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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인의 취향 4부
1. 상고재 / 거실(밤)
진호 개인 긴장감 있게 마주보다가.
진호 : (겸연쩍은 표정으로 다리 소파에 올려놔주면서)
이대로 자면 다리에 쥐납니다.
개인 : (약간 취한 상태로 의심스럽게 보고)
진호 : 잠 깼으면 방에 들어가 편히 자요.
(돌아서는데)
개인 : 좋다.
진호 : (돌아보고, 뭔 소린가?)
개인 : 다른 남자 같으면 뭐하는 짓이냐고 길길이 뛰었을텐데.
디리 만져도 아무렇지도 않은 게 너무 좋다구요.
진호 : 헛소리 하지 말고 들어가서 자라니까요.
개인 : (일어나 앉아 아, 하며 얼굴 찡그리며 다리 주무르는)
진호 : 왜요?
개인 : 두 번이나 접질려서 그런지 아파서.....
2. 상고재 / 창밖(밤)
열려있는 상고재 창밖으로 청아한 달 보이고.
3. 상고재 / 거실(밤)
달빛 내려앉은 어둑한 거실.
개인 (E) : 아아... 아으읏... 진호씨 좀 더 위요... (이상야릇한 소리)
진호 (E) : 어디, 여기요?
개인 (E) : 네... 아아...
개인, 야릇한 표정으로 콧소리 내고.
진호, 그 소리에 신경이 쓰이지만 억지로 참는.
달빛 아래서 머슴마냥 무릎 꿇고 앉아 열심히 개인 다리 주무르는 진호.
개인 : 진호씨... 아파요. 좀 살살... 아아... 아아...
진호 : (째려보며) 조용히 좀 하죠?
개인 : 아, 시원해요, 그렇게요. (다시 콧소리) 아아...
진호 : (야릇한 느낌 때문에 버럭) 거, 시끄러워서 못하겠네!
(급히 일어서며) 늦었어요. 빨리 자요!
개인 : (아쉬운 표정으로) 조금만 더 해주지. 시원하고 좋은데.
진호 : 팔 저려서 못하네요.
개인 : 힘 좀 쓰실 거 같은데...
진호 : 내가 세입자지 머슴입니까? (돌아서는)
개인 : (입술 삐죽 내밀다가 하는 수 없이) 고마웠어요!
(혼잣말로) 게이 세입자, 환상이야.
진호 : (돌아선채 참자 하는 느낌으로 이 꾹 악무는)
4. 상고재 / 화장실(밤)
진호, 찬물 틀어 거칠게 세수한다.
진호 : (물 떨어지는 얼굴로 거울보며) 미쳤다... 전진호...
최관장 앞에서 그 망신을 당하고 속도 없이 다리까지 주물러주냐?
말려들지 말자, 말려들지 말자...
(거칠게 세수하는)
5. 상고재 /거실 (아침) F.I
창가에 내리쬐는 햇살 아래 잠든 개인.
소파에서 이리뒤척 저리뒤척 하다가 쿵 바닥으로 떨어지고.
개인 : (아픈 듯 엉덩이 문지르며) 아우...
부스스한 몰골로 눈 감은 채 소파로 엉금엉금 기어 올라가고,
눕다가 문득 침대가 아닌 걸 깨닫고 멈칫.
개인 : (소파 보며 고개 갸웃) 내가 왜... 여기서?
플래시백)
개인, 취해서 진호와 술 마시던 기억 떠오르고,
사람들 앞에서 “이 사람... 게이라구요!” 했던 말 생각난다.
개인 : (벌떡 일어나 앉아) 헉!
(자기 머리 쥐어박으며) 내가 미쳐, 미쳐! 이 인간 또 가만 안 있을텐데!
개인, 배에서 들리는 꼬르륵 소리, 아픈 듯 배를 감싸 쥐고 화장실로 가는데.
진호, 주방에서 나오는.
진호 : (통화중) 어, 사무실 나오지 말고 현장으로 바로 와. 나도 거기로 갈게.
개인, 얼른 바닥에 납작 엎드려 자는 척하고.
진호, 무심히 지나가다 엎어져 있는 개인을 발견.
진호 : (개인 한심스럽게 듯 보며)조금 전까지 소파에서 자더니...
(발끝으로 툭툭 치며)이봐요, 박개인씨! 자려면 들어가서 자요! 입 돌아가요.
개인 : (자는 척 눈 꼭 감고)...
진호 : 잠버릇 참 희안하네.
개인, 자는 척하는 얼굴 보여주고,
진호의 멀어지는 발소리.
개인 : (눈 뜨며 안도)휴...
(꼬르륵대는 배 움켜쥐고)아우 배야...
개인, 화장실 가려 일어나다가 시선 느끼고 고개 들면
진호, 마당에서 노려보고 있다.
개인 : (흠칫 놀라)헉!
진호 : 잘 잤습니까?
개인 : 예... 진호씨... 는요?
진호 : (노려보며)저한테 뭐 할 말 없습니까?
개인 : (시침떼며 천연덕스레)할 말요? 없는데요. 어제 무슨 실수라도..?
제가 술 먹으면 필름이 완전히 끊기는 체질이라.
그래도 남한테 해꼬지는 안하는데...
진호 : (저 인간을 어떻게 할까 싶다.) 해꼬지를 안하신다 ...?
개인 : (찔끔해서 도망치듯)그럼 볼일이 급해서 이만...
진호, 돌아서는 개인 뒷모습 싸늘히 노려보고
개인, 등 뒤에 내리꽂히는 진호의 시선에 죽을 맛.
6. 상고재 / 화장실 안(아침)
개인, 후다닥 화장실로 뛰어 들어와 문 잠그고.
문에 귀를 바싹대고 바깥 동정 살핀다.
쾅! 문 닫는 소리 들리자 그제야 가슴 쓸어내리고.
개인 : (자기 머리 쥐어박으며)
어쩌자고, 그 많은 사람 앞에서 게이라고 떠들어대냐.
상준(E) : 이쪽으로 쭉 가면 IT 문화 복합산업단지가 생길거고...
7. 담 예술원 신축 부지(낮)
상준 : (지도보며) 동쪽으론 갤러리 서쪽으론 테마파크.
진호, 허허벌판 신축부지를 바라보며 허공에 대고 설계스케치 하고 있다.
CG로 허허벌판의 신축부지에 진호의 손가락 따라 본관이 그려지고.
상준, 담예술원 컨셉에 대해 설명하며 중간, 중간 사진 찍는다.
상준(E) : 담 예술원이 생기면 이쪽으로 문화벨트가 생기는 거지.
이쪽으로 본관하고 별관, 야외전시관, 저쪽은 주차장하고 부대시설...
CG, 어느새 별관과 야외 전시관등이 완성되고 나무나 돌등의 조경도 완성된다.
상준, 카메라로 사진 찍다가 흐뭇한 듯 진호 보고.
진호, 신들린 듯 허공에 손가락으로 설계를 해 가고.
상준 : 급한 건 최관장한테 확실한 인상을 심어주는 건데.
플레시백.
개인(E) : 이 사람 게이에요!
개인이 갈비집에서 했던 소리와 함께 놀라던 최관장 얼굴 떠오른다.
CG로 거의 완성돼 가던 담 예술원 조감도 순간 엉망진창이 되어버리고.
진호 (한숨 쉬며 혼잣말 툭 내뱉듯) 인상은 너무 확실하게 심어줬지.
상준 뭐?
진호 아냐. (혼잣말로 돌아서며) 윽. 박개인.....
상준 : 그때 보니 너한테 관심 있어 하는 거 같던데.
진호 : (살벌하게) 그게 말이나 되는 소리야? 남자가 남자한테 관심이라니!
진호, 성큼성큼 걸어가 버린다. 상준, 어이없어 보고.
8. 신축부지 주차장(낮)
진호, 상준 차 옆으로 걸어오면. 한회장 차 와서 멈추는.
기사가 문 열어주면 차에서 내리는 한회장.
진호, 마지못한 느낌으로 인사하고, 상준 인사하는.
한회장 (끄덕이고, 묘한 미소 지으며, 진호 앞으로 다가서는)
여기까지 온 거 보니, 기어코 할 모양인가보구나.
진호 그럼 둘러보십쇼. (스쳐 지나가려고 하면)
한회장 네 아버지 전철은 밟지 말아야 하는 거 아니냐?
진호 (순간 굳어져서 멈춰서는)
한회장 넌, 네 아버지 그렇게 된 게 나 때문이라고 생각하겠지만, 네 아버진
자멸 한 거나 마찬가지다.
진호 (주먹에 힘이 들어가는)
한회장 사업이라는 게 무리수를 두면 결과는 뻔한 거거든.
진호 아니죠.
한회장 (보면)
진호 배신할 기회만 노리고 있는 부하 직원을 동지라고 믿었던 게
그런 결과를 가져온 거죠.
(걸어가면, 상준 얼른 진호를 따라가고)
한회장 (호탕하게 웃으며) 사내는 과거에 연연해하면 큰일을 도모할 수 없는
법이다. 그러니 네 그릇에 맞는 일거리를 찾아보거라.
진호 (더욱 결의를 다지는 표정으로 걸어가는)
9. 진호 회사 앞/ 회사 복도(낮)
혜미, 걸어오는. 맞은 편에서 걸어오는 인희. 순간, 서로가 들고 있는 똑같은
가방에 눈이 가고, 인상들 싸늘해지고.
