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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주주의>란 이렇게 멀고도 험난한 길인가?
문항마다 서로 연결점이 없는 것 같고, 앞뒤로 전혀 어울리지 않는 말 같지만 결론은 "민주주의“라는 비록 풍족하지는 못하다 해도 5천만이 함께 사람답게 살 수 있는 세상으로 나아가고자하는 필자 나름대로는 심혈을 기울여 써 본 글입니다.
1. “짝사랑”이란 말이 있다.
한 쪽은 상대를 죽자 사자 사랑하고 그와 결혼만 하면 세상을 다 얻은 것 같은 기분일 터인데, 건너 쪽은 상대를 소가 닭 보듯 하는 경우를 말함이다.
이 짝사랑에도 몇 부류가 있다.
소가 닭에게 너와는 죽어도 결혼을 안 하겠다는 모질고 매정한 절교선언을 해서 일찌감치 갈라서서 둘이 각각 제갈 길을 가는 경우가 있고,
소가 닭의 진정어린 사랑에 감화되어 짝사랑이 찰떡 사랑으로 변해 소와 닭이 잉꼬로 변해 한 쌍의 부부가 되어 백년해로를 하는 경우가 있고,
소가 닭이 낳는 알을 날름날름 받아먹는 잇속이 있고 사람들이 닭의 노래를 듣기 위해 몰려들어 두 사람의 인기와 존재가치가 동반상승 되는 재미로 결혼할 의사는 전혀 없으면서도 닭의 구애에 시인도 부인도 않으면서 그 상태로 질질 끌고 가는 고무줄 같은 장삿속의 짝사랑이 있다.
짝사랑이 찰떡사랑으로 아름다운 하나가 된 경우를 빼놓고는 끝내는 닭의 가슴에 평생을 두고도 지워지지 않을 깊은 상처를 남기게 된다.
마누라가 이 글을 읽어본다면 남은여생을 바가지 긁히고 구박받으며 살아야 하겠지만 내 가슴속에도 그런 피멍울자국이 한둘 남아있다.
60대 중반을 넘어 인생의 마무리시점으로 한발 한발 다가가고 있는 지금도 아주 가끔 그것 때문에 가슴이 서늘하고 스스로 애잔해 질 때가 있다.
2. 지금 문재인과 안철수의 단일화 줄다리기를 보며 문뜩 해본 생각이다.
문재인은 죽자 사자 다가가는데 안철수는 문재인이 한 발 다가서면 한발 뒤로 물러서고, 두발 다가가면 두발 뒤로 물러서니 둘 사이의 간격은 좀 체로 줄어들지를 않는다. 어떤 때는 문재인이 두 발 다가가면 세발 뒤로 물러서는 경우도 허다하다.
그렇다고 안철수가 문재인을 향하여 “너와는 죽어도 결혼 않겠다!”는 절교선언도 하지 않고 이런 상태를 끌고 갈 수 있는 한계점까지 질질 끌고 가려하고 있는 것이다.
문재인은 안철수가 곁에 있음으로서, 안철수는 문재인이 곁에 있음으로서 둘이 함께 빛을 발하고 살길을 찾아갈 수 있지만, 둘이 갈라서는 순간 둘 다 끝장인 것을 잘 알기 때문이다.
이런 상태를 바라보며 늙은 암탉은 둘이 갈라설 것을 은근히 부채질하며 좋아 죽겠다고 그 볼품없는 엉덩이를 흔들어대며 눈 뜨고는 차마 못 볼 말 춤을 추어대고 있다.
3. 애시 당초 잘못된 사랑이었다.
둘이 살아온 길이 전혀 달랐다.
문재인은 평범한 보통사람으로 출발하여 세상의 쓰고 단 맛을 다보고 만고풍상을 다 겪으며 한 계단 한 계단 땀 흘리며 어렵게 올라 스스로 오늘의 위치에 오른 사람이다.
반면에 안철수는 보통사람들로서는 쳐다보기도 힘든 유복한 가정에 태어나서 오로지 단맛의 꿀 속에 파묻혀 성장하고, 하늘의 도움인지 자신의 능력인지 하는 일 마다 성공(?)을 거두어 세상물정 모르고 오로지 성공만을 쫒는 젊은이들의 우상이 되어 그들에게 무등 태워져 어느 날 갑자기 어렵게 오늘의 위치에 오른 문재인과 어깨를 나란히 하고 옆에 섰던 것이다.
