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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 19: 12. 고자 13. 어린 아이 14. 용납하고
마 19: 12. 고자 - 어머니의 태로부터 된 고자도 있고, 사람이 만든 고자도 있고, 천국을 위하여 스스로 된 고자도 있도다. 이 말을 받을 만한 자는 받을지어다. ( 어미의 태로부터 된 고자도 있고 사람이 만든 고자도 있고 천국을 위하여 스스로 된 고자도 있도다. 이 말을 받을만한 자는 받을지어다. )
그들 중에는 날 때부터 고자(鼓子)된 자들이 있다. 또 궁중의 내시들과 같이 사람들이 만든 고자들도 있고, 또 사도 바울같이 천국을 위해 스스로 독신이 된 자들도 있다.
* 고전 7: 7 - 나는 모든 사람이 나와 같기를 원하노라. 그러나 각각 하나님께 받은 자기의 은사가 있으니 이 사람은 이러하고 저 사람은 저러하니라.
그러나 이 말은 받을 만한 자들만 받을 수 있다. 독신주의는 강요되어서는 안 될 것이다. 그것은 사람의 보통 결심을 넘어선다.
또한, 독신 생활이 결혼생활보다 더 나은 생활방식이라는 생각도 잘못이다. 결혼은 하나님께서 주신 제도이다. 하나님께서 은혜 주시면 결혼도, 독신도 복되나 은혜 주지 않으시면 그 어느 쪽도 복되지 않을 것이다.
주님은 결혼을 자제해야 할 세 종류의 사람을 언급하셨다.
(1) 어미의 태로부터 된 고자
이는 육체적으로 부부관계를 맺을 수 없거나, 욕구는 있어도 능력이 결핍된 자들을 말한다.
이들은 선천적인 것으로 어쩔 수 없어서 금욕하는 것이며, 자발적으로 절제하는 것은 아니다. 이스라엘에서는 고자는 제사장이 될 수 없다.
* 레 21: 20 - 등 굽은 자나 키 못 자란 자나 눈에 백막이 있는 자나 습진이나 버짐이 있는 자나 고환 상한 자나
멸시를 받는 사람이다.
* 사 56: 3-5 – 3 여호와께 연합한 이방인은 말하기를 여호와께서 나를 그의 백성 중에서 반드시 갈라내시리라. 하지 말며, 고자도 말하기를 나는 마른 나무라 하지 말라. 4 여호와께서 이와 같이 말씀하시기를 나의 안식일을 지키며 내가 기뻐하는 일을 선택하며 나의 언약을 굳게 잡는 고자들에게는 5 내가 내 집에서, 내 성 안에서 아들이나 딸보다 나은 기념물과 이름을 그들에게 주며 영원한 이름을 주어 끊어지지 아니하게 할 것이며
(2) 사람이 만든 고자
이는 수술을 받아 고자가 된 사람으로서 동양의 궁중에서 기거한 내시 같은 사람이다. 이러한 사람들이 겪었던 불행하고 부당한 대우는 그들의 뜻에 의해 이루어진 것이 아니다.
(3) 천국을 위해 스스로 된 고자
이런 사람들은 위의 예를 든 사람들과 다르다. 이들은 육체적 생리적으로는 이상이 없는 사람들로서 오직 하나님의 일을 위해서 독신 생활을 하는 사람을 가리킨다.
1] 어머니의 태로부터 된 고자도 있고
선천적인 성불구자나 성욕이 핍절(乏絶)한 자를 가리킨다.
'고자'(*, 유누코이)란 '침실을 맡은 자'란 뜻으로 고대 동양에서 왕의 침실에 시중들던 내시(內侍)가 모두 거세(去勢)당한 자들인 데서 유래하였다.
이스라엘에서 고자는 제사장이 될 수 없다.
* 레 21: 20-21 – 20 등 굽은 자나 키 못 자란 자나 눈에 백막이 있는 자나 습진이나 버짐이 있는 자나 고환 상한 자나 21 제사장 아론의 자손 중에 흠이 있는 자는 나와 여호와께 화제를 드리지 못할지니 그는 흠이 있은즉 나와서 그의 하나님께 음식을 드리지 못하느니라.
여호와의 총회에 참여할 자격도 주어지지 않았다.
* 신 23: 1 - 고환이 상한 자나 음경이 잘린 자는 여호와의 총회에 들어오지 못하리라.