혜미 : (자기 가방 털며 들으라는 듯) 요즘은 짝퉁도 참 잘 나와~
인희 : (혜미 가방 보며) 그러게요. 개나 소나 다 명품이네요.
혜미, 인희를 죽일 듯 째려보고. 혜미 걸어가려다 인희에게 신경 쓰느라 삐끗하면서
미끄러지면, 인희, 반사적으로 혜미 팔 잡아주며.
인희 조심하셔야죠.
혜미 (신경질적으로 인희의 팔 털어내며)
근데 누구세요? 처음 보는 얼굴인 거 같은데.
인희 : 전진호 소장님 뵈러 왔는데요. 여기 근무하시나봐요?
혜미 : 전... (의기양양) 소장님 약혼년데요.
인희 : (게이가 약혼녀? 놀라고) 약혼녀요? 전진호 소장님? (못믿겠다는 표정으로 보면)
혜미 : 속고만 사셨나.
인희 : (그럼 진호가 게이가 아닌가? 의혹에 찬) ...
10. 진호 회사 사무실(낮)
인희, 혜미 마주앉아 신경전 벌이고 태훈은 두 사람 눈치 보면서 두 사람 앞에
커피를 놔주는.
문 열리며 들어오는 진호와 상준.
혜미 : (발딱 일어나며) 오빠?
상준 : (혜미보고 반색하며)혜미, 왔네?
인희 : (일어나고)
진호 : (인희를 보고 깍듯이) 안녕하세요? 여긴 어쩐 일이시죠?
인희 : (혜미 의식, 거만하게) 네, 안녕하세요?
상준 : (반가워 굽실)아우, 오셨어요?
어떻게 이런 귀한 걸음을....
인희, 슬며시 혜미를 보며 승자의 미소 지으면.
혜미 : (약 올라 오버하며 진호 팔짱 끼고)옵빠아...
진호 : (거북한 듯 보고 혜미 팔 털어내면서) 여기가 네 놀이터냐?
인희 : (비웃듯 혜미를 보는)
혜미 : (자존심 확 상하지만 콧소리내며) 어머니가 오빠 비타민 안가져갔다고 하셔 서. (가방에서 얼른 비타민 통 꺼내면서)
약혼녀가 이런 거 안챙기면 누가 챙기겠어? (인희에게 봤지? 하는 눈빛)
진호 : (혜미 무시하고 인희 앉을 의자 빼주며)앉으세요. 근데 무슨 일로...?
인희 : 이거요. (초대장 건네며) 이번 저희 MS 그룹에서 주최하는 건축인의 밤 초 대장이에요.
아마 그 날 오시면, 담 예술원 관계자분도 많이 만나실 수 있을 거예요.
진호 : (받아서 열어보며) 감사합니다. 우편으로 보내셔도 되는데 직접 와 주시고...
인희 : 지난번에 저 때문에 봉변 당하셨잖아요? 인사도 드릴 겸 왔어요.
혜미 : (그 소리에 신경 곤두세우고)..?
진호 : 신경 안쓰셔도 되는데.....
E : 인희 휴대폰 진동음
진호 : 받으세요.
인희 : (내 남자‘라는 이름 뜨는 액정화면 보고) 안 받아도 되는 전화예요.
(끄는데)
11. 담 미술관 일각(낮)
창렬, 신호음만 가는 핸드폰 들고 있다가 신경질적으로 끄는.
김비서 : 그러게 제가 뭐랬습니까? 전화를 걸어 보고 오자니까.
창렬 : 어떡하라고? 내 전화를 안 받는데... (주차장쪽으로 가면)
김비서 : (쫓아가며) 여기까지 왔는데 기다려서라도 만나고 가셔야죠.
김인희씨가 최관장 오른팔이라면서요~.
창렬 : (무시하는데)...
김비서 : 안 그래도 회장님 지금 저기압이시랍니다.
아침에 현장에서 전진호 소장을 만났답니다!
창렬 : 알아, 비서실서 호출 받았어.
김비서 : 현장까지 돌아보고 있는 거 보면 그쪽은 상당히 진척 된 모양이던데...
김인희씨 만나서 뭐라도 좋으니 정보 좀 빼내보세요.
어흑, 저 정말 중국은 못갑니다~
창렬 : ...
12. 진호 회사 앞(낮)
진호, 인희 나오는.
인희 : 이렇게까지 배웅 안하셔도 되는데...
진호 : 매너가 그게 아니죠.
인희 : (더욱 마음에 들고) 오후에 스케줄 어떻게 되세요?
진호 : (보면)
인희 : 우리 미술관 이번에 그림 새로 들어왔는데, 보고 싶지 않으세요?
진호 : .....
인희 : 우리 관장님 오후에 약속 없으시거든요, 약속 없으신 오후엔 미술관을 둘러 보시는 게 습관이시구요.
진호 : (무슨 뜻인 줄 알아듣고 미소를 짓는)
13. 진호 회사 앞(낮)
혜미, 뛰어나오는. 태훈 따라 나오고.
혜미 : (둘러보며) 배웅만 한다더니 어디 간 거야?
태훈 : 어. 진호 형 차 없는데. 현장 나갔나?
혜미 : 그 여자랑 같이 간 건 아니겠지?
태훈 : 그야 모르지.
혜미 : (태훈 정강이 걷어차는)
태훈 : (욱하고 다리 잡고 허리 꺾는)
혜미 : 너 나랑 데이트 하기 싫지?
태훈 : (보면)
혜미 : 진호 오빠 어디 사는지 빨리 알아내라구.
어디 사는지 알아야 찾아가서 기다리든지 말든지 할 거 아냐?
약혼녀 앞에 두고 어떻게 다른 여자랑 사라질 수 있는지 따질 거
아니냐구?
태훈 : 약해... 데이트 한번으론 아무래도 약해...
혜미 : 죽고싶지?
14. 거리 / 진호 차안(낮)
진호, 운전하고.
인의, 조수석에 앉아 진호를 보면 아무래도 의심스럽다. 정말 게이야, 아니야?
인희 : 상고재, 어때요?
진호 : 예?
인희 : 상고재에서 지내시기 불편하지 않아요?
진호 : 별로 그렇진 않습니다.
인희 : (떠보듯) 개인이랑 한 집에 사는 거... 아무렇지 않으신가 보네요?
진호 : (게이냐는 물음으로 들려 불쾌한)무슨 뜻으로 하는 말씀인지 모르겠지만, 둘 이 부딪칠 일이 없으니 크게 불편할 일도 없습니다.
그보단 어떻게 답례를 해야 하죠?
인희 : (보면)
진호 : 오늘같이 귀한 정보를 주셨는데 맨입으로 넘어가면 안될 거 같아서요.
인희 : (미소 지으며) 그럼 밥 한번 거하게 사세요.
진호 : 그러죠.
15. 담 미술관 일각(낮)
들어오는 진호의 차.
차 멈추면 조수석에서 먼저 내리는 인희, 휴대폰을 진호에게 건넨다.
인희 : 번호 입력해주세요. 밥 먹으려면 서로 전화 번호는 알고 있어야 하잖아요?
진호 : (인희 전화기에 자기 번호 찍는다.) 언제든 연락 주십쇼.
인희 : 제 도움으로 담 예술원 프로젝트 맞게 되시면 밥 한번으론 안되는 거
아시죠?
진호 (미소 지으며) 물론입니다.
김비서(E) : 실장님, 실장님...
16. 창렬의 차안(낮)
창렬, 조금 떨어진 차 안, 김비서 운전석에 앉아서 진호와 인희를
보고 호들갑스럽게.
김비서 : 지금... 인희씨가 전진호 소장, 전화번호 따는 거 맞죠?
전소장하고 실장님 사이 뻔히 알면서... 저래도 되는 겁니까?
창렬 : (질투로 보는데)
인희, 진호에게 가볍게 목례하고 돌아서는.
김비서 : 들어가셔서 따끔하게 말씀 좀 하세요. 이러는 건 아니다.
창렬 : 차 출발해.
김비서 : 실장님?
창렬 : 출발하라니까.
김비서 : 지금까지 기다렸는데 빈손으로 돌아가시면.....
창렬 : 전진호가 무슨 일을 꾸미고 있는지 좀 알아봐. 요즘 뭐하고 돌아다니는지.
17. 담 미술관 화장실(낮).
진호, 손 씻다가 생각난 듯.
진호 : (진지하게) 관장님... 어제 오해하셨을 거 같은데... 저 그런 취향 아닙니다.
(머리 저으며)관장님! 어제 일은 오해십니다. 저...남자 안 좋아합니다.
아냐. (다시 고개 젓고는 큰소리로) 저... 게이, 아닙니다!
화장실 문 빼꼼이 열고 나오는 한 남자.
진호, 일순 굳어버린 표정.
남자, 그 소리 다 들은 듯 진호를 머리끝에서 발끝까지 훑는다.
나가면서도 계속 진호를 흘끗거리고.
진호 : (미간 찡그리며)으으... 박개인!
(세면대 움켜쥔 손 부들부들 떨리고) 상고재만 아니면 진짜!
18. 상고재 / 거실(낮)
영선, 아이스박스 상자 들고 들어오면
개인, 거실 소파에 앉아 열심히 노트북을 두드리고 있다.
영선 : 이것 좀 받아!
