히스기야의 대외 정책과 종교 정책
(열왕기하 18장 1-16절)
1-2.이스라엘의 왕 엘라의 아들 호세아 제삼년에 유다 왕 아하스의 아들 히스기야가 왕이 되니 그가 왕이 될 때에 나이가 이십오 세라 예루살렘에서 이십구 년간 다스리니라 그의 어머니의 이름은 아비요 스가리야의 딸이더라
히스기야왕은 아하스왕의 아들로서 42년 동안 통치했다. 그의 첫 13년은 아버지 아하스왕의 섭정을 받았고, 왕 위에 오를 때 12세였으나 25세가 되어 단독으로 통치를 했다.
어느 날 히스기야왕이 병이 들었는데, 하나님께 기도를 했다. 기도 제목은 세 가지였는데, 첫째, 당시 유다 왕국의 어려운 정세 하에서 왕의 아들 므낫세(7-8세)는 어린 아이였으므로 통치에 문제가 되고, 둘째, 앗시리아 왕 산헤립의 위협과 그의 장군 랍사게로 부터 많은 능욕을 받았으며, 셋째, 병이 있기 때문에 좀 더 살게 해 주시라고 간절히 기도를 했는데, 이사야가 무화가 반죽을 가져오라 하매 무리가 가져다가 상처에 놓으니 낳았다고 한다.
그리고 더 살 수 있는 징표로서 아하스왕의 해 시계 위에 나아갔던 그림자를 십도 물러가게 하셨다. 하나님께서 그의 생명을 15년 더 연장을 해주신 것이다. 이는 자연의 법칙을 흔드는 것이다.
여호수아 10장 12-13절에서도 이와 유사한 사건이 있었다. 『여호와께서 아모리 사람을 이스라엘 자손에게 넘겨 주시던 날에 여호수아가 여호와께 아뢰어 이스라엘의 목전에서 이르되 태양아 너는 기브온 위에 머무르라 달아 너도 아얄론 골짜기에서 그리할지어다 하매 태양이 머물고 달이 멈추기를 백성이 그 대적에게 원수를 갚기까지 하였느니라 야살의 책에 태양이 중천에 머물러서 거의 종일토록 속히 내려가지 아니하였다고 기록되지 아니하였느냐』
히스기야왕의 병이 나았을 때 바벨론 왕 므로닥 발라단이 그에게 사자를 보내어 회복된 사실을 축하했다. 그것은 자신이 일으킨 반란에 협력해 주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사절단을 통해 축하한 것이었는데, 므로닥 발라단의 반란은 주전 703년에 일어났다. 그러나 바벨론 사신들이 히스기야왕을 찾아온 것은 왕을 시험하기 위한 것이었다. 히스기야왕은 그들의 의중을 알지 못하고 사절단의 일행을 기쁨으로 맞이했다. 그리고 이들에게 왕궁의 보물과 무기 창고를 다 보여주며 자랑했는데, 그것이 바벨론의 공격을 받는 단초가 된다.
3-4.히스기야가 그의 조상 다윗의 모든 행위와 같이 여호와께서 보시기에 정직하게 행하여 그가 여러 산당들을 제거하며 주상을 깨뜨리며 아세라 목상을 찍으며 모세가 만들었던 놋뱀을 이스라엘 자손이 이때까지 향하여 분향하므로 그것을 부수고 느후스단이라 일컬었더라
여호와 보시기에 정직히 행하여 라는 특별한 찬사는 유다 왕들 가운데 아사와 요시야, 히스기야 세 왕에게만 주어졌다. 이러한 평가는 북왕국의 열왕들에 대한 평가와 아주 대조적인 것이다. 아마도 그 아비 아하스와 선지자 이사야의 접촉이 잦았던 점으로 보아 히스기야는 어릴 때부터 이사야의 영향을 많이 받았을 것이다. 그리고 바로 그러한 영향이 스가랴로부터 받은 영향과 함께 히스기야를 훌륭한 신앙인으로 성장시켰을 것이다.
“모세가 만들었던 놋뱀을 이스라엘 자손이 이때까지 향하여 분향하므로 그것을 부수고 느후스단이라 일컬었더라”
느후스단은 놋으로 된 조각을 의미한다. 모세가 만든 놋뱀은 불뱀에 대한 것으로 하나님이 출애굽한 이스라엘 백성들이 하나님께 불평과 원망하므로 불뱀을 보내어 죽게 했으며, 모세가 살려달라고 기도하자, 놋뱀을 만들어 장대에 달고, 그 놋뱀을 바라보는 자는 살게 하신 것이다. 그러므로 불뱀은 하나님의 심판 즉 십자가의 죽음과 같은 의미이며, 놋뱀은 죽어야 할 자가 살게되는 부활생명을 의미하는 것이다.
