머슴살이하듯 제 뜻은 뒷전에 밀쳐두고 세월에 휘둘리며 살다 보니 청춘은 지나가고 나이는 자꾸 먹는데 벌어놓은
것도 없고 번듯한 직장이나 직업은 없으니 벌이도 시원치 않다. 갑은 막막한 제 처지와 속내를 직접 토로하지 않고
슬쩍 빗대어 드러낸다. 그 사정은 이렇다. 갑은 막힌 하수도를 뚫은 노임 4만 원을 영진설비 아저씨에게 갖다
주라는 아내의 명을 받고 집을 나선다. 가다가 비를 만났다. 갑은 럭키슈퍼 앞에서 비를 피하다가 그대로
주저앉아 병맥주를 마셨다. 두 번째로 길을 나섰다. 화원 앞을 지나다가 향에 취해 ‘자스민’ 한 그루를 샀다.
영진설비에 4만 원 갖다 주는 하찮은 일조차 제대로 수행하지 못하는 갑을 대책 없는 사람이라고
너무 몰아세우지 말자. 갑의 무능을 탓하는 일은 어려운 일이 아니다. 갑이 무능하다 해도 그이가 누구의 남편,
누구의 아버지로서 꿋꿋하게 이 세상을 견디고 살아내는 일은 심오한 일이다. 왜냐하면 누구에게나 “
삶은 전대미문의 존재론적 사건”(베르트랑 베르줄리, 《내가 행복해야만 하는 이유》)이기 때문이다.
하수도가 막히고, 사람을 불러 막힌 하수도를 뚫는다. 뒤늦게 그 노임을 갖다 주는 일, 맥주 몇 병의 유혹에
지고, ‘자스민’의 향에 취해 노임으로 지불할 4만 원을 써버리는 일 따위는 다 하찮고 범속한 삶에 속한다.
갑은 이 범속한 삶을 구체적 실존 안에서 몸으로 찾아내고 그 실감을 말한다. 이 삶은 범속 할 수는 있겠지만
공허하지는 않다. 삶의 아기자기한 행복들, 불편과 결핍을 넘어서려는 분투, 악에 오염되지 않은 사람들의
덕성은 시의 문면 밖으로 비켜나 있지만 그것들이 마음을 훈훈하게 만드는 삶의 실팍한 내역이다.
바로 그것들 때문에 조화와 찢김 사이에 걸쳐 있는 이 삶은 살아볼 만한 것이 되는 것이다.
아직 뚫지 못한 그 무엇이 있기에
오늘도 숲속 깊은 곳에서 쑥꾹새는 울고 비는 내리고
홀로 향기 잃은 나무 한 그루 문 밖에 섰나
살다 보면 천둥과 번개가 치고, 서리와 우박이 내리는 날도 있다. 그럴 때는 “산서리 맵차거든
풀 속에 얼굴 묻고 / 물여울 모질거든 바위 뒤에 붙으라네”(신경림, 〈목계장터〉)라는 시구의 지혜를
빌릴 필요가 있다. 살다 보면 무언가 막히는 일이 없지 않을 것이다. 막혀서 생긴 불편과 심란함은 막힌 것을
기어코 뚫어야만 해소가 된다. “아직 뚫지 못한” 그 무엇이 있어 쑥꾹새는 울고, 비는 내리고,
향기 잃은 나무는 문 밖에 서 있다. 쑥꾹새, 비, 향기 잃은 나무는 갑이다. 갑의 살림은 팍팍하나
거기에 아등바등 매달려 있지 않고, 그 가난을 관조하고 즐기는 한가로움과 존재의 충일이 느껴진다.
내겐 아직 멀고 먼
영진설비 돈 갖다 주기
아마도 갑은 영진설비에 밀린 노임을 갖다 주지 못한 모양이다. 그렇다고 너무 자책하지는 말자. 그건 사람과
술과 나무를 좋아하는 갑에게 쉬운 일이 아니다. 진부한 악에 기어코 빠지지 않은 갑과 을은 저마다
현실의 토대에 뿌리를 내린 귀한 사람꽃이다. 이 꽃은 저마다의 방식으로 향기를 풀어낸다.