개인 : (쪼르르 달려와 받으며) 이게 뭐야?
영선 : 석화. 친정에서 보냈길래 나눴지.
개인 : (군침 삼키며) 맛있겠다.
영선 : 참, 그리고 백화점에서 반품 받은 탁자 우리 쇼핑몰에 올려놨어.
주문 들어오면 바로 연락 줄게.
개인 : (영선 끌어안으며) 고마워, 역시 넌 내 베프야!
영선 : 그래, 죽을 때까지 이 웬수 잊지마라.
근데 뭐하고 있었어?
개인 : 으응, 이력서 써. 인터넷 구직란에 올려놨더니 면접 보라고 연락와서.
영선 : 회사 같은데는 안 들어간다더니?
개인 : 어쩌겠어? 당장 생활비도 부족한데.
영선 : 원호는? 포기했어?
개인 : 병든 할머니 혼자계시더라. 원호 이 나쁜 자식!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할머닐 그렇게 나 몰라라 하고?
영선 : 원호 자식 우리한테 뻥 친 거니?
(한심하다는 듯 혀 차며) 안 봐도 비디오다.
가서 또, 있는 돈 없는 돈 다 털어주고 왔구만.
개인 : 근데 지금은 그게 문제가 아니야.
영선 : (불안하게) 너 또... 무슨 사고쳤어?
개인 : (영선과 시선 못 마주치고 고개 끄덕)
19. 담 미술관(낮)
그림을 보며 서있는 진호. 최관장 무심하게 걸어오다가 진호를 발견하는.
최관장 다가오는.
최관장 : 이 시간에 여긴 어쩐 일이십니까?
진호 : (보고 인사하는) 담 예술원 프로젝트를 맡으려면 담 미술관이 어떤
그림을 소장하고 있는지 알아야 하는 게 기본인 거 같아서 와봤습니다.
최관장 : (의미 있는 눈길로 보는)
-시간 경과, 진호, 최관장 로비로 걸어오는.
최관장 : 오늘도 우연일까요?
진호 : (보고)
최관장 : (묘하게 미소 지으며) 내 차를 들이박던 일도 그렇고, 우연이라고 하기엔
작의적인 냄새가 좀 나죠?
진호 : (보다가 미소 지으며) 젊은 놈의 치기라고 생각해주십쇼.
최관장 : 좋죠. 젊다는 건. 저돌적일 수 있으니.
참, 친구 분도 성격이 비슷하신 거 같던데?
진호 : (의아하게 보면)
최관장 : 재밌는 여자 친구분을 가지셨더군요?
진호 : (이 사람 게이예요, 하고 외치던 개인의 얼굴이 스치고, 인상 구겨지는)
저 어제 일은 좀 오해가 있으실텐데.....
최관장 : (미소 지으며) 난 남의 사생활엔 관심 없으니 신경 쓰지 말아요.
그러니 다른 거 신경쓰지 말고 설계에만 집중해 줬으면 합니다.
그럼 또 우연으로 계속 만나보죠.(걸어가는데)
진호 : 참... 바스키아는 어떠십니까?
최관장 : (돌아보면) ?
진호 : 이 그림말입니다. 여기엔 클림트보다 바스키아가
더 어울릴 거 같아서요.
최관장 : (생각하다가 묘한 미소) 나쁘진 않을 거 같군요.
진호 (인사하며) 그럼 우연을 가장해서 또 나타나겠습니다.
(돌아서서 걸어가는)
최관장 (그런 진호를 깊은 시선으로 바라보는)
20. 상고재 거실(낮)
영선 개인 소파에 마주앉아있고. 기함하는 표정으로 개인을 보는 영선
영선 : 하여간, 말도 징글징글하게 안 들어 먹어. 그 말을 또 했단 말야?
그것도, 갈비집, 그 많은 사람들 앞에서..?
개인 : (울상) 이번엔... 그냥 안 넘어가겠지?
영선 : (벌떡 일어나 개인 손잡고) 안 되겠다, 따라 와!
개인 : !!!
21. 마트(낮)
카트를 끌고 장을 보는 영선과 개인.
카트에 대파며 양파등 야채 담겨져 있다.
영선 : 그래도 진호씨 그렇게 막무가내 같진 않더라.
일단 먹을 걸로 회유하고 아양을 떨어보는 거야.
개인 : 여자는 돌덩이나 마찬가지라는데, 아양 떨어봐야 소용 있겠니?
영선 : (개인 한번 훑어보고 혀 차며) 하긴, 내가 남자라도 넌 돌덩이로 보이겠다.
개인 : 죽을래?
영선 : 그럼 일단 잘 먹이고 보자. 애인이 둘이라는데 잘 먹여야지.
개인 : 됐어, 요리도 못하는데 그 까다로운 사람 입맛을 무슨 재주로 맞춰.
그냥 빨리 방값 만들어서 내보내 버릴까봐.
영선 : 넌 왜 자꾸 내보낼 생각을 해, 어떻게든 구워삶을 생각을 해야지!
22. 담 미술관 로비(낮)
최관장, 로비에 걸린 클림트 그림 유심히 보고, 뒤에 인희 서있다.
최관장 : 바스키아는 어떨 거 같아요?
인희 : 예?
최관장 : 클림트 대신 말이죠. 누군가 그런 충고를 해주더군요.
인희 : (대답하기 난감한 듯) 글쎄요 전...
최관장 : (그림 보면서 미소를 짓는) ...
23. 진호 사무실(낮)
진호, 들어오는데, 상준, 직원들 일하고 있는.
진호의 핸드폰 진동하고.
진호 : (핸드폰 보면, 김인희라고 이름 뜨고, 받는) 네? 인희씨?
상준 : (인희란 말에 일어서고)
진호 : 아, 네, 그래요. 그러죠, 여러 가지로 고맙습니다. (전화 끊는)
상준 : (툭 치면서 흐뭇한 미소 날리며) 야, 전진호 너 또 한건 했구나!
진호 : 무슨 소리야?
상준 : 김인희씨 완전히 포섭 한 거잖아?
진호 : 내가 무슨 남파 간첩이야?
상준 : 전화까지 하는 사이면, 이젠 완전히 네 편 만든 거 같은데?
뭐라고 전화 한 거야? 무슨 정보라도 준 거야?
진호 : 최관장이 내일 저녁 먹자는 거야.
상준 : (환호 하는 느낌으로) 야, 야. 전진호.
내가 전생에 무슨 착한 일을 그렇게 많이 했길래 너같은 보스를
모시는거냐?
진호 : (어이 없는 표정으로 미소 짓는)
24. 비디오 대여점(낮)
영선, 개인 DVD를 고르고 있다.
영선 : 입은 방정맞지만 이만한 친구가 없겠다 싶게 만드는 거야.
게이 남자들이 여자 친구 많은 게 왠데?
모델 중에도 그런 애들 꽤 있거든.
걔들 여자애들하고 수다 장난 아니다.
지들도 애인 얘기는 여자하고 해야 편하고 재밌거든.
주르륵 DVD를 훑다 러브앤 트러블에서 멈추는 손.
영선 : 일단 요리로 진호씨 마음을 풀어주고, 둘이서 같이 볼 영화를 고르란말야.
(러브 앤 트러블을 뽑아주며) 이런 거...
게이남자친구와의 동거 매뉴얼이라고나 할까? 이런 거, 이런 거...
(더 넥스트 베스트 씽, 네 번의 결혼식과 한 번의 장례식 등을 뽑는다.)...
개인 : (받아서 훑어 보고) ...
영선 : 누이 좋고 매부 좋고 아니니?
개인 : 그건 또 무슨 소린데?
영선 : 너 매일 인희랑 붙어 살다가 뒷통수 맞고 속이 허하잖아?
그 허한 속 진호씨로 달래보라는 거야?
그냥 진호씨를 나처럼 생각해... 어려울 거 없지?
개인, DVD 사이에서 브로크백 마운틴을 고른다.
영선 : 미쳤어? 진호씨랑 그걸 같이 보게?
개인 : 진호씨로 허한 속 달래보라며? 그럼 나도 그렇게 해야하는 거잖아?
게이라는 거 숨기고 사는데 얼마나 힘들겠어?
같이 사는 나라도 그 외로움을 알아줘야 할 거 아냐?
영선 : (설득된 듯) 하긴...
25. 진호 사무실(저녁)
컴퓨터 검색창에 ‘게이남자친구’라고 입력되는 글씨, 주르륵 뜨는 자료들.
쭉 눈으로 한 번 훑어보는 시선.
상준 : (퇴근준비하며 가방 챙기다가)여대생들이 크리스마스에 받고 싶은 선물 1 위?
직원1: (설계부지 사진 보다가 멈칫) 글쎄... 옷? 남자친구?
직원2(여) : 그래요, 남자친구. 그것도 게이남자친구래요.
진호 : (퇴근하려 방에서 나오다 솔깃해 보는)...
직원1 : (컴퓨터 앞으로 오며) 정말? 어디?
상준 : 근데... 여자들은 정말 게이 친구가 갖고 싶을까?
직원2(여) : (검색창 보며) 여자들이 게이 남자친구를 원하는 이유! 함께 쇼핑도 하 고, 여자마음을 이해해주고, 대화가 잘 통하기 때문이다.
직원1 : 연애할 때 남자심리 조언은 어려울 것도 없겠고..?
