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 우리사회는 다종교 사회 계층-지역 갈등 심각
기독 국가대표 선교로 이젠 종교 갈등도 심화
4. 올림픽까지 선교 악용 가톨릭 선수는 성호긋고
이슬람은 메카 향해 절 불자는 목탁 치란 말인가
불매운동으로 기업 선교행위 맞서야
이웃종교 무시한 기독교계 선교에 대응할 때
올 여름 우리들은 아테네 올림픽을 지켜보면서 기뻐하다가도 불쾌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도대체 한국 기독교 대표인지, 국가대표인지 구분이 안 가는 기독교인 대표 선수들의 선교 행위를 올림픽 기간 내내 볼 수밖에 없었다. 먼저 경기장에서 마구 행하는 기독교인 선수들의 선교 행위, 무엇이 문제인가 꼼꼼히 살펴볼 필요가 있다.
국가와 국민을 대표해야 할 기독교인 대표 선수들은 아테네 올림픽을 선교장으로 바꾸었다. 알다시피 올림픽의 기본 이념은 ‘인종과 국가, 종교를 초월해 오직 스포츠로서 인류 평등과 화합을 구현하자’는 것이다. 올림픽 중계 방송에서 보았듯이 유독 한국의 기독교인 선수들만이 경기장에서 무릎 꿇고 기도하고 자랑스럽게 자신의 메달을 하나님에게 봉헌했다. 기독교인 선수들은 한결같이 우승의 기쁨과 영광을 기독교의 절대자에게 돌렸다. 이는 국민의 대표가 아니라 한국 교회와 기독교의 대표라는 것을 확인시켜 준 추태이다.
우리 사회가 화합하지 못하는 갈등 요인은 크게 세 가지로 분류할 수 있다. 선거 때마다 우리는 자기 욕심만 챙기려는 몰지각한 정치인들로 인해 지역 갈등을 겪고 있다. 계층 갈등 역시 큰 문제이지 않은가. 그런데 이젠 국민 화합에 큰 도움을 주어야 하는 스포츠가 종교간 갈등을 야기하는 원인이 되고 있다. 그 어떤 갈등보다 무서운 것이 종교 갈등이다. 도대체 메달만 따면 ‘하나님’을 찾아 대는 기독교인 선수들이 국가대표인가, 기독교 대표인가 묻지 않을 수 없다.종교를 갖고 있지 않은 대다수 국민들은 올림픽을 지켜보면서 대단히 불쾌했을 것이다. 그리스와의 시차로 인해 밤을 지새며 응원했던 손바닥에서 갑자기 힘이 빠졌을 것이다.
그렇지 않아도 태릉선수촌에 가면 기독교인 선수들의 선교 활약상을 자주 듣는다. 불자 선수들 얘기를 들어보니 교회에 다니는 기독교인 국가대표 선수들은 참 징그러울 정도로 선교에 나선다고 한다. 주말이면 동료 선수들에게 ‘교회에 같이 가자’고 강요한다고 하더라. 알다시피 이천수, 최태욱, 이영표 등 국가대표 축구 선수들은 선교사나 목사로 불릴 정도다. 기독교인 선수들의 도를 벗어난 선교 행위는 어제오늘의 문제가 아니다.
이명박 서울시장의 서울 봉헌에 대한 손해배상 청구 소송을 주도했던 동산반야회에서는 대한체육회에 기독교인 선수들의 선교 행위에 관한 입장을 밝혀 달라고 공개 질의한 것으로 알고 있다. 동산반야회는 기독교인 선수들의 선교를 악행으로 규정하고 이에 대한 대한체육회의 입장이 무엇인가를 묻는 질의서를 9월 9일자로 발송했다. 대한체육회의 공식적인 답변을 기다리고 있다.
상식선에서 생각해보자. 우승을 한 순간 가장 먼저 생각나는 것은 누구인가. 하나님인가? 아니다. 길러준 부모님과 우승을 위해 물심양면으로 지도해준 스승을 떠올려야 할 것이다. 그리고 밤새워 응원해 준 국민과 자신의 조국을 떠올리는 것이 당연한 순리 아닌가. 하지만 기독교인 선수들은 철저히 훈련된 군인과도 같았다. 한국 기독교계가 기독교인 국가대표 선수들이 하느님의 아들·딸로서 장한 일을 했다며 자화자찬 할 때인가 스스로 반성해야 할 것이다.