궁지에 몰리더라도 그 어려움을 꿋꿋하게 감내하며 결코 야수로 변하지 않는 이 꽃들 사이에 사는 것은
고마운 일이다.
박철(1960 ~ ) 은 서울에서 태어났다. . 단국대학교 국문과 1987년 <창작과비평>에 〈김포〉 외 시편들을 발표하면 문단에 나왔다. 그동안 시집으로 《김포행 막차》 《밤거리의 갑과 을》 《새의 전부》 《너무 멀리 걸어왔다》 《영진설비 돈 갖다 주기》 《험준한 사랑》
---------------------------------------
시 해설
김익경 - 오지여행
걸을 수 없었다
어깨가 깨져
우리는 서로의 정강이를 찼다
헬러윈 데이
머리는 두고 머리카락만 가지고 가는
펜티만 걸치고 가는
벨트를 풀고
챔피언만 가는 나이트가 있다
부비부비
그녀의 뒤에서서
척추는 있고 등이 없는 나는
배는 없고 허리만 있는
그녀가 머리를 찢고 있다
허벅지는 있고 엉덩이가 없는
귀는 없고 달팽이관만 있는
두덩만 있고 털은 없는
발가락을 두고 발바닥만 가지고 간다
손은 두고손가락만 가지고 간다
기린이 가는 나이트크럽이 있다
라오스에는
김익경 시인: 2011 동리목월로 등단
울산 문인협회 회원
시 감상: : 그는 도대체 무슨 말을 하고 있는 걸까
정신병리학적인 아노미 상태도 아닐테고, 아마도 전통적인 보법에
익숙한 독자들로서는 의아할 것이다.
그렇다고 무슨 자동기술의 슈르레알리즘 시도 아니고.
마조히즘도 새디즘도 육체의 재구성도 아닌 전통 서정시에 익숙한 상궤적 보법의 틀을 완전히 벗어난 ,
검언희 황병승 등 미래파 시인 집단에서도 한 갈래 더 진화된
괴기스런 생면부지의 문법으로 시단에 등장한......
제목부터가 요령부득. 오지 여행
협소하기 짝이 없는 ,쉽게 입에 올릴 수조차 없는 금기의 성역 ???.
하지만 시를 읽고 또 읽어봐도 제목과의 연상작용은 물론 유기적인 연결조차 쉽지 않다
제목에 담긴 수수꼐끼를 간신히 풀고보면
시인은 광대역LTE의 호방한 대륙기질로 나아가지 못하고
좌우로 나뉘어 집안 싸움이나 일삼는 내부 분열의 옹색하기 짝이 없는 국내 현실을
신랄한 욕설의 은유로 비웃으며 비아냥거리고 있는 것이다
거듭거듭 해서 정독을 하고 나면 ‘ 아하’ 놀라움에 무릎을 치게 된다.
시인은 자신만의 특이한 보법으로 세상을 스켄해 내고있다
...걸을 수 없었다./ 어깨가 깨져/ 우리는 서로의 정강이를 찼다
이야말로 생존경쟁이라는 이름의 우리가 살아가는 공동체의 모습이 아닌가
싸우기 위해 챔피언만 가는 나이트
만인의 만인에 의한 만인의 투쟁의 장으로 변질돼 버린,
이미 이 세상은 공존의 질서란 사라져 버린 반향 없는 메아리
척추는 있고.... 굽히지 않는 개인이기주의 ...등이 없는 나는 ....?. 누구에게 등을 빌려주는 보편적 위로는 존재하지 않는다.
배는 없고/ 허리만 있는... 복심腹心은 없고 에로틱한 허리만 휘두르는
그녀가 / 머리를 찢고 있다.....그녀가 나를 혼란스럽게 하고 있다 이게 사랑일까 엔조이일까?
사방천지에서 사랑 사랑 사랑 한 여름 매미처럼 소란스럽ㅂ게 유행가들을 틀어대지만
부딪는 허벅지의 공격적 직진만 있는... 허벅지는 있고 /엉덩이가 없는
엉덩이로 감싸 안는 방탄의 넉넉한 사랑은 존재하지 않는
듣는 귀는 없고/ 달팽이관만 있는 ..... 바벨탑을 세우려는 제 주장들만 난무하는
귀는 장식품으로 달고 다니는 세상
두덩만 있고 / 털은 없는
엔조이의 두덩만 있고 그 사랑을 상처 안 나게 마사지해주는 털은 없는~
考慮의 발가락은 없고 노려보듯 눈 똑바로 뜨고 발바닥을
또박또박 일수도장처럼 찍으며 직진하는 인파의 물결
잡아줄 손은 없고 손가락만 있는
검은 색과 흰색의 흑백논리와 불신이 난무하는 혼조混調의 부조화.
