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안만의 그 무엇-돌 솟대와 장승, 민간의 당간, 성당의 둥근 지붕…
신석정 생가와 고마제 저수지 보며 고향의 추억 찾듯 도보여행
오후 2시쯤 부안 읍내에 도착해서 호텔을 찾아 들어갔다.
그런데 5시 이전에 입실하면 2만 원을 추가로 내야 한다고 했다.
먼저 찬물로 샤워하고 시원한 방에서 푹 휴식을 취했다.
그리고 5시가 넘어 부안 읍내 투어에 나섰다.
먼저 호텔 바로 곁에 있는 남문 안 당산에 갔다가, 동문 안 당산을 돌아, 서문 안 당산으로 갔다.
서문 안 당산의 돌 장승
당산 하면 당산나무와 당집이 연상되고, 누구를 주신으로 모시고 있는지 궁금해지는데,
부안의 당산은 당산나무와 당집은 안 보이고 돌 솟대와 돌 장승이 신체神體였다.
이 방면의 전문가가 아닌 보통 여행자의 눈에는 특이하게 보였다.
조선 숙종 15년에 건립되었다는 명문이 발견되어 역사적, 민속적 의의가 있어 국가민속문화유산으로 보호받고 있었다.
솟대와 장승은 마을의 안녕과 번영을 위해 세워졌다.
솟대 위 오리 머리는 바다 쪽을 향하고 있는데 여기에는 화재 예방의 염원이 담겼고,
정월 대보름 줄다리기를 하고 그 줄로 당산에 새 옷을 입혀 풍년을 기원하였으며,
돌 장승은 역병을 막기 위해 세워졌다고 했다.
자료에 의하면, 할아버지 장승과 할머니 장승 한 쌍은 벅수, 짐대라고 불리기도 하는데,
부안의 지형이 배가 떠 있는 형상과 같아서 안정감을 주기 위해 돌로 만들어 세웠다고 했다.
당산에 돌로 만들어진 솟대와 장승을 모신 데는 바다 가까이 있는 부안의 풍수지리가 영향을 주었을 것이다.
매년 정월 초하룻날 밤부터 다음날까지 서문 안 당산 제사 지낼 때 동문 안 당산과 남문 안 당산도 모시는데,
이는 서문 안 당산이 주신이기 때문이라고 했다.
동쪽이나 남쪽이 아닌 서쪽 당산이 주신이라는 점도 서해바다에 접한 이 지역의 특색이 아닌가 싶었다.
조선 헌종 13년(1847년), 현감 조연명이 부임하여 황폐한 성황산에 봄가을로 나무를 심고 가꾸기 위해
유지 33명을 모아 '33인 수계'를 조직하고, 힘써 공원 숲을 조성하였다.
<국가산림문화자산 안내문>
부안 군청 옆길을 지나 부안의 주산인 상소산(성황산)에 오르는 길은 울창한 숲이었다.
일제강점기를 거치고, 끔찍한 전란을 겪고, 극도로 궁핍한 시기에도 용하게 버티고 살아남은 숲이었다.
조선시대 관(官)이 주도하고 민(民)이 참여한 숲 가꾸기 산림녹화의 좋은 사례였다.
해발 114.9m 정상에 있는 전망대에 올랐는데, 숲이 너무 울창해 전망대 기능을 상실할 정도였다.
민간 마을에 서 있는 서외리 당간
숲 산책로를 따라 내려오니 향교마을이었고,
곧이어 서외리 당간을 만났다. 돌덩어리를 다듬어 연결해서 만든 깃대로 높이가 8m나 되었다.
당간은 원래 절에서 법회가 있을 때 탱화를 걸어두는 돌기둥인데,
서외리 마을 당간은 액운과 재난을 물리치기 위해 제사를 지낼 때 기를 매달았던 짐대였다.
둥근 원형 지붕의 부안성당
멀지 않은 곳에 부안성당이 있었다.
그런데 성당 지붕은 뾰족한 고딕 양식이 아니라 둥근 원형이었다.
이런 양식의 성당을 어디서 본 적이 있는가, 특이했다.
곰곰이 생각해 보니 오래전 일본 하코다테에서 본 성공회 성당이 떠올랐다.
돌로 만든 솟대와 장승, 절이 아닌 민간 마을에 있는 당간, 둥근 원형 모양 지붕의 성당…
부안에는 부안만이 갖는 독특한 무엇이 있는 거 같았다.
독특한 수종의 활엽수로 조성된 가로수
통행이 뜸한 새벽에 길을 나섰다. 당산로라는 이름이 붙은 군청 가는 길,
가로수는 멀구슬나무였다.
어느 해 오월 제주도에서 이 나무를 만나 보라색 꽃과 은근한 향기에 반했었는데, 부안에서 가로수로 만나다니 반가웠다.
흔한 벚나무나 은행나무나 이팝나무가 아니라 멀구슬나무를 가로수로 심다니,
참 신선하고 놀랍다는 생각으로 걷는데 더 놀랍게도 중심도로의 가로수는 마로니에라고도 불리는 칠엽수였다.
열매에 독성이 있다는 주의 안내문까지 걸려 있었다.
그런데 잘 가꾸어진 칠엽수 가로수는 너무나 이국적이고 멋졌다.
가채머리로 멋을 낸 뽄쟁이 무희들이 줄을 서 있는 것 같기도 했다.
멀구슬나무 가로수와 칠엽수 가로수, 부안에서 만난 색다른 또 하나의 아름다움이었다.
신석정 시인의 생가
시인 신석정은 부안 사람이었다.
