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충 무 칼럼)
평양에서 걸려온 황장엽씨 아들 경모씨의 전화? 아버지 제가 몹시 아픕니다. 황장엽 비서 동지 돌아오시오.. 북한에 황씨 비밀 전화번호 알려준 사람은 누구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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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장엽씨 |
(워싱턴) 워싱턴 인근 버지니아州 페어팩스에 거주하면서 조지메이슨 대학의 연구교수로 활동 중인 탈북 학자 김현식씨가 최근 서울에서 '나는 21세기 이념의 유목민'이라는 자신의 생애를 돌아보는 책을 출간한 바 있다.
그런데 이 책은 북한이 한국에 망명한 황장엽씨를 회유하기 위해 아들 황경모씨를 내세워 평양에서 직접 전화를 했다는 아들과 아버지의 전화 통화 내용을 밝히고 있어 주목을 받고 있다.
또 그 사실을 김 교수의 책을 인용, 연합뉴스가 기사화함으로써 세상에 알려지게 됐다. 그런 사실을 일반 시민들만 모르고 있었을 뿐 김정일-김대중-노무현 타도를 외치는 자유 대한민국을 지키려는 양심 세력들은 이미 몇해전 부터 모두 알고 있던 것이었다.
老 혁명가가 아내와 자식들을 죽음의 계곡에 버려두고 김정일 정권 타도를 위해 생명을 걸고 남쪽 대한민국으로 넘어 온 이유로 그를 위로하고 이해하는 차원에서 기사를 쓰지 않았을 뿐이다.
또 황장엽씨가 자신을 도와주던 여성과 가정을 꾸며 딸이 태어난 사실도 알고 있었지만 기사화 하지 않았다. 그러나 김 교수가 자신의 저서 속에 황장엽씨의 고백으로 이미 활자화했고 또 그것을 연합뉴스가 기사화했으므로 오해를 남기지 않기 위해 진실을 독자들에게 알려야 한다는 판단 때문에 이 칼럼을 쓴다.
앞에서도 밝혔지만 북한은 아들 경모씨를 이용해 황장엽씨의 마음을 흔들리게 하고 김정일에 대해 더이상 비판하지 못하도록 만들기 위한 잔인한 수법을 사용하고 있었다.
그로 인해 황장엽씨가 상당히 고민한 것은 사실이며 그런 오해 때문에 함께 사선을 넘어 탈출한 김덕홍씨 와도 사이가 나빠져 지금은 만나지 않고 있다.
북한이 황장엽씨을 북한으로 돌려 보내달라고 요청한 것은 황장엽씨 망명 2년 후인 2000년 6월 이었다. 황씨가 대한민국 품안으로 넘어온 것은 1997년이다.
김영삼 정권이 끝나고 김대중은 현대건설과 박지원을 내세워 김정일에게 현찰로 8억 달러를 보내고 2000년 6월 12일 평양을 방문했다. 김대중은 평양에 가기 전 황씨와 몇 번을 만났다.
김정일과 만났을 때 김정일이 어떤 행동으로 나올 것이며 그럴 경우 김대중이 어떻게 해야하는가를 미리 듣고 임동원 국가정보원장, 박지원 비서실장을 데리고 가서 김정일을 만났다.
당시 김정일은 김대중 임동원 박지원에게 황장엽을 북한으로 돌려보내 것을 요청했었다. 하지만 아무리 김정일에게 약점을 잡혀 꼼짝못하는 김대중, 임동원, 박지원 이라고는 하지만 국제사회의 시선 때문에 황씨와 김덕홍씨를 평양으로 돌려보낼수는 없었다.
그대신 외부 활동을 하지 못하도록 하기 위해 국정원 본부 근처에 있는 안가 (안전한 가옥) 에서 기거하도록 했다. 비록 김대중 정권의 감시를 받고 있지만 황씨는 강연과 저술 활동 인터뷰를 통해 김정일 집단을 알리는데 노력했다.
그런 어느날 황씨의 핸드폰에 아들 경모씨가 전화를 걸려왔다. "아버지- 저 경모입니다"하는 소리에 황씨는 꿈인지? 생시인지 몰랐다.
그때까지만 해도 황씨와 김씨 가족은 모두 총살됐거나 자살했거나 정치범 수용소로 끌려간 것으로 보도되던 때였다. 특히 아들 경모씨 가족은 아오지 탄광에 수용됐다고 외부에 알려지고 있었다.
그런데 죽었다고 믿었던 아들이 예고도 없이 전화를 걸어 "아버지- 저 경모 입니다. 제가 지금 몹시 아픕니다"하면서 울먹였다. 아들이 말을 끝내자 다른 음성이 나오면서 "황장엽 비서 동지- 아들이 아직 죽지않고 살아있습니다. 비서 동지께서 마음을 바로잡고 조국으로 돌아오면 아들도 살고 모든 것이 잘 풀릴 것입니다.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대답하십시오. 얼른 대답해야 합니다"하고 재촉했다고 한다.
황씨는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았다. 그후 황씨는 형제 같이 지내던 이철승씨와 오제도 변호사에게 그런 사실을 이야기 했었다. 그후부터 아들로부터 계속 전화가 걸려왔다고 한다.
그런데 우리가 의아하게 생각했던 것은 어떻게 해서 평양이 황씨의 핸드폰 번호와 안가 전화 번호를 알았느냐?하는 것이다.
결국 국가정보원 안에 평양의 첩자들이 숨어있으며 그들이 황씨와 김덕홍씨의 활동을 평양으로 보냈을 가능성이 높다.
그 후에도 아들은 계속 황씨에게 전화를 걸어와 아버지의 발목을 잡고 있다는 풍문이 나돌기도 했다.
ㅁ 孫忠武 국제저널리스트.www.usinsideworld.com 편집인 겸 발행인 2007년 07월12일 |
첫댓글 정말 그랬을까??
모르고 있어나요 지난 정권이 빨간정권인거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