문재인은 안철수의 상대로는 전혀 어울리지 않는 짝이고, 오히려 박근혜와 썩 잘 어울리는 상대인 것이다.
안철수는 성장배경이 박근혜와 비슷하고, 어느 날 갑자기 하늘에서 백마 타고 땅으로 내려온 짝퉁공자이고, 박근혜는 “유신”이라는 가증스러운 신비로움으로 포장된 짝퉁공주이니 둘이 합쳤더라면 찰떡궁합인 것이다.
안철수의 부모님조차도 자신의 입으로 박근혜의 열렬한 지지자라 했고, 안철수 자신도 서울시장보궐선거가 있기 전까지는 이명박의 휘하에서 그런 길을 앞장서서 걸었던 사람이 어느 날 갑자기 사고와 철학과 인생역정을 180도 바꾸어 문재인 곁으로 다가와 함께 가자고 하고서는, 그러자는 문재인과의 거리는 좀 체로 좁혀주지를 않으려 들고 있는 것이다.
문재인의 가슴이 타 들어가고, 5천만 국민의 애간장이 타 들어간다.
애시 당초 잘못된 만남이었다.
4. 행복한 돼지!
박근혜가 당내경선방법을 자신이 100%이기는 방법으로 고집하며 요지부동이자 정몽준이 이재오와 함께 그 경선에 참여하지 않고 뒷짐 지고 물러앉으면서 내 뱉은 말이다.
정몽준의 말을 뒤집으면 배부르고 등 따습게 행복한 돼지로 살다 어느 날 갑자기 목에 칼날이 꼽히고 뜨거운 물에 목욕하고 털이 뽑혀져 삼겹살이 되어 사람의 술상에 접시웃기로 오르느니, 차라리 배고프고 춥더라도 사람의 길을 선택하겠다는 그만의 외침이었다.
정몽준이 행복한 돼지인지? 진정 불행한 인간인지? 는 정몽준 자신이 아니라 보는 사람들이 판단할 문제다.
5. 지금은 구로구 고척동인가로 이사를 갔지만 10여 년 전 까지만 해도 서울의 대표적인 도살장이 왕십리(마장동)에 있었다.
그 도살장은 필자가 초등학교시절이던 1950년대 말에 호남평야나 다름없이 드넓은 논과 밭이 섞여 있었던 “장한평”의 서편 끝자락 경의선 철도 옆의 논자리에 들어선 것이다.
그 공사를 시작할 때 바로 근방에 살았었고 도살장이 들어서기 전에는 그 논과 습지가 여름철에 왕십리 개구쟁이들의 송사리와 잠자리 잡이 터였기 때문에 공사 진행과정도 직접 보았기 때문에 잘 알고 있다.
그 도살장 바로 옆에는 왜정시대부터 있었던 아주 작은 규모의 발전소인 왕십리내연발전소가 있었다.
그 발전소 한편에 1960년 대 말쯤에 한전에서 사용하는 전봇대, 전선, 변압기 등 수많은 전기 기자재를 생산업체로부터 사들여 보관하고 그 자재가 필요한 서울과 수도권지역의 한전사업소들에게 분배해 주는 <한전 서울보급소>라는 사업장이 들어섰다.
도살장이 들어서고부터 20여년을 건너뛰어 필자가 한전직원이 되어 1980년대 초에 그 서울보급소에서 2년 정도 근무를 한 적이 있었다.
하루는 점심을 일찍 먹고 여직원을 포함 너 댓 명이 함께 도살장 견학(?)을 갔다.
도살장의 크고 키가 높은 건물 안을 들여다보니 수증기로 가득 찬 건물 안에 수없이 많은 소가 이미 죽은 상태로 뒷다리 두 개가 묶인 틈으로 천장에 매달린 파이프라인에 꿰어져 머리통을 땅을 향하여 늘어트리고 앞으로, 앞으로 전진 해 가고 있었다.
그 다음 공정이 가죽을 벗기고 내장 발라내고 부위별로 절단이 되어 트럭에 실려 각 지역의 도매상으로 풀렸을 것이다.
이미 죽은 소들이고 멀찍이 떨어져 보니 그렇게 끔찍해 보이지는 않았다.
같이 간 여직원도 눈 하나 깜짝 안 하고 같이 봤다.
