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어는 ‘글월 문(文)자가 붙은 물고기(魚)’다. 문어란 이름이 붙여진 것은 필경 위기에서 벗어나려고 뿜어대는 먹물이 지식인을 상징하는 ‘먹물’을 연상하게 하는 데다 큼지막한 머리가 영리해 보이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2008년과 2010년 두 차례 월드컵에서 경기 승패를 족집게처럼 맞추면서 유명세를 탄 ‘파울’이란 이름의 문어는 ‘명실상부’, 문어의 이름 앞머리에 붙은 글월 문(文)자가 괜한 것이 아닐 수도 있다는 생각을 갖게 했다. 파울의 정확한 예측은 우연이었을까 초능력이었을까?
최근 해외 연구진이 문어의 유전정보가 들어있는 ‘게놈’을 해독하는데 성공하면서 학계의 관심이 쏠렸다. 진화론자들은 문어가 물고기들을 잡기 위하여 더 큰 뇌가 필요했고, 그런 이유로 자신의 뇌를 동물계에서 가장 복잡한 뇌들 중의 하나로 진화시켰다고 주장한다. 실제로 지구상에 등장한 최초의 원시 지능동물인 문어는 인간의 유전자 개수와 비슷하거나 약간 더 많은 3만 3000개의 유전자를 가지고 있다. 문어의 유전자 개수가 ‘만물의 영장’인 인간과 견줄 수 있을 만큼 늘어난 까닭은 변화하는 환경에서 살아남기 위해 끊임없이 새로운 유전자를 출현시켰기 때문이라는 분석도 나온다. 특이하게도 문어는 오징어 등과 달리 촉수가 없고 8개의 팔은 독립적인 ‘생각’과 ‘행동’이 가능하다는 점이 밝혀지기도 했다.
알고 보면 문어는 변신과 위장술의 대가다. 감정의 변화나 주변 환경에 따라 몸 색깔을 바꿀 수 있어 오징어나 넙치 등과 함께 ‘바다의 카멜레온’ 동물 군에 속한다. 몸의 색깔을 바꾸는 동물 대부분은 혈액의 신호를 통해 색깔을 바꾸는데 몇 초가 걸리지만 문어와 오징어와 같은 두족류는 신경조직을 통해 몸 색깔을 순식간에 바꿀 수 있다. 바위에 붙으면 바위 색으로, 산호 옆에 있으면 산호처럼 보일 정도로 변화무쌍하다. 천적이 나타나면 두 다리로 밑바닥을 걸으면서, 여섯 개의 다리로는 공처럼 몸을 말아 마치 코코넛처럼 보이게 하기도 한다.
2010년 9월에는 문어의 변신능력을 입증하는 새로운 연구 결과가 발표됐다. 인도네시아 연안에 서식하는 ‘흉내 문어(Mimic Octopus)’는 무려 40가지 생물로 변신할 수 있다는 놀라운 사실이 확인된 것이다. ‘흉내 문어’는 몸을 납작하게 만드는 것은 물론, 8개의 다리를 다양한 형태로 배열해 자이언트 크랩과 바다뱀, 넙치, 불가사리 등의 모양으로 변신할 수 있다는 것이다.
연구에 따르면 문어의 변신은 과거의 경험과 밀접한 관계를 가지고 있다. 바로 자기보다 강한 바다생물의 공격을 받은 경험에서 출발한다. 변화하는 바다 밑 환경에서 살아남기 위해 끊임없이 새로운 유전자를 출현시킨 것이다. 바꿔 말하면 경험은 변신을 불러왔다고 볼 수 있는 것이다. 천적을 속이거나 바다생물로부터의 공격을 피하기 위한 오랜 경험이 변신이라는 최적의 수단으로 진화해 간 셈이다.
‘변신’은 선현(先賢)들의 의식세계에서 대인(大人)과 군자(君子)가 지향해야 될 덕목의 하나로 권장돼 왔다. 유교의 경전 중 3경의 하나로 처세의 지혜를 담은 주역(周易)의 64괘(卦) 중의 하나에 혁괘(革卦)란 것이 있는데, 이 괘를 풀이하는 효사(爻辭)에 ‘대인호변(大人虎變) 군자표변(君子豹變)’이란 표현이 나온다. 군자표변(君子豹變)은 표범의 털가죽이 가을이 되어 아름답게 변해 가는 것처럼 군자는 자기 잘못을 고치는 데 매우 신속하고 확실해야 함을 이르는 말이다. 대인호변(大人虎變)은 호랑이가 여름에서 가을에 걸쳐 털을 갈고 가죽의 아름다움을 더하는 것처럼 천하를 혁신하여 세상의 폐해(弊害)가 제거되어 모든 것이 새로워짐을 뜻한다. 그런가 하면 소인혁면(小人革面)이란 말도 있다. 호랑이처럼 변하는 ‘대인호변’과 표범처럼 변하는 ‘군자표변’과 달리 소인(小人)은 얼굴빛만 고칠 뿐이란 것이다.
소인 위에 군자가 있고, 군자 위에 대인이 있어 변신의 급수가 다르다고 본 것이다. 즉, 가장 바람직한 것이 대인(大人)의 호변(虎變)이고, 그 다음이 군자(君子)의 표변(豹變)이며, 소인(小人)의 혁면(革面)은 맨 아래라는 것이다. 여기서의 변신이란 허물을 고쳐 올바로 행함으로써 선(善)으로 옮겨가는 행위를 얘기하는 것이지만 잘못을 바로잡는 것을 떠나 ‘미래 가치’를 추구하는 것으로 해석할 수도 있다. 문어의 경우든 인간의 경우든 간에 ‘진화’의 방법론으로서 ‘변신’을 대입해 보는 것도 그럴듯한 세상이치가 될 법하다.
첫댓글 바닷속 돌맹이로 변신한 문어
죽전 고마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