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서명_참새와 빗방울 ●지은이_문정석 ●펴낸곳_시와에세이 ●펴낸날_2024. 9. 20
●전체페이지_112쪽 ●ISBN 979-11-91914-64-1 03810/신국판변형(127×206)
●문의_044-863-7652/010-5355-7565 ●값_ 12,000원
어린 시절의 크레파스로 쓴 기억의 정서
문정석 시인의 첫 시집 『참새와 빗방울』이 ‘詩와에세이’에서 출간되었다. 이번 시집은 그림을 그리듯 가슴에 담긴 어린 시절 가족과 기억의 정서가 가득하다. 무미건조한 과거의 기억을 나열한 것이 아니라 크레파스처럼 다양한 색채로 사유하고 묘사한 것이다.
쪽지 시험을 망쳐
토요일인데도 나머지 공부를 했다
점심을 거른 배는 꼬르륵거리고
땡볕을 이고 구불구불한 산길 따라 집에 가는데
고추밭 가상에 씨받이 오이
촘촘히 박힌 누런 땀방울
더 이상 들어앉을 틈이 없다
눈에선 신맛이 터지는데
모락모락 밥 냄새 유혹
한 입 베어 물자
우수수 쏟아지는 낮별
―「씨도둑」 전문
“쪽지 시험을 망쳐/토요일인데도 나머지 공부를” 한 시인은 독자의 친근감을 불러일으키며 숨통을 트이게 해준다. “땡볕을 이고 구불구불한 산길 따라” 걷는 시인이 허기지게 넘었을 산고개가 그림처럼 눈에 선하다. “고추밭”에는 “오이”가 보이고, 그 시어 터진 노각을 베어 먹으면서 농부의 종자 농사를 도둑질했다고 생각하는 소년의 모습이 어제 일인 듯 선명하기만 하다.
멍석에 둘러앉은 가족
옥수수 알갱이처럼 빼곡했지
한 솥을 쪄내도 칠 남매 손이 오가면
소쿠리엔 금세 깡태기만 수북,
더 먹으려고 떼쓰는 나를 업고
작은누나는 동네를 한 바퀴 돌았지
댕기머리 잡아당기면
그을린 얼굴 돌려 웃어주던
그 하얀 웃음에서 피어나던
박꽃,
흰 별 된 지
여러 해
―「흰 별」 전문
이 시는 부모와 형제자매가 모여 살던 어린 시절을 형상화하고 있다. “멍석에 둘러앉은 가족” 수는 “옥수수 알갱이처럼” 많아서, 옥수수 “한 솥을 쪄내도 칠 남매 손이 오가면/소쿠리엔 금세 깡태기만 수북”이 남을 뿐이다. “더 먹으려고 떼”를 쓰면 작은누나는 어린 동생을 업고 “동네를 한 바퀴 돌”곤 했다. 누나가 동네를 한 바퀴 도는 동안 등에서 누나의 “댕기머리를 잡아당”길 때마다 누나는 화내지 않은 채 얼굴을 돌려서 웃어주곤 했는데, 그때 “그 하얀 웃음에서 피어나던/박꽃”을 화자는 잊을 수가 없다. ‘하얀 박꽃’ 같던 시인의 누나. 흰색은 색이 없는 무색이기도 하지만, 실제로는 모든 색이 혼합된 색으로써 순수함, 깨끗함을 상징한다. 또, 박꽃은 초저녁에 피었다가 새벽녘에 지는 신비로운 꽃이다. 초가지붕에 박 넝쿨을 올리면 그믐밤이든 보름밤이든 하얗게 피어나는 꽃, 밤에만 찾아와 무슨 말을 할 것 같은 꽃이 바로 누나가 아니었을까.
