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산...
이젠 '산산이' 부서져 동해 멀리서 소멸 된 제 13호 태풍. 그 태풍의 실체와 직접 맞닥뜨린, 혼자라면 감히 엄두를 내지 못했을 그런 산행이었다.
47년전 사라호가 한반도를 강타. 엄청난 피해를 입힌 같은 날이라는 9월 17일. 난, 이 '산산'이란 이름의 태풍과 함께 지리산의 만복대를 넘었다. 산을 넘으며 판쵸우의 후드를 때리는 바람소리,빗소리,산죽과 나무들의 울부짖음을 고스란히 듣고 느끼며...
걸으며...예전 강우석 감독의 "누가 용의 발톱을 보았는가?"란 영화 제목이 떠오르며 비구름 거느린 어마어마하게 커다란 용 한 마리와 함께 산을 넘는다는 상상도 했다.
이 산을 오르기 전 날, 충북금산과 전북 완주의 경계에 서있는 선야봉이란 아주 호젓한 산을 올랐지. 이 날도 비가 올듯올듯 하면서도 오히려 등산하기 딱 좋은 날씨였으나 비는 오지 않았지. 그러나 지리산행은 혹시나~ 하는 그런 행운은 기대하기 어렵게 온갖 매스미디어에선 태풍주의보 예보.
성삼재까지 5시간의 이동 중 비가 조금씩 뿌리기 시작하는데, 11시까지 도착하면 지리산 입산은 시켜준단다. 지리산 IC를 빠져나와 산내면 덕동리 근처에 이르자, 버스 안에선 벌써부터 비닐, 오버트라우져, 스패츠등...
각종 방수용으로 갈아입고 태풍과 맞설 결의로 가득하다.
목적지 도착 시간은 12시 였으나 다행히 입산은 허용되었다.
처음엔 비바람이 생각만큼 거세지 않았다. 그러나 갈수록 심해지는 거친바람.
작은고리봉 넘어 묘봉치의 헬기장에서 팀을 기다린다. 그저 앞사람의 등산화 뒷꿈치만 보고 걷다보니 난 팀에서도 이탈했고 또한 내 앞 뒤로 아무도 없다. 팀을 기다리며 서 있자니 바람에 몸이 날아갈 듯 하다.
"안되겠다 그냥 걷자~" 하고 한 발 한 발 옮겨, 지리산의 많은 복을 차지하고 있다는 만복대(1438)에 이른다. 억새가 절경이라던 이곳은 비바람과 안개에 묻혀 시야는 제로. 만복대의 돌무덤에 몸을 숨겨 미숫가루 한 모금 마시는데도 뺨을 때리는 산산의 긴꼬리는 매섭다.
"오늘 어쩌다 단독 산행이 되 버렸군." 생각하며 다시 혼자 걷는다.
오르고, 내리고, 미끄럽고... 판쵸우의까지도 파고드는 비바람.
드디어 정령치 휴게소. 안온한 쉼터가 있다는, 그리고 목적지가 얼마 안 남았다는 심리적 안정... 휴게소야~ 너 참 반갑구나!
화장실 가려 밖을 나가니 수풀로 막힘이 없어선가 몰아치는 산산의 위력이 대단하다.
커피 한잔으로 원기 추스리고 밖에 나오니 땀이 식어 춥다. 이럴땐 빨리 걷는 게 상책. 큰고리봉을 지나 고기리쪽으로 내려가는데 급경사 지역. 비를 머금은 진흙은 눈보다 더 미끄럽다.
점점 내려갈수록 군데군데 이번 태풍으로 쓰러진 나무들인진 모르겠으나 등산로를 가로막고 있는 나무들을 타고 넘으며 한참을 내려가니 길은 점점 더 순해지며 바람 소리도 한결 작아지고 내가 타고 온 버스가 보인다.
이미 푸른 천막의 베이스캠프에선 감자 수제비가 보글거리며 끓고 있고~ 평소엔 손도 안댔던, 멸치국물 우려내고 건져낸 왕멸치도 구수하고 맛있다.
비와 땀에 젖어도 모두들 태풍 속을 뚫고 이겨낸 성취감으로 뿌듯한 얼굴들. 유격 마친 병사들 처럼 눈빛들이 빛난다.
폭우로 탁해진 지리산 물로 몸 씻고 서울로 올라오다 뉴스를 보니, 우리를 때려댔던 산산은 초속중심 47미터 강풍의 위력으로 일본을 강타하고 있더라.
일생에 또 다시 이런 일을 겪게될까? 영원한 추억으로 자리매김 할 16.2킬로의 멋진 지리산행!
*카메라가 비맞아 습기 먹었슴다, 하여 디카 망가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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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으~~그~그!! 이것이 진정한 산에 대한 열정??
아녀~ 열정은 뭔 얼어죽을....계획 잡혀있는데 태풍이 온 거 뿐이여~~
이런 글은 자토방으로 옮겨서 좀더 많은 친구들이 읽게끔하지.. 나도 (이상하게도) 여간해서 이 방까지 내려오지 않는데 오늘은 웬일로 여기까지 들렸네... 명진이도 너도 운영자이니.. 내가 옮기지 않겠다. 좋게 말할때 옮겨라.. 플리즈.. 포봐보..
그래 고맙다 기모야! 요즘 자토방에 글들이 넘쳐 어디에 쓸까...찾다보니 이 방이 쓸쓸하고 먼지도 많이 앉았더구나. 그래 청소도 하여 좀 아늑하게 하고자 하니 그 뜻을 이해 해 주기 바란다.
명진아! 기모가 좋게 말로 할 때 들어라잉~~ 나까지 나서게 하지 말고
ㅎㅎㅎ~ 학준이와 기모? 헹! 둘 다 뎀벼! ^^* 고맙다!
명지니의 깊은 뜻은 알지만 여기 있기엔 넘 아까우니 까이꺼 내가 파~~악 옮기지 머~~ㅋㅋ
으~~~~~~~~~~여, 여, 여우가.............. 조용한 곳에서 숨 쉬는데 이리 데려다 놨네 꺼이이~~~~
비오거나 안개 자욱한 악천후속에서 좋은 사진 나오는데....디카망가져 컬낫네..
컬나긴...네 많은 것 중, 하나만 줘잉~ ^^
기모형, 학쭌형! 명진이헌테 엉까지마 아무래도 차기 권력추가 명진이헌티 기우는거 갔은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