국가대표는 공인이다. 공인으로서 하지 말아야 할 일을 기독교인 선수들은 아주 당연하다는 듯이, 자랑스러운 듯이 하고 있다. 훈련과 교육을 받지 않고는 저렇게 똑같이 선교 행위를 할 수 없다고 본다. 기독교인 국가대표 선수 역시 다른 국가대표 선수와 마찬가지로 국민들의 성원과 국민들이 낸 세금으로 운동을 하고 실력을 향상시키기 위해 노력한다.
국가대표는 대한민국과 국민을 대표한다. 그런데 유독 한국의 기독교인 선수들만이 이를 망각한 듯 하다. 특히 태권도 금메달 리스트인 기독교인 선수는 금메달을 확정한 뒤 경기장 바닥에 태극기를 깔고 그 위에 무릎을 꿇은 채 기도를 하고 메달을 봉헌하는 것으로 선교 세레머니를 멋지게(?) 마무리했다. 이는 국가와 국민보다 자신의 신앙을 더 소중하게 생각하는 아주 독선적인 태도다. 자신의 종교를 타인에게 강요하는 범죄행위로 규정할 수 있다.
‘기독교인 국가대표 선수 도 넘은 종교행위로 올림픽 정신 오염’에 관한 기사를 보면 여자 국가대표 배구 선수단이 모두 기독교인 선수로 나와 있는데 기독교인 감독이 일부러 기독교인 선수만 선발하는지 궁금하다. 우리나라의 종교 분포를 보더라도 팀 전체가 기독교인이라는 것은 이치에 맞지 않다.
가끔 불자나 일반인 선수들이 여자 배구팀 대표로 선발되더라도 감독이 독실한 기독교인이고 다른 선수들 대다수가 기독교인이다 보니 자연스레 개종을 하는 것으로 알고 있다. 지난번『법보신문』과의 인터뷰에서도 밝혔지만 기독교인뿐만 아니라 불특정 다수의 사람들을 상대로 장사를 하는 ○○정유의 기름은 절대 구입하지 않는다. 여자 국가대표 배구팀 감독이기도 한 ○○정유의 감독은 독실한 기독교인으로 이름나 있는 데 알다시피 선수단 전체가 기독교인이지 않는가. 스파이크 한 번 잘하면 모두 모여서 자신들의 유일신을 위해 기도하는 꼴을 볼 때마다 역겹다는 생각이 든다.
기독교인 선수들도 문제지만 대담자들이 언급했다시피 대표팀의 감독과 임원진의 선교 강요 행위가 더 큰 문제라는 지적도 있다.
선교 강요는 인권 침해로 볼 수 있다. 상대적으로 약자인 선수들은 감독이나 임원진의 특정 종교 강요를 물리칠 수 없다. 선수 선발 등에서 불이익을 걱정해 개종으로 이어지기 때문이다. 특히 ○○정유 여자배구팀 감독은 전도사로서 맹활약을 하고 있다. 그는 현재 국가대표 여자 배구팀의 감독이다. 한 번 공격한 후, 경기가 끝날 때마다 둥그렇게 모여 앉아 경기장을 예배당으로 착각한 듯 기도를 하는 여자 배구 선수들을 볼 때마다 오히려 패했으면 하는 생각마저 들었다. 이런 불쾌감은 상당수 국민들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장’이라는 이유로 팀에 소속된 선수들에게 특정 종교를 강요한다면 선수간 위화감으로 팀의 조화는 깨지고 경기력은 향상되지 않을 것이다. 분명한 것은 기독교인 국가대표 선수들의 볼썽 사나운 선교 행위는 2000년 시드니 올림픽 때보다 2004년 그리스 올림픽 때 더욱 강화됐다. 기독교인 선수들은 하나같이 선교 행위를 연습이나 한 듯 일정한 틀로 경기장에서 기도했다. 기독교인 메달리스트들은 귀국 이후 공중파 방송에서도 “하나님의 성령으로 메달을 딸 수 있었다”고 발언했다. 이런 방송을 내보내는 것은 방송윤리에도 맞지 않는다.
