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9 체험 센터 옆으로 잘 정돈된 산책로가 있는 체육시설 공원에는 예전에는 배추꽃이 피던 텃밭이 있었습니다. 집 주변은 사계절
마다 다양한 꽃들이 피던 곳으로, 자연의 아름다움이 깃든 평화로운 공간이었습니다.
그러나 유적 발굴로 인해 과거의 흔적들이 드러나면서 예전의 텃밭은 사라졌고, 지금은 덩그러니 핀 호박꽃이 벌을 기다리고 있을 뿐이며, 옆에는 김장 배추와 무우 모종이 겨우 심겨져 있을 뿐입니다.
원래 9월이면 다양한 채소의 모종이 심겨졌을 텐데, 지금의 텃밭은 쓸쓸한 기운이 감돌아 오래도록 방치된 듯한 쓸쓸함이 느껴집니다.
"영혼을 나누는 텃밭의 노래"
텃밭 가꾸는 일은 단순한 낭만이 아니네, 모든 정성을 쏟아야 하는 진실한 노래.
봄을 놓치지 않고 씨앗을 뿌리며,
가을의 후회를 품지 않으려 하네.
척박한 땅일망정 손길을 멈추지 않고, 수확이 적어도 묵히지 않는 마음으로.
밭 구석을 헤매다 보면, 자연의 숨결에 이끌려 결국 잠이 들고,
그 속에서도 살아 숨 쉬는 생명들
과 영혼의 대화를 나누는 법이네.
채석흔 (採石痕)
시간의 흔적을 품은 돌, 통일신라와 고려의 숨결을 느끼다
고요한 숲 한켠, 거대한 돌덩이가 세월의 무게를 견디며 자리하고 있습니다. 이 돌은 단순한 자연의 일부가 아닌, 우리 역사의 한 장을 장식했던 소중한 유물, 바로 채석흔입니다. 통일신라시대 중기부터 고려시대 후기까지, 천 년이 넘는 시간 동안 이 돌은 수많은 사람들의 손길을 거치며 웅장한 건축물을 탄생시키는 데 기여했습니다.
채석흔의 전체 길이는 510cm, 폭은 170cm에 달합니다. 거대한 돌덩이는 마치 일부러 나눈 듯 3등분 되어 있으며, 각 분할면
에는 촘촘하게 새겨진 채석홈들이 눈에 띕니다. 당시 사람들은 이 홈들을 따라 돌을 깨고 다듬어 건축 부재로 사용했을 것입니다. 섬세하게 새겨진 채석홈들은 마치 시간의 지문처럼, 과거 사람들의 삶과 기술을 고스란히 담고 있습니다.
돌 표면에 남아있는 흔적들은 당시의 채석 기술을 엿볼 수 있게 해줍니다. 정과 망치로 돌을 쪼아내는 단순한 방법이었겠지만, 그 안에는 숙련된 기술과 노력이 깃들어 있었을 것입니다. 돌 하나하나에 담긴 정성은 당시 건축물들의 웅장함과 아름다움을 더욱 돋보이게 합니다.
이 채석흔은 단순히 돌덩이에 새겨진 흔적을 넘어, 우리 역사의 중요한 증거입니다. 이 유물을 통해 우리는 과거 동해 지역 사람들의 삶과 문화를 엿볼 수 있습니다. 여기서 말하는 동해 지역이란, 대한민국의 동해안을 따라 위치한 강원도와 울산, 경북 동해안 일대를 포함하는 지역으로, 자연경관이 아름답고 여러 시대를 거쳐 다양한 문화가 형성된 곳입니다.
그들이 어떻게 돌을 다루고 건축물을 지었는지, 어떤 도구를 사용했는지 등을 상상하며 역사의 한 장면을 그려볼 수 있습니다. 채석흔은 과거와 현재를 잇는 다리 역할을 하며, 우리에게 잊혀진 역사를 생생하게 전달해 줍니다.
119체험센터의 어린이 놀이기구 옆에 있는 테크 계단입니다.
금강공원의 시간과 역사를 품은 이야기
금강공원은 오랜 역사를 품으며 시대의 흐름에 따라 그 이름과 모습이 변화해 왔습니다. 그 유래는 1925년경으로 거슬러 올라가는데, 당시 이곳은 ‘동래금강원’이라는 이름으로 조성되었으며, 일본인 히가시바라의 개인 정원으로 시작되었습니다.
이 시기에 금강연못(현존하는 청룡담)이 만들어 지고 동래금강원 표지석이 세워
졌습니다
이후 1931년경, 이 정원은 일반인에게 개방되면서 많은 사람들이 자연과 조화를 이루는 쉼터로 즐기게 되었습니다. 1933년경에는 동래읍내 시가지 정비 계획의 일환으로, 망미루, 독친대아문, 이섭교비, 내주축성비 등 중요한 유적들이 개인 조경용 공간으로 이전되었으며, 더욱 풍성한 모습으로 다듬어졌습니다.
개인 정원을 기꺼이 기증하며 이 공간의 의미를 더한 1939년경, 이곳은 다시 한 번 특별한 의미를 갖게 되었고,
1940년경, 황기 2,600년 기념비가 세워졌습니다. 이 기념비는 일본 제국의 기원(기원절)을 기념하기 위해 세워졌으며, 일제강점기였던 당시 일본 제국의 통치를 정당화하고 황국사관을 주입하려는 의도가 담겨 있습니다. 이 기념비는 일제강점기의 아픈 역사를 보여주는 상징물입니다.
한편, 이 공간은 당시 ‘금강원’이라는 이름으로 불리었으며, 일본의 식민지 시기를 지나 광복이 찾아오면서 다시 새로운 이름을 갖게 되었습니다.
1945년, 그동안의 ‘금강원’이란 이름은 ‘금강공원’으로 불리며, 새롭게 태어난 이 공원은 시민들의 삶 속에 자연과 역사를 함께 품어주는 공간으로 자리 잡게 되었습니다.
1965년에는 국가의 공식 지정공원으로 승격되었으며, 그 의미는 더욱 깊어졌습니다.
1972년에는 부산광역시의 문화재 보호구역으로 지정되어 그 역사적 가치와 아름다움을 인정받기도 했습니다. 비록 1993년 문화재 지정이 해제되었지만, 이곳의 역사적 의미는 여전히 깊게 자리 잡고 있습니다.
그리고 21세기에 들어서, 2012년부터 2014년까지 약 2년간의 정비와 복원을 통해 망미루와 독진대아문 등 과거의 유적들이 원래 자리로 돌아오고 복원되면서, 이곳은 또 한 번 새 삶을 얻게 되었습니다. 지금의 금강공원은 옛 유적들이 품고 있던 역사의 흔적과 자연이 어우러되면서, 과거와 현재가 조화를 이루는 특별한 공간으로 거듭나고 있습니다.
이 공원은 단순한 도시 속의 쉼터를 넘어, 오랜 시간 동안 시민들의 삶과 역사를 품고 살아온 살아있는 증거이자, 우리의 소중한 문화 유산입니다.
금강공원은 이렇게, 시간의 흐름 속에서 끊임없이 변화하며, 동시에 우리의 정체성을 담아내는 소중한 공간으로 자리매김하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