살아 있던 소가 고기가 되어 나오는 과정을 본 것은 그것뿐이다.
그 다음은 돼지를 잡는 곳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스레트 지붕으로 벽은 없고 기둥만 세워진 긴 일자(일(一) 건물 안에 사방이 1m정도의 콘크리트 옹벽으로 막히고 철문만 하나 달린 5평 정도의 콘크리트 감방이 끝없이 이어져 있었다.
그 콘크리트 감방 안으로 살아있는 돼지를 한 칸 마다 2-30여 마리씩 회초리로 몰아넣어 채웠다.
조금 있더니 어시장의 생선장수가 입는 상하의가 달라붙은 푸른 비닐도포를 입은 도살부가 해머(속칭 함마)를 들고 그 감방으로 들어갔다. 도살부가 들고 있는 해머의 앞에는 1cm정도 되는 못 끝을 잘라 붙인 것 같은 날카로운 돌기가 돋아나 있었다.
철문을 잠그고 난 도살부가 맨 앞에 있는 돼지부터 차례로 양 눈 사이 미간에 돌기가 튀어나온 곳으로 한 방씩 먹였다.
정통으로 맞은 돼지는 “찍!”소리도 못 지르고 벌렁 나자빠져 네 다리를 하늘로 뻗고 잠시 다리를 떠는 것 같더니 잠잠해 들었다.
그 장면을 보는 순간 여직원은 비명을 지르며 얼굴을 가리고 줄행랑을 놓아 도망갔다.
한 마리의 돼지가 쓰러질 때마다 감방 안은 피의 수위가 점점 올라갔다.
말 그대로 “피바다”였다.
그런데 설맞거나 빗맞은 돼지는 목청을 있는 대로 높여 꽥꽥거리며 천방지축으로 날 뛰었다.
하지만 그것도 순간이었다. 조금 있으면 한 편에 고꾸라져 정통으로 맞은 돼지의 뒤를 따랐다.
돼지를 잡는 방법을 가르쳐 드리려고 이 글을 쓰는 것이 아닙니다.
“행복한 돼지”의 삶이 어떤 것인지를 설명하려고 긴 설명을 앞에 깔은 것입니다.
수없이 많은 동료가 죽어서 뻗어 있고, 설맞은 동료는 비명을 지르고 있는데도 다음차례인 돼지는 밑에 흥건히 고여 있는 동료들의 피를 열심히 핥으며 행복해 하고 있었습니다.
무슨 뒷 설명이 더 필요하겠습니까?
한 10분 만에 감방 안에 있는 돼지를 몽땅 천당으로 보낸 도살부가 피가 줄줄 흘러내리는 도포를 입은 상태로 해머를 들고 감방 밖으로 나와 담배 한 개비를 불 붙여 맛있게 빨고서는 샤워실이 있는 듯싶은 건물로 들어갔습니다.
그 도살부가 옆으로 지나가자 나도 모르게 순간적으로 몸이 움츠러들고 소름이 오싹 돋아났습니다.
결국 그 여직원은 그 다음 날 충격으로 결근을 하였고 그 뒤로 출근을 하여서도 한 동안은 넋이 나간 사람 같았고, 필자를 포함 남자들도 며칠간 악몽에 시달려야 했고 어느 누구도 다시 거기를 견학가자고 하는 사림이 없었습니다.
그 도살장 바로 옆에 있는 갈비탕과 설렁탕 곰탕집 등은 맛이 좋고 고기양이 넉넉하여 서울시내의 먼데서도 일부러 찾아오는 명소였고 한전직원들도 회식이 있을 때는 꼭 거기가 단골 회식장소였었는데 그것을 견학한 뒤로는 발걸음을 끊었습니다.
6. 고척동도살장은 안 가보았지만 지금은 직접 잡는 장면을 공개를 안 할 것 같고, 그렇게 야만스럽게 잡지 않고 기계식이나 전기충격으로 도살방법을 몇 단계 업그레이드 시켰을 것이라고 생각됩니다.
이게 돼지의 경우이고 직접 보았기 때문에 그런 끔찍하고 충격적인 기억이 남아있는 것이지 사람사회에서도 이와 비슷하거나 더 끔찍하고 충격적인 장면은 얼마든지 있었던 것입니다.