국가대표의 지나친 선교를 비판하는 것에 대해 기독교인들은 “개인적인 신앙이며 인권을 침해하지 말라”며 맞서고 있다. 그러나 대담자들이 비판했다시피 국가대표 선수가 경기장에서 선교 행위를 하는 것은 역으로 국민에게 선교를 강요해 인권을 침해한 것으로 볼 수 있다. 헌법에도 위배되는 악행이다. 이젠 그 진상을 파악하고 재발 방지를 위한 대응에 나설 때이지 않은가.
국가대표의 선교 행위는 더 이상 묵과할 수 없는 추태이다. 국민의 화합을 이끌어 내야 할 올림픽이 종교적인 갈등의 요인이 되고 있기 때문이다. 대한체육회나 올림픽조직위원회에 선교 행위를 제지하는 윤리 규정의 제정을 촉구하고 재발 방지를 약속 받아야 할 때다. 올림픽 경기뿐만 아니라 경기장이 특정 종교의 선교 장소로 변질되고 있다. 기독교계에서는 아마도 메달을 딸 가능성이 높은 선수들을 골라 승리했을 때 특정 종교 행위를 하도록 교육시키는 것이 아닌지 의구심이 든다. 기획된 선교 행위가 분명하다.
그 동안 불교계는 기독교인들의 비상식적인 선교 행위에 대해 적절히 대응하지 못했다. 아마도 대다수 불자들과 국민들은 기독교인 대표 선수들의 무분별한 선교 행위를 지켜보면서 한국 기독교계의 선교로 종교로 인한 갈등이 심화될 것이라며 걱정했을 것이다. 보다 강력한 대응책이 필요하지 않은가?
국가대표 선수의 선교도 문제이지만 일반 기업의 선교 행위도 큰 문제이다. 이젠 불자들과 종단이 나서 ○○정유나 ○○은단 등 회사의 물건을 불매하자는 캠페인을 펼쳐야 한다. 이들 회사는 기독교인뿐만 아니라 불특정 다수의 고객들을 상대하고 있다. 지나친 선교 행위는 기업 윤리에도 배치되는 행위이다.
기독교계가 아무리 때리고 부수어도 우리 불교가 가만히 보고 있다면 때리고 부수는 일은 관행처럼 이어질 것이다. 그렇게 된다면 그들은 우리 불교를 정복하고 누르기 쉬운 상대로 인식할 것이다.올림픽 기독교인 대표 선수들의 메달 봉헌과 기도는 비단 어제오늘의 행위가 아니다. 그 동안 불교계의 대응은 바람직했는가 한 번 짚어볼 필요성이 있다.
스포츠에 무관심한 불교계와 달리 한국의 기독교계는 금전적으로 국가대표 선수들을 끊임없이 전폭적으로 지원하고 있다. 문제는 기독교계가 올림픽 선수를 지원하면서 그 선수들을 선교 수단으로 악용하고 있다는 점이다. 국가대표 중에는 불자 선수도 있다. 어느 불자 선수에게 ‘기독교인 선수들은 경기를 마치고 반드시 선교 행위를 하는데 왜 불자들은 종교 행위를 하지 않는가’라고 물었더니 “우리는 한국의 불교 대표 선수가 아니라 국가 대표 선수’라고 답했다. 이에 대한 불교계의 대응은 지나치게 자비스럽고(?) 소극적이었다. 불교계가 힘을 하나로 모아 적극 대응해야 하는 데 종단이나 스님이나 아무 생각이 없는 것 같다. 서울시 봉헌 때만 하더라도 사과도 아닌 사과를 종단이 앞장서 수용했다.
국가대표 선수는 물론 지방자치단체장의 도를 벗어난 선교 행위는 끊임없이 이어져 왔다. 이명박 서울시장도 서울시를 하느님께 봉헌하지 않았는가. 조계종단은 늘 이런 문제에 대해 뒷짐만 지고 있었다.