상준 : 그렇지! (하다 옆에서 자세히 듣고 있는 진호 문득 이상해서 보고)
근데 너 퇴근한다더니 안가? 너도 이런데 관심있냐?
진호 : (무안해서 직원1이 보던 사진 보며) 사진 잘 나왔네...(돌아서면)
직원2(여) : (나가는 진호 뒷모습보며) 우리 소장님도 연애하고 싶으신가봐요? 여자 들 취향에 관심 갖는 거 보면.
진호 : (후다닥 나가는)
26. 사무실 주차장(저녁)
진호, 차에 올라타면. 태훈, 자기 차 운전석에 몸 숨기고 있다가
진호의 차 떠나자 몸 일으키고,
태훈 : (출발하며) 진호 형! 미안해.
세상에 믿을 놈 없는 거 알지?
(썬그라스 끼며 쫓아간다.)
27. 사우나 휴게실. (저녁)
혜미, 진호모, 가운 걸치고 앉아서 음료수 마시고 있는.
진호모 : 우리 혜미 몸이 어쩌면 요렇게 이쁘니?
요만한 꼬맹이였는데 어느새 이렇게 커서. (혜미 머리 쓰다듬는)
혜미 : (배시시 웃으며) 그런데 왜 진호 오빠는 아직도 꼬맹이 취급인지 모르겠어 요.
진호모 : 진호가 여자한테 관심 둘 틈이 없어서 그런 거야. 네가 안 예뻐서가 아니 라. 어려서 아버지 허망하게 돌아가시는 거 봤지. 학교 때는 성공하겠다고 죽어라 공부하고, 졸업해선 일하느라 언제 연애다운 연애 한번 해봤나?
혜미 : 그래도 너무 무시하니까 속상해 죽겠어요.
진호모: 그게 다 이 집안 남자들 내력이야. 나도 그랬잖니?
진호 아빠 고등학교 때부터 죽자고 쫓아 다녔잖어. 지금도 이 미몬데 그때 는 오죽했겠니? 그래도 눈 하나 깜박 안하더라. 근데 그게 무시해서가 아 니라 표현을 못 하는 거였어. (눈 찡긋) 결국엔 내가 꽉 잡고 살았잖니.
혜미 : 정말요?
진호모 : 그럼.(혜미 귀엽게 보면서) 조금만 안정 되면, 나한테는 혜미 밖에 없구나 그럴 날이 올거야. 그나저나 어디서 어떻게 지내고 있는지, 밥이나 잘 챙 겨 먹고 있는 건지 모르겠다.
혜미 : 걱정마세요. 곧 오빠 있는데 알아내서 모시고 갈 테니까.
28. 상고재 외경(저녁)
차에서 내리는 진호
상고재를 보며 크게 심호흡 한다. 그 위로...
여직원2 (E): 여자들이 게이 남자친구를 원하는 이유! 함께 쇼핑도 하고, 여자마음을 이해해주고, 대화가 잘 통하기 때문이다.
진호 : (설레설레 고개젓고) 내가 게이라도 박개인, 이 여자하곤 그런 거 못하지.
진호 들어가고 나면
진호 뒤에 와 서는 차, 선그라스 벗는 태훈
태훈 : (한자 읽으려 애쓰며) 앞에 글자는 상...제일 뒤에 글자는 재.
그니까 상,머,제인데...(하다말고) 상..무슨...재...(퍼즐 맞추듯) 상고재?
오호! 등잔밑이 어둡다, 이거지? 상고재! 좋았어!
29. 상고재 주방(저녁)
레시피를 냉장고 문에 자석으로 탁 붙이는 영선
영선 : 오늘의 메뉴는 석화그라탕!
개인 : 자신 없는데... 오븐 안 쓴지도 오래 됐고...
친구야, 그냥 니가 해주고 가면 안될까?
영선 : (손가락으로 개인 머리 밀며) 으이구... 웬수... 이건 친구가 아니라 웬수야~
개인 : (꼬시듯 방긋) 진호씨랑 셋이서 밥 같이 먹으면 좋잖아. 응? 응?
영선 : (금방 솔깃해서)..그러...까? (망설이는데 전화 오고)
(받으면 놀란 듯 핸드폰 귀에서 떼고) 알았어! 가면 되잖아!
준혁이 땜에 안되겠다.
대문 열리고 진호 들어오는 인기척 난다.
개인 : (당황해 왔다갔다) 어쩌지? 아직 화 안 풀렸을텐데...
영선 : (개인을 현관문 쪽으로 밀며) 어쩌긴, 그냥 밀어붙이는 거야!
30. 상고재 거실(저녁)
영선 : (과하게 웃으며) 오셨어요?
진호 : 안녕하세요? (영선보고 인사하면)
개인 : (눈치보며 영선이 시킨대로) 진호씨... 오셨어요?
진호 : (시선도 주지 않고)...
영선 : (어색한 두 사람 보며) 어머... 두 사람, 아직 말 안 텄어요?
진호, 개인 :...
영선 : 계약서 쓸 때 보니까 나이도 비슷하던데 말 터요, 말 터!...
진호 : ...
개인 : (영선이 옆구리 쑤시자) 진호씨... 배 고프지? (말끝 얼버무리며 헤헤 웃는)
진호 : ...
개인 : (어색하게 눈치보며) 맛있는 거 해 줄까...(진호 눈치보면서)...요?
영선 : 기왕 한 집에 사는 거, 친구처럼, 말도 트고, 방귀도 트고... 오케이?
(집에 갈 일 잊은 듯) 자 우리, 다 같이 차라도 한 잔 마시면서...
진호 : (정중하게)...말은... 때가 되면, 천천히 트겠습니다.
영선 : 보기보다 낯을 많이 가리나봐...(살벌한 진호 표정보며 꼬리 내리는)...요?
진호 : 전 그만 실례하겠습니다. (목례하고 방으로 들어간다.)
개인 : (진호 싸늘한 뒷모습 보며 영선 찌르고) 어떡해...
영선 : (아무래도 난처한 분위기다. 도망치듯) 어머, 우리 준혁이 배고프겠다!
나 간다.
영선 마루에서 내려서 급하게 가려고 하면.
개인 (영선 잡으며) 그냥 가면 어떡해? 나 아무 것도 할 줄 모르는 거 알면서?
영선 우리 준혁이 배고파 돌아가시겠단다.
대충 알아서 좀 해봐. (얼른 대문 열고 나가면)
개인 (난감한 진호방 기척 살피는)
개인, 아무 소리도 없자 귀 살며시 들이대는데 안에서 갑자기 확 열리는 문
화들짝 놀라며 문에서 물러서는 개인, 괜히 딴청부리는데
진호 : 우리 얘기 좀 할까요?
개인 : (눈치 보면서) 무슨 얘기?
31. 상고재 거실(저녁)
마주 앉은 두 사람.
진호, 팔짱 낀 채 앉아 있고. 개인 진호 앞에 주눅 들어 앉아 있는.
진호 : 그러니까 어제 일은 기억이 하나도 안 나신다?
개인 : (올 것이 왔구나 하는 표정으로) 술 먹고 필름이 끊긴 걸... 어쩌라구요?
진호 : 그럼 제가 어제 갈비값 계산한 것도 기억이 안 나시겠군요?
개인 : (놀라는 척) 어머...그런 민폐를 끼쳤나요, 제가? 그 돈은... 갚아드릴게요.
진호 : 집에 와서, 제가 십만원짜리 수표로 열 장, 백만원 빌려 드린 것도 기억 못 하시고요?
개인 : 그럼요, 백만원...
(입에 게거품 물며) 내가 언제 백만원 빌렸어요, 전진호씨한테?!
진호 : ...
개인 : 정말 사기꾼이 따로 없네...
내가 언제 진호씨한테 돈을 빌렸다구? 그것도 백만원씩이나....
진호 : (씨익) 필름이 띄엄 띄엄 끊겼나보죠?
개인 : 예? (그제서야 아차 싶은) 아니...그게...
진호 : (싸늘) 나는, 다른 건 다 용서해도 거짓말 하는 건 용서 못 합니다.
개인 : (진호 말 끝나기도 전에 다리 붙들고 깨갱) 잘못했어요! 다신 안 그럴게요.
32. 상고재 거실(밤)
자필로 종이에 각서라고 적는 개인
진호 : 나 박개인은 앞으로 한 번만 더 전진호의 개인적 취향에 대해 발설하면
개인 : (초등학생마냥 부지런히 따라쓰고) 발설... 하... 면...
진호 : ...
개인 : (고개들어 진호보고) 그 다음은요?
진호 : 그 뒤엔 알아서 써요, 어떻게 할 거예요?
개인 : 혀를 확 깨물고 죽을게요!
진호 : 박개인씨가 혀 깨물고 죽어도 나한테 도움은 안 되거든요?
개인 : (이 피도 눈물도 없는 남자 같으니)...!
시간경과)
완성된 각서 보여지는 위로...
개인(E) : 나 박개인은 앞으로 한 번만 더 전진호의 개인적 취향에 대해 발설하면, 전진호가 시키는 것은 무엇이든 다 하겠습니다. 됐죠?
진호 : (찍으라는 듯 인주 개인의 앞에 들이밀면)...
개인 : (아무래도 망설여지는듯) ...
진호 : (개인의 엄지 손가락을 가져다 인주에 묻혀 팍 찍는다.)이의 있습니까?
