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축의금의 색다른 그림자
오교수
“혼사를 치르고 나면 인간관계가 정리된다.”는 격언이 있다. 이 말이 무슨 의미를 담고 있는지 쉽게 이해가 되지 않았다. 그러다 내가 막상 인륜지 대사인 혼사를 치르고 나니 어느 정도 이해가 되는 것 같다.
이 말의 의미는 아마 혼사를 치르기 위해 지인들에게 청첩장을 보내고 결혼식을 모두 치르고 난 후 청첩을 받은 상대방이 결혼식에 응하는 면면을 살펴보면 평소의 자신이 생각하고 있던 상대방의 모습과 차이를 보이는 경우가 있다. 자신의 기대와 크게 어긋날 때 그 사람이 낯설어 보이는 것을 발견하게 된다. 그럴 때 그 사람과의 인간관계를 새롭게 정립해 나가게 된다는 의미가 아닐까 싶다.
청첩장을 보내고 청첩장을 받은 쪽에서는 결혼식에 참석하여 축의금을 내며 축하해주는 일은 어쩌면 당연한 일로 생각하기 쉽다. 하지만 자신의 상식처럼 그렇게 딱 맞아떨어지지 않은 게 세상일이다. 내 경우도 상대방이 청첩을 보내오지 않을 때는 깜빡하는 경우가 있다. 꼭 부조를 해야 하는데 하면서도 그냥 지나치는 실수를 가끔 경험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상식에 근접하도록 노력하며 살아가야 한다고 생각한다.
이런 일이 생기는 까닭은, 아마 상대방이 내 마음과 같지 않은데다 서로가 인간관계의 착각 속에서 살아가기 때문이 아닐까 한다.
상대방에게 부조를 받고도 의도적으로 부도를 내는 경우와 받은 부조금 보다 DC를 해서 부조를 하는 경우가 있다. 후자의 경우도 좋은 모습은 아니지만 특히 전자가 많은 비난을 받게 되는 것 같다. 혼주는 상대방과 그동안 돈독한 관계로 착각하며 살아오다 자녀 혼사를 통하여 그만 낯설고 새로운 그의 모습을 보게 된다. 청첩과 축의금이 귀결되어 이런 현상을 보이며 상대를 딴 사람처럼 보이게 만드는 것은 아닌지 모를 일이다.
청첩을 낼 때도 신중히 판단하여 보냈음에도 전혀 반응이 없는 사람도 있다. 그럴 땐 그만한 사정이 있겠지 하고선 충분히 이해하려고 한다. 내가 상대방에게 빌려준 돈을 받는 것처럼 생각해서는 안 될 것이다. 참석여부와 부조는 상대가 선택하는 몫이기 때문이다.
특히 문제가 되는 것은 먼저 한두 차례 부조를 받고도 답례를 하지 않는 경우이다. 이런 경우는 누구나 속상해하고 배신감마저 느끼게 된다. 한 지인은 “잔치를 하고 나니 그 사람의 인간성을 알겠더라”라고 하며 모임 때마다 술안주 거리 삼아 비난하는 경우도 있다. 얼마나 서운했으면 저럴까 싶어 안쓰러운 마음에 넌지시 한마디 건넸다. 그렇게 마음에 배신감을 느끼고 사느니 차라리 문자 통신을 보내든지 하여 정중히 청구하는 방법도 있다고 했다. 그게 안 되면 차라리 포기하고 마음을 편히 가지라고 권했다.
옆집 할머니가 들려준 부조에 관한 이야기다. 남편의 병간호 때문에 십여 년간 병원생활을 하느라 회원 자녀의 결혼 소식을 듣지 못해 부조를 하지 못한 일이 있었다고 한다. 그 후 길을 가다 우연히 할머니에게 부조를 해준 회원을 만나게 되었다고 한다. 그 회원은 그 자리에서 자신의 아들이 혼사를 치렀다며 만났을 때 부조를 주면 좋겠다고 했다. 순간 황당하였지만 밀린 빚으로 생각하며 그 자리에서 부조를 갚았다고 한다.