흑백의 선명한 무늬를 새긴 기린이 가는 나이트클럽이 있다.
라오스에는 / 기린이 가는 나이트 클럽이~
라오스에 가면 공존의 질서를 살고 있을
초식 동물에게서나 그 해법을 찾아낼 수 있을까
생각 해보면 이상이 대중의 불안을 ‘오감도’라는
생소한 선지자적 시각으로 한 세기 앞서 발표해 논란을 빚었듯.
이 천재적 시인은 영혼없는 에로틱하고 적나라한 겉그림 아래
총체적 불신과 분열상을 속그림으로 슬쩍 깔아두고 있다. 류윤모 시인
내리는 눈발 속에서 / 서정주 (1915~2000)
괜, 찬, 타, ‥‥‥
괜, 찬, 타, ‥‥‥
괜, 찬, 타, ‥‥‥
괜, 찬, 타, ‥‥‥
수부룩이 내려오는 눈발속에서는
까투리 메추래기 새끼들도 깃들이어 오는 소리.‥‥‥
괜찬타, ‥‥‥ 괜찬타, ‥‥‥ 괜찬타, ‥‥‥ 괜찬타, ‥‥‥
폭으은히 내려오는 눈발속에서는
낯이 붉은 處女아이들도 깃들이어 오는 소리. ‥‥‥
울고
웃고
수구리고
새파라니 얼어서
運命들이 모두 다 안끼어 드는 소리. ‥‥‥
큰놈에겐 큰눈물 자죽, 작은놈에겐 작은 웃음 흔적,
큰이얘기 작은이얘기들이 오부록이 도란그리며 안끼어 오는
소리. ‥‥‥
괜찬타, ‥‥‥
괜찬타, ‥‥‥
괜찬타, ‥‥‥
괜찬타, ‥‥‥
끊임없이 내리는 눈발속에서는
山도 山도 靑山도 안끼어 드는 소리 ‥‥‥
* 결코 본질일 수 없을 친일이니 반일이니하는 논쟁을 걷어내고 보면
미당 시선집을 통과하지 않고 대한민국시인 중에
제대로 된 서정시를 쓰는 시인이 몇 있을까
미당의 골짜기는 실로 넓ㄷ고 깊다 아니할 수 없다
시의 1인 정부로 일컬어지던 당대의 시성이 문법, 맞춤법ㄴ을 몰라서
비문법이고 어법 파괴적인 괜찬타 를ㄹ 남발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미당 시 전반을 관통하는 질마재 신화
5음 음계 중 가장 높은 음으로 시작하여 차차 낮아지는
무속음악에 흔히 쓰이는 주술적 의미의
리드 ㅁ을 요소요소 배치하여
눈 내리는 풍경을
미컬한 감각적인 음악성으로 변주해내고 자
치밀한 계산으로 의도햇을 터
그렇다면 군데 군데 찍힌 쉼표와 말줄임ㅍ들은 또 뭔가
아마도 내리다 잠시 멎은 쉼표의 설경과
다시 내리는 눈을 바라보는
말없는 응시의 말줄임표들을 군데군데 배치하여
복층 구조의
살이의 서사와 버무려
머츰하게 쉬다가
다시 내리는 눈을 ......시각화 해낸것은 아닐지 ???
서사 전반의 구조적인 맥락은 육신은 헐벗고 굶주려도
눈 내리는 푸근한 풍경 속에서 괜찬타 , 괜찬타----자위하며
정신 만은 가난을 잠시나마 잊는
위로를 함의하는 것이다
내리는 눈발 의 시간속에서는
크고 작은 근심도
산같은 고난도 비껴서 있다는 ...
