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오 날
단오는 1년 중 양기가 가장 왕성한 날이다.
端午
端 바르다. 곱다, 옳다, 진실, 午 일곱째지지
옳고, 곱고, 아름답고, 바르고 진실한 아름다운 날을 지지한다
端午는 아름다워 지는 날이 되는 날이다
‘술의일(戌衣日)’ ‘수릿날’이다,
‘신을 모시는 날’이다.
여성들이 개울가에서 머리를 감고,
그 옆에서 그네를 타는 풍광을 그린다. 신윤복의 ‘단오풍정’
‘단오에 창포물’은 다 알지만,
창포를 꽃창포와 혼동하는 사람도 많다.
둘 다 연못가나 개울가 등 습지에 자라는 생태는 같지만,
단오와 관련된 창포는 보라색 꽃이 피는 꽃창포가 아니다.
창포꽃은 부들처럼 작은 소시지 형태이고, 누런빛이 돈다.
창포의 잎과 뿌리는 독특한 향을 지녀 삶은 물로 머리를 감고,
창포 뿌리를 깎아 만든 비녀인
‘창포잠(菖蒲簪)’은 역병을 물리치려는 액땜으로 부녀자들이 즐겨 꽂았다.
단오에는 창포로 술을 빚어 신주(神酒)로 마셨다.
창포를 짓찧은 것에 고두밥과 누룩을 섞어 발효시킨
창포주는 임금이나 신하들도 즐겨 마셨던 세시주였다.
병자호란(1636년 12월~1637년 1월)이 발생하기 바로 전인 1636년 가을,
인조는 창덕궁 후원의 가장 안쪽인 옥류천 권역을 조성하고
큰 바위 소요암에 어필로 ‘玉流川(옥류천)’라 새겼다.
그 앞에는 포석정처럼 유상곡수연(流觴曲水宴)을 할 수 있도록
얕은 물길을 내고 작은 폭포를 만들었다.
그곳에서 신하들과 술잔을 주고받으며 풍류를 즐겼던 인조.
그해 겨울, 청 황제에게 머리를 조아리며 굴욕적인 항복을 해야만 했던 인조
그 후 신하가 청하는 창포주를 거절하였다.
“단오날에 내자시에서 관례대로 창포주를 올리고
육조에서 물선(物膳)을 올리니,
상이 한재가 한창 혹심하다는 이유로 받지 않았다.
예조가 굳이 청하였으나 상이 끝내 윤허하지 않았다(인조 17년(1639년) 5월4일)”
실록 병자호란을 겪은 지 얼마 지나지 않아 트라우마에서 벗어나지 못했던 걸까.
조선시대 주요 명절(설, 단오, 추석)이었던 단오제
일제강점기를 거치면서 그 의미가 축소되었다.
강릉과 영광에서는 잊혀 가는 단오제를 오랫동안 지켜왔는데,
강릉단오제는 2005년 11월에 유네스코 인류무형문화유산으로 등재돼 명맥을 이어간다
창포물에 첨단 같은 머리를 감고
창포잠을 비녀 꼭고, 비단 댕기를 매고
새모시옷을 입은 아낙네들
그네를 탈 때 치맛자락이 파랑이고
저고리 섭이 바람에 들려 유방이 보일 듯 말듯하여
남정네들 가슴 설레게 할까?
냇가 모래밭에 힘자랑하는 남정네를 볼 수 있을까
창포주를 마셔볼 수 있을까?
수릿떡을 먹을 수 있을까?
고운 부채 선물을 받을 수 있을까?
처녀들 그네뛰기(유방 크기 자랑), 총각들 씨름(힘자랑), 그네뛰기,
그리움이 추억이 된다
[참고]
단오절은 우리나라의 옛 삼대 명절의 하나로
올해인 단군기원 4339년(음력) 5월 5일.서력기원 2023년(양력) 6월 22일이며,
다른 이름으로는 수릿날· 중오절· 천중절· 단양이라고도 한다.
단오의 <단(端)>은 처음 곧 첫번째를 뜻하고, 오(午)는 오(五)와 같은 의미로
곧 다섯의 뜻으로 통하므로 단오는 초닷새의 뜻이 된다.
일년 중 가장 양기(陽氣)가 왕성한 날이라 해서 큰 명절로 여겨왔고
여러 가지 행사가 전국적으로 행해지고 있다.
단오행사는 북쪽으로 갈수록 번성하고 남쪽으로 갈수록 약해지며,
남쪽에서는 대신 추석행사가 다채롭다.
단오는 조선 중종 때 설날·추석과 함께 <삼대명절>로 정해진 적도 있었다.
옛날에는 풍속행사가 민가와 궁중이 서로 달리 행해젔다.
민가에서는 이 날 음식을 장만하여 창포가 무성하게 자라고 있는 물가에서
물맞이를 하거나 창포를 살믄 물에 머리를 감았다.
또한 단오장(端午粧)이라 하여 창포뿌리를 잘라 단오비녀를 머리에 꽂았다.
가장 양기가 왕성한 시각인 오시(午時)에는 익모초와 쑥을 뜯어
여름철 몸을 보호하는데 썼다.
기풍으로는 나뭇가지 사이에 돌을 끼워 놓아 열매가 많이 열리기를
기원하는<나무시집보내기> 의 가수(嫁樹)가 있다.
민속놀이로는 그네뛰기와 씨름이 있는데,
경상북도에서는 널뛰기·윷놀이·농악·화초놀이도 하였다.
궁중에서는 단오날이 되면 일종의 청량제 구실을 하는 제호탕(醍酬湯)과
구급약으로 사용하는 옥추단(玉樞丹),
벽사에서 기인한 애호(艾虎;쑥호랑이)를 신하들에게 하사하였다.
관상감에서는 <천중부적(天中符籍)>을 만들어 대궐안 문설주에 붙였다.
재액을 막아준다는 이 부적은 경사대부(卿士大夫)의 집에서도 붙였다.
또한 공영(工營)에서는 전주(全州)·남원(南原)의 부채를 진상하게 하여
단오날 임금이 신하에게 하사하였는데 이것이 단오부채[端午扇]이다.
집단적인 민속행사는 마을 수호신에게 제사지내는 단오제(端午祭)가 있다.
전국 각지에 단오제와 관련된 기록이 남아 있는데,
최근까지 전해오는 단오굿으로는 대관령 국사성황을
시내 여성황당에 모시는<단오굿>과,
문호장(文戶長)이라는 신령한 인물에게 올리는 경상남도 영산(靈山)의<문호장굿>,
한때 소멸되었다가 복원된 경상북도 자인(慈仁)의 <한장군(韓將軍)놀이>도 유명하다.
이 놀이에서는 <여원무(女圓舞)>라는 춤을 춘다.
이처럼 단오의 여러 행사는 벽사 및 더위를 막는 신앙적인 관습이 많고,
더운 여름에 신체를 단련하는 씨름과 그네뛰기 의 민속놀이가 있다.
또한 <단오굿>과 같은 집단적 단오제로 공동체의식을 이루는 축제를 벌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