시골 아주머니들 간에는 결혼식에 상대방이 부조를 받고도 갚지 않을 경우 내가 해준 부조를 갚으라며 점잖게 직접 이야기하거나 아님 제3자를 통하여 부조를 갚도록 전달하는 경우도 왕왕 있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상대방에게 밥이나 술 등을 사주었다면 부조의 몇 배를 지출했더라도 그렇게 배신감을 느낀다거나 갚으라고 까지는 하지 않을 것이다. 상호 간 품앗이 성격을 지닌 부조는 법적 청구권은 없지만 심리적으로는 꼭 받고 싶어 하는 마음이 깃든 오묘한 금전의 거래인 셈이다.
모름지기 부조란 한쪽이 일방적으로 기부하는 금액이 아니므로 상대가 무성의한 태도를 보일 때 배신감도 눈덩이처럼 크게 느끼게 하는 묘한 돈이다.
이런 심리적 부담을 최소화하기 위해서는 청첩은 되도록 이면 적게 보내는 것도 여러모로 좋은 선택이 아닐까 한다. 그런 다음 마음가짐은 작게라도 먼저 베풀고 스스로 손해 보는 선택을 자연스럽게 받아들이는 마음 자세가 중요하리라 생각한다.
요즘은 스몰웨딩으로 검소하게 가족들만이 참석하여 조촐하게 예식을 하는 가정도 차츰 늘어나고 있는 추세이다. 이런 문화가 조기에 정착되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하지만 그동안 이루어진 청첩과 부조라는 틀을 과감히 벗어나기란 쉽지가 않은 것 같다.
혼주와 눈도장 찍기 바쁘게 식당으로 직행하는 하객들의 모습을 많이 본다. 이런 하객들이 인산인해를 이룬다고 한들 그게 결혼식에 무슨 도움이 되며 큰 의미가 있겠는가. 혼주들을 피곤하게 하고 식장만 번잡하게 할 뿐이다.
청첩장을 받고 식장을 방문한 하객이라면 오늘 새 출발하는 신랑 신부를 위해 진심 어린 축하와 따뜻한 격려의 박수라도 한 번쯤 쳐주고 돌아와야 한다. 아침 일찍 서둘러 근사한 양복에다 넥타이까지 매고, 갖은 화장에다 우아한 모습으로 예식장으로 향하는 진정한 의미는 그런데 있지 않을까 싶다.
나의 경험에 비추어보면 부조 액수와 상관없이 예식장에 직접 참석하여 축하 박수까지 쳐주는 하객을 A급 하객으로 본다. 이런 하객은 ‘돈 부조’ ‘사람 부조’ ‘정성 부조’까지 3가지를 모두 다 해주려고 온 진정한 하객이다. 소중한 시간을 할애하여 신랑 신부의 새로운 인생의 출발점을 지켜봐 주며 축하를 보내는 품격 있는 하객의 모습이기 때문이다.
이번 주도 청첩장 한 통이 날아왔다. 이번 주말 예식장에선 혼주와 간단히 인사만 끝내고 식당에 가자고 재촉하는 지인은 피하고 싶다. 나는 양가 혼주님이 정성스럽게 길러 놓은 귀한 신랑 신부의 첫 출발하는 모습을 잠깐이라도 바라보고 싶다.
웨딩의 단상에 선 신랑과 신부의 준수하고 우아한 자태는 양가 혼주가 한평생 노력하여 빚어 놓은 인생 최고의 걸작품이 아니겠는가. 이럴 때 나는 미켈란젤로가 따로 없다는 생각을 한다. 이런 모습은 보기만 해도 가슴이 심쿵 해진다.
영화에서 본 이태리 로마 스페인 광장 계단에 서있는 오드리헵번과 그레고리펙의 다정한 모습을 연상하게 한다. 난 그런 모습을 놓치기 아까워 카메라에 한 장 담아보기도 한다. 또 주례의 독특한 인생 덕담 한마디를 경청하는 일도 매우 흥미롭게 여긴다. 이처럼 분위기에 젖어보면 뷔페 식사나 축의금 액수는 그리 중요하지 않아 잊어버리게 된다. 이런 축하 뒤엔 뭔가 모르게 이상 야릇한 그림자가 드리워져 서먹서먹해지는 감정은 생기지 않으리라 생각한다. (2018.6.8.)