요즘 신춘 시의 경향- .1
신춘문예 시은 기성의 문법에 익숙한 시각으로보면
왜 낯설까
신춘은 한 시대의 고만고만한 , 이미 익숙한 기성 아류의 시는 뽑지 않는다
문학적 상투성을 답습하지 않는 신상 론칭이 신춘문예 아니겠는가
가요계 역시 아무리 가창력이 뛰어나도,
이미 존재하는 익숙한 가수는 2인이 필요치 않다
오늘날 디지털 문명 사회에서
60 년대 문법의 잠 때리게 하는 음풍농월로
차도남 차도녀들의 감성적 안테나를 자극해 반향을 일으킬 수 있을까
시대의 변천에 따라 시단에도 새로운 피를 수혈할 , 파격의 t신예가 필요한 것이다
요즘은 신춘에 시와 산문의 경계를 허문 시가 당선작으로 왕왕 등장한다. 시와 산문이라는 벽을 트고
格을 파한 파격의 등장이라고 보면 된다
시골 동네에 늘 익숙한 아이들만 오 간다면 아무도 주목하지 않을 것이다
'야야 너 어서왔노??`
낯선 아이가 나타나면 마을 사람들의 화제에 오르고 한번 볼거 두번 눈 여겨보게되고주목을 받는다
하이브리드 자동차는 기존 시장의 단일 연료 소모 방식과 다른
연료 소모를 줄이는 신 개념의 ,
주행 과 정지 상태를 자체 바테리에서 생산하는 전기와 휘발유를 번갈아 써서 유지하는구동 방식
요즘은 시단에도 탈경계 탈중심의 변태 교잡종인 낯선 하이브리드 시가 등장해 눈길을 끌고 있다
두 개의 이미지 혼용으로 서사를 이끌어내는 ...
오남구/ 신발.
정육점 갈고리에 걸린 생고기 가죽과 가족
언어 유사성의
하이브리드 이미지로 출발
내 신발은 260 미리
아내의 신발은 235
아들은 신발의 나와같은 260 미리
소 돼지 각을 뜬 비계 덩어리가 주렁주렁 걸린 정육점과 \
현관 신발장(가죽 정육점?)에 진열된
신발들이라는 이미지가 대비되며
가족이라는 매개로 결합해
동질성을 이루는
궁극적으로 신발과 생고기 껍데기의 본질은 가죽이고
가죽과 가족이라는, 유사성의 언어 유희로 발차해
시의 광맥 속을 달리는 이미지 혼용의 하이브리드 시
- 엄지족이라 불리는 문자 세대는
언어 희롱의 잔재미와 재치있는 소구로
무거운 현실도피의 깃털같은 가벼움에 눈돌리는 , 손 빠른 문자 주고 받기에 익숙한 취향
쉰세대를 제칠 이 신예들의 시단 진입은 곧 미래 시단을 선도해갈
앙팡 테리블 등장의 예고편 아니겟는가- 류윤
--
에문: 침대 위에서 비가 내리고 있었다 나는 새로 태어났다 알 수 없는 일들이 일어난다 비밀의 막은 투명하다 비가 올 때는 벌들이 쉬고 있다 벌들이 날 때는 비가 그친다 이것은 구름을 번역하다 생긴 나머지 값 비가시적 상상력 장미와 장마는 밀월관계다 B를 공유한다
벌레를 한사코 벌래라고 적던 남자를 알고 있다 우리는 침대 위에서 부리를 비비며 그를 비웃었지만 우리의 비밀이 罰來 같았다는 말은 하지 않았다 침대는 죄 많은 사람을 태우고 떠오른다 목매단 사람들이 소리를 지르며 악보를 완성한다
영혼의 벗은 몸이지 인간의 참다운 비행은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것 영혼을 벗은 몸이지
나는 버터를 볶아 루를 만들었다 이것은 구름을 재현하는 사고실험 가시라고 했더니 혀 밑에 장미가 가득 피었다 아궁이 속의 소년들이 울면서 루를 태웠고 밤이 부엌에서부터 왔다
벌들은 주위를 맴돌며 날개를 비빈다 퍼즐, 퍼즐 즐거운 미로
카세트테이프의 뒷면에는 벌이거나 비이거나 벼랑 위의 보풀이거나 비참한 전생의 부레, 부패한 보름달과 검은 불에 익힌 빵이 들어 있다 노래를 듣는 동안은 B를 피할 길이 없다 불 안에서 불안참기 나는 이 노래를 태우고 있으니 무섭지 않다 입속에 벌을 한가득 물고
부유한 배교자들 뒤로 사교적인 사제들 버드나무 속에는 버드 버드 그러나 그러나 비가 그치면 유리병처럼 햇빛이 떨어지고 무지개를 발음하기 위해 피는 더 붉어진다
-「B」 전문
"장미와 장마의 밀월관계"는 "비가시적 상상력"을 거치며 발견되었다. 그것들은 벌(Bee)과 비(雨), 즉 "B를 공유"한다. 비와 벌이 B라는 하나의 청각 이미지 안으로 귀속될 때, 개념적으로 벌과 비를 거느리는 '장미'와 '장마'의 밀월관계가 완성된다. 문자로 구별되는 벌과 비를 비가시적 상상력을 통해 동일한 것으로 취급해야만 밀월관계가 이루어진다. '비(B)가시적 상상력'은 곧 시각적 기호 너머에 존재하는 물리적 음파를 포착하는 감각이다. 그런 점에서 "벌레를 한사코 벌래라고 적던 남자"는 흥미롭다.