조계종단은 이명박 서울시장의 서울 봉헌 때나 아테네 올림픽 국가대표의 선교 행위 때나 늘 고정돼 있었다. 불자들이 관심을 갖고 힘을 모은다면 사회 공통으로 지적하는 기독교계의 도를 벗어난 선교 문제를 바로 잡을 수 있다. 기독교계와 싸우자는 얘기는 결코 아니다. 국민이 편안한 마음으로 살기 위해, 모두가 올림픽 경기를 관전하면서 스포츠를 통해 단합할 수 있도록 불교계가 나서자는 것이다. 88 서울올림픽 당시 정부는 우리 민족의 유구한 역사를 세계에 알리겠다며 사직공원에 단군상을 건립하려 했다. 하지만 기독교 목회자들이 1년 동안 방해해 결국 무산됐다. 전체 인구 중 20%를 약간 웃도는 기독교인들의 공격적인 선교가 힘을 발휘한 것이다. 한국 교회와 기독교는 나라의 정책도 단합된 힘으로 막는다.
올림픽 기독교인 선수들의 과감하고도 자신감 넘치는 기도를 보면서 이명박 서울시장의 ‘서울시 봉헌’ 발언을 되짚어 보았다. 혹시 ‘어느 시장이 서울시를 부처님께 봉헌했으면 어떻게 됐을까’라고 생각해보았는데 답은 뻔했다. 그 불자 시장은 아마 시장에서 물러나는 것에 그치지 않고 사회에서 아예 매장 당했을 것이다. 불자 장성 김태복 장군 죽이기 사건이나 서울시장의 서울 봉헌 발언 등 지속적으로 이어지고 있는 종교 편향 사건을 보면서 우리는 계속 기독교계에 얻어맞고만 있다는 것을 절감한다.한국 기독교계에서는 아테네 올림픽을 선교 축제였다며 추켜세우고 있다. 그러나 이번 올림픽은 한국 기독교계의 도를 벗어난 선교 행각을 세계 만방에 알린 계기였을 뿐이라고 생각한다.
기독교인들은 기독교인 선수들의 선교 행위를 비판하는 불자나 대다수 국민들의 여론에 대해 ‘시기하고 있다’는 말도 안 되는 논리를 펴고 있다. 이웃 종교인이나 종교가 없는 50%의 국민들은 안중에도 없는 막힌 사고이다. 한국 교회와 기독교계는 올림픽 선수들의 선교 행위를 통해 확인했듯이 무엇이든 선교의 수단으로 악용한다. 한국 기독교계의 선교를 보다보면 전쟁을 보는 듯 하다. 사회 전반에 걸친 기독교계의 무차별적인 선교 공격으로 기독교를 믿지 않는 다수의 국민이나 불자는 더욱 피곤한 지경이 됐다.
종교인이라고도 할 수 없는 악랄한 반응이다. 올림픽 선수들의 선교를 불교계에서 비판하자 기독교인들은 “불자 선수들도 하면 될 것을 또는 부러우니까, 배아프니까, 열등 종교의 시기”라며 비아냥거렸다. 상상해 보자. 불자 선수들은 목탁을 치고 이슬람 선수들은 메카를 향해 마구 절하고 가톨릭은 성호를 그으며 마리아를 찾는다면 어떨까. 한국 기독교인 선수들이 경기장에서 기도하는 모습을 본 외국인들은 “한국인은 모두가 기독교인이냐”며 의아해 했다고 한다. 지나친 선교행위가 세계인의 눈에 어떻게 비쳤을지 우려된다.
한국은 다종교 사회이다. 세계인들은 이번 올림픽 중계를 통해 잘못된 기독교 정신으로 무장된 한국 선수들을 지켜봤다. 그리고 그들은 한국이 종교 전쟁으로부터 결코 안전하지 못한 나라라고 인식하게 됐다.
과연 아테네 올림픽 마라톤 경기 중 종말론을 알리기 위해 1등으로 달리던 브라질 선수를 습격한 아일랜드의 종말론자와 자신의 종교만을 드러내기 위해 선교 행위를 일삼는 한국의 기독교인 선수가 다를 게 무엇인지 묻지 않을 수 없다. 적어도 선교라는 목적을 위해 올림픽을 악용한 점은 같지 않은가.
