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한복음 18:33-38a 호기심으로 진리에 대해 질문한 빌라도

[안정섭]

요한복음 18:33-38a 빌라도는 예수께 유대인의 왕이냐고 묻자 예수께서는 자신의 왕국은 이 세상에 속한 것이 아니라고 하셨다. 이에 궁금해진 빌라도는 그럼 왕이기는 한거냐고 물었고 예수님은 진리를 증거하기 위해 오신 왕이라고 답하시자 빌라도는 진리가 무엇인지 호기심 가득한 눈빛으로 물었다.

이전 말씀에서 유대교 지도자들은 날이 밝자 예수를 총독의 관저로 끌고가 넘기자 총독은 무슨 죄냐고 물었지만 단순히 악을 행한자가 아니라면 넘기지 않았다고 얼버무리며 죽여달라고 했다. 하지만 총독은 너희들의 율법을 따라 너희가 재판하라고 하자 유대교 지도자들은 자신들에게는 사람을 죽이는 권한이 없다고 했다. 이는 예수께서 어떠한 죽음을 당할 것인지 하신 말씀이 성취된 것이다. 이어지는 말씀은 빌라도의 관저 안에서 빌라도가 예수님을 심문하는 내용이다.

빌라도의 관저의 문이 무대의 앞과 뒤를 나누고 있다. 유대교 지도자들은 이방인들의 집에 들어가면 부정해져서 유월절 음식을 먹지 못할 것이기에 문 밖에서 구경하고 있다. 이들은 총독의 관저 문을 무대로 삼아 그 무대 앞에 관객으로 구경하고 있는 셈이다. 그러나 예수님의 진리의 계시는 무대 뒤인 총독 관저의 문 안에서 선포될 것이다. 저들은 예수님을 통해 증거되는 하나님의 진리의 계시를 들을 기회가 이제는 없다. 예수님이 빌라도와 함께 무대 뒤로 사라졌기 때문이다. 이제 이방인인 빌라도와 로마 군병들만이 그 진리의 계시를 듣게 되는 것이다.

33절도 “그러므로” 라는 말로 이어진다. 유대교 지도자들이 예수님의 정확한 죄목을 말하지 않았으므로 라는 뜻이다. 유대교 지도자들은 나쁜 일을 한 사람이니 그냥 죽여 달라 했는데 그러므로 이제 빌라도는 자신이 예수님을 직접 심문해서 죄목을 알아내려는 것이다. 빌라도는 예수님을 불러내서 다음과 같이 물었다. “당신이 유대인의 왕이오?” 보통 그리스어에는 주어가 동사에 다 포함이 되어 있기 때문에 당신이라는 말을 따로 쓰지 않는다. 그러나 따로 쓸 경우는 특별히 강조하는 표현이다.

빌라도는 이미 스스로 유대인의 왕이라 칭하던 바라바라는 반란군 지도자를 잡아 가두고 있었다. 빌라도는 바라바가 유대인들이 기다리던 왕인줄 알았는데 당신이 그 왕이냐는 질문이다. 유대인이란 말은 물론 모든 유대 사람들을 가리키는 말이지만 요한복음에서는 계속 유대교 지도자들을 가리키는 말로 사용하고 있기 때문에 당신이 당신을 고소한 대제사장들과 산헤드린 공회원들의 왕이냐는 조롱 섞인 질문이다. 

이에 대해 34절에서 예수님은 빌라도에게 다음과 같이 대답하셨다. “당신이 하는 그 말은 당신 자신에게서 나온 말이오? 아니면 나에 관하여 다른 사람들이 당신에게 말하여 준 것이오?” 빌라도 스스로 생각해서 예수님이 왕이냐고 묻고 있는 것이냐? 아니면 대제사장들과 산헤드린 공회원들이 알려준 말인가를 물으신 것이다. 만약 빌라도가 스스로 예수님이 유대인의 왕이라고 생각한다면 예수님이 어떤 왕인지 이해시키기 쉬울 것이다. 그러나 유대교 지도자들의 말을 그대로 따라 하는 것이라면 이미 저들이 준 잘못된 정보에 사로잡혀 있기에 어떤 말을 해도 듣지 않을 것이다. 죄수인 예수님이 이젠 거꾸로 재판관이 되어 빌라도를 심문하고 있는 것이다.

35절을 보면 빌라도는 화가 잔뜩 났다. “내가 유대 사람이란 말이오?” 라고 대꾸했기 때문이다. 유대 사람들은 이스라엘을 구원할 왕 메시야가 오길 기다리고 있었다. “당신이 그 왕이요?” 라고 묻는다면 당신이 바로 우리가 그토록 기다리던 메시야냐는 질문일 수 있다. 만약 빌라도가 스스로 생각해서 그런 질문을 했다면 빌라도는 메시야를 기다리는 유대사람들과 같이 메시야를 기다리는 사람인 셈이다.

그러나 빌라도는 유대인이 기다리는 왕에 대해서는 아무런 관심이 없다. 그건 억압을 받는 가운데서 메시야가 나타나길 간절히 기다리던 유대인들만의 관심사였다. 설사 유대인의 왕이 진짜로 나타난다고 해도 빌라도는 별 관심을 두지 않았을 것이다. 강력한 로마제국이 당시 지중해 연안의 모든 나라들을 다 지배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비록 빌라도가 로마의 황제가 아니고 한 지역을 다스리는 총독이었지만 유대인의 왕쯤은 우습게 여기는 위치에 있었기 때문이다. 이런 빌라도에게 “당신이 그 왕이냐” 라는 질문이 빌라도 자신에게서 나온 말이냐 라고 묻는 것은 당신도 유대인의 왕을 기다리고 있느냐는 질문이다.