부안읍 변두리에 그의 생가가 복원돼 있었다.
한창 감수성이 예민하던 고등학교 시절, 교과서에 실린 목가적인 그의 시를 읽고 센티멘털해지곤 했다.
그의 시가 목가적인 만큼 신비스럽게 여겨졌던 시인이기도 했다.
생가 뒤에는 키 큰 자귀나무 한 그루가 감싸고 있고,
앞뜰에는 키 작은 호랑가시나무 한 그루가 얌전히 서 있는 풍경도 소박하고 목가적이었다.
바짓가랑이에 아침 이슬 흠뻑 적시며 마구 자란 풀밭 언덕길을 넘었다.
그리고 전형적인 들판 농촌 길을 걸었다.
초록 나락 잎에 맺힌 아침 이슬은 아침 햇살에 초롱초롱 영롱했다.
길옆 들깨밭에서는 상큼하고 익숙한 들깻잎 향이 후각을 자극했다. 내가 자랐던 고향 농촌 같다는 느낌이 들었다.
가끔, 왜 힘들게 고행하듯이 도보여행하느냐는 질문을 받기도 했다.
은퇴 후 무료함을 이겨내기 위한 궁여지책이라고 답하곤 했다.
그런데 언제부턴가 추억 속 고향을 찾는 과거 회상 여행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그 밑바탕에는 어머니가 자리 잡고 있다는 북받치는 느낌이 일었다.
나는 어머니 45세 때 막내로 태어났다.
어릴 적에는 엄마만 따라다녔다. 산에 땔감을 하려 갈 때도, 들 일을 하려 갈 때도, 시골장에 푸성귀를 팔려 갈 때도
사시사철 엄마만 졸졸 따라다녔다.
어쩌면 그것이 나의 중독성 여행의 시작이었을 지도 모르겠다.
눈앞에 넓은 호수가 나타났다.
고마제 저수지였다. 아침나절 흐릿한 안개에 묻은 호수 동쪽 끝은 가물가물 끝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넓었다.
모퉁이에는 수변 식물들이 무성하게 호수를 덮고 있고, 흰 연꽃이며 부들도 무리 지어 군락을 이루고 있었다.
호숫가로는 산책로가 있었고, 백일홍 나무가 붉은 꽃을 촘촘히 달고 줄지어 있었다.
백 일 동안 꽃이 피는 이 나무에는 배롱나무라는 고상한 이름이 따로 있다.
그런데 싱겁게도 백일홍을 2배속으로 빠르게 발음하면 배롱이 된다.
고마제 저수지 못줄다리
고마제 저수지는 과거 천수답이었던 이 지역 들논에 농업용수를 대기 위해 확장한 저수지였다.
모내기 철이면 물이 부족해 하늘만 쳐다보던 농민들에겐 생명 같은 저수지였을 것이다.
멀리 큰 실타래처럼 보이는 조형물이 세워져 있는 다리가 보였다.
가까이 가서 보니 못줄다리라는 이름이 붙어 있었다.
실타래처럼 보이는 조형물은 못줄대였다.
이양기로 모를 내는 요즘, 못줄을 모르는 사람이 많을 것이다.
이젠 못줄은 옛 농경문화의 상징 같은 유물이 되어 버렸다.
그런데 못줄다리는 과거와 현재를 연결하는 가교라는 생각이 들었다.
작은 다리 하나를 놓는데도 허투루 하지 않고,
이런저런 궁리를 하고, 상징성이 있는 다리를 짓고 어울리는 이름까지 명명한 섬세함이 고마웠다.
다시 들길로 들어섰다.
벼 무논을 지나고, 넓은 콩밭을 지나고, 정겨운 농촌 마을을 지났다.
나의 여행은 자연과의 교감이고, 지난 추억의 회상이고, 그리운 사람과의 만남이다.
그리고 나의 삶을 채우는, 나의 생물학적 시간을 무화無化시키는 가장 즐거운 행위이다.
부안 여행에서 이러한 여행의 재미를 깊고 진하게 느꼈다.
어머니
당신은 그 먼 나라를 알으십니까?
산비탈 넌지시 타고 내려오면
양지 밭에 흰 염소 한가히 풀 뜯고.....
신석정, <그 먼 나라를 알으십니까>
[윤한철은 부산 오륙도 해맞이공원에서 강원도 고성 통일전망대까지 750Km의 해파랑길과 부산 오륙도 해맞이공원에서
전남 해남 땅끝마을까지 1,470Km의 남파랑길을 도보로 섭렵한 다음 도보 체험 여행기『해파랑길』과 『남파랑길』을 남겼다.]
우리의 민속신앙과 관계된 당산, 당산나무, 당집, 서낭당, 당간, 돌 솟대, 돌 장승, 神體 등을 이해하는데 도움이 많이 되네요.
註>
일본을 여행하면서 자주 마주하게되는 神社가 뭐 하는 곳인가 의아하게 생각하며 궁금해 했는데
우리의 민속신앙 당집과 그 뿌리가 같다는 생각이 드네요.
모든 자연물에 정령이 있다는 범신사상에 그 뿌리를 두고 있는데서
그리고, 나라시대 이전에는 신도사상이, 아스카시대 이후 불교사상이, 가마쿠라 막부 이후 신불습합에 의해
신도와 불교가 상호 영향을 주고 받는 시대, 에도시대 이후 성리학 등 유교가, 명치유신 이후 다시 신도사상으로
통일되며 불교탄압정책을 써온 일본의 민속종교실태를 보며 우리와의 차이점을 이해하게 되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