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커피 끓이는 남자
김 선 구
수필 강좌를 마치고 학우들과 가까운 차집에 모여 간담을 이어가는 일이 많다. 이때 반 총무 P선생이 차 주문을 받는다. “아메리카노 한잔 제외하고 차 주문 받습니다.“ 나의 주문은 이미 정해져 있다. 아메리카노 한잔은 나의 몫이다. 왜 그 많은 차 중에 하필이면 커피, 커피 중에서도 아메리카노인가? 에스프레소, 카프치노, 카파라떼, 카피모카 등 여러 종류가 있지만 나는 아메리카노가 좋다. 첨가물이 없이 단순하고 씁쓸한 맛이 좋기 때문이다. 커피는 내 일생의 동반자이다. 요새도 매일 커피를 즐기고 있다.
내가 좋아하는 커피는 설탕커피였다. 믹스커피가 출시되기 전에는 하얀 도자기 잔에 설탕 세 스푼에 인스턴트커피 한 스푼, 거기에 뜨거운 물 3/4컵 정도 부어서 타 마시는 맛이 좋았다. 커피 맛을 돋우기 위한 여러 가지 커피메이트가 있지만 별로 좋아하지 않았다. 나는 그저 정갈한 커피를 즐겼다. 요새는 설탕이 건강에 좋지 않다하여 커피메이커에서 원두커피를 내려 두고 조금씩 마신다.
내가 커피와 인연을 맺게 된 것은 군 생활에서였다. 군대에 입대하자 작전참모 당번병으로 차출되었다. 육군대령인 참모를 위하여 아침마다 커피 한잔에 토스토 한 조각을 대령해야 했다. 이때부터 나의 커피 끓이기 수련이 시작 되었다. 커피심부름을 2년 넘게 계속되는 동안 여러 가지 노하우가 쌓였다. 사람들 취향에 따라 설탕의 양을 늘리기도 하고 줄이기도 한다. 그에 따라 물의 양도 조절해야 커피 맛을 낼 수 있다. 설탕이 많을 때는 물을 좀 더 붓고. 설탕이 적을 때는 양을 줄여준다. 특별히 커피 맛을 내기 위하여 커피 잔을 미리 데워 놓았다가 사용기도 한다. 커피 잔은 내부가 백색인 것이 좋다. 백색 잔에 넣어야 갈색이 선명하여 색감이 좋아 보이기 때문이다.
내가 본격적으로 커피 맛을 알게 된 것은 직장생활에서 부터이다. 직장에서 담당업무가 주로 소와 함께하는 시험사업이었다. 아침 출근하면 먼저 소들의 상태부터 관찰했다. 겨울에는 축사에서 여름에는 목초지에서 소들과 씨름하기도 하였다. 추위 속에 한참 시달리고 나서 사무실로 들어와 마시는 커피 맛이 그만이었다.
달고 쓴 맛이 어우러진 따스한 액체가 목구멍을 타고 넘어가는 쾌감이 좋았다. 커피를 다 마신 후에도 커피 잔을 움켜쥐고 거기에 남아있는 따스한 온기를 즐겼다. 커피 잔 바닥에 남아있는 커피 흔적이 만들어 낸 무늬가 한 폭의 그림처럼 나의 시각을 유혹했다. 시각, 촉각, 미각을 동원하여 커피를 즐겼다.
나의 커피사랑은 도축장으로도 이어졌다. 실험재료를 얻기 위하여 도축장을 드나들었다. 소와 돼지들 사체가 주렁주렁 매달려 있는 사이를 비집고 다니며 도체(屠體)의 무게도 달고, 길이와 폭을 재었다. 때로 내장이 들어 있는 통을 휘저어 소와 돼지의 자궁과 난소도 찾아 헤매었다. 작업에 열중하다가 촉촉이 땀에 젖은 등허리를 펴고 이마의 땀을 훔치고 휴게실로 들어선다. 커피 잔을 들어 따스한 커피를 한 목음 하고 앞에 놓는다. 후련한 기분으로 무심히 커피 잔을 들여 보면 작업장의 잔영들이 커피 속에 어른 거렸다.
어쩌면 커피도 축산 문화의 일면을 내포하고 있다. 커피를 처음 발견한 것은 에디오피아의 양치는 목동이었다. 염소들이 붉은 열매를 따먹고 흥분하여 뛰어 다니는 것을 보고 신기하여 목동도 열매를 따 먹어 보았다. 그러자 그도 흥분하여 염소들과 함께 춤추게 되었다. 이 모습을 본 수도승이 붉은 열매 속에 악마가 들어 있을 지도 모른다고 생각하여 열매를 불속에 던져버렸다. 잠시 후 열매가 타면서 향기로운 냄새가 주변을 감쌌다. 커피가 음료로 탄생하게 된 일화이다. 커피는 악마의 전령이 아니고 신의 은총이 담긴 선물이었다. 소와 돼지 영혼들도 커피 향으로 위로를 받았으면 했다.
우리나라에 커피가 소개된 것은 고종황제가 아관파천 시 러시아 공사로부터 커피대접 받은 것이 처음이다. 일제 강점기에는 일본인들이 들여왔고, 6.25를 거치면서 미군들을 통하여 소개되었다. 1970년대에 이르러서야 우리나라에도 인스턴트커피가 보급되었다고 하는데 현재 우리나라 커피시장이 대단한 활황을 띠고 있다고 하니 격세지감을 느낀다.