개인 : (차라리 후련해서) 그럼...이걸로 넘어 가는 거죠?
진호 : 일단은요.
개인 : (일어나며) 잠깐 기다려봐요. 내가 저녁 해 줄게요.
어제 갈비값 대신이에요. (부엌으로 가는)
33. 몽타주(밤)
-앞치마에 두건 쓰고 일단 준비는 거창한 개인
굴 껍질에서 서툴게 굴 뜯다가 바닥에 떨어진다. 눈치보고 얼른 주워담는 개인
-야채 썰다가 손가락 잘린 것처럼 비명 지르는 개인,
-프라이팬에 야채 볶다가 중국집 요리사 흉내내며 홱 던지면 날아가는 재료들
-장갑끼고 오븐에서 요리 꺼내려는데 온도 조절을 잘못 해 반 정도는 타버린 그라 탕들. 일부가 타버린 그라탕의 탄 부분을 긁어내는 개인.
진호, 평상복으로 갈아입고 나와,
요리하는 개인을 한심한 듯 쳐다보며 설레설레 고개 젓고.
냉장고를 열어 자기가 먹을 음식들을 꺼낸다.
34. 상고재 주방(밤)
식탁 보여지면 개인이 차린 음식들 폭탄 맞은 듯 너저분히 놓여 있고,
금을 그리듯 한쪽에 진호가 준비한 음식들 소박하고 정갈하게 놓여 있다.
진호, 개인의 음식은 쳐다도 안보고 자기 음식만 깔끔하게 먹는다.
개인 : (그런 진호 보다 투덜) 누구 주려고 하루종일 만든건데...
(손 호호 불며) 아파라... 데었나봐.
(진호 들으라는 듯)어머, 칼에 베기도 했는데... 피도 철철 흐르는데.
진호, 참다 못해 개인의 음식에 젓가락 가고,
젓가락 허공에서 망설이다 비교적 먹을만해 보이는 석화 그라탕을 집어든다.
완성 된 석화 그라탕은 세 개 정도다.
개인 : (먹는 진호 기대에 차서보고) 어때요?
진호 : (심드렁) 뭐 사람이 먹을 만은 하군요. (젓가락으로 석화 건네며)먹을래요?
개인 : (예의상) 됐어요. 전 아까 먹었어요.
진호 : (두번 권하지 않고 자기 입으로 쏙 들어가고) 그럼.
개인 : (침 꼴깍 삼키며) 맛있어요?
진호 아까 먹어봤으니 맛이 어떤지는 알 거 아닙니까?
(나머지도 입으로 들어가는)
개인 (아쉬워서 노려보는) 배 터지게 많이 드세요.
어느새 깨끗하게 비워진 접시.
개인 : (중얼) 원래 맛있는 음식은 같이 먹고 그래야 정도 생기고 그러는 건데.
진호 전 박개인씨하고 정 붙이고 싶은 생각 전혀 없는 사람입니다.
개인 (입모양으로 고개 돌리고)
나쁜 놈... (아쉬운 듯 접시에 떨어진 치즈 손으로 집어먹고)
진호 : (그걸 보며 마뜩치 않은 듯 인상쓰며 냅킨으로 입닦고) 잘 먹었습니다.
(일어나는데)
개인 : 전진호씨! (손 내밀며 호탕하게) 앞으로 잘해봐요, 우리!
진호 : (못 이기듯 악수하고) 당신만 잘하면 됩니다, 우린. (손수건에 슥슥 손 닦는)
35. 상고재 주방 씽크대 앞(밤)
진호, 자기가 먹은 그릇만 가져다 설거지한다.
개인 : (뒤에서 슬쩍 자기 그릇 밀어넣고) 밥도 먹었는데, 같이 영화 안 볼래요?
진호 : (개인의 그릇 다시 안겨주며) 그렇게 한가한 사람 아닙니다, 저.
진호, 깨끗이 씻은 그릇 물기 탈탈 털어 올려놓고 나가버린다.
개인 : (자기 그릇 들고 입 삐죽 내밀며) 맛있는 거 저 혼자 다 먹고 쌩하고
나가는 거 보라지.
36. 신혼 아파트 현관문 앞(밤)
도어락을 누르는 손, 인희다.
비밀번호 누르는데 열리지 않는 문.
몇 번의 시도에도 열리지 않자 화난 얼굴로 초인종 누른다.
한참만에 안에서 문 열어주는 사람, 창렬이다.
인희, 약이 바싹 올라 노려보다 안으로 들어가고.
37. 아파트 안(밤)
인희, 씩씩대며 들어오면
창렬, 인희가 그랬듯 와인마시며 음악듣고 있다.
인희, 오디오의 음악 손으로 끄면, 창렬 리모콘으로 다시 켜고
인희, 손으로 끄면, 창렬 리모콘으로 다시 켜며 신경전 벌인다.
인희 : 유치하게 왜 이래?
창렬 : 나 원래 유치한 놈이잖아, 몰랐어?
인희 : 그게 자랑이야?
창렬 : 언제부터 진호하고 같은 차 타고 다니는 사이 됐냐?
전화번호도 따고 좋아 죽더라?
인희 : 나 감시하니?
창렬 : 미술관 갔다가 봤다, 됐냐?
인희 : 우리 이미 끝난 사이야. 그러니까 괜히 시비 걸지마.
창렬 : 너 혼자만 끝내면 다냐?
인희 : 난 그래, 창렬씨도 개인이하고 혼자 먼저 끝낸 거 아니었어?
창렬 : (날카롭게 보고) 그렇게 만든 거 너야.
인희 : 이제와서 모든 책임은 나한테 덮어 씌우시겠다? 참 한창렬답다.
창렬 : 넌 끝냈을지 모르지만, 난 아직 아냐.
그러니까 진호 자식하고 왜 같은 차를 타고 다니는지 물을
자격 충분히 있어.
인희 : 궁금해 하니까 솔직하게 대답할게.
전진호씨, 내가 만나고 싶으면 만날거야. 됐지? (방으로 들어가려고 하면)
창렬 : (인희 팔 잡으며) 진호는 안 돼.
인희 : 안 돼? 왜 안 돼? 안 된다고 하면 더 하고 싶어져, 알아?
창렬 : (진지하게 보며) 무릎을 꿇으라고 하면 꿇을게...한 번만 기회 줘.
인희 : 난 있지, 명품이 좋아.
어렵게 좋은 물건 골라서 오래 오래 갖고 싶어.
근데 창렬씬... 명품 아니더라. 오래 갖고 있을 자신이 없어졌어.
창렬 : (보다가 거칠게 인희 안는다)...
인희 : (아무 열정도 없이 가만 있음으로써 감정 확인시켜주면)...
창렬 : (안은 채)내가 어떡하면 되겠니?
인희 : 창렬씨가 아니라 내가 문제야. 난 한번 마음이 떠나면 다신 돌아보지 않아.
창렬 : (포옹 풀며)...좋아, 이렇게 살자 쭈욱~~
대신 이집에서 내가 나가고 싶을 때 나갈 거야.
인희 : 좋아, 대신 내 사생활에도 간섭하지 마. 내가 누굴 만나건...
(침실로 들어간다)...
창렬 : (보다가 화를 못 이기고 주먹으로 벽을 친다.)...!
38. 상고재 거실(밤)
진호, 물컵 들고 마루로 올라서는데 낄낄대는 웃음소리에 멈칫해서 보면.
개인, 어둑한 거실 소파에 혼자 앉아 낄낄대며 영화 보고 있다.
개인 : (박수 쳐가며 웃고, 주섬주섬 팝콘 먹고)
진호 : (한심하게 보며 혼잣말) 도무지 걱정이란 게 없는 여자네.
애인한테 바람 맞어, 친구한테 배신당해... 그리고도 참 속도 편하지.
(설레설레 고개 젓고)
진호, 물컵 가지고 주방에서 나오는데
개인 : (낄낄대며 무의식적으로) 인희야 나도 물!
진호 : (보면) ?
개인 : (인희가 없다는 걸 깨닫고 낭패스런 순간 풀이 죽는 표정)
진호 : (왠지 그 모습이 안됐어서 물컵 내밀면)
개인 : (받아서 마시고)... (씨익 웃으며) 팝콘 먹을래요?
진호 : 됐습니다.
개인 : (어깨 으쓱하고, 팝콘 입이 터져라 집어 넣는다)
진호 : (한심하게 보며) 다이어트 안 해요?
밤중에 이런 고칼로리 음식을 그렇게 먹어대고.
개인 : 살 안찌는 체질이에요.
진호 : 살은 안 쪄도 그 나이 되면 다 뱃살로 갑니다.
김인희씨하곤 얼마나 같이 산 거예요?
그렇게 당하고도 인희야, 소리가 나오는 거 보면 꽤 오래
같이 산 거 같은데?
개인 : 10년이요. (화제 돌리려고 억지로 입에 팝콘 마구 넣으면서)
에이, 아무리 먹어도 팝콘이 줄지를 않네.
진호 : (그런 개인이 더욱 안쓰럽고, 하는 수 없이 옆에 앉는)
개인 : (보면)
진호 : (개인이 들고있는 팝콘 먹으면서) 뭐 먹을만은 하네..
개인 : 그 나이 되면 뱃살로 간다면서요?
진호 : (거만하게) 뱃살 안 나오는 체질입니다.
