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의 혼수품 주전자
우리 집에는 정말 오래된 주전자가 하나 있다. 엄마아빠가 결혼하고 몇 년 뒤 새 집으로 이사하면서 장만한 살림이라니 거의 20여 년이 지난 듯하다. 손잡이 부분은 거부 스름하게 닳았고 주전자 몸통에는 군데군데 기름때가 튀어 눌어붙어 철수세미로 아무리 빡빡 닦아도 깔끔하게 닦이지 않는다. 오랫동안 우리 집 부엌 가스레인지 위에서 하얀 김을 뿜어대던 그 주전자는 이제 싱크대 안 선반에서 잠자고 있는 신세다. 하지만 엄마는 가끔 주방 청소를 할 때 자리를 차지하는 그 주전자를 버리지 못했다. 내가 “ 이젠 엿도 못 바꿔 먹는데 왜 모셔두는 지? ” 하고 종알거려도 빙그레 웃기만 하셨다. 그런데 얼마 전 엄마가 드디어 그 낡은 주전자를 싱크대에서 꺼내 마당 화단에 내려 놓으셨다. 그러고는 거기에 화초를 심어 볼까 한다며 아빠에게 주전자 바닥에 구멍을 몇 개 뚫어 달라고 하셨다. 내가 또 한마디했다. “어휴, 궁상스러워라. 그냥 고물상에 갖다 주든지 버려요.” 하지만 거절하실 줄만 알았던 아빠도 “쉽지 않겠는 걸!” 하면서 해보겠다고 하셨다 내가 또 뭐라고 하자 그제야 엄마의 혼수품, 아니 더 정확하게 말하면 외할머니가 뒤늦게 사준 결혼선물쯤 될 것이다. 엄마가 결혼할 때 다른 집 어머니처럼 딸자식에게 그릇 같은 부엌살림을 챙겨 주지 못했던 외할머니가 늘 마음에 걸려 하셨다가 새 집으로 이사할 때 함께 시장에 가 챙겨 주려 하셨단다. 그때 엄마는 이미 살림살이들이 있으니 주전자를 사달라 했고, 그 주전자로 보릿물도 끓이고, 손님이 오면 찻물도 끓여 대접하셨다는 것이다. 그러면서 엄마는 덧붙여 말씀하셨다. “ 엄마도 너 시집 갈 때 챙겨 주려고 예쁜 그릇들 모이기 시작했단다.” “엄마는~ 예쁜 그릇들이 너무 많이 나오는데......” 하며 투덜댔지만 속으로는 기분 좋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