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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 서문 (활동지침서) 와 이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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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침서의 내용은 하나같이 기가 빨리는 내용 투성이였다.
창 밖은 진작 어두컴컴해졌고, 사무실 조명이 그리 밝지 않아 눈도 침침했다. 읽느라 정신이 없어 몰랐는데 대장은 여전히 내 근처에 가만히 서 있었다. 인기척이 느껴지지 않아 진작 다른 곳으로 간 줄 알았는데...뒤늦게 그를 계속 세워뒀다는 생각이 들자 머쓱해졌다.
"아, 저기... 좀 앉으실래요?"
남자는 표정 없이 고개를 끄덕이고 앉았다. 어제 막 가입한 내가 대장한테 까불기도 좀 뭣하니 뭐라도 화제를 꺼내 줬으면 좋겠는데, 남자는 시종일관 조용하기만 했다. 하기야 지침만 봐도 딱히 수다를 좋아할 성격 같아 보이지는 않았다. 한참 침묵이 이어지니 그제야 남자도 좀 어색해졌는지 내 손에 들린 책자를 가리킨다.
"지금 손에 들고 계신 그것, 다 보셨다면 저도 잠깐 봐도 될까요?"
"네? 아, 네! 편하게 보세요!"
아, 역시 지침서에 볼일이 있었구나. 지침에 수정하거나 가필할 거라도 생겼나? 그렇다면 물어볼 것도 없이 나 같은 신입 대원은 그냥 쫓아내고 처리하면 될 걸, 굳이 기다려 준 걸 보면 겉보기와는 달리 그다지 상하관계에 엄격하지 않은 사람인가 싶었다.
그러나 막상 책자를 넘겨주면 뭔가 열심히 기입할 것이라는 내 생각과는 달리, 남자는 그저 한참 종이를 만지작거리다 책장을 대강대강 넘기기 시작했을 뿐이다. 어찌나 속도가 빠른지 딱히 내용을 읽는 것 같지도 않다. ...하기야 자기가 쓴 것이니 읽지 않아도 내용은 전부 알겠지만. 그나마 후반부 즈음에서는 눈이 종이에 조금 머물었을 뿐, 남자는 이내 조용조용 책을 덮었다.
...다시 침묵이 이어지기 시작했다. 나는 결국 무거운 분위기를 이기지 못하고 입을 열었다.
"저, 그런데... 이태호 대장님 맞으시죠? 별 건 아니지만 궁금한 게 있는데, 물어봐도 괜찮을까요?"
"대답해 드릴 수 있는 것이라면 해 드리겠습니다."
"감사합니다. 제가 1번 지침... 그러니까, 해피 에브리데이 마트 말이죠. 거기 보니까 대장님께서는 이미 아...내분을 찾아내신 것 같던데, 그러면 이제는 굳이 연합에 남을 필요가 없는 것 아닌가요?"
아내가 이미 죽었다면 딱히 이런 위험한 짓 계속 하고 있을 필요도 없는 것 아닌가. 거기까지 생각하고서야 나는 아차 싶었다. 어쩌면 방금의 질문은 초면인 사람한테 묻기에는 대단히 실례이지 않을까?
나는 서둘러 남자의 눈치를 살폈다. 다행히 그는 놀란 듯한 눈치였지만, 썩 기분이 상하지는 않은 것 같았다. 그는 잠시간의 정적 후 대답했다.
"뭐... 손 하나쯤 없다고 꼭 죽으라는 법은 없지 않습니까."
저도 이런 꼴이지만 아직 죽지는 않았고. 움푹 패인 눈을 가리키면서 하는 말은 농담이랍시고 한 것 같기는 한데, 웃어야 할지 말아야 할지 모르겠는 미묘한 기분이다. 결국 나는 애써 쾌활하게 고개를 끄덕일 뿐이었다.
"그, 그렇죠!"
솔직히 일반인 여자가 그런 데서 손을 잃을 정도의 큰 부상을 입었다면 진작 죽고도 남았을 것 같지만... 관두자. 얼마나 절박하면 아직도 저러고 있겠나. 게다가 솔직히 남 일도 아니다. 살아 있을지 없을지도 모르는 사람을 찾으러 온 건 나도 마찬가지니까. 솔직히 지금에 와서는 성아가 살아 있으리라는 기대도 크게 없다. 그저 시신이라도 보지 못하면 언제까지고 받아들일 수 없을 것 같다는, 그런 마음에서 나온 쓸모없는 고집일 뿐이다.
잠시간 나를 가만히 지켜보던 남자가 문득 말했다.
"신입 대원이라고 하셨지요. 혹시 괜찮으시다면, 아내를 살리는 걸 도와주실 수 있으실까요."
"네? 아, 네! 물론이죠."
나는 곧바로 고개를 끄덕였다. 모든 실종자 수색은 최선을 다해 공평하게. 설령 생판 남인 연합원이 등록한 실종자일지라도, 그 구출과 목숨을 직접적으로 저울질해야 하는 상황이 아닌 이상 할 수 있는 모든 노력을 다해야 한다. 그래야 다른 수색대원도 내 소중한 사람을 위해 마찬가지로 노력해 줄 테니까.
"대신 대장님도 우리 성아 보이면 꼭 찾아와 주시기에요. 생긴 건... 아, 이미 사진을 등록해 놨으니까 딱히 필요 없겠구나. 나중에 한 번 봐 주세요. 진짜 예뻐요. 저는 이 모양 이 꼴인데 누굴 닮았는지."
"네. 알겠습니다."
고개를 끄덕인 남자는 내게 책자를 돌려주었다. 그러나 나는 그것을 곧바로 받아들지 못했다. 순간 묘한 냄새가 코 끝을 찌르고 지나간 탓이었다.
비리고, 속에서 뭔가 울컥울컥 올라올 것 같은... 상한 고기 같은 냄새? 생각해 보니 사무실에 처음 들어왔을 떄도 조금쯤은 그런 냄새가 감돌았던 것 같다.
사무실 환기가 잘 안 되나. 나는 창가로 다가가 창문을 열려고 해 보았지만, 창틀에 녹이 슬었는지 암만 용을 써도 열리지 않았다. 좀 도와줄 법도 하건만 대장은 내내 멀뚱하니 바라만 보고 있었다.
아오, 그렇다고 상사한테 도와달라고 역정을 부릴 수도 없는 노릇이고... 결국 나는 포기하고 다시 자리로 돌아와 앉을 수밖에 없었다. 돌려받은 책자를 뒤적이며 나는 화제를 돌렸다.
"아, 그러고 보니 어제 처음 가입할 때 만난 여자분... 양지혜 씨 있잖아요."
"네. 관련해서 여쭈어 보실 점이라도?"
"아, 별 건 아니고... 그분도 자기를 양지혜 대장이라고 소개하던데. 그러면 지금은 연합에 대장이 둘인 건가요?"
별 생각 없이 물어본 말에 남자는 애매한 표정을 지었다. 그러나 그것도 잠시, 이내 무뚝뚝한 표정으로 돌아온 그는 중얼거렸다.
"......음. 지혜 씨도 꽤 오래 있었으니까요. 지금 연합 수색부문에 있는 사람 중에서는 제일 고참일 겁니다."
이런 곳도 오래 구르면 승진 제도가 있구나. 신기한 마음도 잠시, 나는 곧 다시 책자를 넘기기 시작했다. 대장 역시도 입을 다물어 버려 다시금 사무실 내에는 침묵만이 감돌았다.
.
첫댓글 신입아..ㅠㅠㅠ
신입 죽는겨?
헉 신입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