개인 : (어이없다는 듯 보다 웃고)
나란히 앉아 팝콘을 꺼내는 손 다정해 보인다.
시간경과)
개인 : 근데... (망설이다) 언제부터 알았어요?
진호 : 뭘요?
개인 : 게이... 아니, 남들과 다르다는 거.
진호 : ...
개인 : (담담히) 난 7살 때였어요.
진호 : 레즈예요?
개인 : (어이없어서 입 벌어지고)
엄마가 없는 게 남들과 다른 거라는 거... 그때 알았다구요.
진호 : (의아하게 보면)
개인 : 유치원에서 재롱잔치 하는데 색동저고리 입었거든요. 근데 다른 애들은
다 엄마가 와서 입혀주는 거예요.
난 고름을 맬 줄 몰라서 멍하니 서있었는데, 어떤 애 엄마가 매주셨어요.
그때 난 정말 엄마가 없구나 하고 느꼈던 거 같아요.
진호 : (물끄러미 보면)
개인 : 진호씨도 어쩌면 그런 느낌이 아닐까 싶어서요.
진호 : (물끄러미 개인 내려보다가 건조하게)난 재롱잔치같은 거 아예 안했어요.
개인 : 왜요?
진호 : 꽃단장하고 춤추는 거 무지 싫었어요.
개인 : (진호 올려다보며 피식피식 웃는다)
진호 : (기분 나쁜 듯) 뭡니까?
개인 : (팔꿈치로 진호 툭툭 치면서) 그때부터 남자애가 더 좋았구나?
그래서 더 남자인 척 한거죠? 그죠? 그죠?
진호 : (개인 입에 팝콘 쳐넣고) 자, 자, 먹기나 해요.
개인 : 말해봐요, 언제부터 였어요? 언제부터 난 남들과 다르구나? 그랬냐구요?
진호 : 제발 좀 먹기나 하라니까요.
장난스레 툭탁대는 두 사람의 모습 점점 멀어지며 (F.O)
39. 진호 사무실(아침 F.I)
상준, 헐레벌떡 사무실로 뛰어 들어오며
상준 : 미안! 늦었지?
(사무실 분위기가 어딘가 평소와 다른 걸 감지) ?
(태훈보며 소근) 소장님 출근 아직이냐?
태훈 : 했는데요?
상준 : (킁킁 냄새 맞고) 근데 왜 커피 냄새도, 음악소리도 안 들려?
태훈 : 출근하자마자 화장실로 가더니.....
진호, 죽을상을 해가지고 사무실 문 열고 들어오는.
상준 : 야, 너 왜그래?
진호, 몇 걸음 옮기다가 윽하는 표정으로 다시 뒤돌아 나가는.
40. 진호 사무실 복도(아침)
진호, 창백한 얼굴로 급히 뛰어가는데
상준, 쫓아 뛰어온다.
상준 : 야, 무슨 일 터졌어?
진호 : (계속 뛰어가며 심각하게) 쫓아 오지마.
상준 : 뭔데, 말 좀 해봐!
진호 : 나중에...
상준 : (결국 진호 붙잡아 세우며) 나중이라니! 무슨 일인지 알아야...
진호 : (잔뜩 인상쓰며 으름장.) 나... 건드리지 마!
상준 : (화들짝 놀라 손떼며) 어? 어...
(바쁘게 뛰어가는 진호 불안한 듯 보고)
41. 길가 횡단보도 앞(아침)
미칠듯한 표정으로 서 있는 진호.
계속 빨간 불이다. 배 잡고 거의 쓰러질 듯 버티는데 바뀌는 파란불.
신호 바뀌자마자 달려가는 진호.
진호 : (식은 땀 흐르며 죽을 것 같은 표정) 제길! 그라탕이야, 팝콘이야!
42. 약국 안(아침)
부드러운 음악이 흐르는 화사한 분위기의 약국.
진호, 약국 문 열고 들어오면
약사 아가씨, 얼굴 발그레해져 카운터에서 일어난다.
약사 : (방긋 웃으며) 어떻게 오셨어요?
진호 : (갑자기 신호 온 듯 위급한 표정) 지사제...
약사 : (못 들은 듯 다시 방긋) 네?
진호 : (험상궂은 얼굴로) 지사제... 설사약이요!
약사아가씨, 귀를 의심하듯 쳐다보고.
진호, 스타일 구겨져 죽을 맛이다.
43. 상고재 / 개인 방, 영선과 교차로(아침)
봉투에 담겨지는 서류들.
개인(E) : 이력서, 자기소개서, 포트폴리오... 오케이 준비 완료!
개인, 부스스한 몰골로 옷장 뒤지는데 핸드폰 울린다.
개인 : (받고) 어, 영선아?
영선 : 너 괜찮아?
개인 : 뭐가?
영선 : 그거 석화말야. 엄마가 상한 거랑 바꿔 보냈데!
개인 : 뭐?
영선 : 우리식구들은 아직 안 먹어서 괜찮은데, 너는?
개인 : 난 당연히 괜찮지... (울쌍되며) 진호씨 혼자 다 먹었으니까...
영선 : (난감해 할 말 잃고)...
개인, 영선 : ...어뜩하냐!
약사(E) : 설사약이요?
44. 약국 안(아침)
진호 : (창피해 죽을 것 같아 나직이)예.
약사 : 무슨 음식을 드셨는데요?
진호 : (급한 걸 참느라 카운터 움켜쥐며 부들부들) 서...석화요.
약사 : (느긋하게 약 챙기며) 석화가... 탈이 나셨나보네요.
진호 : (체면 무릅쓰고) 빠... 빨리요!
약사 : (가루약과 알약, 챙겨 건네며) 여기요.
진호 : (괄약근이 금방이라도 터질 듯) 저...저기! 으읍...화, 화장...실은 어디!
약사 : 나가셔서 오른 쪽이요.
45. 거리(아침)
약사아가씨 얼른 진호를 쫓아 나오며 소리친다.
약사 : 참, 화장실 열쇠 가져 가셔야 돼요!
진호, 멈추면.
행인들 쳐다보는데 약사 아가씨 무식 할 정도로 커다란 캔이 달린 열쇠 건네주고.
진호, 엉덩이에 힘 잔뜩 주고 두 다리 꼬아 붙인 후
약사 앞에서 체면도 없이 종종걸음으로 경보하듯 달려간다.
주변에 있던 사람들 쿡쿡 웃고, 진호 죽을 맛이다.
46. 화장실 안(아침)
진호 변기에 앉아 양손으로 휴지 움켜쥐고 부들부들 떨며.
진호 : 으....박개인... 박개인...!
47. 화장실 외경(아침)
진호(E) : (처절한 외침) 부셔버릴거야!
48. 상고재 앞(아침)
개인, 핸드폰 하지만 받지 않는 진호.
개인 : 안 받네, 진호씨. (핸드폰 닫으며) ...괜찮은건가?
(걱정 털어내듯) 그래, 취직만 해봐. 방 뺀다고 하면 까짓 거 빼준다 뭐!
개인, 시계 보더니 면접서류와 포트폴리오등 옆구리에 끼고 바쁘게 걸어간다.
그 뒤로 툭툭 떨어지기 시작하는 빗방울.
49. 진호, 주차장(낮)
차에 올라타는 진호, 표정 여전히 힘들어 보인다.
상준 걱정스레 바라보며.
상준 : 정말 최관장 만나도 괜찮겠냐?
진호 : 걱정마 괜찮을 거야.
50. 가구 회사 로비(낮)
창렬과 회사간부 함께 걸어오고
간부 : (아부하듯) 그럼 이번 공사에 들어갈 빌트인 가구는 저희 제품으로...
(비굴한 웃음)
창렬 : (거드름) 그게 뭐 저 혼자 결정할 문제도 아니고...
51. 가구 회사 접견실(낮)
간부 : (문 열고 들어오며) 아이고, 왜 이러십니까?
한실장님, 미래건설 실세라는 소문이 자자하시던데...
개인, 의자에 앉아 있다가 허겁지겁 일어선다.
창렬, 개인 보고 당황해 멈칫하고.
개인 : (창렬 못 보고 꾸벅 인사) 안녕하세요!
연락받고 왔습니다, 박개인입니다!
창렬, 개인을 피해 슬그머니 문 뒤로 모습 감춘다.
간부 : (개인의 엉성한 차림새 마뜩치 않게 보며) 알았으니, 서류 놓고 가요.
개인 : 저기 일단 포트폴리오를 좀 봐주시면...
(기회다 싶어 포트폴리오 넘기며 설명) 이건 전부 제 디자인이거든요.
특히 이 가구들은 싱글족을 위한 건데 컴퓨터 USB에 꽂으면...
간부 : (짜증스런) 이봐요... 아가씨, 우리가 구하는 건 디자이너가 아니라 비서실 직원이에요.
개인 : 예?
간부 : 보아하니 뭔가 착오가 있었던 거 같은데...
개인 : (잔뜩 실망한 표정) 아... 네...
문 뒤에서 풀 죽은 개인을 보는 창렬.
52. 거리. / 창렬 차 안(낮)
쏴아 비가 쏟아지는 거리.
김비서(E) : 실장님. 저 여자... 점 뺀 여자...!
창렬, 차 창밖 보면 포트폴리오와 서류 젖지 않게 품에 안고 뛰어가는 개인 보인다.