2] 사람이 만든 고자도 있고
고대 동양에서는 왕의 아내들에게 시중드는 남자로 하여금 그들의 생식기를 거세하게 하였는데, 이는 왕의 부인과의 성적 접촉을 금지하기 위한 것이었다.
여자가 사제인 이교(異敎)에서도 그들을 돕는 남자들도 거세했다. 예를 들면 에베소에 있는 다이아나(Diana) 신전에서 봉직하는 자들도 그러했다.
선천적인 고자나 내시나 환관 등의 특수 계급의 고자는 모두 장가를 들 수 없게 한 사람으로서 성욕에 대해서 자발적으로 자제하는 자들이 아니라 성욕 자체가 생겨나지 않는 수동적이고 불가피한 절제 자들이다.
3] 천국을 위하여 스스로 된 고자도 있도다.
대표적인 사람으로 동양의 오리겐(Origen)을 들 수 있다.
'천국을 위하여'란 '천국을 얻기 위하여'가 아니라, 천국의 요청과 천국에 대한 깊은 관심 때문에 독신 생활을 하는 것을 가리킨다(J. Blinzler).
이 구절에 대해 결혼한 사람이 천국을 위하여 결혼 안 한 사람같이 된다고 하는 페이(F. R. Fay)의 의견은 잘못된 것이다.
바울은 고전 7: 32-33에서 '장가간 자는 세상일을 염려하여 아내를 기뻐할 일에 골몰하고 장가를 가지 않은 자는 주의 일을 염려하여 주께서 기뻐하실 일에 열심을 다하게 된다.'고 하였다.
알렉산드리아의 클레멘트(Clement of Alexandria)는 말하기를 '참된 고자는 육체적인 쾌락(快樂)에 빠질 수 없도록 된 사람이 아니라, 육적인 쾌락을 거부하는 사람이다'라고 하였다.
본문의 말씀은 결혼을 천박하게 본 것이 아니라 결혼을 훨씬 능가하는 가치, 즉 하늘나라 봉사를 위해 결혼을 희생하는 것이 고귀함을 강조한 것이다.
4] 이 말을 받을만한 자는 받을지어다.
모든 인간에게 적용되는 절대적 규범이나 명령이 아니라 영적 고자로 부름을 받은 소수의 사람의 선택적 규범이다.
바울은 받은바 은사의 다양성에 따라 된 자발적인 선택의 일로 보고 있다.
* 고전 7: 7, 26 - 7 나는 모든 사람이 나와 같기를 원하노라. 그러나 각각 하나님께 받은 자기의 은사가 있으니 이 사람은 이러하고 저 사람은 저러하니라. 26 내 생각에는 이것이 좋으니 곧 임박한 환난으로 말미암아 사람이 그냥 지내는 것이 좋으니라.
한 가지 분명한 것은 예수나 제자들은 독선 생활이 결혼 생활보다 더 거룩한 것으로 보지 않았을 뿐 아니라 복음 사역에 있어서 최고의 차원으로 간주하지도 않았다.
* 딤전 4: 1-3 – 1 그러나 성령이 밝히 말씀하시기를 후일에 어떤 사람들이 믿음에서 떠나 미혹하는 영과 귀신의 가르침을 따르리라 하셨으니 2 자기 양심이 화인을 맞아서 외식함으로 거짓말하는 자들이라. 3 혼인을 금하고 어떤 음식물은 먹지 말라고 할 터이나 음식물은 하나님이 지으신 바니 믿는 자들과 진리를 아는 자들이 감사함으로 받을 것이니라.
* 히 13: 4 - 모든 사람은 결혼을 귀히 여기고 침소를 더럽히지 않게 하라. 음행하는 자들과 간음하는 자들을 하나님이 심판하시리라.
* 고전 9: 5 - 우리가 다른 사도들과 주의 형제들과 게바와 같이 믿음의 자매 된 아내를 데리고 다닐 권리가 없겠느냐?
* 고전 9: 14 - 이와 같이 주께서도 복음 전하는 자들이 복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 명하셨느니라.
다만 하나님 나라를 위하여 유용하게 쓰임을 받기 위하여 특별한 소명을 부여받았다고 하였다. 만약 스스로 이러한 생활이나 훈련을 자처하는 사람들은 정욕에 불타는 것보다는 결혼하는 편이 낫다고 하는 바울의 권면에 귀 기울여야 할 것이다.
