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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하수와 백합
 
 
 
카페 게시글
시 해석 및 시 맛있게 읽기 스크랩 작명의 즐거움/ 이정록
은하수 추천 0 조회 157 17.10.11 08:27 댓글 0
게시글 본문내용




작명의 즐거움/ 이정록

 

 

콘돔을 대신할

우리말 공모에 애필(愛必)이 뽑혔지만

애필이란 이름을 가진 사람들의 결사적인 반대로 무산되었다

그중 한글의 우수성을 맘껏 뽐낸 것들을 모아놓고 보니

삼가 존경심마저 든다

 

 똘이옷, 고추주머니, 거시기장화, 밤꽃봉투, 남성용고무장갑, 정관수술사촌, 올챙이그물, 정충검문소, 방망이투명망토, 물안새, 그거, 고래옷, 육봉두루마기, 성인용풍선, 똘똘이하이바, 동굴탐사복, 꼬치카바, 꿀방망이장갑, 정자지우개, 버섯덮개, 거시기골무, 여따찍사, 버섯랩, 올챙이수용소, 쭈쭈바껍데기, 솟아난열정내가막는다, 가운뎃다리작업복, 즐싸, 고무자꾸, 무골장군수영복, 액가두리, 정자감옥, 응응응장화, 찍하고나온놈이대갈박고기절해

 

아, 시 쓰는 사람도 작명의 즐거움으로 견디는 바

나는 한없이 거시기가 위축되는 것이었다

봄 가뭄에 보리누룽지처럼 졸아붙은 올챙이 눈

그 작고 깊은 끈적임을 천배쯤 키워놓으면

그게 바로 콘돔이거니, 달리 요약 함축할 길 없어

개펄 진창에 허벅지까지 빠지던 먹먹함만 떠올려보는 것이었다

애보기글렀네, 짱뚱어우비, 개불장화를 나란히 써놓고

머릿속 뻘구녕만 들락거려보는 것이었다

 

- 시집『정말』(창비, 20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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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개념있는 개그맨이라면 부교재로 써먹어도 좋을 만큼 이정록 시인의 유머와 해학이 넘실거리는 시집 <정말>에 수록된 시다. 실제로 전유성 같은 이는 새로운 관점의 아이디어를 필요로 하거나 사물을 다르게 보는 훈련을 하려면 시집을 많이 읽으라고 후배들에게 조언한다. 개그맨은 시인 못지않게 우리말 보존과 발전에 한 축을 담당해야할 직업이고, 그 전파력은 시인보다 훨씬 막강하기 때문에 우리말을 다루는데 더욱 신경을 써야할 것이다. TV는 아이들이 새로운 언어를 습득하는 창구이며 예능이나 코미디프로는 그 영향력이 매우 크다.

 

 북한의 대남선전용 웹사이트 우리민족끼리가 몇 년 전 우리 한글날에 우리말과 글이 천시당하는 비극적 현실이라는 제목의 글을 통해 남조선의 외래어 남용은 조국통일 위업에 커다란 독이라며 대한민국의 언어문화를 비난하고 나선 일이 있다. 당시 언론매체를 안 좋은 예의 주범으로 꼽으면서 인사이드 월드’, ‘뉴스메이커’, ‘뉴스피플’, ‘뉴스라인’, ‘뉴스투데이’, ‘뉴스이브닝등 잡지와 방송의 보도관련 제목, 출판물, 간판들의 외래어 사례를 지적했다. 한글의 보존과 발전만큼은 자기네들이 우리보다 낫다는 생각에서 벌인 선전일 터이다.

 

 하지만 그들의 주장에 대꾸할 마땅한 구실이 빈약한 것도 우리의 현실이다. 여전히 우리사회 곳곳에선 외래어로 표기해야 좀 더 그럴듯하고 있어 보인다는 생각을 가진 사람이 많다. 일상에서 사용하는 외래어가 우리 스스로 생각해 봐도 위험 수준이다. 언젠가 국회의 법안 협상과정에서 새누리당 원내대표는 야당의 입장이 클리어해진 뒤에야 그 다음 스텝으로 가야하지 않겠습니까?” 그러고 있는 걸 보았다. 꼭 그런 식으로 배운티를 내야하나. 박근혜가 즐겨 쓴 프로세스를 비롯해 아젠다, 코드, 로드맵, 워크숍 등은 상용어가 되었다.

 

 이런 언어습관 자체로 위화감을 조성할 수 있다. 우리의 두유를 북쪽에서는 콩물이라고 한다. 어느 쪽이 바른 말인지 단박에 판가름 날 일이다. 왠지 콩물이라고 하면 싸구려 티가 나고 무식하게 보인다? 북에서는 도넛가락지 빵이라고 바꾸어 말한다. ‘시 쓰는 사람도 작명의 즐거움으로 견디는 바분발을 좀 해야겠다. 언젠가 KBS에서 우리말 바꾸기 캠페인을 벌인 바 있다. ‘원샷잔털기, ‘마일리지차곡돈’ ‘세리머니기쁨짓’ ‘퀵서비스휙배달’ ‘스킨쉽다솜짓으로 고쳐 쓰자는 시청자 의견이 있었다.

 

 처음엔 어색한 느낌이 들어도 자꾸자꾸 쓰다보면 이내 친숙해질 것이다. 하지만 한편으론 우리의 언어생활에 깊숙이 들어와 이미 굳어버린 것까지 억지로 다른 말을 찾으려 애쓸 필요가 있을까 하는 의문도 없지 않다. 지금은 단일민족이니 배달민족이니 하는 인종순혈주의를 포기한지 오래인 다문화사회이다. 언어는 시대와 문화를 담는 그릇이다. 한 민족의 국민정신을 이끄는 시발점이면서 문화발전의 토대를 이룬다. ‘콘돔똘이옷이나 거시기 골무라 칭하듯 작명의 즐거움을 마음껏 누리면서 유연한 언어정책을 갖는 것도 나쁘지 않으리라.



권순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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