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집 원테이블에 가족들과 둘러 앉아 탕수육을 먹고 있자니 오래전 어릴적 기억이 새록새록 되살아난다.
서울 외삼촌 댁에 다녀온 엄마의 빈손을 보고 우리 여덟 남매는 적잖이 실망을 했었던것 같다.
잘 다녀오셨냐는 인사도 않고 각기 제 볼일을 보았던 기억이 난다.
무려 일곱시간 버스를 타고 온 피곤함도 잊은 채 엄마의 부엌에선 고소한 냄새와 시끌 벅적한 소리가 들렸다. 이런 날은 일년에 몇번 있을까 말까한 별식이 있는 날이다.
큰 언니가 산수화 풍경이 박혀있던 자개상을 내오고 아버지를 부르는 소리와 함께 우리 앞 교자상에 놓인 음식이 이름도 생소했던 엄마의 첫 탕수육이었다.
김장하는 날 먹었던 수육이나 버섯찌게에 넣던
그 돼지고기가 아니었다.
'아, 세상에는 이런 음식도 있구나! 돼지고기를 이렇게 새콤달콤하게도 만들 수 있네!' 하며 신기해했었다.
밥을 먹는 동안 우리 열 가족중 어느 누구도 말하는 이가 없었다.
너무나 쉽게 끝나버린 별식에 모두들 아쉬워 했고 나와 막내 동생은 접시를 혀로 햟아먹고 있었다. 평소 식사 예절을 중하게 여기는 아버지도 이 날만은 우리를 못 본 채 웃으셨다 .
막걸리를 반주로 하신 아버지 얼굴이 귀 밑까지 붉으레 했다. 부르기 보단 듣는걸 좋아하던 아버지가 당신을 선두로 여덟명의 자식에게 차례로 노래를 시키시던 모습. 그것 때문이었는지 우리 여덟남매는 모두 노래를 잘 하는 편이다.
사는게 그리 풍족하지는 않았지만 결핍때문에 서로를 더 많이 배려하고 양보하고 가진것에 만족하지 않았나 싶다. 두어 수저 남기고 버릇처럼 밥을 남기는 손녀를 보고 있자면 마지막 남은 음식 한 점을 가운데 두고 아쉬워 젓가락을 놓지 못하고 서로의 눈치를 보던 그 때가 생각난다.
지금은 그 때에 비하면 무엇 하나 부족함이 없다. 매 끼니마다 음식은 풍족했고 , 풍요로움은 아이들에게 더 이상 음식의 소중함을 느끼지 못하게 하고있다. 접시 두개의 탕수육을 열 식구가 나누어 먹었던 그 치열함이 없어서일까? 아무리 유명한 중국집 탕수육도 옛날처럼 맛있지가 않다 .
여덟살 짜리 계집애였던 내가 이후 탕수육을 마주할 때면 그 때의 모습이 영화의 한 장면처럼 떠오른다.
나는 딸에게 "엄마하면 떠오르는 음식이 무어냐?" 고 물어 본적이 있다.
"엄마를 생각하면 달콤하고 부드러운 카스테라냄새가 나는 것 같아 .한 번 만들어 줘요." 라고 지나는 말처럼 몇번 말했지만 나는 카스테라를 만들지 않았다. 카스테라 하면 힘들었던 젊은 시절이 생각나서 만들기가 싫었다. 잡기와 술을 좋아했던 남편과 달라도 너무 다른 성향을 젊어서는 이해할 수가 없어 상처받았고 그럴 때마다 주방에서 무언가를 만들었다..
얇게 민 밀가루 반죽에 주전자 뚜껑으로 동그란 모양을 찍어 구멍을 낸 도너츠, 여름이면 내 대표음식이 된 복숭아 병조림, 햇콩날 때 해먹던 마구설기, 고구마 맛탕,ᆢ그리고 시도 때도 없이 만들었던 카스테라 ᆢ.
팔이 아프도록 달걀에 거품을 내고 설탕을 넣고 카스테라가 부풀어 온 집안에 달콤한 냄새가 가득 차 오를 때 쯤이면 무엇때문에 화가 나 있었는지 까맣게 잊고 뒷꽁무닐 잡고 재촉하는 아이들과 어느새 행복해 했다.
어찌보면 내게 음식은 곧 추억이고 버티는 방법이었고, 내가 가족에게 주는 사랑이며 내 결혼 생활을 지탱해준 한 방법이란 생각이 든다.
재료를 썰고 , 볶고 끓이면서 내 안에 쌓였던 화가 저절로 풀어지는 일종의 스트레스 해소 방법이이었던 것같다.
이제는 카스테라를 만들지 않고도 적당히 행복하고 웃는 날이 많은 나이가 되었다.
이 나이 들어 아직도 밥하기가 그닥 귀찮거나 싫지 않은 것은 참 다행이고 감사한 일이다.
그래도 가끔씩 ,주방에서 헤어나 간단한 칼국수로 때우고 싶은, 오늘이 꼭 그런 날이다.
2022.11.15 . 박정자.
첫댓글 내게 음식은 곧 추억이고 버티는 방법이었고, 내가 가족에게 주는 사랑이며 내 결혼 생활을 지탱해준 한 방법이란 생각이 든다.
재료를 썰고 , 볶고 끓이면서 내 안에 쌓였던 화가 저절로 풀어지는 일종의 스트레스 해소 방법이이었던 것같다.
이제는 카스테라를 만들지 않고도 적당히 행복하고 웃는 날이 많은 나이가 되었다.
이 나이 들어 아직도 밥하기가 그닥 귀찮거나 싫지 않은 것은 참 다행이고 감사한 일이다.
그래도 가끔씩 ,주방에서 헤어나 간단한 칼국수로 때우고 싶은, 오늘이 꼭 그런 날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