문정석 시인은 동심을 지녔을 뿐 아니라 이타적인 사랑이 강한 휴머니스트이기도 하고, 우주의 세밀한 관찰자이기도 하다. 시인의 작품은 깨끗한 크레파스 그림 같기도 하고, 세계에 대한 연민이 물씬 묻어나는 연서 같아서 저절로 마음이 맑아지고 따뜻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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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차례
시인의 말·05
제1부
장독대·13
해 질 녘·14
막걸리·15
아버지와 동태·16
도라지꽃·17
씨도둑·18
미술 시간·19
상수리·20
긴물 찻집에서·21
다리미·22
노부부·23
소똥이 밥이다·24
정지된 시간·25
공(空)·26
부재중 전화·27
사라진 외갓집·28
연꽃 아기·30
제2부
참새와 빗방울·33
그날·34
꽃섬·35
깨알·36
약봉지·37
벚꽃 웃음·38
자전거·39
낯선 괴물·40
까치의 꿈·41
봄 마중·42
비와 꽃·43
늦은 시월·44
엄마의 시간·45
물렁해지기·46
길을 낸다·47
멈춘 시계·48
오래된 일기장·49
제3부
봄·53
할매의 시간·54
꽃을 기다리며·55
호미 소리·56
민들레·57
꽃과 여자·58
여행을 떠났다·59
뿌리내리기·60
무슨 색일까·61
나리꽃·62
봄씨·63
파란 연못·64
낯선 지붕·65
뱀사골 할매집·66
어린 새·67
매화, 피다·68
일상이 그립다·69
제4부
외할머니·73
그렇게 오지 않는다·74
엄마의 젖 냄새는 나지 않았다·75
겨자채 꽃밭·76
흰 별·77
개망초·78
하품하는 골목·79
엄마의 법당·80
장모네 식당·81
세발자전거 상(喪)·82
소아병동에서·83
시 짓는 남자·84
등을 밟다·85
노란 봄·86
찔레순·87
꽃밭과 새·88
해설|안현심·89
■ 시집 속의 시 한 편
빗방울 고인 웅덩이는
참새들의 놀이터
까치발로 콩콩 걷다가
젖은 발 말리려고 나뭇가지로 날아들었다가
웅덩이에 다시 모여
마주 보며 폴짝폴짝
엉덩이는 흙탕물 범벅
얼굴엔 웃음 범벅
―「참새와 빗방울」 전문
■ 시인의 말
아이들이 유치원 다닐 때
삐뚤삐뚤한 그림을 보고 웃었는데
이것도 시(詩)냐고
봉숭아꽃 씨앗 터지는
아내의 잔소리,
행복하다
늦사랑을 알게 해 준
등피(皮) 같은 안현심 시인과 문우들께
깊이 감사드린다
2024년 가을
문정석
■ 표4(약평)
문정석 시인은 동심을 지녔을 뿐 아니라 이타적인 사랑이 강한 휴머니스트이기도 하고, 우주의 세밀한 관찰자이기도 하다. 그의 작품은 깨끗한 크레파스 그림 같기도 하고, 세계에 대한 연민이 물씬 묻어나는 연서 같기도 하다. 그의 작품에서 비판적인 요소를 찾아볼 수 없는 것은 세계관이 몹시 긍정적이기 때문이다. 시를 좋아하는 사람이 끝내 깃발을 차지하기 마련인데 문정석 시인은 첫 마음을 구부리지 않고 나아가기에 미래를 그려보는 눈이 환할 수밖에 없다.
_안현심(시인·문학평론가)
문정석 시인의 첫 시집 『참새와 빗방울』은 자연을 바라보는 시인의 독특한 태도가 잘 나타나 있다. 그것은 인간의 바람과 노력이 절반을 채우면, 나머지 절반을 자연이 채워서 완성시킨다는 인식이다. 자연은 시인의 시적 자아와 합일의 존재이다. 시 「장독대」의 고사리가 담긴 ‘채반’은 봄 햇빛이 나머지 반을 채워준다. 정화수 앞에서 올리는 어머니의 간절한 기도와 ‘앵두알’은 함께 결실의 시간을 향해 흐른다. 「도라지꽃」에서도 도라지꽃은 시의 화자가 다시 수십 년 전의 시간으로 돌아갈 수 있도록 이끌어 준다. 재생의 시간을 가진 도라지꽃을 보면서 시의 화자는 언제든 어린 시절로 돌아갈 수 있기 때문이다._조해옥(문학평론가·한남대학교 연구교수)
■ 문정석
전북 진안에서 태어나 2020년 『한국문학시대』로 등단하였다. 현재 시삶문학 동인지 『시꽃 피다』 편집주간, 아동복지시설 대전희망쉼터 원장으로 활동 중이다.
첫댓글 문정석 시인의 첫 시집 『참새와 빗방울』이 ‘詩와에세이’에서 출간되었습니다. 독자 여러분의 큰 관심과 사랑(지금 교보문고, 알라딘 등에서 구입할 수 있습니다.) 부탁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