이 부활생명을 의미하는 것이 우상으로 변질된 것이다. 부활생명을 얻기 위해서는 십자가의 죽음이 선행되어야 하지만, 놋뱀이 우상이 되는 것은 십자가의 죽음과 상관없이 복을 비는 대상으로 만든 것이다.
오늘날 교회 공동체에서 십자가가 우상이 되는 경향을 보인다. 십자가가 모든 문제를 해결하는 상징으로 변하고 있다. 그러나 십자가는 심판을 의미한다. 신자가 죽을 수 밖에 없는 존재임을 나타내는 것이다. 그래서 십자가를 바라보면서 하나님을 떠난 것을 회개하라는 것이다.
5-8.히스기야가 이스라엘 하나님 여호와를 의지하였는데 그의 전후 유다 여러 왕 중에 그러한 자가 없었으니 곧 그가 여호와께 연합하여 그에게서 떠나지 아니하고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명령하신 계명을 지켰더라 여호와께서 그와 함께 하시매 그가 어디로 가든지 형통하였더라 저가 앗수르 왕을 배반하고 섬기지 아니하였고 그가 블레셋 사람들을 쳐서 가사와 그 사방에 이르고 망대에서부터 견고한 성까지 이르렀더라
히스기야왕 시절에 앗수르 제국의 세력이 흥기하기 시작하였다. 유다 왕국을 포함한 중동 지방 모든 나라와 애굽은 앗수르의 세력권에 들어간 것이다. 히스기야왕은 아하스왕과는 달리 반 앗수르 정책을 취했으나 그 때까지 앗수르 왕 사르곤2세와는 직접적인 마찰은 없었다. 주전 711년 블레셋 아스돗이 주축이 되어 반 앗수르 동맹에 히스기야왕도 함께 하도록 요청받았는데, 왕은 거절하였다.
9-12.히스기야 왕 제사년 곧 이스라엘의 왕 엘라의 아들 호세아 제칠년에 앗수르의 왕 살만에셀이 사마리아로 올라와서 에워쌌더라 삼 년 후에 그 성읍이 함락되니 곧 히스기야 왕의 제육년이요 이스라엘 왕 호세아의 제구년에 사마리아가 함락되매 앗수르 왕이 이스라엘을 사로잡아 앗수르에 이르러 고산 강 가에 있는 할라와 하볼과 메대 사람의 여러 성읍에 두었으니 이는 그들이 하나님 여호와의 말씀을 듣지 아니하고 그의 언약과 여호와의 종 모세가 명령한 모든 것을 따르지 아니하였음이더라
앗시리아 왕 사르곤2세는 아스돗에 출정하여 반 앗수르 반란을 진압하였다. 그 때 애굽 25왕조는 아스돗을 돕기로 약속했지만 나타나지 않았다. 당시 유다 왕국은 앗수르의 공격을 면했다. 이 후 중동 아시아 여러 나라들은 동맹을 맺고 반 앗수르 투쟁을 하고 있었는데, 두로 왕국이 주동이 되고, 블레셋, 아스글론, 에그론, 유다 왕국이 가담했다.
유다 왕국 히스기야왕은 예루살렘 성곽을 중수하여 요새화하고, 방비를 강화했다. 특히 앗수르가 물을 쓰지 못하도록 조치하고, 백성의 급수를 위해 기혼 샘으로부터 굴을 파서 물을 끌어드렸다.
앗수르 제국의 출정 소식에 유다 조정의 강경 파벌은 히스기야왕에게 애굽과 동맹을 맺고, 앗수르에 대비하기를 원했는데, 주전 701년 앗수르 산헤립왕은 중동 지방에 출정했다. 우선 반란을 주도한 도시국가를 맹타했는데, 두로왕은 구브로 섬으로 도망을 갔다. 반란에 가담한 비브로스, 아르왓, 모압, 에돔, 암몬 왕들은 항복하고 말았다.
