튜토리얼 외 1편
김도
세상은 어쩌면 좋을지 알 수 없는 느낌으로만 이루어집니다.
아름답다 말하기엔 난처하게 맛이 상한 집 근처 거리를 걸어도
사탕 바구니 안에서 팽팽해지는 아이의 손처럼 잎을 펼쳐
어디가 어딘지 PC방 카페 학원 등등 온갖 간판들과
눈이라도 마주치면 황급히 눈빛을 감추는 사람들의
가르마 위로 그늘을 드리우는 플라타너스 가로수들이
바람이 부는 대로 눈부신 구멍들을 흔들 때면
저항할 수 없겠구나.
아무 소용이 없을 테니까.
받아들이는 수밖에 없게 만들어지고 있습니다.
갑자기 손바닥 위에 착지하는 청개구리의 매끈한 등처럼
너무 이른 아침 새소리가 가르치는 용서와 감사처럼
마냥 엎어지는 파도처럼 무심하게 당신을 끌고 가게 돼있습니다.
나는 이런 곳에 어울리지 않아. 아무리 중얼거려도
그렇구나. 들어주고 마는 세상이 있습니다.
이것이 내가 당신에게 줄 수 있는 단 하나의 선물입니다.
같이 갈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나 혼자는 안 되니까요.
아포칼립스 이즈 커밍 투 타운
여름에만 열리는 문들이 하나 둘 더는 열리지 않고
오래된 거리의 밤은 감미로움. 시내 영화관 퀴퀴꿉꿉 어둠보다 짙게
끝없는 파도가 압착하는 침묵 속에서 허우적거릴 수 있기 때문.
취기로 달군 뺨이든 숨결이든 싸구려 폭죽이 곳곳에서 딱딱거리며 터질 수 있기 때문.
아귀의 초롱처럼 눈으로 볼 수 없는 알전구 다발 빛이 여전히 두 눈 위를 긁고 지나가기 때문.
귀가 어떻게 된 것인가 눈이 어떻게 된 것인가 걱정 안 해서 좋음.
모두 떠났기 때문. 손님 온다고 해서. 우리가 초대했는데 준비가 안 됐다고 해서.
준비하기 싫기 때문에 도망쳤다고들 해서 해변으로 왔음. 손님 어떻게 오시는지 보려고.
결국 도착하기 전에 미리 마중 나가서 고백하려고. 다들 갔다고.
와도 소용이 없을 거라고. 미안하다고. 이러나저러나 손님은 올 텐데
열리지 않는 문은 닫을 수 없게 하고 지붕이나 벽은 가릴 수 없게 할 텐데
이제는 곤란할 필요가 없음. 다들 여기 있기 때문. 아직도
조각난 보드를 뽑아 바다로 뛰는 서퍼 무리는 겨울을 선호하고
피가 나도 괜히 맨발로 모래를 걸으면 신발을 벗고 나도 벗게 하던 어린애가 옆에서 걷고 있음.
그러니 괜찮음. 아무래도 상관없음. 환영의 말을 떠올리고 포옹을 연습하면서
떠나면서 미처 사라지지 못한 사람들 곁을 지키고 있음. 기다리고 있음.
어서 오세요 손님.
김도
시집 『핵꿈』을 썼다. ‘원시’ 동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