첫댓글 혼인 축의 문화의 장점과 개선이 되면 좋겠다는 단점을 생각 해 보았습니다. 감사합니다. 최상순드림
예식장을 가는 것은 축하는 하러 가는 것이라 생각됩니다. 당연히 주례사도 들어보고 신혼부부에게 박수도 쳐주고 오는 것이 마땅하겠지만 실제 예식장 풍경은 예식은 어디가고 혼주 얼굴에 도장 찍고 식당으로 향하는 풍경이 대부분입니다 여러가지 문제가 있겠습니다 만 차츰 좋은 방향으로 바뀌도록 하는 사회적 움직임이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많은 내용 공감하며 읽었습니다.
축의금에 대하여 많은 생각을 떠올리게 하는 글 잘 읽었습니다. 인생의 새출발로 새로운 가정을 이루는 결혼식이 축하와 축복보다 한낱 갚음의 현장으로 변화되어 가고 있는 현실이 안타깝습니다. 시대의 흐름을 탓하기 보다 사람들의 생각을 바꾸는 게기가 필요한 것 같습니다. 공감하면서 잘 읽었습니다. 감사합니다.
축의금과 결혼식 풍경에 대하여 여러모로 지적하신 글을 잘 읽었습니다. 공감합니다.
부조금에 대한 이야기와 혼인식에 참여하여 진정한 축하를 하는 일에 대한 말씀 잘 들었습니다. 아울러 내가 잘 못한 점은 없는가 반성해 봅니다. 잘 읽었습니다.
선생님의 글을 읽으니, 청첩장을 을 보낼 때는 정말 신중하게, 마음에서 우러나는 진정한 축하를 해 줄 수 있는 상대인지를 생각하며 보내는 게 맞겟다는 생각이 새삼 드는군요. 저도 혼주 얼굴에 도장찍기 위해 참석한 결혼식이 더러 있었습니다. 조촐하면서도 진심으로 축하하고 축하 받으며 신랑 신부가 인생의 새로운 출발할 수 있는 작은 결혼식의 풍습이 자리잡는 날이 왔으면 하며, 저부터 실천하겟다고 다짐해봅니다. 공감하며 잘 읽었습니다.
고쳐야 할 결혼 문화인것같습니다. 지인은 일본 며느리를 봤는데 결혼식장에 온 손님은 50명 안팍인데 신랑, 신부 우인과
혼주의 친척만 참석한다고 해요. 그야 말로 신랑,신부를 잘 아는 사람만 참석하는데 결혼식장 자리에 신랑,신부와의 관계를 적어 놓는다고 합니다. 글을 통해 스몰웨딩문화 정착의 필요성을 더욱 실감했습니다. 잘 읽었습니다
부조한 것은 잊고 받은 것은 잘 기억했다가 갚으라고 하지만 사란의 마음이란 준 만큼 받고 싶은 것이 인지상정입니다. 결국 부조란 상부상조의 의미가 큰것이니 받은 만큼 갚아야 하는 것이 정상입니다. 원래 축의 금은 혼사를 축하하는 의미가 큰데 진 빗을 갚는 행사로 전락된 느낌입니다. 결혼문화가 바꿔져야 할 과제라고 봅니다. 잘 읽었습니다.
자녀혼사는 결혼하는 당사자의 부모의 면을 많이 찾고 부고는 망자의 자식의 면을 많이 본다고 합니다. 어느 글에서 사회적으로 명망이 높은 분들의 부고장에는 화환이 끝없이 즐비해 있고 그 사정을 자세히 아는 사람들의 원망거리가 된다고 합니다. 망자들 중에 드러는 구석방에 바깥 세상을 구경 못하는 분들도 있고 요양원에 보내 놓고 자식의무 다 했다며 자주 찾아가지 않다가 돌아가시면 신문에 문자로 우편으로 얇팍한 속내가 보인다고 합니다. 앞으로 내 자식들은 어떻게 할지 갑자기 세상이 두려워 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