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 건너 하얀 집
김인숙
강 건너 하얀 집을 강의 이쪽에서 본다
피어오르는 연기를 보며 어제는
구름의 집이라 생각했다
초록에서 나온 초록빛 바람이
거기로 들어가는 것을 본 사람은 없다
물안개가 서렸다가 다시 걷힌다
물 위의 사람들은 아직 강을 건너는 중이고
뭉게구름도 뭉그적거리며 이동할 채비를 한다
강은 돌아오지 않으므로 일방로이다
강은 건너기가 힘들어서 모험이다
모험 너머에는 개망초 꽃밭이 있을 것이다
석양이 내리면 붉게 물드는 집 마당에
아직은 흰 나비들이 자욱이 날고 있을 것이다
상천上天은 높이 있어 끈질기게 숨을 헐떡일 것이다
일단 산란기가 오면 여왕은 배가 커져서
비좁은 흰개미 집이 팽팽해질 것이다
색채에 관한 상상은 나선형의 행로로 이루어진다
꼭 아닌 듯이 그러한
초록을 태우면 하얀 연기가 나오는 집에는
자유를 모르면서 자유를 누리는 이들이 살 것이다
밤이면 사라지는
강 건너 하얀 집은 낮에만 하얗다
적정寂靜에 든 백주 대낮이 거기서 쉰다
쾌념*
어둠이 시원할 때가 있다
고요가 편할 때도 있다
어두우므로, 고요하므로
남의 옷을 걸치지 않아도 되므로
편하고 시원할 때가 있다
생각이 없어지면 마음이 맑아진다
가식이 사라지면 벌거숭이 아가가 된다
아가는 아가이므로
아무것도 부끄럽지 않다
세상의 때가 아직 한 점도 묻지 않아
가려야 할 것이 없는 것이다
말이 많아도 말이 없는
무념無念의 세계에는
생각만 없는 것이 아니라
존재가 없고, 지금이 없고
있는 것이라고는 영원과 허공뿐이다
없음으로서 있는
거기서는 미소도 사유도 비어 있다
영원이어서 아름다운
허공의 집은 벽도 문도 허공이다
우주가 거침없이 드나드는
거기는
허리는 잊히며 등은 보름달처럼 편하다
처음이라 하거나 참이라 하는
엄마의 집이 그러하다
고요하기에 태초처럼 시원하고
시원하기에 시원始原처럼 고요하다
바람이 일어도 부드럽게 어루만지듯 흐른다
*
쾌념快恬 : 대구 남평문씨 세거지에 걸려있는 편액의 추사 글씨(‘시원하고 고요함’을 의미하는 조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