* 고전 7: 9 - 만일 절제할 수 없거든 결혼하라. 정욕이 불 같이 타는 것보다 결혼하는 것이 나으니라.
그러나 이 말은 받을 만한 자들만 받을 수 있다. 독신주의는 강요되어서는 안 되며, 그것은 인간의 보통 결심을 넘어선다.
그럴 뿐만 아니라, 독신이 결혼보다 더 나은 생활방식이라는 생각도 잘못이다. 왜냐하면 결혼은 하나님이 주신 신성한 제도이고 하나님께서 은혜로 주시면 결혼도, 독신도 복되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은혜 주지 않으시면 그 어느 쪽도 복되지 않을 것이다.
2. 어린이 위에 안수하시다 ( 19: 13-15. 막 10: 13-16. 눅 18: 15-17 )
13 그 때에 사람들이 예수께서 안수하고 기도해 주심을 바라고 어린아이들을 데리고 오매 제자들이 꾸짖거늘 14 예수께서 이르시되, 어린아이들을 용납하고 내게 오는 것을 금하지 말라. 천국이 이런 사람의 것이니라. 하시고 15 그들에게 안수하시고 거기를 떠나시니라.
마 19: 13. 어린 아이 - 그 때에 사람들이 예수께서 안수하고 기도해 주심을 바라고 어린아이들을 데리고 오매 제자들이 꾸짖거늘 ( 때에 사람들이 예수의 안수하고 기도하심을 바라고 어린아이들을 데리고 오매 제자들이 꾸짖거늘 )
누가복음에 보면, 사람들은 ‘자기 어린 아기’를 데려왔다(눅 18: 15).
사람들은 예전이나 지금이나 자기 아이들이 하나님의 복을 받기를 원한다. 사람들이 예수께 자기 아이들을 데려온 것은 잘한 일이었다.
오늘날도 믿는 부모들은 자기 아이들을 예배에 참석시킬 뿐 아니라, 그들을 위해 기도하고 또 기도 받게 해야 한다. 그런데 제자들은 그것을 귀찮게 여겨 그들을 꾸짖었다.
1] 그 때에 사람들이
결혼과 이혼에 관계된 예수의 가르침이 있은 바로 직후라는 의미를 강하게 내포한 말이다(2: 7).
결혼의 신성함을 말씀하셨던 예수께서는 이제 그 결혼 생활의 고귀한 열매(아이들)를 인정하시고 축복하고 계신다.
2] 예수께서 안수하고 기도해 주심을 바라고 어린아이들을 데리고 오매
당시의 사람들은 자신의 어린아이들을 랍비들과 장로들에게 데리고 가서 안수를 받는 관례적인 방법을 통하여 그들이 축복받게끔 하였다.
이 안수는 상징성이 강한 행위였다. 한 집안의 가장이 아이가 태어났을 때나, 길을 떠날 때 혹은 죽음이 임박하여 자손에게 특권과 축복을 시여(施與)할 때 주로 행해졌다.
축복의 기원이 그 내용이었다. 이 안수의 축복은 유대교에 전래되어 초대 교회에 정착되었고, 또한 오늘에까지 이어지고 있다.
* 창 48: 14 - 이스라엘이 오른손을 펴서 차남 에브라임의 머리에 얹고 왼손을 펴서 므낫세의 머리에 얹으니 므낫세는 장자라도 팔을 엇바꾸어 얹었더라.
* 민 27: 18 –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이르시되, 눈의 아들 여호수아는 그 안에 영이 머무는 자니 너는 데려다가 그에게 안수하고
* 행 6: 5-6 – 5 온 무리가 이 말을 기뻐하여 믿음과 성령이 충만한 사람 스데반과 또 빌립과 브로고로와 니가노르와 디몬과 바메나와 유대교에 입교했던 안디옥 사람 니골라를 택하여 6 사도들 앞에 세우니 사도들이 기도하고 그들에게 안수하니라.
* 딤전 4: 14 - 네 속에 있는 은사 곧 장로의 회에서 안수 받을 때에 예언을 통하여 받은 것을 가볍게 여기지 말며
이런 관점에서 사람들은 단순히 자신의 병 고침과 필요만을 위해서 모여든 것이 아니라, 메시아이신 예수의 축복이 자신의 집안 대대로 이어지기를 기대하는 믿음에서 아이들을 예수께로 인도하고 있다.
