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급, 소외, 차별
제프리 디스티 크로익스 외 3명
많은 사람들은 여성 차별, 성소수자 차별, 인종차별 등 사회의 한 부문에서 벌어지는 차별이 계급 착취와 아무 관련이 없다고 생각하지만 『계급 소외 차별』은 바로 이런 생각에 도전하며 마르크스주의적 분석을 바탕으로 소외와 차별, 착취가 밀접하게 연관돼 있음을 설명한다. 계급, 소외, 차별이 무엇이고 왜 생겨났는지, 어떻게 없앨 수 있는지 등은 우리 사회를 이해하고 더 나은 미래를 만들기 위한 중요한 물음이다. 이 책은 이런 물음에 명쾌한 답변을 제시할 뿐 아니라 이런 현상이 자본주의 체제와 어떤 관련이 있는지를 마르크스주의적 관점에서 설명한다.
우리가 사는 세계는 과거 사회에서는 상상조차 할 수 없었던 기술 진보를 이룩했다. 지금은 우주여행과 인터넷과 유전자 공학의 시대다. 그러나 우리 스스로 만들어 낸 힘 앞에서 이토록 무력감을 느낀 적도 없다. 전에는 우리의 노동 생산물이 우리의 존재 자체를 위협한 적이 없다. 지금은 핵 재앙과 지구 온난화와 무기 경쟁의 시대이기도 하다. 역사상 처음으로 인류 전체의 필요를 충족시키고 남을 만큼 생산할 수 있는데도 수많은 사람들이 빈곤으로 성장 장애를 겪고 질병으로 목숨을 잃는다. 우리는 자연을 통제할 힘이 있지만, 우리 사회의 특징은 불안정성이다. 경제 침체와 군사적 충돌이 마치 불가항력의 자연 재앙처럼 우리 삶을 파괴한다. 도시의 인구밀도가 높아질수록, 고독하게 외톨이로 사는 사람들도 늘어난다. 칼 마르크스는 이 체제가 아직 발흥기였을 때조차 이런 모순이 분명했다고 보았다. 그는 다음과 같이 지적했다.
한편, 과거 인간 역사의 시대에는 생각할 수도 없었던 산업과 과학의 힘이 인간의 삶에 나타났다. 다른 한편, 로마 제국의 공포를 능가하는 쇠퇴의 징후도 존재한다. 우리 시대에는 모든 것이 모순투성이처럼 보인다. 인간의 노동을 덜어 주고 생산성을 높여 주는 놀라운 힘을 가진 기계가 있는데도 우리는 아사와 과로를 목격한다. 부의 최신 원천이 빈곤의 원천으로 둔갑하는 것을 보면 귀신이 곡할 노릇이다. 예술의 성공은 개성을 상실한 대가처럼 보인다.
마르크스는 소외 이론을 발전시켜서, 사회를 지배하는 것처럼 보이는 비인격적 힘의 이면에 인간의 행동이 있음을 밝혀냈다. 마르크스는 우리가 사는 사회의 양상들이 우리와 무관하고 자연발생적인 것처럼 보이지만, 사실은 과거 인간 활동의 결과라는 것을 보여 줬다. 헝가리의 마르크스주의자 게오르크 루카치는 마르크스의 이론이 “고정적이고 비역사적이고 자연적인 것처럼 보이는 사회 제도의 겉모습을 해체해 버린다. 사회 제도의 역사적 기원을 밝혀내서, 사회 제도가 모든 점에서 역사에 종속돼 있으며 심지어 역사적으로 몰락하기도 한다는 것을 보여 준다”고 지적했다.
