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생지몽(盧生之夢)
盧 :밥그릇 로
生 : 날 생
之 : 갈 지
夢 : 꿈 몽
인생과 영화의 덧없음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입니다.
심기제(沈旣濟)의
<침중기(枕中記)>에 나오는 말로,
노생(盧生)이 한단(邯鄲) 땅에서
여옹(呂翁)의 베개를 빌려서 잠을 자며
80년간의 영화로운 꿈을 꾸었는데,
깨고 보니 주모가 누른 조밥을 짓는 사이였다는
고사에서 유래한 말입니다.당나라 현종(玄宗) 때,
도사 여옹은 한단(邯鄲)으로 가는 도중
주막에서 쉬다가 노생이라는 젊은이를 만납니다.
그는 산동(山東)에 사는데,
아무리 애를 써도 가난을 면치 못하고 산다며
신세한탄을 하고는 졸기 시작했다.
이에 여옹이 보따리 속에서
양쪽으로 구멍이 뚫린 도자기 베개를 꺼내 주자
노생은 그것을 베고 잠이 듭니다.노생이 꿈속에서 점점 커지는
베개 구멍으로 들어가 보니,
고래 등 같은 기와집이 있었다.
노생은 최씨 명문가인 그 집 딸과 혼인하고
과거에 급제한 뒤 벼슬길에 나아가
순조롭게 승진하여 마침내 재상이 되었다.
그 후 10년간 명재상으로 이름이 높았으나,
어느 날 갑자기 역적으로 몰려
잡혀가게 된다.노생은 포박당하며
“내 고향 산동에서 농사나 지으면서 살았으면
이런 억울한 누명은 쓰지 않았을 텐데,
무엇 때문에 벼슬길에 나갔던가.
그 옛날 누더기를 걸치고
한단의 거리를 거닐던 때가 그립구나!”라고 말하며
자결하려 했다.
하지만 아내와 아들의 만류로
뜻을 이루지 못했다.
다행히 사형은 면하고
변방으로 유배되었다가
수년 후 모함이었음이 밝혀져
다시 재상의 자리에 오르게 되었다.그 후 노생은 모두 고관이 된 아들 다섯과
열 명의 손자를 거느리고 행복하게 살다가
80세의 나이로 세상을 마친다.
그런데 노생이 기지개를 켜며
깨어 보니 짧은 꿈이었다.
옆에는 노옹이 앉아 있었고,
주막집 주인은 그때까지
메조 밥을 짓고 있었는데,
아직 뜸이 들지 않았을 정도의
짧은 동안의 꿈이었다.
노생을 바라보고 있던 여옹은
“인생은 다 그런 것이라네.”라고
웃으며 말한다.노생은 한바탕 꿈으로
온갖 영욕과 부귀와 죽음까지도
다 겪게 해서 부질없는 욕망을 막아준
여옹의 가르침에 머리 숙여
감사하고 한단을 떠난다.
이렇게 덧없는 일생을 비유한 것을
노생지몽이라 하게 된 것이지요.
어떻습니까?
인생이란 낯선 길을 가면서
덧셈만을 고집하다 보면
때로는 부작용을 만나기 쉽습니다.그 부작용을 없애는 해독제가 뺄셈입니다.
살다 보면 나누어야 하는 순간이 오고,
버려야 하는 순간이 옵니다.
또 빼앗기는 순간도 찾아오기 마련이지요.
뺄셈의 미학은
조건 없이 버리고 내려놓는 것이 아닌가요?
그래야 신관이 편해집니다.
버려야 할 것을 버리지 못하고,
내려놓아야 할 것을 내려놓지 못하면
고통이 찾아오고,
그것은 삶의 암 덩어리가 되어
결국 치명적인 병에 걸릴 수도 있습니다.
그리고 하나뿐인 인생에서 욕망의 병,
허영의 병에 시달리고 마는 것입니다.인생은 노생지몽입니다.
버리고 비우는 수행을 통해
영생을 잘 사는 길을 모색하는 것이
인생을 가장 잘 사는 사람입니다.
극하면 변하는 것이 천지의 이치입니다.
개인이나 가정이나 단체나 국가나
모두 그 왕성할 때를 조심하여야 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잘 참기가 어렵습니다.
그 인욕(忍辱)을 견디고 또 견디면
영단(靈丹)이 모입니다.마음을 허공 같이 비우는
공부를 꾸준히 하기가 어렵습니다.
하지만 하고 또 하면 심력(心力)이 쌓여
마음을 자유자재로 쓸 수 있는 것입니다.
부귀, 영화, 권력 모든 것이
노생지몽에 지나지 않습니다.
우리 마음을 비우는 공부로
영생의 영화(榮華) 누려 보면 어떨까요?
-옮긴 글-
출처: 바람에 띄운 그리움 원문보기 글쓴이: 학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