나의 기억은 폐지와 의류, 쇠붙이로 분류되고 유리병과 플라스틱으로 재활용되는데 분리수거는 일주일에 한번 토요일, 토요일을 끝없이 중얼댔어
나는 이 풍경에 휘감기고 뒤섞이고 흩날렸지 비바람에 흩어지고 폭설에 휩쓸리며 악천후의 후일담으로 남겨진 것이라
컨테이너에 말라붙은 칡덩굴처럼 전봇대 귀퉁이의 입간판처럼
_계간 《사이펀》 2022년 겨울발표
_오정국 시인 / 1956년 경북 영양 출생. 중앙대 문예창작학과, 동 대학원 문예창작학과 졸업. 1988년 《현대문학》 등단. 시집 『저녁이면 블랙홀 속으로』 『모래무덤』 『내가 밀어낸 물결』 『멀리서 오는 것들』 『파묻힌 얼굴』 『눈먼 자의 동쪽』 『재의 얼굴로 지나가다』, 시론집 『현대시 창작시론: 보들레르에서 네루다까지』 『야생의 시학』 등. 문화일보 문화부장, 한서대 미디어문예창작학과 교수 역임.
류윤
댓글1추천해요 재의 水요일은 부활 전 사순 시기, 꽃과 나무와 흙의 잠을 뒤척이는... 숨이 차오르도록 헐 왜 싹이 안 틀까, 할은 불가의 용어로 깨침 , 깨쳤다는 건 부활의 전조? 아니면 헐은 대략난감? 할은 + 할 ?. 씨앗이 금이가며 약동하는 생명의 노래. 드디어 얼어붙은 땅의 비번이 풀리면서. 진흙바닥을 뒹굴며 좋아라!! 춤추던 그린벨트의 기억력이 복원 되는 흙의 요일, , 쇠붙이 프라스틱의 인조와 녹색의 피조로 분리 수거되는 土요일은 반휴가 아닌 흙의 요일, 허접한 쓰레기들이 해일처럼 휩쓸고 지나간 자리가 예감되는 세기말 .. 신음처럼 土요일 土요일 생명이 약동하는 기름진 흙의 복원을 꿈꾸는 시인의 경종..한마디로 쓰레기 함부로 버리지 마라 고 쉽게 말하면 될것을 푸른 별의종말? 글쎄!! .
