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1964년 9월에 태어났다.
여덟살이 되던 해인 1971년 3월에 국민학교에 입학했다.
거기서 동급생 친구들을 만났다.
나의 선택이 아니었다.
일종의 운명같은 '관계의 설정'이자 '맺어짐'이었다.
6년 후인 71년 3월에 농촌 면소재지에 딸랑 하나뿐인 조그만 중학교에 진학했다.
시커먼 교복에 머리를 빡빡 밀고 등교했다.
국민학교 세 곳에서 모여든 시골 중학교의 어린 학생들.
또 그렇게 내 의지와는 무관하게 3개반, 백팔십여 명의 남녀 동창생들이 생겼다.
축복이었다.
'竹馬故友'라 불러도 좋을만큼 순박하고 부끄럼 많던 시골 아이들이었다.
시간이 쏜살같이 흘렀다.
장정이 되어 군대에 갔다왔고, 캠퍼스를 떠나 사회에 진출했다.
결혼하고 애들 낳고 정신없이 살았다.
그렇게 삼십대 초중반이 되었을 때 문득 문득 초동친구들이 몹시도 그리웠다.
모임을 만들기로 했다.
고향 앞으로 도도하게 흐르던 큰 강의 이름을 따서 '錦江會'로 명명했다.
서울에서 가깝게 지내던 친구 10명이 뜻을 모았다.
그 중 8명이 국민학교 1학년 때 만났던 친구였고, 2명은 중학교 때 만났던 친구였다.
肝膽相照같은 규합이자 환상적인 의기투합이었다.
회칙도 만들었고 회비도 걷었다.
해마다 4차례씩 변함없이 만났고 애경사도 철저하게 챙겼다.
자녀들의 학제(초,중,고,대)가 바뀔 때마다 소정의 축하금을 건넸고, 결혼기념일 축하하기, 정기 산행과 트레킹, 가족동반 여행도 빼먹지 않았다.
그렇게 지난 이십여 년 간, 金石之交나 知己之友라는 말이 실감날 정도로 친밀하고 다정하게 지냈다.
끈끈한 우정 45년째.
금년 4월 초순에 봄맞이 여행을 제주도로 다녀왔다.
최근에 개통한 호남선 KTX를 타고 광주로 가서 1박을 한 다음 제주도로 날아갔다.
제주만의 멋진 풍광과 빼어난 경치를 다시 한번 가슴 속에 마음껏 퍼담았다.
그곳만의 맛있는 음식들 예컨대 오분자기, 제주 흑돼지, 전복 뚝배기, 성게 미역국, 싱싱한 횟감 등을 매 끼니 때마다 맛있게 먹고 흠향했다.
올레길, 비자림 천년 숲길, 사려니 숲길 등에서 트레킹을 하며 제주의 독특한 자연을 만끽했다.
마냥 즐겁고 행복했다.
모두가 함께여서 더욱 복된 시간이었다.
우리는 거의 반백 년이나 더불어 살았던 친구 사이다.
그런 벗들이기에 어디를 가고, 무엇을 구경하는 것이 뭐 그리 중요하겠는가?
진정으로 가치있는 것은 우리들 각자의 삶이 제 아무리 분주할지라도 서로가 지향하는 인생 테마가 비슷하다는 점이었다.
그것은 바로 '사람'이었다.
사람 사는 세상, 사람을 위한, 사람에 의한 인생여정 함께 엮기였다.
과해서 넘치지도 않았고, 부족하여 심한 결핍을 초래하지도 않았다.
금강회 친구들은 정말로 그리 살았고 그리 처신했다.
그랬으므로 45년이란 장구한 성상속에서도 단 한 번이라도 낯을 붉히거나 갈등한 적이 없었다.
공식적으로 모임이 출범한지도 어느새 이십여 년이 훌쩍 흘렀지만 문제가 불거졌거나 불협화음이 야기된 적도 없었다.
과거보다는 미래를 얘기했고, 아전인수보다는 배려를 생각했다.
그렇게 수많은 시간들이 우정이란 큰 강물속에 소리없이 녹아들었다.
그런 토대 위에서 따뜻하고 환한 웃음꽃으로 피어난 우리들만의 소중한 우정이었다.
난 금강회가 참 좋다.
개인적으로 삼십 개가 넘는 모임이 있지만 그 중에서도 몇 손가락 안에 꼽을 수 있을 만큼 나에겐 절대적인 준거집단이자 마음의 안식처가 되고 있다.
옛말에 "당신 인생을 거울에 비춰보고 싶다면 오래된 친구의 얼굴을 보라"고 했다.
진리다.
세월이 흐를수록 가슴 깊이 긍정하지 않을 수 없는 말이다.
사람이 아름다운 이유가 뭔지 아는가?
그건 다른 이를 위해 희생, 헌신, 배려를 할 줄 알기 때문이다.
또한 그런 지경은 사람을 사랑하는 순수한 마음에서 말미암기 때문이다.
모두가 지천명을 넘긴 친구들.
어느새 우리가 관포지교(管鮑之交)를 떠나 백아절현(伯牙絶絃)을 생각하게 되는 나이가 되었다.
다행히 모두가 건강하고 평안하여 감사하지만 내일 일은 누구도 모른다.
미래에 어느날 불연듯 伯牙絶絃이 목전에 닥친다해도 한평생 더 사랑했고, 더 나눴으며 서로를 위해 더 헌신했기에 밀려드는 후회는 그리 크지 않을 듯하다.
초동친구들을 생각하면 부뚜막, 부지깽이, 엄마, 홀태, 고무신, 여물, 용수, 방패연, 썰매, 삘기같은 먼옛날 고향의 풋풋한 이미지들이 떠오른다.
진정으로 살갑고 정겹다.
고맙기 그지 없다.
그런 소중한 벗들에게 이 지면을 빌려 다시 한번 깊은 감사와 사랑을 전하고 싶다.
꼬부랑 할아버지가 되어서도 서로를 향해 항상 호방하게 웃으며 생의 여정을 함께 걸어 갈 나의 竹馬故友들.
가슴이 따뜻한 그런 친구들이 있어 지금까지도 행복했고 앞으로도 그럴 것이라 믿는다.
초동친구들 한 사람 한 사람과 각자의 가정에 주님의 가호와 은총이 늘 충만하기를 기도해 본다.
"함께여서 고맙습니다"
"귀한 친구들, 사랑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