북이스라엘 사마리아도 앗수르에 의해 점령당하였는데, 이는 하나님 여호와의 말씀을 듣지 아니하고 그의 언약과 여호와의 종 모세가 명령한 모든 것을 따르지 아니하였음이더라
13-16.히스기야 왕 제십사년에 앗수르의 왕 산헤립이 올라와서 유다 모든 견고한 성읍들을 쳐서 점령하매 유다의 왕 히스기야가 라기스로 사람을 보내어 앗수르 왕에게 이르되 내가 범죄하였나이다 나를 떠나 돌아가소서 왕이 내게 지우시는 것을 내가 당하리이다 하였더니 앗수르 왕이 곧 은 삼백 달란트와 금 삼십 달란트를 정하여 유다 왕 히스기야에게 내게 한지라 히스기야가 이에 여호와의 성전과 왕궁 곳간에 있는 은을 다 주었고 또 그 때에 유다 왕 히스기야가 여호와의 성전 문의 금과 자기가 모든 기둥에 입힌 금을 벗겨 모두 앗수르 왕에게 주었더라
그리고 유다 왕국으로 공격을 하기 시작했는데, 46개의 유다 성읍이 파괴되고, 20,150 명이 포로로 끌려갔다. 그런 후 앗수르는 대군을 이끌고 예루살렘 남서쪽 45km 지점의 견고한 라기스를 점령하여 주둔했다. 그 때 히스기야왕은 반 앗수르 정책의 잘못을 깨닫고 산헤립에게 용서를 구하며 조공을 바칠 것을 제의했지만, 산헤립은 은 300 탈렌트, 금 30 탈렌트를 부과함으로서 히스기야왕은 왕궁에서 금, 은을 취하여 산헤립에게 보내면서 화애를 요구했지만, 산헤립은 항복을 요구하게 되었다.
그런데 산헤립은 갑자기 니느웨로 황급히 퇴각하고 만다. 앗수르의 왕 산헤립이 떠나 돌아가 니느웨에 거주하더니 그의 신 니스록의 신전에서 경배할 때에 아드람 멜렉과 사례셀이 그를 칼로 쳐 죽이고 아라랏 땅으로 도망하매 그의 아들 에살핫돈이 왕이 되었다고 한다. 이는 하나님이 남유다의 히스기야를 보호하심이라고 여겨진다.
(요약 정리)
열왕기하 18장 1-16절은 네 단계로 나눌 수 있다. 히스기야의 왕위 즉위와 개혁, 히스기야의 신뢰와 유다의 번영, 북이스라엘의 멸망과 유다의 위기, 앗수르 왕의 위협과 히스기야의 대응이다.
남유다의 왕 히스기야의 통치 시작을 묘사하면서, 그의 즉위가 단순한 정치적 사건이 아닌 영적 개혁의 전환점임을 강조한다. 히스기야는 여호와 보시기에 정직하게 행하며, 우상을 제거하고 산당을 헐어버렸다. 이 행동은 하나님께 대한 순수한 신앙 회복을 목적으로 한 것이다.
히스기야는 여호와를 신뢰하고 그의 계명을 따랐다. 그 결과 하나님은 그와 함께 하셔서 번영을 주셨다. 히스기야가 앗수르의 압박 속에서도 독립을 유지하고 블레셋을 정복하는 모습은 하나님을 의지할 때 얻게 되는 승리의 상징이다.
히스기야의 통치 기간 동안, 북이스라엘은 앗수르의 침공으로 멸망당했다. 성경은 이 사건의 원인을 이스라엘이 여호와의 말씀에 순종하지 않고, 언약을 어겼기 때문이라고 명시한다. 이는 하나님의 경고와 심판이 실제로 이루어졌음을 보여주며, 하나님의 말씀에 대한 순종의 중요성을 강조한다.
앗수르 왕 산헤립이 예루살렘을 위협하자, 히스기야는 두려움 속에서 성전과 왕궁의 보물로 그와 화해하려 했다. 히스기야는 하나님의 도우심을 구하지 않고 세속적인 방법으로 문제를 해결하려 했으나, 이는 일시적인 해결책에 불과했다. 앗수르의 위협은 여전히 존재했으며, 어려운 상황에서 하나님을 의지하기보다는 인간적인 방법으로 문제를 해결하려 할 때, 그 결과가 얼마나 한계가 있는지를 보여준다.
히스기야가 처음에는 보물을 내어주며 아시리아와의 평화를 사려 했지만, 이는 궁극적인 해결책이 되지 않았다. 히스기야가 하나님께 온전히 돌아와 기도할 때, 하나님의 강력한 구원을 경험하게 되는 것을 보여준다.
오늘날 신도에게도 위기가 찾아올 때, 당장 육신의 생각과 눈이 반응하게 되지만, 정신을 차려서 위대하시고 놀라우신 하나님의 능력을 믿고 의지할 때, 인간들이 감히 상상할 수 없는 방법으로 하나님은 다가오시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