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 시몬과 성 유다 타대오 사도 축일 강론
송영진 모세 신부 ・ 23시간 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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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 시몬과 성 유다 타대오 사도 축일 강론>
(2024. 10. 28. 월)(루카 6,12-19)
<열정>
“그 무렵에 예수님께서는 기도하시려고 산으로 나가시어,
밤을 새우며 하느님께 기도하셨다. 그리고 날이 새자
제자들을 부르시어 그들 가운데에서 열둘을 뽑으셨다.
그들을 사도라고도 부르셨는데, 그들은 베드로라고 이름을
지어 주신 시몬, 그의 동생 안드레아, 그리고 야고보, 요한,
필립보, 바르톨로메오, 마태오, 토마스, 알패오의 아들
야고보, 열혈당원이라고 불리는 시몬, 야고보의 아들 유다,
또 배신자가 된 유다 이스카리옷이다.
예수님께서 그들과 함께 산에서 내려가 평지에 서시니,
그분의 제자들이 많은 군중을 이루고, 온 유다와
예루살렘, 그리고 티로와 시돈의 해안 지방에서 온
백성이 큰 무리를 이루고 있었다. 그들은 예수님의 말씀도
듣고 질병도 고치려고 온 사람들이었다. 그리하여
더러운 영들에게 시달리는 이들도 낫게 되었다. 군중은 모두
예수님께 손을 대려고 애를 썼다. 그분에게서 힘이 나와
모든 사람을 고쳐 주었기 때문이다(루카 6,12-19).”
1) ‘열혈당’은 로마제국을 상대로 독립투쟁을 했던 단체인데,
우리나라의 의열단과 비슷했던 것으로 보입니다.
열혈당원으로 기록되어 있는 시몬 사도는, 예수님의 제자가
되기 전에는 열성적으로 독립운동을 했다가 그 열성이
예수님에 대한 신앙으로, 또 복음에 대한 열정으로
변화된 사도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사도들의 공통점은 바로 그 ‘열정’(뜨거움)입니다.>
열정은, 다른 것은 생각하지 않는 ‘일편단심’입니다.
“쟁기에 손을 대고 뒤를 돌아보는 자는
하느님 나라에 합당하지 않다(루카 9,62).”
오로지 예수님의 뒤만 따르고, 예수님의 가르침을 실행하는
것만 중요하게 생각하고, 그래서 실제 삶에서 그대로
실행하면서 살아가는 것, 바로 그것이 신앙인의 열정입니다.
열정은, 자신의 모든 것을 다 바치는 ‘헌신’입니다.
모든 것을 다 바친다는 말에서
‘동전 두 닢을 봉헌한 가난한 과부’가 연상됩니다.
“내가 참으로 너희에게 말한다. 저 가난한 과부가 다른 모든
사람보다 더 많이 넣었다. 저들은 모두 풍족한 데에서
얼마씩을 넣었지만, 저 과부는 궁핍한 가운데에서 가지고
있던 생활비를 다 넣었기 때문이다(루카 21,3-4).”
‘풍족한 데에서 얼마씩’을 내는 것은 ‘미지근한 것’입니다.
가지고 있는 것을 다 바치는 것은 ‘뜨거운 것’입니다.
열정은, 끝까지 포기하지 않는 끈기와 인내입니다.
“끝까지 견디는 이는 구원을 받을 것이다(마태 10,22).”
<이 말씀에서 ‘끝까지’는 ‘죽을 때까지’입니다.>
미지근한 신앙인은 가다가 힘들면 중단하지만,
진짜로 뜨거운(열정적인) 신앙인은 힘들어도 끝까지 갑니다.
2) 사도들이 처음부터 완벽했던 것은 아닙니다.
미숙한 점도 있었고, 부족한 점도 많았고, 흔들리기도 했고,
흩어지기도 했습니다.
그렇지만 그런 과정을 겪으면서 계속 단련되었고, 강해졌고,
결국 신앙과 충성심과 열정과 사랑에서 모든 신앙인의
모범이 되었습니다.
배반자 유다는 끝까지 가지 못하고 중간에 차갑게
식어버렸는데, 그 모습은 오히려 다른 사도들의 신앙과
충성심과 열정을 부각시키는 일이 되었습니다.
<등불 빛을 더욱 밝게 보이게 하는 그림자 같은 일이
되었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3) 사도들의 명단 뒤에 기록되어 있는 군중의 모습을 보면,
병을 고치려고 “모두 예수님께 손을 대려고 애를” 쓰는데,
그 ‘간절함’도 겉으로는 열정으로 보일 수도 있습니다.
사람들 가운데 일부는 병을 고친 다음에 열정적이고
헌신적인 신앙인이 된 사람도 분명히 있긴 하지만,
대부분은 병의 치유에만 만족하고서 그냥 떠나버렸습니다.
그래서 그들의 ‘간절함’은 예수님에 대한 믿음과 열정이
아니라, 병고에서 해방되기만을 바라는,
단순한 소원일 뿐입니다.
<물론 그 ‘간절함’ 자체를 무시하거나 폄하할 수는 없습니다.
고통에서 해방되기를 바라는 것은
누구에게나 중요한 희망이고 소원이기 때문입니다.
그렇긴 하지만 신앙인은 거기서 멈추지 말고
다음 단계로 나아가야 합니다.
구원과 영원한 생명의 완성이 신앙생활의 최종 목표입니다.>
4) 주님께서 에페소 신자들에게 하신 말씀을
생각해 볼 필요가 있습니다.
“너는 인내심이 있어서, 내 이름 때문에 어려움을
겪으면서도 지치는 일이 없었다. 그러나 너에게 나무랄
것이 있다. 너는 처음에 지녔던 사랑을 저버린 것이다.
그러므로 네가 어디에서 추락했는지 생각해 내어
회개하고, 처음에 하던 일들을 다시 하여라.
네가 그렇게 하지 않고 회개하지 않으면, 내가 가서 네
등잔대를 그 자리에서 치워버리겠다(묵시 2,3-5).”
신앙생활을 하다 보면, 겉으로는 여전히 잘하고 있는 것으로
보이기는 한데, 생동감도 없고, 활기도 없고, 기쁨도 없음을
느낄 때가 있습니다.
<누구든지 그렇게 될 수 있습니다.>
그것은 처음의 사랑도 식고 열정도 식었기 때문입니다.
습관적으로, 또는 의무감으로, 그 동안 하던 대로 하면
잘하는 것처럼 보일 수는 있지만, 그것을 잘하는 것이라고
말할 수는 없습니다.
기쁨이 없다는 것은 억지로 한다는 뜻이 되기 때문입니다.
사도들이 모두 ‘순교’로 생을 마감했다는 것은, 주님에 대한
그들의 사랑이 끝까지 식지 않았음을 증명합니다.
<식어버린 사랑과 열정을 다시 뜨겁게 하는 방법은 ‘회개’,
그리고 ‘다시 뜨거워지려고 끊임없이 노력하는 것’입니다.>
송영진 모세 신부
[출처] 성 시몬과 성 유다 타대오 사도 축일 강론|작성자 송영진 모세 신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