그래서 빌라도는 “내가 유대 사람이란 말이오?” 라고 신경질적으로 물으면서 “당신의 동족과 대제사장들이 당신을 나에게 넘겨 주었소. 당신은 무슨 일을 하였소?” 라고 질문한 것이다. 동족이란 산헤드린 공회원들을 가리키는 말이다. 대제사장들과 산헤드린 공회원들이 당신을 유대인의 왕이라며 죽여달라고 넘겨 주었다는 뜻이다. 도대체 무슨 일을 했길래 저들이 당신을 죽여 달라고 하느냐고 물은 것이다.

유대교 지도자들이 예수를 왕이라고 빌라도에게 말해주었다는 것이 확인되었기에 예수님은 36절에서 자신이 어떤 왕인지 밝히셨다. 예수님은 자신의 왕국은 이 세상으로부터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고 대답하셨다. 요한복음에서 세상이라는 말은 유대교 지도자들과 그들을 따르는 사람들을 가리키는 말이다. 예수님을 고소한 그들로부터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고 하신 것이다. 예수님 당시 예수님을 대적하던 유대교 지도자들과 그 따르는 자들의 왕이 아니라고 하신 것이다.

이어서 예수님은 만약 나의 왕국이 이 세상으로부터 존재한다면 나의 부하들이 싸워서 나를 유대 사람들의 손에 넘어가지 못하게 했을 것이라고 하셨다. 당시 왕의 부하들은 목숨을 걸고 왕을 지키는 것이 미덕이었다. 그래서 베드로도 예수님의 나라가 세상에 속한 줄로 알고 칼을 휘둘러 왕을 지키려 한 것이다. 이어서 “그러므로” 라는 말이 나온다. 예수님의 부하들이 예수님을 넘기려는 사람들과 싸워 지키려 하지 않았으므로 라는 뜻이다. 그러므로 이제 나의 왕국은 이 세상에 속한 것이 아니라고 결론을 내리셨다. 예수님의 대답은 예수님이 당시 세상에서 유대 사람들의 왕이 아니라는 것이다.

그러자 빌라도는 또 “그러면 당신은 왕이요?” 라고 물었다. 이는 “그러면 당신이 왕이라는 것은 분명하다는 말이오?” 라는 질문이다. 빌라도는 놀랍기도 하면서도 호기심이 가득한 마음으로 이렇게 물은 것이다. 그러자 예수님은 “당신이 말한대로 나는 왕이오” 라고 대답하셨다. 원어는 “내가 왕이라고 당신이 말했소” 라는 뜻이다. 이는 빌라도의 말이 맞으면서도 한편으로는 틀렸다는 뜻이다. 당신이 생각하는 로마황제같은 왕은 아니라는 뜻이다.

예수님은 왕의 호칭에 대해서는 분명히 대답하지 않으신 것이다. 하지만 왕으로 이 땅에 오신 자신의 사명에 대해서 분명히 말씀하셨다. 예수님은 “나는 이것을 위하여 태어났으며 이것을 위하여 세상에 완전히 왔다. 그래서 내가 진리를 증거한다” 고 하셨다. 예수님이 태어나신 목적도 이 땅에 오신 목적도 진리를 증언하기 위해서라는 것이다.

그러면서 예수님은 다음과 같이 한마디를 덧붙이셨다. “진리로부터 난 모든 사람들은 다 내가 하는 말을 듣는다”고 하셨다. 내가 하는 말을 듣는다는 말은 원어에서는 예수님의 목소리를 듣는다는 말이다. 예수님께서 말로 가르치신 하나님의 진리를 듣는다는 뜻이다. 예수님으로부터 하나님의 진리를 들은 사람들은 빛되신 예수님 앞으로 나와 예수님의 말에 순종한다는 뜻이다.

그렇다면 예수님의 말씀을 듣지 않던 대제사장들과 산헤드린 공회원들은 모두 다 진리에 속한 사람들이 아니라는 뜻이다. 저들은 예수님께서 증언하시는 진리를 듣고도 믿지도 않고 순종하지도 않았기 때문이다. 이는 또한 빌라도에게 전도하시는 말씀이기도 하다. 너도 들어라 그러면 너도 진리에 속한 사람이 된다 라는 뜻이다. 예수님은 이렇게 죄수의 신분이시면서도 거꾸로 심문하던 빌라도에게 심문을 하시며 진리를 들으라고 초청하셨다.

화가 났던 빌라도는 예수님의 말씀을 듣고 호기심을 갖게 되었다. 그래서 38절에서 빌라도는 “진리가 무엇이오?” 하고 물은 것이다. 그러나 이어지는 내용을 보면 빌라도는 예수님을 초청해서 본격적으로 진리에 대해서 듣지 않았다. 단지 호기심만 가졌고 예수님이 로마제국의 통치에 위협적인 인물이 아니라는 것만 확인하고 거기서 멈추었다. 실제로 빌라도가 예수님의 말씀을 들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들었다 해도 지적인 호기심으로 들었을 뿐이고 그 말씀을 받아들이지는 않은 것이다.

오늘날도 유대교 지도자들처럼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순종한다고 자부하면서도 사실은 자신들의 탐욕과 육신의 생각대로 행동하는 사람들이 있다. 또 빌라도처럼 하나님을 믿지 않으면서 하나님의 말씀에 호기심을 갖고 지식적으로 연구하고 받아들이는 사람들도 있다. 오늘날 빌라도처럼 예수님의 말씀을 믿지는 않으면서도 그것이 무엇인지 연구하는 사람들은 하나님께 속한 사람들이 아니다. 율법을 철저히 지키기 위해 빌라도의 관저 문 밖에서 기다리고 있는 유대교 지도자들도 역시 하나님께 속한 사람들이 아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