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은 붉은 연못
이현복
새벽이슬 속 처음인 내가
비탈밭에 돌을 줍고
나무뿌리를 캐고
꽃을 심고
고무 다라이 연못을 만들고
수련 골풀 어리연뿌리를 돌로 눌러 놓고
진흙과 모래 물과 산그림자를 담아주고
골풀은 물속에서 곧게 일어서고
수련꽃이 고무 다라이보다 큰 구름에 업혀 가고
소금쟁이 장구 애벌레가 덩달아 올라타고
고무 다라이 만큼 깊은 물 속에서 밤꽃이 터지고
붉은 고무 다라이가 가슴으로
개굴개굴 개구리들 알을 받고
어리연 노란 꽃잎 밑에 파란 하늘이 쉬고
꽃잎 속에 꾀꼬리 울음 노랗고
내게 온 것들은 모든 지금이고
나는 붉은 연못 속이고
너는 너무 멀리 있고
수레의 산
바위에서 수직 낙하하는 물소리가
시간의 속도보다 느리다고 생각할 때
산 벚꽃잎이 바람도 없이 날아내릴 때
꽃잎에 스쳐 닳은 바위를 겁이라고 할 때
바위에 뿌리 내린 매화말발돌이 흰 꽃이
바위의 피라면
흙바닥에 꽃잎이 닿게 핀 족두리 꽃은
허공 한 번 날아내린 적 없는 엄마 같은
구름 사이의 햇빛은 직선으로 꽂힐 때.
돌아오는 길이 보이지 않을 때
시무나무의 가시를 나무라고 생각할 때
숲속에는 직진이 없다
카페 게시글
지난호 읽기
시 두 편
지금은 붉은 연못 외 1편 / 이현복
김명아
추천 0
조회 17
23.06.08 11:46
댓글 0
다음검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