본 기사를 기록하면서 안수 받는 대상에 대해 마태가 7세 이하의 작은 아이들(*, 파이디아)이란 용어를 사용한 것에 반해서 누가는 눅 18: 15에서 신생아 또는 젖먹이, 즉 유아(乳兒)를 가리키는 말인 '브레페'(*)를 사용하였다.
이를 종합해본다면 그때 많은 사람이 아이를 데려왔는데, 그중에서 부모의 손에 이끌려 나온 아이도 있었고 품에 안거나 어머니 등에 업혀 온 아이들도 있었음을 시사한다.
이는 18: 1-10의 말씀에서 어린이들을 무시하고 거추장스럽게 생각하던 사람들과는 달리 예수께서는 아이들을 귀히 여긴다는 사실이 사람들에게 전하여진데서 나온 행동들이다.
이 문장에서는 아이들을 예수께 데리고 온 사람들의 믿음이 강조되어야 한다.
3] 제자들이 꾸짖거늘
'꾸짖다'는 뜻의 원어 '에피티마오'(*)는 '책망하다', '경고하다' 등의 의미로 엄히 말하는 것을 가리킨다.
이때 제자들이 꾸짖은 대상은 어린아이들이 아니라, 그들을 데리고 온 자들(NIV, those who brought them)이었다.
* 막 10: 13 - 사람들이 예수께서 만져 주심을 바라고 어린 아이들을 데리고 오매 제자들이 꾸짖거늘
제자들이 화를 낸 것은 예수의 권위가 손상된다거나 예루살렘으로 가던 여행이 지체될 것을 생각하고서 그러한 행동을 한 것으로 생각할 수 없다.
그 보다는 많은 병자와 사람들이 예수의 만져주심을 바라고 나왔으므로 여전히 아이들에 대해서 귀한 보배라고 하는 인식(認識)이 없었던 제자들은 무엇보다도 먼저 어른들이 예수로부터 고침을 받고 축복받아야 한다고 생각했을 것이다.
제자들에게 있어서 최우선(priority)은 어른(남자)이며, 그 다음(secondary)이 아이들이었다. 그러나 예수께서는 비록 나이가 어리고 신체적으로 미숙하며 지적인 발달이 미진한 어린이라고 할지라도 이미 하나님의 형상을 소유한 한 사람의 인격체로 여기며 그들이 당신의 백성이 되는 것을 기뻐하셨다.
마 19: 14. 용납하고 - 예수께서 이르시되, 어린아이들을 용납하고 내게 오는 것을 금하지 말라. 천국이 이런 사람의 것이니라. 하시고 ( 예수께서 가라사대, 어린 아이들을 용납하고 내게 오는 것을 금하지 말라. 천국이 이런 자의 것이니라. 하시고 )
마가복음은 예수께서 그들을 보시고 분히 여기셨다고 증언하였다(막 10: 14). 어린아이들을 무시하는 어른들의 행동은 주님의 분노를 일으키고 책망을 받을 만했다. 주께서는 또 “어린아이들을 용납하고 내게 오는 것을 금하지 말라. 천국이 이런 자의 것이니라”고 말씀하셨다.
그가 모든 어린아이에게 이런 말씀을 하시는 것은 아닐 것이나, 믿는 가정에 태어난 아이들에게 그렇게 말씀하신 것은 분명하다.
신자의 아이들은, 아직 신앙고백을 못하기에 예수께 나올 수 없고 천국과 상관없는 것이 아니다. 그들은 하나님의 나라에 용납되고 환영을 받는다. 그들은 참으로 천국 백성으로 간주 된다.
여기에 구약시대로부터 믿는 가정의 아들들에게 할례를 베풀므로 하나님의 백성으로 인정했던 언약의 원리가 신약시대에도 보인다.
믿는 가정의 아기들은 구원받지 못한 이방인들이나 외인들이 아니고, 언약 안에 있고 하나님의 나라의 백성으로 간주 된다. 그들은 커서 하나님을 배반하기 전까지 하나님의 백성으로 간주 되어야 할 것이다.
1] 예수께서 이르시되, 어린아이들을 용납하고 내게 오는 것을 금하지 말라.
