과 실루아노와 디모데는 하나님 아버지와 주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는 데살로니가인의 교회에 편지하노니 은혜와 평강이 너희에게 있을지어다
그렇게 인사말이 끝나자마자 바울은 데살로니가 교회를 향한 칭찬으로 이어갑니다.
살전1:3 너희의 믿음의 역사와 사랑의 수고와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소망의 인내를 우리 하나님 아버지 앞에서 끊임없이 기억함이니
(새)1:3 또 우리는 하나님 우리 아버지 앞에서 여러분의 믿음의 행위와
사랑의 수고와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께 둔 소망을 굳게 지키는 인내를 언제나 기억하고 있습니다.
첫째, 데살로니가 교회는 ‘믿음의 행위’가 특출 난 교회였다는 것입니다.
믿음의 행위, 무엇을 말하는 것일까요?
믿고 것과 행하는 일이 하나였다는 것입니다.
그렇게 데살로니가 교회는 그리스도와 한 몸이 되어 그리스도의 손과 발이 되었다는 것입니다.
둘째, 데살로니가 교회는 ‘사랑의 수고’를 하는 교회였다는 것입니다.
사랑의 수고, 무엇을 말하는 것일까요?
그리스도의 손과 발이 되어 사랑하는 일에 아낌이 없었다는 것입니다.
셋째, 데살로니가 교회는 그리스도에게 둔 소망을 포기하지 않고 인내하는 교회였다.
인내하는 교회, 무엇을 말하는 것일까요?
나의 소망은 오직 우리 주 예수뿐이었다는 것입니다.
말씀을 마칩니다.
누군가에게 모범이 된다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닙니다.
왜냐하면, 사람의 열심으로 할 수 있는 일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하나님의 사랑하심 곧 하나님의 은혜와 평강아래 있다면, 이야기는 달라집니다.
그래서 바울이 칭찬과 함께 이런 말을 남겨둔 것입니다.
살전1:4 하나님의 사랑하심을 받은 형제들아 너희를 택하심을 아노라
그러니 하나님의 택하심을 믿고, 모범이 되는 장정교회가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모든 지각에 뛰어난 하나님의 평강이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우리의 마음과 생각을 지키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