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 종일 비가 내리더니 아침엔 구름만 남기고 그쳐간다.
눈이 흐려 운동장을 한바퀴 돌 때엔 주변의 산들이 푸르고 하얀 구름이 물러나고
파랑의 하늘이 드러난다.
퇴근 후 바쁘게 옷을 갈아입고 읍을 지나 성삼재로 올라간다.
가로막을 올리며 주차하니 5시 40분이 다 되어간다.
구름이 많이 올랐지만 건너편 반야봉과 노고단 쪽은 파란 하늘도 보인다.
노고단까지 가는 길이 열리면 구름 속에 일몰을 볼 수 있을 듯하다.
안내소를 통과하는데 통제하는 직원은 없다.
부지런히 걷는다.
한 스님이 커버를 씌운 배낭을 매고 다리를 절며 오르고 있다.
추월해 바삐 걷는다.
무넹기까지 20분이 지나고 대피소 앞 돌계단 길 앞에서 바위 위의 폭포 사진을 찍고
대피소에 닿으니 6시 5분을 지난다. 30분이 다 안되어 잘 올라왔다.
노고단 전망대가 올려다 보이게 훤히 열려 직원의 눈치를 보며
매점 앞을 지나는데 젊은 직원이 어디가느냐고 한다.
노고단 고개까지만 얼른 다녀오겠다고 하니 보시다시피 이미 닫혔노라고 한다.
살짝 다녀 오면 안되냐니 CCTV가 다 보고 있노라고한다.
화도 나려하고 아쉽지만 군소리 않고 취사샂 안에 들어가 수도꼭지에서
물을 마시고 한병 담아 나온다.
장마나 호우 후엔 물을 마시는데 주의하라는 경고문을 무시한다.
취사장 앞 벤치엔 중년 여성 셋이서 삼겹살을 굽고 상을 차리고 있다.
걸음을 빨리 해 다시 길을 내려와 무넹기 쪽으로 걷는다.
화엄사골 내려가는 조망대는 하얀 구름에 쌓여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다.
살그머니 통제선 옆을 지나 카메라를 피해 옆길로 돌아간다.
숲은 안개에 쌓여있다.
숲을 벗어나 풀밭을 지나 종석대로 오른다.
꼬리진달래가 조그맣고 하얀 꽃을 피웠다.
작은 꽃잎에 긴 꽃술을 달고 있다.
바위엔 돌양지꽃이 노랗게 피었다.
건너편 노고단은 보이지 않는다. 앞길만 겨우 보일 뿐 산록도 보이지 않는다.
산구름은 포기하고 바위에 붙어 돌양지꽃과 꼬리진달래를 찍어본다.
초점이 맞지 않는다.
종석대에 올라 조망이 열리기를 바라지만 내 마음대로 따라주지 않는다. 당연하다.
미역줄 싸리 노린재 진달래 잡목 사이를 거칠에 지나간다.
싸리나무 이파리에 앉은 둥근 물방울리 떨어져 바지를 적신다.
그나마 발 딛는 바닥엔 길의 흔적이 있지만 윗쪽은 모두 덮였다.
어느 사이 하늘 한쪽이 파랗게 구멍이 뚫리더니 천은사 쪽으로 푸른 산록이 열린다.
구름이 흘러가고 윗쪽은 온통 하늘을 가린다.
건너 반야봉 쪽도 보이지 않는다.
종석대를 지나 차일봉 입구에서 돌에 앉아 차에서 챙겨 온 간식을 먹는다.
달콤하다. 물도 마시고 다시 일어나 가는 길은 더욱 험하다.
신발도 젖어 온다. 이끼 낀 검은 바위에 한번 미끄러진다.
손을 짚었는데 내 몸은 다쳐주지 않는다.
그래도 다음부터는 돌 밟기에 더 신경을 쓴다.
젖은 흙에서 미끄러지기도 한다.
지난 번 큰양지꽃을 보았던 곳 부근을 지나는데 검은 숲 속에 하얀
버석 같은 게 보인다. 가까이 가 보니 수정초같다.
온 몸이 투명하게 하얀 수정초?가 물방울을 달고 여럿이 기울어져 있다.
어둠 속에 제대로 초점이 맞는지도 모르게 셔터를 누른다.
어쩌면 내가 최근에 남겼을지도 모를 희미한 발자국을 따라
안내소 뒷쪽으로 살금 도둑고양이처럼 줄을 넘어 내려온다.
7시 40분이 다 되어 간다.
건너편 반야봉 줄기에 흰구름이 걸쳐있고 노고단 쪽도 푸르게 열렸다.
아무래도 노고단 대피소에서 하룻밤 잠자야 할 것 같다.
지난번에 열려있던 계산소 안에 사람이 있어 주차비 3,200원을 달라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