예수께서 아이들이 자신에게 기뻐 달려오는 일을 용납한 것은 천국이 어린아이의 것이기 때문이 아니다. 천국이 어린아이들과 같은 자들의 것이기 때문이다.
(1) '용납하고'(*, 아페테)란
능동태 명령형으로서 '상관치 말고 그들이 원하는 대로 내버려 두라'는 뜻의 요구이다.
(2) '금하지 말라'(*, 메콜뤼에테)는
강한 부정의 의미를 지닌 '메' + 현재 명령형의 형태를 취하고 있어 지금하고 있는 일을 당장 그만두라는 의미로 사용되고 있다.
이 말은 '그들을 제재하는 일을 당장 포기하라', '당장 허락하라'는 의미로 이해할 수 있다.
오스카 쿨만(O. Cullmann)은 원시 기독교의 세례식(洗禮式) 용어가 반영된 것이라고 하였다. 이 동사가 성경의 다른 곳에서는 세례와 관련되어 사용된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 마 3: 14 - 요한이 말려 이르되, 내가 당신에게서 세례를 받아야 할 터인데 당신이 내게로 오시나이까?
* 행 8: 36 - 길 가다가 물 있는 곳에 이르러 그 내시가 말하되, 보라. 물이 있으니 내가 세례를 받음에 무슨 거리낌이 있느냐?
* 행 10: 47 – 이에 베드로가 이르되, 이 사람들이 우리와 같이 성령을 받았으니 누가 능히 물로 세례 베풂을 금하리요. 하고
* 행 11: 17 - 그런즉 하나님이 우리가 주 예수 그리스도를 믿을 때에 주신 것과 같은 선물을 그들에게도 주셨으니 내가 누구이기에 하나님을 능히 막겠느냐? 하더라.
쿨만은 그렇다고 해서 본문에서 예수가 유아 세례를 지시하고 있는 것은 아니라고 하였다. 신약 교회가 이 기사를 기록하여 전하는 목적은 그리스도인들이 이 어린이 축복 사건을 기억함으로써 부모의 믿음과 관련된 유아 세례의 문제를 해결하려고 하는 의도가 있었다고 하였다.
2] 어린이를 용납하심
본문에서는 예수께서 자기에게 나아오는 아이들을 용납하신 사실에 대해 기록되어 있다.
'때에 사람들이 예수의 안수하고 기도하심을 바라고 어린아이들을 데리고 오매'(13절) 아마도 그 어린아이들을 데리고 온 자들은 그들의 부모나 보호자나 유모들이었던 것 같다.
(1) 어린아이들을 데리고 온 자들의 신앙
① 은총과 축복
그들은 주님께 대한 존경심과 그의 은총과 축복에 대한 그들의 신앙을 증거하였다.
우리는 여기에서 자신이 하나님의 축복과 은혜 가운데 거하게 된 성도들은 자기와 관련된 다른 사람들도 예수를 믿게 하며, 그들도 하나님의 은총과 축복을 받도록 하는 일에 힘써야 한다는 사실을 배울 수 있다.
어린아이들을 데려온 부모들은 자신들이 누리는 하나님의 은혜를 자녀들에게도 끼치기 위하여 그들을 예수께로 데리고 온 것이다.
② 그들은 아이들을 평상시에 주님 앞에 데리고 나왔다.
다른 부모들은 자기 자녀들이 병들었을 때 치료를 받으려고 그들을 데리고 예수께 왔으나 이들 부모들은 현재 자녀들에게 아무런 문제가 없음에도 예수께 데려와 그의 축복을 받게 하였다.
우리는 어떤 슬픔과 고통에 처했을 때만 예수께로 가지 말고 평상시에도 그리스도께로 나아가고 또한 우리 자녀들을 주님께로 데리고 가야 하겠다.
성도가 괴로움을 당할 때 그리스도를 찾을 뿐만 아니라 평상시에도 주님을 의지하고, 또한 그가 베풀어 주시는 은택을 감사하며 사는 생활은 주님을 크게 기쁘시게 하는 일이다.
③ 그들은 예수께서 아이들에게 안수해 주기를 원했다.
안수는 특별히 부모가 자녀들을 축복할 때 사용되는 의식이다.
야곱은 요셉의 자녀들을 축복할 때 안수하는 의식을 사용하였다.