아프리카 초원에서 산통을 하는 아내의 산후조리를 위해 초원에서 열매 따고 사냥을 하다 백인 놈들에게 붙들려 발목에 쇠고랑차고 이역만리 아메리카로 끌려가는 흑인과 산통중이든 그 아내와 어린 자식들이 감방 안의 돼지들 운명보다 나을게 뭐가 있겠습니까?
히틀러에 의해 아우슈비츠 수용소 지하창고에서 한 덩어리로 뒤엉켜 죽은 유태인들의 사정이 돼지의 감방보다 나을게 뭐가 있겠습니까?
다른 것이 있다면 독가스가 돌기 돋은 해머를 대신 했을 뿐입니다.
만주의 731부대에서 왜놈의 마루타가 된 조선인과 중국인의 운명이 돼지보다 나을 게 뭐가 있겠습니까?
만주벌판에서 독립투쟁을 하다 왜군의 포로가 되어 왜군중위 다카키 마사오의 앞에 붙들려간 조선청년의 최후가 돼지보다 나을 게 뭐가 있겠습니까?
유신시절 인혁당 사건 희생자들이나 살기위해 어선을 타고 고기잡이를 하다 납북되었다 되돌아와서 정형근과 이근안의 앞에 끌려가 간첩이 되어 목숨을 잃어야 했던 사람들의 피맺힌 죽음이나, 전두환 시절 남영동의 욕조에 머리가 틀어박혀 꽃다운 나이에 이 세상을 버려야 했던 박종철을 비롯 수많은 민주열사나 투사들의 최후가 그 돼지들보나 나을 게 무에 있겠습니까?
7. 이해찬!
박정희 유신독재가 시작되는 20대 초반의 학생운동부터 시작해서 박정희와 전두환의 독재와 폭정에 죽음으로 맞섰던 사람입니다.
사리분별이 분명하고, 맺고 끊기가 면도날 같이 똑 부러지는 사람입니다.
하지만 직접 만나서 얘기해 보면 그렇게 부드러운 사람이 없고, 천상 타고난 골수충청도 핫바지골샌님 스타일입니다.
이해찬과 맞섰다 민주당대표에서 진 흰 대가리의 김한길은 박정희 유신독재와 전두환의 군홧발로 짓이기던 깡패정치 시절에 어디서 무엇을 했었습니까?
박정희 유신시절에야 나이가 어렸으니까 그렇다고 쳐도 전두환과 노태우의 야만의 시절에 안철수는 어디서 무엇을 했었습니까?
이명박의 음주난폭운전 4년 동안 안철수는 어디서 무엇을 했습니까?
그들과 한통속이 되거나, 배부르고 등 따스운 돼지가 되어 그런 험난한 세월이 있었다는 것도 모르고 살아온 그들이 민주당 원내대표인 박지원이야 그렇다 쳐도 이해찬을 향하여 안철수는 밖에서 “충치”라고 막말을 퍼부어 대고, 김한길은 안에서 밖을 향하여 은밀한 손을 내밀고 있습니다.
기가 막힐 노릇입니다.
이해찬의 속이 남 모르게 속으로 썩어 들어가고 있을 것입니다.
단일화라는 큰 그림을 위해 그런 모욕을 받으면서도 “나 죽었습니다!”하고 꾹 참고 속으로 혼자 삭이자니 그 속이 오죽하겠습니까?
이해찬이 안철수와 같이 욕심이 있고, 엉큼한 꿍꿍이속이 있었다면 되던 안 되던 이번 민주당의 당내 예선에 나섰을 것입니다.
하지만 이해찬은 내가 무엇이 될 것인가 보다 어떻게 해야 친일과 군사독재 떨거지들로부터 정권을 회수하여 주권을 국민들에게 돌려주느냐 하는데 모든 것을 흔쾌히 집어 던진 사람입니다.
선거판에서는 백전노장입니다.
그런 백전노장을 문재인당선의 총사령관으로 그냥 놔두고서는 안철수가 단일후보가 된다는 것은 꿈도 꿀 수가 없음으로 “쇄신대상”이나, “친노”니 “충치”니 하면서 어떻게 던 문재인의 공격대장 지위를 빼앗으려 드는 것입니다.
이해찬이 어떤 사람인지 단적인 예 하나만 들겠습니다.
노무현을 보낸 이명박의 다음 타켓이 바로 이해찬이었습니다.
사돈의 팔촌까지 현미경과 쌍끌이 그물을 들이대고 싹싹 훑었지만 털어도 먼지 하나 나오지 않았습니다.