개인, 비 쫄닥 맞은 채 편의점 안으로 들어가고.
사발면 갖고 편의점 창가로 오는 개인.
추운지 덜덜 떨며 사발면 호호불어 먹다가,
소맷자락으로 포트폴리오에 묻은 빗물 닦고.
창렬, 멀찍이 차 대어놓고 바라본다.
김비서 : 실장님? 그냥 가세요.
창렬 : ......
김비서 : 실장님은 정말 그게 문제시라니까요, 정에 너무 약하신 거.
결혼식장에서 그 난리를 겪으셨으면서도 왜 또 이러고 계신데요?
창렬 : ...김비서, 내려. 운전 내가 할게.
김비서 : 예?
53. 레스토랑(저녁)
진호, 최관장과 만나 인사하고 자리에 앉는다.
최관장 : 바스키아 그림으로 바꾸니까 느낌이 훨씬 좋더군요.
그래서 답례로 저녁을 살까하고 만나자고 했습니다.
진호 : 뭐 그렇게까지.....
최관장 : 그런 안목으로 이번 담 예술원 프로젝트에 신선한 디자인을
출품해주길 바랍니다. 기대해도 되는 거겠죠?
진호 : 최선을 다해보겠습니다.
그때 다시 꾸르륵 거리기 시작하는 진호의 배. 진호 애써 참느라 점점 식은 땀나고.
최관장 : (진호 안색 굳어진 걸 보고) 근데 어디... 불편한가 봅니다.
진호 : (힘들게) 괜찮습니다...
최관장 : (손수건 내밀며) 식은 땀 흘리네요.
진호 : (난감한 표정으로 받고)
최관장 : 식사는 다음에 해도 되니까 무리하지 말아요.
진호 : 아닙니다.
최관장 : (빙긋 웃으며 일어나고) 손수건은 그때 꼭 돌려줘요. 내겐 특별한 거니까.
진호, 레스토랑을 나가는 최관장과 손수건 번갈아 보며 잠시 멍하다.
잘 된 일인지 안 된 일인지 알 수가 없고.
다시 꾸르륵 소리에 괴롭게 몸이 비틀리는 진호.
54. 상고재 앞(밤)
비 그쳐있다. 쫄닥 맞은 차림으로 터덜터덜 걸어오는 개인.
개인, 대문 열고 들어가면 뒤따라와 서는 창렬의 차.
창렬, 차에서 내려 상고재 대문을 향해 몇 걸음 내딛다 멈춘다.
플래쉬백) 그 대문에 청첩장을 꽂던 자신.
차마 더 나가지 못 하고 다시 차에 타는 창렬, 사라지고 나면
반대쪽에서 들어오는 진호의 차.
진호, 긴장된 표정으로 차에서 내려 사라지는 창렬 차 본다.
55. 상고재 마당/ 거실 (밤)
진호, 대문 열고 들어서는데,
개인, 마루에 서서 홀딱 젖은 채로 겉옷 벗다가 진호와 눈 마주친다.
개인 : (화들짝 놀라지만 곧 경계 풀며 얼른 마루에서 내려오면) 괜찮아요?
진호 : 괜찮아 보여요?
개인 : (미안해 죽을 것 같은) 설사 했어요? 어떡해요, 미안해서...
진호 : (적나라한 말이 민망) 설사... (신경질적으로 인상쓰고) 관둡시다.
개인 : 기다려봐요! 잘 듣는 약이 어디 있었는데.....
약을 찾는다며 분주히 돌아다닌다.
개인의 동선따라 바닥에 뚝뚝 떨어지는 물.
진호, 그 모습 보니 기가 막히지만 더 이상 화를 낼 수가 없다.
개인 : (서랍 뒤지며) 여기 어디다 뒀는데.....
(머리위로 툭 떨어지는 수건) ? (올려다보면)
진호 : (퉁명스레) 온 집안을 물 천지 만들 셈이에요?
개인 : 죽 끓여 줄까요? 하루종일 설사했으면 뭐라도 먹어야...
진호 : (버럭 화내며) 거 설사 소리 좀!
(방으로 들어가고) 됐습니다. 감기 드니까 옷이나 갈아입어요.
개인 : (안심하며) 화내는 거 보니 살만은 한가보네.
56. 신혼 아파트(밤)
화장실에서 머리 말리고 목욕가운 입고 나오는 인희,
들어오는 창렬을 보고 쌩하니 방으로 들어가려한다.
창렬 : (손에 쇼핑백 든 채) 밥...안 먹었지?
인희 : 냉장고에 음식점 전화번호 있어. 시켜 먹어.
(눈길도 주지 않고 침실로 들어간다.)
창렬 : (쇼핑백에서 식탁에 초밥과 여러 가지 꺼내놓는다.) 김인희, 나와 봐.
남남으로 살아도 밥은 먹어야 할 거 아냐? (침실 문 두드린다.)...
인희 : (기척 없으면)...
창렬 : (문 두드리던 손, 격해지며) 문 박살낼까?!
인희 : (문 열며) 왜 이래?
창렬 (손잡고 애써 살갑게) 너 좋아하는 초밥 사왔어, 먹자.
인희 (손 뿌리치며) 한 집에 살지만, 우리 남남 아냐? 그런데 왜 밥을 같이 먹어.
창렬 (달래듯) 너하고 어떡하든 잘해보려고 하는데, 꼭 그렇게 말을 해야겠냐?
인희 우리가 어떻게 잘 해봐?
내가 말했잖아? 내 마음이 그래지지 않는다구?
창렬 (욱하지만 마음다스리며) 인희야, 제발...
인희 쿨하게 같이 살 자신 없으면, 이 집 내 이름으로 해주고 나가.
위자료라고 생각하고.
창렬 (폭발하면서)
내가 왜 너한테 위자료를 줘? 개인이한테 주면 몰라도?
인희 : 여기서 갑자기 개인이 얘기가 왜 나와?
창렬 : (눈빛 흔들리는)...
인희 : 이제 와서 개인이가 불쌍하시다? 그거야?
창렬 : 나 개인이한테 죽일 놈 되면서 널 선택했어.
그러니까 우리 이런 식으로 끝내면 안돼.
인희 : 허, 그런 죄의식 때문에 끝낼 수 없으시다?
창렬 : (인희 어깨 잡으며)난 너한테 정 붙이려고 안간힘을 다하고 있는 거야.
그러니까 제발 날 밀어내려고 하지마.
인희 : 당신을 밀어내게 만든 건 당신 자신이야.
결혼식날까지 개인이한테 우리가 결혼한다는 말 한마디 못해서
그 망신을 당하게 만든 당신 자신이라구.
창렬 : (더는 참지 못하고 나가버리는)
문짝 떨어질 듯 세게 닫고 나가는 창렬,
말은 그렇게 했지만 신경쓰이는 듯 창렬 보는 인희.
57. 호텔 바(밤)
창렬, 스트레이트로 연거푸 마시는.
58. 상고재 / 진호 방(밤)
진호, 제도판 위에 종이 펼쳐놓고 생각나는 대로 스케치 하고 있다.
신들린 듯 스케치하는데 갑자기 멈추는 손.
개인(E) : 아뜨뜨거! 아뜨!
요란한 소음과 함께 무언가 떨어져 깨지는 소리.
진호, 이젠 놀랍지도 않다는 듯 설레설레 고개 젓는다.
59. 상고재 주방(밤)
개인, 깨진 그릇 치우고다가 손 베고.
개인 : 아야! (피 나온 손가락 쪽쪽 빨며 다시 치우는데)
진호 : 비켜봐요. (개인이 치우던 파편들 주워담고)
하여간 박개인씨는 하루라도 사고를 안치면 손가락에 가시가 돋죠?
개인 : 그러는 진호씬 하루라도 날 안 갈구면 입안에 가시가 돋죠?
진호 : 웬만해야죠!
개인 : 대충 해요. 죽 다 식겠어요.
식탁 위에 제법 그럴듯한 죽이 놓여있다.
개인, 자랑스레 씨익 웃고.
진호 : (한 숟가락 뜨려다 개인에게 숟가락 넘겨주고) 먹어봐요.
개인 : ?
진호 : 독극물이라도 들어갔을지 모르잖아요.
개인 : 뭐예요!
진호 : 박개인씨라면 충분히 그런 실수 할 수 있어요.
개인 : (으이그 하며 한 숟가락 떠먹고 숟가락 넘겨준다) 자, 됐죠?
진호 : (무심결에 숟가락 받아 떠먹으면)
개인 : (씨익 웃으며 놀리듯) 그거 알아요? 진호씨랑 나랑 지금 간접 키스 한 거.
진호 : (아차 싶어서 얼굴 일그러지고) 차라리 독극물이 나았을걸 그랬네.
개인 : (주먹 불끈 쥐고) 이 남자가 정말!
진호 : (개인 손 보면 여기저기 상처 투성이다) 손은 왜 그래요?
개인 : 진호씨 때문이죠.
이건 어제 그라탕할 때, 이건 오늘 죽 끓이다, 또 이건 아까 그릇에 벤 거.
진호 : 밴드라도 붙여요.
개인 : (자기 손 보며 대수롭지 않게) 됐어요. 헤... 이 정도야 뭐...
E : 휴대폰 진동음
개인, 식탁위에 있던 휴대폰 보고는 얼굴 굳어진 채 끊는다.