이젠 기독교계가 스스로 알아서 윤리에 벗어난, 법에 저촉되는 선교 행위를 자제해 줄 것을 기대하기는 어려운 듯 하다. 특단의 대책이 필요하다.
그 어떤 것이든 선교 수단으로 악용하는 한국 기독교계에 ‘스스로 양심적으로 알아서 하겠지’라는 생각은 아예 접어야 한다. 기독교가 설립한 학교에 다니다 예배를 거부한다는 이유로 퇴학당한 한 고등학생의 경우를 보더라도 정부가 직접 나서 종교적인 갈등의 원인을 제거했어야 했다. 사회 곳곳에서 안하무인격으로 반복되고 있는 기독교계의 종교 강요행위를 막기 위해 하루속히 대책위원회를 꾸려야 한다. 그리고 대한체육회와 국제올림픽위원회, 문화관광부 등에 국가대표 선수들의 선교 행위를 금지하는 윤리 규정을 제정하라고 촉구하고 이를 시행토록 여론을 조성해야 한다. 또 공공 장소에서 특정 종교를 강요하는 모든 행위를, 공인에 의해, 또 공공기관에서 관행처럼 일어나고 있는 선교 행위를 금지하는 종교 윤리법(가칭)의 제정을 서둘러야 한다. 물론 입법기관인 국회에 이 법안이 상정될 수 있도록 노력해야 할 것이다.
올림픽 선수들까지 선교의 수단으로 악용하는 기독교계는 한바탕 전쟁을 하자는 태도이다. 메달을 딴 기쁨을 오직 하나님의 영광이라며 자랑스러워하는 기독교인 선수들을 볼 때마다 종교적 갈등이 더욱 심화되고 있음을 절감한다. 불교계가 지나치게 얌전하니까 기독교계에서는 한 발 더 선교의 발을 뗀다. 그리고 반응이 없으면 다시 한 걸음 더 떼는 식으로 광적인 선교에 나선다. 종교 갈등 문제를 치유하는데 앞장서야 하지만 기독교에서는 늘 도를 벗어난 선교로 공격한다. 그 선교 공격에 대응하는 방식에 대해 깊이 고민할 때다.
불자들은 불자 선수가 경기장에서 불교를 드러내는 행동을 하는 것을 원치 않는다. 아울러 기독교 광신도들처럼 불자들이 지하철에서 포교를 하는 것도 원하지 않는다. 다종교 사회의 기본적인 윤리를, 공인으로서 하지 말아야 할 것을 지키자는 것이 불자들의 소박한 바람이다.
미국에서 들은 일화인데 미국에서 기독교 활동을 가장 활발하게하는 사람들이 한국인이라고 한다. 중국 사람들은 모이면 돈 벌 궁리를 하는데 한국 사람들은 모이면 교회부터 짓는다는 뼈 있는 우스갯소리가 있다. 한국의 국가대표 기독교인 선수를 지원하는 어느 목사가 “미국 선수도, 사도 바울도 못한 일을 한국의 기독교인 국가대표 선수들이 했다”며 감격해 하는 글을 보고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대한체육회나 올림픽위원회, 문화관광부, 방송위원회 등 관련 기관에 기독교인 대표 선수들의 선교 행위를 제한하는 윤리 규정의 제정과 실행을 촉구하고 더 나아가서는 국제올림픽위원회에도 요구해야 한다. 기독교계에도 이런 선교 행위가 정말 종교 윤리에 맞는지 질문해 자성을 촉구할 필요가 있다. 아울러 선교 행위를 일삼는 일반 기업의 물품을 사지 말자는 불매 운동을 강력하게 펼쳐야 한다.
첫댓글우스게소리이군요. 님은 우리나라의 헌법이 보장하는 종교의 자유를 인정할 수 없으며, 나와는 다른 타 종교와 종교활동을 인정하지 못하겠다고하는 배타적인 생각이 가득하군요. 님이 신앙의 자유와 님과 다른 타종교를 인정하고 존중한다면 위와 같은 상식에서 벗어난 글은 올리지 않을 듯 싶네요.