마르크스는 과거의 인간 행위가 현대 세계를 창출했다는 것뿐 아니라 인간의 행위가 자본주의의 모순이 없는 미래 세계를 만들 수 있다는 것도 보여 줬다. 마르크스는 유물론을 발전시켜, 인간이 사회에 의해 형성됐지만 그와 동시에 그 사회를 바꾸려고 행동할 수 있다는 것, 사람이 “결정된 세계”이자 “세계를 만들어 내는” 존재이기도 하다는 것을 보여 줬다. 자신의 선배 격인 헤겔이나 포이어바하와 달리, 마르크스는 소외의 근원이 심리나 종교가 아니라고 봤다. 마르크스는 소외가 물질세계에서 비롯한 것으로 이해했다. 소외는 통제력 상실, 특히 노동에 대한 통제력 상실을 뜻했다. 마르크스의 소외론에서 노동이 그토록 결정적 구실을 하는 까닭을 이해하려면 먼저 인간 본성에 대한 마르크스의 사상을 살펴봐야 한다.
마르크스는 인간 본성이 사회와 무관한 고정불변의 것이라는 상식에 반대했다. 그는 불변의 인간 본성처럼 보이는 많은 특징이 사실은 사회마다 매우 달랐음을 보여 줬다. 그러나 마르크스는 인간 본성이라는 개념 자체는 거부하지 않았다. 그는 인간이 자신의 필요를 충족시키기 위해 자연을 상대로 노동해야 한다는 것이야말로 모든 인간 사회의 변함없는 특징, 즉 “자연이 인간에게 부과한 영원한 조건”이라고 주장했다. 다른 동물들과 마찬가지로, 인간도 자연을 상대로 노동을 해야만 생존할 수 있다. 그러나 인간의 노동이 동물의 노동과 구별되는 까닭은 인간이 의식을 발전시켰기 때문이다. 마르크스가 《자본론》의 도입부에서 이 점을 묘사한 부분은 유명하다.
거미는 직조공이 하는 일과 비슷한 일을 하며, 꿀벌의 집은 많은 인간 건축가를 부끄럽게 한다. 그러나 가장 서투른 건축가라도 가장 훌륭한 꿀벌보다 뛰어난 점은, 집을 짓기 전에 이미 머리속에서 집을 짓고 있다는 것이다. 모든 노동과정의 끝에 얻는 결과물은 그 시초에 이미 노동자의 머리속에 들어 있는 것이다.
마르크스 사상에 대한 유용한 입문서인 《칼 마르크스를 어떻게 읽을 것인가》에서 에른스트 피셔도 인간 노동의 고유한 특징을 묘사했다. 피셔는 인간이 자연을 상대로 의식적으로 행동하므로 기존의 성과를 이용해서 자신에게 필요한 것들을 생산하는 새로운 방식을 개발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따라서 인간에게는 역사가 있지만 동물은 그렇지 않다. “동물의 본성은 영원한 반복이지만, 인간의 본성은 변형·발전·변화다.”
저자 제프리 디스티 크로익스(Geoffrey de Ste Croix)는 마르크스주의 관점에서 고대사를 연구한 역사학자로 런던대학교 정치경제대학과 옥스퍼드대학교 뉴칼리지에서 고대사를 가르쳤다. 1982년에는 The Class Struggle in the Ancient Greek World로 아이작도이처 기념상을 수상했다. 도이처 기념상은 트로츠키 전기 작가로 유명한 아이작도이처를 기념해 해마다 가장 훌륭하고 혁신적인 마르크스주의 신간에 수여하는 상이다.
공동저자 조셉 추나라(Joseph Choonara)는 영국 사회주의노동자당(SWP) 중앙위원이고 마르크스주의 이론지 《인터내셔널 소셜리즘》 편집위원이다. 국내에 소개된 책은 《자본주의 위기의 시대 왜 혁명인가》(공저, 책갈피), 《마르크스, 자본주의의 비밀을 밝히다》(책갈피), 《차베스와 베네수엘라 그리고 21세기의 혁명》(다함께)이 있다.
역시 공동저자인 주디 콕스(Judy Cox)는 영국의 사회주의자이고, 애비 바칸(Abbie Bakan)은 캐나다의 사회주의자이며, 실라 맥그리거(Sheila McGregor)는 영국 사회주의노동자당(SWP) 당원이고 여성 쟁점에 관한 여러 글을 썼다. 국제사회주의자들(IS)이 발행한 〈위민스 보이스〉의 편집자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