끊자마자 다시 집요하게 울리는 진동음.
진호 : 받아요, 급한 일인 거 같은데...
개인 : ...창렬씨예요.
진호, 상고재 앞에서 본 창렬을 떠올리며 조금은 긴장하는 표정.
휴대폰 다시 진동 울리기 시작한다.
갈등으로 폰 보는 개인. 개인이 안 받자 음성메시지로 넘어가는 폰
60. 상고재 대문 앞(밤)
창렬 : (만취해) 개인아, 난데...너네 집 앞인데 잠깐만 나와줄래?
얼굴만 보고 갈게. 나올 때까지 기다린다.
61. 상고재 주방(밤)
폰으로 음성메시지 확인하고 있는 개인. 이미 흔들리고 있는 표정이다.
진호 (표정 살피며) 만나자는 거죠?
개인 밖에 와 있다구.....
진호 : (죽 떠먹으며 심드렁하게) 나가지 마요.
개인 : (애써 태연한척) 안 나가요.
진호 : 이마에 써있어요, 나가고 싶다고...
개인 : ...
진호 : (계속 아무렇지 않은 듯 죽 먹으며) 떠난 사랑은 잡는 게 아니에요.
개인 : ...
진호 : (흔들리는 개인 얼굴 빤히 보다가 빈정대듯) ‘나간다’에 한 표.
개인 : (식탁에서 일어서며) 아뇨, 절대 안 나가요!
진호, 죽 떠먹으려다 입 맛 없는 듯 숟가락 내려놓고.
자기 방으로 들어가는 개인을 바라보며 답답한 듯 한숨.
62. 개인의 방 (밤)
진동이 울리는 핸드폰.
개인, 무릎세우고 앉아 핸드폰과 시계를 번갈아 보다가 창밖 바라보고...
시계 8시다.
63. 상고재 거실 (밤)
시계 10시 가리키고 있다.
개인, 겉옷 챙겨들고 나간다.
64. 진호 방 (밤)
진호, 책상 정리하다 한쪽에 있는 약상자가 눈에 들어온다.
약상자에서 1회용 밴드 꺼내고.
개인에게 줄까말까 망설이는데 주자, 하는 마음으로 방문을 여는데.
마당을 거쳐 대문을 열고 나가는 개인의 모습이 보인다.
진호 : (굳어진 표정으로 씁쓸하게) 전진호 승.
65. 상고재 앞 (밤)
조심스레 나온 개인, 주변을 둘러보면 아무도 없다.
대문 열고 들어오려다 혹시나 하는 마음에 골목길 나서면
차 옆에 쭈그리고 앉아 졸고 있는 창렬
창렬 : (졸다가 어느 순간 화들짝 일어난다.) 개인아...
개인 : (쌀쌀맞게) 집 잘못 찾아온 거 아냐? 여기 인희 없어.
창렬 : 너 만나러 온거야.
개인 : 왜? 낮에 비오니까 비 맞은 강아지 생각나디?
창렬 : ...박개인, 미안하다.
개인 : ...
창렬 : 이 말 꼭 하고 싶었어.
개인 : 그래야 창렬씨 맘이 편해지겠지. 끝까지 참 편리하네, 이기적이고...
창렬 : 나 좀 패줄래? 너한테 맞고 싶어서 왔어.
개인 : 내가 창렬씨를 왜 때려? 손 더러워지게.
창렬 : (불쌍하게) 그렇구나...난 그 정도도 안 되는 놈이구나.
개인 : (불쌍한 모습에 흔들리며)...왜 하필 인희였어?
창렬 : ...
개인 : 왜 하필 인희였냐고...
창렬 : 인희는 나한테 다 거는 것 같았으니까.
개인 : (멍하니 보는) 무슨 말이야?
창렬 : ......
개인 : 무슨 말이냐구?
창렬 : 넌 항상 나한테 한발짝은 빼고 있었잖아? 넌 내가 평생을 함께 해도 되는 놈인지 믿을 수 없는 것처럼 굴었잖아?
개인 : 무슨 말이냐구? 알아듣게 말을 해?
창렬 : 것봐, 넌 이 말도 못 알아듣잖아? 우린 소년, 소녀가 아니야.
사춘기 애들이 연애 한 게 아니라구.
난 성인 남자로 널 만났지만, 넌 언제나 어린 소녀 애로 날 만났어.
개인 : (멍해져서) 그거였니? 그것 때문이었던 거야?
난 있지, 창렬씨가 장난으로 뽀뽀만 해도 설렜고,
창렬씨가 한숨만 쉬어도 가슴이 내려앉았어.
창렬씨가 만나자고 하면, 옷 갈아입는 시간도 아까워서 츄리닝 바람으로
뛰어나갔어.
그걸로는 안되겠디? 그걸로는 다 건 것처럼 안보였어?
창렬 : (감정이 복받쳐 폭발하듯)
그러니까 날 좀 믿게 해주지 그랬어?
난 단순한 놈이잖아? 이 여자와 결혼해야겠다 믿게 만들어줬어야지?
개인 : 결국은 내 탓이구나.
창렬 : 네 탓이라고 하는 게 아니라, 너하고 내가 달랐다는 거야.
(하는데, 울리는 핸드폰, 온리 인희라고 뜨고)
개인 : .....
창렬 : (하는 수 없이 전화 받고) 왜?
인희E : 얘기하다가 그냥 뛰쳐나가면 어떡해?
들어와서 오늘 밤에 아주 얘기 끝내.
창렬 : 나중에 얘기하자.
인희E: 들어와, 들어와서 얘기 끝내. 나 구질구질한 거 딱 질색인 거 알잖아?
창렬 : 나 너랑 오늘밤엔 할 얘기 없으니까 그냥 자. (전화 탁 끊어버리는)
개인 : (기가 막혀서 보는) 인희랑.....같이 살고 있는 거야?
창렬 : 그게.....
개인 : 그런데도 날 찾아와서 이러고 있는 거야? 끝까지... 내가 우습구나 창렬씬. (눈물 글썽이며) 정말 비참하다. 어떻게 마지막까지 사람을 이렇게 비참하게 만드니? 가줘... 제발...
(휘청이며 문 열고 들어가 버리는)
창렬 : (괴로운 심정으로 서있는)
66. 상고재 거실 (밤)
개인, 들어오다가 멈칫한다. 욕실에서 세수하고 수건 들고 나오는 진호.
진호 : 박개인씨 속없어요? 바보예요? 부른다고 냉큼 나가요?
개인 : (화 참으며) 그만해요.
진호 : (그럴수록 화가 나서 한층 빈정대며) 강아지 맞네.
버림받았다가도 오라고 손 내밀면 헤헤거리며 냉큼 달려가고.
개인, 눈에 불꽃 튀며 진호 뺨 때리고, 진호 개인 팔목 붙잡는다.
개인, 발로 진호를 힘껏 걷어차고, 쿠션 집어들어 진호를 사정없이 때리고,
진호, 맞기만 하는데...
개인 : (계속 때리며) 왜들 다 내가 그렇게 만만한대?
(울먹이며) 내가 뭘 그렇게 잘못했는데, 다들 날 이렇게 비참하게
만들어? 왜? 왜?
진호 : 그러게 왜 비참하게 만들어요? 왜 나오란다고 나가냐구?
개인 : (눈물 가득 고인 채 힘을 거의 잃은 느낌으로 진호 툭툭 때리면서)
너 같은 건, 좋아하는 사람 전화를 하루종일 기다려본 적도 없을거야!
바라보는 것만으로 심장이 터질 거 같은 기분, 넌 죽었다 깨나도 모를 거야!
진호 : ...
개인 : 날 그렇게 만들어줬던 사람이, 나오라잖아?
아무리 잘못했어도, 왜 왔는지, 들어는 주고 싶은데 어떡해?
(푹하고 주저 앉으며) 난 그렇게 생겨먹었는데, 어떡해.
67. 상고재 주방(밤)
진호, 개인, 술을 마시고 있는.
개인 : (술에 취해서 자조적으로)
난 다 안걸었대? 인희는 다 걸어줬는데, 난 아니어서 믿을 수가
없었대, 이 여자하고 결혼해도 되는지.
진호 : 웃기는 자식, 이제와서 그런 얘기는 뭐하러 해.
개인 : 난.....소녀였대. 여자가 아니었대.
진호 : 잊어버려요.
개인 : 어떻게 그래요? 태어나서 처음으로, 그리고 가장 많이 사랑하는
사람이 하는 말인데? 여자가 아니었다는데. 그래서 놓친 거라는데.
진호 : 지금와선 다 소용 없는 말이잖아요?
개인 : (술을 마시면서) 어쩌면 내 탓인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든단 말이예요.
창렬씨, 잘못이 아니고, 인희가 나쁜 게 아니고, 다 나 때문에....
(또 술을 따라 마시려고 하면)
진호 : (술잔 입으로 가져가는 개인의 손을 잡으며) 왜 이래요? 술 마시다가 죽으 려고 작정 했어요? 그렇게 억울하면 다시 와서 붙잡게 해요. 당신같은 여자 놓친 걸 후회하게 만들라구요!
개인 : (슬픈 눈으로 진호를 물끄러미 보면서) 날... 좀... 여자로 만들어 줄래요?
진호 : (절박한 개인의 눈빛을 멍하니 보는)
개인, 진호 묘선 부딪치면서. 엔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