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직 운전하는 이들만이 삼아 남는다!
마치 앞으로 세계적 펜데믹이 일어나면 지난 코로나19보다 더 강력한 재앙이 일어날 것만 같은 예측을 하게 만드는 단편이다. 원인 모를 질병에 감염될 경우 죽을 때까지 직진 보행만 해야하는 듣도보도못한 질병 유형. 주인공이 가까스로 살아남기 위해 어떻게든 감염된 도시를 탈출해야 하는데 일말의 양심 조차도 작동하지 않는 감염병 시기에 운전 가능한 자동차라면 무조건 탈취하여 이동해야만 하는 상황이 과연 소설에서만 일어날 수 있는 상황인지 의심이 된다.
도끼로 살아있으나 감염된 이들을 쳐야만 하는 악몽같은 세상에 오직 운전하며 탈출해야 하는 세상에 직면하고 살아가는 사람들의 사고와 행동의 기준은 무엇일까? 죽음과 같은 세상에서 작동되는 것은 오직 생명 유지라고 저자는 말하는 것 같다. 평소에는 윤리적 높음과 일말의 양심으로 사회적 규범 대로 살아가는 사람인척 하지만 결국은 극단적인 세상에서 살아남기 위한 몸부림은 모든 이들이 동일한 삶의 형태라는 것을 말해주고 있다.
한나와 클레어
자본이 우세한 신자유주의 시대를 살아가는 오늘날 누구든지 사용자와 피고용인의 위치가 하루에도 몇 번 씩 바뀔 수 있음을 말해 준다. 친구 덕에 고급스런 호텔에 묻게 되는 한나는 사실 그녀 또한 피고용인의 삶을 살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그날만큼은 사용자인 것처럼 마인드 변신을 통해 호텔 피고용인에게 매몰차게 자신의 기분과 감정을 적나라하게 드러낸다. 결국은 자신도 그 시간이 지나면 똑같은 클레어의 위치에 놓이게 되는데도 불구하고. 자본주의 시대를 살아가는 인간의 내면에 작동하는 두 가지 얼굴을 보여주고 있다. 저자의 심리 분석이 참 예리하다.
이 밖에도 저자는 성소수자에 대한 이야기도 거침없이 지면에 많은 부분을 할애하며 독자들의 반응을 끌어낸다. 이 부분은 독자들의 해석에 맡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