할 수 없이 이해찬을 건너뛰고 한명숙으로 방향을 돌렸다 개 같은 검찰이 법원에서 2차례에 걸쳐 사냥개임만을 확인 받았던 것입니다.
이 글을 여기까지 쓰고 나서 뉴스를 잠간 검색해 봤더니 할 수 없이 이해찬이 사퇴하기로 결심했다는 뉴스가 떴습니다.
내용은 읽어 보지도 안 했습니다.
지금 안철수는 “정치쇄신”이라는 뜬 구름 잡는 도깨비 방망이로 문재인의 무장을 야금야금 해제시켜 가고 있는 것입니다.
8. 박근혜의 “경제민주화”가 어떻게 변질되어가나 잘 보셨을 것입니다.
한마디로 압축해서 표현하면 박근혜의 “경제민주화”는 바로 “경제유신화”입니다.
박근혜가 입으로 말하는 정치의 “민주주의”도 마찬가지입니다.
바로 “정치의 유신화”입니다.
안철수는 이명박의 아바타일 뿐이고, 생식기와 겉옷만 사내인 짝퉁 박근혜,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닙니다.
우리는 김대중-노무현 10년 간 완벽하지는 않지만 그런대로 민주주의 비슷한 것을 누리면서, 설사 수구꼴통 한나라당에 다시 정권을 넘겨주는 한이 있더라도 박정희와 전두환을 한 용광로에 넣어 합성을 한 이명박 같은 독재는 이 땅에서는 다시는 없을 줄 알았습니다.
국민들의 착각이었습니다.
박근혜의 집권은 박정희와 전두환의 합성독재를 뛰어 넘어 다시 완벽한 유신독재로의 회귀를 하는 것입니다.
지금 안철수가 그것을 팔을 걷고 나서서 도와주고 있습니다.
9. 이제 문재인과 민주당이 결단 할 때입니다.
안철수에게 더 이상 양보할 것도, 더 이상 끌려 다닐 것도 없습니다.
이제부터라도 민주당은 민주당의 갈 길을 가야 합니다.
민주당내에서 안철수의 품으로 파고들고 싶은 사람들은 눈치 볼 것 없이 과감하게 안철수에게로 개가를 하라고 선언하십시오!
생과부 되어 수절할 생각이 없는 며느리 강제로 붙들고 있어봐야 잘못 하다가는 씨가 다른 손자를 보아 집안의 씨 갈이를 할 뿐입니다.
10. 민주당에서 노련한 운전기사가 험준한 태산준령을 넘는 것과 같은 길을 잘 운전을 해 왔습니다.
그런데 어느 날 얼굴에 솜털도 다 안가시고 머리꼭대기 숨구멍에 쇠똥도 아직 다 안 벗겨진 젖비린내 나는 애송이가 면허시험을 봐서 필기와 실기시험 100점 맞은 초보면허증을 갖고 와서 노련한 운전수를 밀어내고 제가 운전대를 잡겠다고 달려드는 형상입니다.
그 초보운전자에게 5천만의 생명과 재산을 무조건 맞기라는 것입니다.
민주당이여!
안철수에게 더 이상 끌려 다니지 마시라!
판단은 영혼이 살아있는 유권자들이 할 것입니다.
국민들은 배부르고 등 따스운 돼지로 행복하게 살다 인중에 돌기 튀어나온 해머 세례를 받고 유신옹주의 유신술상에 올라 새우젓 찍혀 유신옹주의 목구멍으로 넘어갔다 유신옹주의 똥구멍으로 빠져나오는 유신의 똥이 되기보다, 배고프고 춥고 단 하루를 살다가더라도 사람으로 사람답게 살다 가기를 원합니다.
민주당은 결단하시라!
아-!
아-!
한 번 잘못 끼운 역사의 단추를 다시 바르게 끼우기가 이렇게 힘듭니다.
“민주주의”라는 길은 이렇게도 멀고도 험난한 길입니다.
우리 “민주주의”되찾으면 다시는 빼앗기지 않도록 합시다!
글쓰기를 마치고 나서 다시 뉴스를 끄집어 내 보니 민주당 지도부가 총 사퇴를 단행하여 급기야는 문재인이 완전히 무장해제를 당하였습니다.
하늘이시여!
지금 이 나라가 어디로 가고 있습니까?
첫댓글 아아아...
참담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