(시인과 떠나는 감성 여행)유현숙 시인- 외치의 혀
시나무
추천 0
조회 183
17.02.13 09:38
댓글 0
북마크
기능 더보기
게시글 본문내용
외치
유현숙
1
청동도끼와 돌촉을 멘 남자가 집을 나섰다
협곡으로 들어간 남자는 돌아오지 않았고 침엽수림 아래에서 목 긴 짐승이 오래 우는 밤
나는 숨죽이고 불면했다
터진 손으로 부싯돌을 치는 동안 지축이 기울었고 나무는 뿌리째 뽑혔고
눈 속에 파묻혔던 남자가 게놈분석으로 돌아왔다
눈두덩이가 패이고 붉고 서늘하다
갈비뼈 사이에서 물 흐르는 소리 듣는다 남자를 재웠던 내가 흘린 물소리다
잠 든 동안 남자는 무슨 꿈을 복제했는지 별 조각 같은 아이들과 꽃잎처럼 흩어지는 手話와 짐승처럼 허기진 내 언어를 만났는지
윗 이빨에 눌린 혀끝에 눈물 한 점이 얼어 붙어있다
눈이 녹는 동안 새가 우는 동안 그런 만 년 동안
그리웠던 것은 마른 살갗과 살갗이 주고받은 이야기다
2
젊은 머리칼을 날리며 집을 나선 당신은 아직 돌아오지 못하는지 외진 곡벽(谷壁)에 기대어 서서
여전히 궁벽(窮僻)을 꿈꾸는지
나는 지금 어느 골짝의 만년빙에 누워 등이 얼었는지
3
외치는 오래됐고 외치는 낡았고 외치는 헐었고 그리고
말랐다, 혀는 여전히 젖어 있다
*Oetzi : 1991년 북부 알프스에서 발견된 5,300년 된 미라
유현숙 시인: 경남 거창 생. 2003년 『문학 선』 신인상을 받으며 작품 활동. 2009년 한국문화예술위원회 창작기금 수혜.
----------------------
여행노트; 위의 시를 관통하는 메시지는 기다림이 아니겟는가.
어쩌면 인간의 생 자체가 무수한 기다림의 연속.
5300년전 청동도끼와 돌촉을 메고 수렵을 떠난 사내를 하염없이 기다리는 나,
오늘을 살아가는 나,
의 기다림은 게놈분석을 해 보면 동일 인물이라는 ....
이와 같이 인류의 역사에서 기다림은 태생적이며 생래적인 것.
기다림의 연속이고 기다리고 기다리고 기다리다보면
어느새 나남없이 늙고 병들어 무릎을 모으고 죽음이나 기다리는 것.
문학 또한 동지달 /기나긴밤을/한허리 베여내여
춘풍이불아래/서리서리넣었다가
어른님 오시는날밤이어든/굽이굽이펴리라(청구영언)
눈물 짓는 황진이의 막막한 기다림.
견우와 직녀의, 칠석날이면 말보다 눈물이 앞서는 격절의 만남도 기다림의 전래 설화,
춘향전의 주조도 기다림이며 게오르규의 '25시'도
기구한 기다림을 소설화한, 전쟁이 파생시킨 파란만장한 인생을 그려낸 것.
시인은 연륜과 내공이 쌓여서야 비로소 환하게 눈이 열려 기다림이 곧 인생전반을 꿰뚫는
핵심 포인트라는 것을 갈파해 낸 것이다 .
패를 까고 까 보아도 별것도 없는 갑남을녀들의 허무한 인생.
강퍅한 세월이 우리의 볼 붉은 소년도 꽃같은 소녀도 어김없이 앗아가버리고
밭고랑같은 첩첩 주름을 만들어 눈두덩을 우물처럼 깊게 파버리지만
기다림마저 없다면 꾸어보고 말고 할 꿈도 희망도 사라지는 것.
희망과 절망은 등을 맞댄 쌍생아. 내년이면 나아지겟지 내 후년이면, ....
그래도 기다림이 있기에 모래바람 부는 사막을 걸어가는 낙타처럼 인생을 허덕이며 살아내는 것.
체온을 잃은 외치의 몸뚱이는 낡고 헐고 메말랏지만 외치의 혀는 미이라가 되어서도
까마득한 반 만년 세월, 만나 부둥켜안고 해야할 말까지 말려 붙이는 것이 아닌,
결코 포기할 수 없는 본능을 간직한 채 냉동이 풀리자 다시금 기억 재생으로 축축히 젖어 듦에
기다림이란 알파에서 오메가까지 끝도없는 현재 진행형 아니겟는가, 하는
웅숭 깊은 함의를 던져오고 있는 것이다. 류윤모 시인
외치의 혀/ 유현숙 시인 - 류윤모 시인께서 제 시 <외치>를 읽고 쓴 감상이다. 그렇다. 생은 기다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