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겨울 아들놈이랑 서울에서 내 고향 진도까지 눈보라 뚫고 걸어가는 길이었다. 가다가 팍팍한 다리도 쉬고 주린 배도 채울 겸 길가 기사식당에 들어서자 운전기사들 밥 먹다 말고 우리 부자 행색보고 한마디씩 거들었다.
이 눈 속에 어디까지 가시는 길이유?
진도까지 갑니다.
아, 거시기 진돗개 유명한 디 말이유?
예.
지금도 거기 진돗개 많슈?
예.
왜 사람들은 진도에 사람도 산다는 생각은 않고 개 안부만 묻는 걸까? 개만도 못한 사람이 넘쳐나서 사람 안부는 물을 것도 없는 걸까? 그럼 개만도 못한 사람들은 모두 쥐일까? 아님 고양이일까? 이러다가 사람만도 못한 개가 넘쳐나면 어쩌려고 그러나, 쓸데없는 걱정하다 말고, 아차, 며칠째 우릴 기다리는 어머니는 점심 식사나 하셨을까, 밥 먹다 말고 고향집에 전화를 넣는다.
어무니 시방 충청도 지나고 있는디, 별 일 없어유?
내사 뭔 일 있겄냐만 노랑이가 속쎅인다.
왜 또 넘의 집 개랑 싸우고 다리 한 짝 부러져서 들어왔소?
아니 고것이 새끼 낳더니만 입맛이 영 없는갑서, 뭣이든 주는 대로 잘 먹던 입인디 요 며칠 새 된장국도 안 먹고 미역국도 안 먹고 강아지들 젖도 안 멕일라고 그랴. 아무래도 지가 잡어놓은 노루 뼈라도 고아서 멕여야 쓸란갑다.
늙은 어머니, 이녁 안부는 뒷전이고 개 안부만 길게 전한다.
아, 나도 못 먹어본 노루 뼛국!
<실천문학, 2010년 봄호>
박상률 : 전남 진도 출생. 1990년 『한길문학』으로 등단. 시집 『진도 아리랑』, 『배고픈 웃음』, 『하늘산 땅골 이야기』 등.
/체험적 이야기 시의 고소한 맛깔/
박상률의 시는 죄다 재미있다. 이야기 형식을 빌려 써서 그런지, 가끔 사투리를 넣어 써서 그러한지 모르나, 무엇보다 그의 체험인 듯한 내용을 재료로 재치 있게 엮는다는데 묘미가 있다. ‘개 안부’라는 시도 등장인물과 사건이 있고, 그에 대한 재기 넘치는 반응 내지 심리가 돋보여서 아주 기특한 시로 읽혀진다.
우리 삶의 주변에서 사람과 가장 친근한 생물을 들라면 단연코 ‘개’가 될 것이다. 며칠 전 TV애 사람처럼 웃는 개가 등장하는 것을 보고 놀란 적이 있다. 또 공원에서 사람처럼 신나게 보드를 타는 통통한 개도 보았다. 그뿐인가. 집에 불이 나 위험에 처해 있는 주인을 살리기 위해 개가 사람을 찾아가 신고하는 장면도 있었다.
참으로 개만큼 영리한 짐승은 없는 것 같다. 그래서일까. 뉴질랜드에서는 일찍이 버스를 탈 때 우선순위로 남자 어른보다 개가 앞에 있다는 것. 개가 수많은 양떼를 지키는 나라여서 더 대접을 받는 것일지는 모르나, 아무튼 재미있는 일이다.
남단 ‘진도’라는 섬을 생각할 때 나의 머리에도 ‘진돗개’가 금방 떠오른다. 그리고 내 처지라도 먼저 개에 관한 소식을 듣고 싶었을 게다. 진도에 사는 사람들이 개만 못해서가 아니다. 어디이고 사람 소식이란게 그저 그렇고 그러해서 별 흥미가 없는지라, 색다른 그 무슨 새로운 소식을 듣고 싶은 욕망에서 그러하리라.
시에서 드러나고 있는 늙은 어머니의 개 사랑하는 심성이야말로 너무 정겹고 찐득하다. 입맛이 없는 개에게 ‘된장국’,‘미역국’은 물론 ‘노루 뼛국’까지 건사하려는 노력에서 생명 존중의 경외심마저 불러일으킨다.
하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은 개를 일단 인간 이하로 폄하한다. 사람처럼 영리하고 능력있는 개에 대한 시기심 내지는 질투심의 발로일까. 사람을 두고 ‘개새끼’, ‘개년(놈)’이라 하거나, 나쁜 상황을 말할 때도 ‘개판’이니 ‘개팔자’라는 말을 쓰고, 나아가 ‘개’자 들어간 속담도 부지기수다.
아무튼 접두어 ‘개’자만 들어가면 의미가 살벌해진다. 하기야 물건을 두고 ‘개살구’, ‘개떡’ 등 부정적인 언사로 쓰이고 있는 경우가 얼마나 많은가. 아무튼 사람이나 물건이나 접두어 ‘개’만 들어가면 욕이 되거나 아주 좋지 않은 물건이 되고 만다. 그래서 개들 사회에서는 이렇게 말한단다. 저들끼리 욕할 때에 ‘사람 같은 놈(년)’이라고.
-문광영 시평(詩評)-
문학평론가가 뽑은 『이 계절의 좋은 시』문광영 시평(詩評)집 도서출판청어 2010. 12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