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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디터김호정
관심
벨기에 브뤼셀에 전 세계의 바이올린 연주자 69명이 모여 있습니다. 18~32세의 젊은 연주자들이죠. 세계에서 가장 큰 대회 중 하나인 퀸 엘리자베스 국제 콩쿠르의 바이올린 부문이 열리기 때문입니다. 1951년 시작된 대회인데요, 이번에는 전 세계에서 490명이 지원했다고 합니다. 영상으로 접수한 첫 번째 심사에서 선발된 69명이 브뤼셀에 와서 연주할 기회를 얻었죠.
뉴욕 맨해튼 문화의 상징이자 자존심과도 같은 카네기홀의 전경. 연합뉴스
여기에 한국 국적의 연주자 7명이 포함됐습니다. 이들은 이달 6일 브뤼셀에 도착했고, 경연 라운드는 다음 달 12일의 결승까지 계속됩니다. 긴 여정이죠. 비행기 삯에, 높은 라운드까지 올라간다면 한 달이 넘으니 체류비도 만만치 않습니다.
그런데 이들 중 4명이 금전적 지원을 받게 됐다는 소식이 최근 들렸습니다. 한국메세나협회가 본선 진출자 중 공모에 지원한 오혜림(25), 윤다윤(23), 임도경(27), 최송하(24)에게 각 300만원을 지난달 23일 전달했죠. 한국메세나협회가 2022년 시작한 ‘국제음악콩쿠르 출전 지원사업’입니다.
그냥 그런 뉴스 중 하나로 지나갈 수 있지만, 꽤 중요한 의미가 있습니다. 예술 지원의 최근 변화하고 있는 흐름을 볼 수 있거든요. 다음 사례도 한번 볼까요.
다음 달 6일 카네기홀에 데뷔하는 첼리스트 최하영. 권혁재 사진전문기자
다음 달 6일 미국 뉴욕의 상징적인 공연장 카네기홀에서는 첼리스트 최하영(26)의 단독 공연이 열립니다. 2022년 퀸 엘리자베스 콩쿠르에서 우승하며 차세대 첼리스트 중 독보적 존재로 떠오른 연주자죠. 그런 최하영의 카네기홀 데뷔입니다.
그런데 공연을 만드는 데는 돈이 들죠? 공연장을 빌리고, 공연을 제작하고, 홍보도 해야 하니까요. 이런 공연에는 보통 1억원 정도가 들어갑니다.
그 비용은 한국의 기업 7곳이 나눠서 부담했습니다. 벽산엔지니어링, 아모레퍼시픽재단, 노루홀딩스, 동성케미컬, CJ문화재단, 디엑스체인지와 이름을 밝히고 싶어 하지 않는 기업 한 곳입니다. 이들이 1000만~2000만원 정도를 내고 최하영의 카네기홀 데뷔 무대를 만들어주는 것입니다.
이 공연에는 또 어떤 의미가 있을까요? 네, 바로 기업들이 예술가 개인을 적극적으로 지원하기 시작한 것입니다. 한국메세나협회의 이충관 사무처장의 설명을 들어볼까요. “기존의 기업 후원은 주로 예술 단체에 집중돼 있었다. 후원의 과정도 더 확실하고, 단체가 지속하면서 성장하는 과정도 잘 지켜볼 수 있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최근에는 개인 아티스트에 대한 지원 방법이 늘어나고 있다.”
그 이유는 물론 아티스트들이 개별적으로 세계 무대에서 좋은 성과를 내고 있기 때문입니다. 피아니스트 조성진ㆍ임윤찬은 물론이고 개인의 역량으로 눈에 띄게 성장하고 있는 이들이 많죠. 기업들이 그 판을 더 적극적으로 뒷받침해 주겠다는 움직임입니다. 기업이 후원받을 예술가를 무작위로 선정하지 않고 공모 절차를 통하면 높은 증여세를 피할 수 있기도 합니다.
그래서 기업들의 협의체인 한국메세나협회는 2022년 반 클라이번 국제 콩쿠르부터 결선 진출자를 후원하기 시작했습니다. 입상한 후에 지원하는 것이 아니라 수상할지 알 수 없는 상황에서 돕는 겁니다. 이충관 사무처장은 “적어도 비행기 경비, 체류비 같은 데 구애받지 않고 음악에 집중할 수 있도록 돕는다는 취지”라고 설명했습니다. 2022년에는 피아니스트 김홍기ㆍ박진형ㆍ신창용ㆍ임윤찬이 지원을 받았죠. 그 결과는 우리가 잘 아는 대로입니다. 임윤찬이라는 전무후무한 스타가 탄생했습니다.
카네기홀 데뷔 프로젝트는 올해가 처음입니다. 여기에는 보다 깊은 뜻이 있습니다. 카네기홀은 모든 음악인이 꿈꾸는 무대이지만 쉽게 열리지 않습니다. 특히 최고의 대회에 입상한 수많은 신인 연주자가 나오는 시대에 카네기홀이 특별히 한국 연주자를 주목할 이유는 없다시피 합니다. 이런 상황에서 한국 연주자 중 한 명을 매년 카네기홀에 데뷔시키겠다는 겁니다. 최하영은 카네기홀 중 600석 정도의 젠켈홀에서 베토벤ㆍ드뷔시ㆍ메시앙 등을 연주할 예정입니다.
물론 연주로 끝나는 프로젝트는 아닙니다. 미국 음악계의 주요 인사들을 불러모으는 것도 프로젝트의 중요한 일이죠. 오케스트라와 공연장 관계자, 평론가와 중요한 청중이 최하영의 연주를 지켜보게 하는 일입니다. 개인이 하기는 힘든 일이죠. 하지만 기업 여러 곳이 힘을 합치면 부담은 줄어들고 파워는 더 생기게 됩니다. 그래서 이번에 7개 회사가 뭉쳤다고 합니다. 1984년 뉴욕에 설립돼 현지 네트워크가 강한 코리아 뮤직 파운데이션도 힘을 합쳐 공동 주관에 나섰습니다.
이렇게 한 명씩 콕 집는 ‘핀셋 후원’이 요즘 메세나의 트렌드입니다. 또 다른 소식도 있습니다. 중견 기업인 면사랑은 20대 연주자 3명을 선정해 각 1000만원씩 최대 3년을 지원하기로 했습니다. 피아니스트 김도현(29), 바이올리니스트 정주은(27), 첼리스트 이유빈(23)이 대상자가 됐습니다. 이들이 3000만원을 받는 ‘대가’는 뭘까요? 금액이 큰 만큼 어떤 조건이 있는 것은 아닐까요?
알아 보니 면사랑 주최의 공연에 이들이 한 번 출연한 적이 있더군요. 면사랑의 소재지인 충북 진천군에서 오케스트라를 만들어 열심히 활동하는 청소년을 위한 공연이었습니다. 꽤 멋있는 사회공헌 활동이지 않나요? 면사랑은 매년 3명을 새로 뽑아 지원합니다.
한국메세나협회는 이런 활동에 대해 “세계에서 주목받는 한국 예술의 불씨를 계속 살려 나가기 위함”이라고 설명했습니다. 예술 단체 후원도 물론 중요합니다. 하지만 그에 비해 상대적으로 가려져 있던 개인에 대한 적극적 후원의 물결이 반가운 요즘입니다.
문화비타민 시리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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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일보 기자
좋은 음악 듣고 좋은 콘텐트를 만드는 게 일입니다. 클래식 음악을 주로 담당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