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자정보 보호와 진료자율성 침해 논란 가열
독점 자동차보험사의 '과도한 권한' 쟁점
의료기관 수입 30~100% ICBC 의존...거부권 없어
ICBC(BC자동차보험공사)가 의료서비스 약관을 전면 개정하면서 의료계와의 갈등이 심화되고 있다. 환자 정보 보호와 진료 자율성 침해 논란이 핵심이다.
ICBC는 지난해 12월 10일 협력 의료기관들에 이메일을 보내 새로운 의료기관 검색 시스템 도입과 함께 약관 개정을 통보했다. 침술, 척추교정, 상담, 운동요법, 마사지, 물리치료, 심리치료 등을 제공하는 의료기관이 대상이다.
가장 큰 쟁점은 환자 의료기록 접근권이다. 약관 6.3항은 ICBC 직원들에게 의료기관 컴퓨터 시스템 접근권을 부여한다. 밴쿠버 테스 헬스 클리닉의 마티나 웨그너 원장은 "BC주의 엄격한 의료기록 보호 규정에 위배될 수 있다"며 "ICBC 환자가 아닌 다른 환자의 정보까지 노출될 위험이 있다"고 지적했다.
루카 미프티우 사우스 프레이저 물리치료사는 "임신 시도나 정신건강 상담 등 민감한 정보가 많은데 ICBC가 무제한 접근할 수 있다는 것이 문제"라고 비판했다. 대부분의 의료기관이 사용하는 제인앱(Jane app) 소프트웨어는 ICBC 환자 정보만 분리할 수 없어 우려가 더욱 크다.
ICBC의 페리 스트라우스 최고책임자는 "감사 과정에서만 접근이 필요하며, 의료기관은 다른 환자들의 개인정보 보호를 위해 정보를 편집할 수 있다"고 해명했다.
브렌트 쉬어러 ICBC 대변인은 "예고 없이 의료기관을 방문해 감사하는 일은 절대 없을 것"이라며 "감사 자체가 매우 드문 경우"라고 강조했다.
의료기록 소유권도 논란이다. 약관 9.1항은 의료기관의 ICBC 기밀정보 접근을 제한한다. BC주에서 의료기록은 환자 소유인데, ICBC가 정보 보관과 폐기를 결정할 수 있게 된다. 특히 마사지치료사와 척추교정사는 기록을 16년간 보관해야 하는데, ICBC의 조기 폐기 요구 시 대응 방안이 불분명하다.
이에 대해 스트라우스 최고책임자는 "ICBC 기밀정보는 환자의 임상기록이 아닌 제품, 고객, 공급업체, 지적재산권 등을 의미한다"며 "임상기록은 환자의 소유이며, ICBC가 소유하는 것이 아니다"라고 해명했다.
치료 자율성 침해도 우려된다. 약관 6.1항은 ICBC가 서비스와 결과물에 대한 핵심성과지표를 설정할 수 있다고 규정한다. 웨그너 원장은 "의료진은 환자의 완전한 회복을 원하지만, ICBC는 빠른 직장 복귀만 중시한다"고 비판했다.
현재 ICBC는 교통사고 피해자에게 물리치료 25회, 침술 12회, 마사지 12회, 척추교정 25회, 운동치료 12회를 기본 보장한다. 추가 치료는 의사의 치료계획과 ICBC 승인이 필요하다. 웨그너 원장은 "중등도 부상은 평균 3번의 연장이 필요하고, 골절이나 척추 부상은 더 많은 시간이 필요하다"고 설명했다.
미프티우 물리치료사는 "변호사를 선임할 수 있는 환자는 장기 치료가 가능하지만, 그렇지 못한 환자는 의료진이 필요성을 인정해도 추가 치료를 받을 수 없다"며 의료 접근성 격차를 지적했다.
ICBC 스트라우스 최고책임자는 "약관 변경은 청구 절차 간소화가 목적"이라며 "감사나 조사 과정에서도 환자 정보 보호를 철저히 하겠다"고 밝혔다. ICBC는 3천500개 의료기관과 약 1만 명의 의료인들을 위한 문의 창구를 마련했으나, 접수된 의견은 40건에 불과했다.
의료기관들의 고민도 깊어지고 있다. 일반 의료기관의 경우 침술, 상담, 마사지 환자의 30~40%, 물리치료 환자의 40~60%, 운동치료 환자의 100%가 ICBC 보험 대상이다. BC주에서 자동차보험은 ICBC가 독점하고 있어 의료기관들은 약관 수용을 거부하기 어려운 실정이다.
웨그너 원장은 "BC주 산업안전보건공단(WorkSafeBC)도 비슷한 약관 변경 후 많은 의료기관이 산재 환자 진료를 중단했다"며 "이번에도 ICBC 환자 진료 거부가 늘어날 수 있다"고 경고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