기독교라는 게 정상적인 논리와 이성하에 있다면 그럴려니 하겠으나, 필요한 때 지조때로 갖다 붙이면서 그게 앞뒤가 안 맞고 횡설수설하면... 한다는 말이 인간이 알 수 없다는 둥... 믿으면 복이 있다는 둥... 그렇게 인간을 흙으로 만든 인형으로 몰아 가는 게 좋으시오? 당신들이 믿는 옹기쟁이에 대해 증거할 수도
첫댓글 우스게소리이군요. 님은 우리나라의 헌법이 보장하는 종교의 자유를 인정할 수 없으며, 나와는 다른 타 종교와 종교활동을 인정하지 못하겠다고하는 배타적인 생각이 가득하군요. 님이 신앙의 자유와 님과 다른 타종교를 인정하고 존중한다면 위와 같은 상식에서 벗어난 글은 올리지 않을 듯 싶네요.
참고로, 난 캐나다에서 사는데, 올림픽 기간동안 한국선수들의 기도하는 모습을 문제삼는 뉴스를 한번도 접하지 못했어요. 여기는 신앙의 자유와 표현의 자유가 잘 정착되어 있어서 님과 같은 주장을 하는 사람들을 보면 오히려 이상하게 여길거예요.
나와는 다른 것을 인정하지 못하고 받아들이지 못할 때 갈등과 분쟁이 생기는 것이지요. 님이 기독교를 인정해보세요. 그것이 우리 사회를 화합으로 이끄는 발걸음이 될 것입니다.
오랜만에 와도 무식한 소리는 여전하구만요, 당신이 그런 말할 자격이 있을까요? 기독교가 말이죠... 유학생 맞습니까? 해년마다 상식이하의 소리만 좔좔 읆는군요 같은 한국인이란게 낮부끄러워 밥한숟가락이 목에 넘어가질 않는군요 ....
뭐가 무식한 소리인지, 내가 말할 자격이 왜 없는지, 무엇이 상식이하의 소리인지, 왜 내가 한국인이라는 것이 부끄러운지..... 구체적인 내용은 없고 험담만 있군요. 그래서는 사회의 화합(?)이 안되지요.
당신네같은 아웃사이더들이랑 사회화합이 가능하다고 보슈? ㅎㅎ 고름은 절대 살이 되지 않거덩요
님이 다름을 인정하고 있는 그대로 받아들인다면 가능하다고 봅니다. 다른 인종, 다른 종교, 다른 사상....
기독교가 그게 가능했다면 나 안티하지도 않아요. 조까세요 --ㅗ
그러면 결국 님이 비판하는 이들이나 님이나 똑같은 사람이라는 것이군요. 똑같은 사람이 왜 같은 종류의 사람들을 비판하나요?
뭐가 똑같나요? 정신병자와 정상적인 사람이 이야기를 나눕니다. 서로가 서로를 정신병자라 부릅니다. 그러나 제삼자의 입장에서 본다면 정상적인 사람은 지속적으로 일정한 논리와 이성을 유지할 것이고, 정신병자는 횡설수설할 겁니다. 마찬가지가 아닐까요?
기독교라는 게 정상적인 논리와 이성하에 있다면 그럴려니 하겠으나, 필요한 때 지조때로 갖다 붙이면서 그게 앞뒤가 안 맞고 횡설수설하면... 한다는 말이 인간이 알 수 없다는 둥... 믿으면 복이 있다는 둥... 그렇게 인간을 흙으로 만든 인형으로 몰아 가는 게 좋으시오? 당신들이 믿는 옹기쟁이에 대해 증거할 수도
없으면서 이렇게 사회적 문제를 일으키는데 가만히 있으면 그게 잘못된 거 아니겠소. 미친 것들이 사회를 자우할려고 하고, 국가를 좌우할려고 깝치는데 보고 있는 게 잘하는 건 아니지요.
정신나간 정재상님, 정당방위란 개념은 아세요??? 나이는 거꾸로 잡수셨는지 작년보다 더 띨띨해지시네여 -_-;; 그만큼 믿음이 충만해지셨단 증거겠죠? 포호호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