나의 대학시절. 돈 한 푼 생기면 친구들과 짜장면 집을 찾는 것이 훨씬 큰 즐거움이 컸다. 시내에 다방들이 몇 곳 있었지만 그곳에 가본다는 것은 엄두도 못 내었다. 다방은 돈 많은 한량들이나 가서 아가씨들과 노닥거리는 곳 정도로 알았다. 당시에는 커피가 멋쟁이들이나 마시는 귀한 음료로 여겨졌다. 얼마나 귀했으면 담배공초 커피사건이 발생 되었을까? 다방손님들이 피우다 만 담배공초를 모아 커피를 제조하였다. 담배꽁초를 우려낸 물에 설탕을 타서 커피대신 내 놓은 일이 발생했다. 음습한 분위기를 찾아 간 손님들이 커피 맛인지 담배꽁초 맛인지 알 일이 없었다. 다방마담의 기발한 아이디어가 빛나던 시절이었다.
우여곡절을 거쳐 이제 누구나 커피를 즐길 수 있는 시대가 되었으니 자랑스러운 일이 아닐 수 없다. 믹서커피가 보급되면서 커피의 대중화에 큰 역할을 하지 않았나 생각한다. 휴대하기 편하니 일터에서 여행지에서 대중적인 인기를 끌고 있다. 식후 커피 마시기가 일상화되었다. 커피 종류도 많아졌다. 병 커피, 봉지커피, 분말커피, 원두커피. 그 외에 요상한 제품까지 등장했다. 커피 뽑는 방식도 여러 가지이고 거기에 딸린 기계까지 여러 가지다. 아이들이 여러 가지를 구입해 가져왔다.
내가 주로 사용하는 커피기구는 오래전에 구입한 독일제 커피제조기이다. 볶은 원두를 갈아서 필터에 넣어 내리면 된다. 진하게도 할 수 있고 연하도 할 수 있다. 아침이면 아내가 명령한다. “커피 한잔 합시다.” 커피를 끓이라는 뜻이다. 두말 않고 나는 원두분쇄기를 돌린다. “드르륵 드르륵“ 팔에 힘이 들어가고 원두 알이 갈리는 소리가 귀를 자극한다. 이윽고 커피가 내리며 그윽한 향이 풍겨온다. 컵에 커피를 따르며 색깔을 감상하고 입으로 맛을 음미한다. 나는 메일 커피를 끓이는 남자가 되었다. 그러면서 오감으로 커피를 즐기고 있으니 이것도 노년의 멋이 아니겠는가!
첫댓글 우리집 바리스타로 자처했더니, 번데기 앞에 주름잡는 신세가 되었습니다. 커피에 대한 다양하신 지식과 원두커피를 손수 내려서 사모님과 함께 하시는 모습이 떠오릅니다. 좋은 글 잘 읽었습니다. 감사합니다.
저도 가끔씩 원두커피를 내려서 마십니다. 원두커피가 다른 커피보다 몸에 좋다지만 맛 들인 믹스커피를 많이 선호합니다.
습관이 무섭습니다, 좋은 글 잘 읽었습니다.
커피 늦깎기인 제게는 다소 멀지만 가까워지는 느낌으로 잘 읽었습니다. 감사합니다. 최상순드림
저도 원두를 좋아했습니다. 건강 상의 이유로 커피를 가능하면 멀리하고 있지만 커피가 간절하게 생각날때는 원두를 아주 아주 연하게 내려 조금 마셔봅니다. 그리고 커피 향을 즐기지요. 매일 커피 끓이는 남자..커피숖의 간판에 달아도 어울리는 이름이겠습니다. 잘 읽었습니다.
커피와 함께한 연륜이 커피의 맛을 돋우고 시각, 촉각, 미각을 즐기는 단계까지 이르른 진정 멋있는 커피의 달인입니다.
글을 읽으니 한 잔의 커피가 생각납니다. 감사합니다.
찻집에서 제가 생강차할것인가 대추차할것인지 고민할때 선생님은 아메리카노로 고민없이 주문하시는 모습을 뵈며 커피메니아신것을 알았습니다.커피 내조하시는 남편 분 많으시네요. 보기 좋습니다 좋은 글 잘 읽었습니다
집에서 커피를 제조해서 마시는 선생님은 진정한 커피 매니아입니다. 커피의 매력과 우리나라에 들어온 이야기 등 많은 지식을 얻었습니다. 잘 읽었습니다.
키피 끊이는 남자는 사랑 받는 남자입니다. 다른 음식보다 비교적 단순하면서도 맛과 향으로 행복감을 선사할 수 있으니 말입니다. 커피의 역사에 대하여 다시 한번 배우며 은은한 아메리카노 향을 음미하며 잘 읽었습니다.
저는 아직도 믹스커피를 좋아합니다. 당뇨도 있다고 해서 필터로 내리는 커피를 먹기는 하는데 전에 하루에 두 세잔 먹던 커피를 내려먹는 커피는 한 잔 먹을까 말까 합니다. 집에는 믹스커피 재료는 없으니 밖에 나가서는 꼭 믹스커피를 먹습니다.앞으로 저도 순수한 커피 맛을 즐길까 합니다. 울 영감한테 상록방에 들어와서 남편분들의 커피 배달하는 아름다운 모습을 보여드리고 싶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