* 창 43: 14 - 전능하신 하나님께서 그 사람 앞에서 너희에게 은혜를 베푸사 그 사람으로 너희 다른 형제와 베냐민을 돌려보내게 하시기를 원하노라. 내가 자식을 잃게 되면 잃으리로다.
안수는 능력과 권위가 수반된 사랑과 친근감을 나타내 주며, 또한 축복의 증거가 된다. 그렇기 때문에 그들은 그리스도의 축복을 높이 평가하고 안수를 간절히 바랐다.
오늘날도 이와 같은 축복을 원하며 기도하는 성도들에게 성령으로 안수하여 주신다.
(2) 어린아이들을 향한 제자들의 꾸짖음
제자들은 아마도 어린아이들이 예수님을 알아보지 못하고 무례한 행동을 하지는 않을까 하는 우려 때문에 금지했는지도 모른다.
그리고 주님은 먼저 축복의 기도가 스스로를 위해 기도할 수 없는 어린아이들에게 아무런 유익을 주지 못한다고 생각했는지도 모른다.
그러나 제자들이 어린아이들을 꾸짖은 가장 큰 이유는 어린아이에 대한 어른들의 몰이해와 무관심이었다. 제자들은 어린아이들을 모든 어른이 그래왔던 것처럼 귀찮아했으며 무시했다.
예수님은 이러한 제자들의 마음을 책망하셨다. 예수님은 약한 자, 소외된 자, 그리고 병들고 불쌍한 자들을 더욱 사랑하셨다. 그리고 바로 이러한 자들을 위해 이 세상에 오셔서 복음을 전파하시고 십자가를 지셨다.
(3) 어린아이들을 용납하심
① 예수님은 어린아이들을 비유로 하여 천국의 비밀을 선포하셨다.
'어린아이들을 용납하고 내게 오는 것을 금하지 말라 천국이 이런 자의 것이니라'(14절).
이 말씀은 천국이 어린아이들만의 것이 아니라 어린아이들과 같은 자들의 것, 즉 어린아이와 같이 순수하고 겸손한 신앙을 가진 자들의 것이라는 말씀이다.
예수님은 어린아이들을 통해서 천국의 실상과 천국에 들어갈 수 있는 자의 자격에 대해 말씀하셨다.
② 예수님은 어린아이들을 안수하셨다.
'저희 위에 안수하시고(15절)'. 예수님이 자기에게 나아온 어린아이의 머리에 안수를 하신 것은 아이들에게 주어진 실제적인 축복을 가리키며, 그들과 함께 하신다는 상징적인 행동이었다.
이처럼 비록 나이는 어리고 지적인 발달이 미진한 상태인 어린아이들이라 할지라도 하나님께서는 그들의 인격을 인정하시며 그 어린아이들에 관하여 관심을 두고 귀히 여겨야 함과 아울러 그들의 순수하고도 단순한 마음을 본받아 우리도 어린아이와 같은 신앙을 가짐으로 더욱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성도들이 되어야 하겠다.
3] 천국이 이런 사람의 것이니라. 하시고
예수께서 소개하시는 당신의 나라에 들어가기 원하는 자는 그 마음과 믿음에 있어서 어린아이같이 순결하고 순수하며, 주님의 말씀에 순종할 수 있어야 했다.
* 마 18: 3 – 이르시되,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가 돌이켜 어린 아이들과 같이 되지 아니하면 결단코 천국에 들어가지 못하리라.
따라서 어린아이들의 접근을 저지하는 제자들은 구태의연(舊態依然)한 인습을 떨쳐버리고 예수께서 그러하셨듯이 아이들을 친절하고 온화하게 맞아들여야만 한다.
신자들의 아이들은, 아직 신앙고백을 못하기 때문에 예수께 나올 수 없고 천국과 상관없는 자들이 아니다. 그들은 하나님의 나라에 용납되고 환영을 받는다. 그들은 참으로 천국 백성으로 간주 될 만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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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설교 올려주셔서 감사합니다.
결혼은 하나님께서 주신 제도이다.
💖사랑의 향기는 만리를 가고도 남습니다. 오늘도 건강과 함께
좋은 사람들과 좋은 향기로 좋은 인연 이어가는 날 되시기 기원 합니다.💖
결혼은 하나님께서 주신 제도이다.
설교 감사합니다.
결혼은 하나님께서 주신 제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