美은행 불안에 환율 장중 1340원 “당분간 더 간다”
달러화 약세에도 무역적자 등 악재
환율 석달도 안돼 115원 넘게 올라
엔화는 강세… 100엔당 1000원 전후
외환보유액 3년째 IMF 권고 밑돌아
미국발 은행 위기가 다시 고조되면서 원-달러 환율이 장중 1340원을 돌파했다. 환율이 최근 3거래일 연속 장중 연고점을 갈아치우는 등 외환시장의 불안이 커지고 있다. 지난해부터 이어진 무역지수 적자로 한국 경제의 기초체력(펀더멘털)이 약화된 데다 한미 기준금리 격차가 더 벌어질 것으로 보여 당분간 환율 오름세가 지속될 것이란 전망이 나온다.
● 5개월 만에 장중 1340원 돌파
26일 원-달러 환율은 전날보다 4.1원 오른 1336.3원에 마감했다. 종가 기준 연고점이다. 이날 환율은 개장 직후 1340.5원까지 치솟아 지난해 11월 28일(1340.2원) 이후 5개월 만에 1340원 선을 넘어섰다.
환율이 오른 건 25일(현지 시간) 1분기(1∼3월) 실적을 발표한 미국 퍼스트리퍼블릭은행(FRB)의 ‘어닝 쇼크’로 FRB 주가가 50% 가까이 폭락하면서 은행 위기가 재점화됐기 때문으로 분석된다. FRB는 미 실리콘밸리은행(SVB) 파산 이후 ‘뱅크런’(예금 대량 인출)을 겪은 곳이다. 김승혁 NH선물 연구원은 “경제지표 둔화와 은행 우려 재점화 속 위험회피 심리가 다시 고조되고 있다”며 “최근 미국이 국내 반도체 기업들에 대해 중국과 공조하지 못하도록 압력을 넣고 있다는 점도 원화 약세 재료”라고 설명했다.
올해 2월 2일 달러당 1220.3원까지 떨어졌던 환율은 석 달도 안 돼 115원 넘게 올랐다. 특히 SVB 사태 이후 미 달러화가 약세를 보이는 와중에 원화 가치가 더 큰 폭으로 떨어졌다. 달러화가 약세를 보이면 원화는 강세를 보이는 것이 일반적이었지만 국내 경기 둔화 우려가 부각되면서 동반 약세를 보였다. 여기에 통상 4월에 지급되는 배당금을 외국인 투자가들이 달러로 환전해 자국에 송금하면서 달러 수요가 커지는 계절적 요인도 환율 상승 압력으로 작용했다.
문제는 당분간 외환시장 불안이 이어질 수 있다는 점이다. 김정식 연세대 경제학부 명예교수는 “미국 연방준비제도(Fed·연준)가 다음 달 3일 기준금리를 높이면 원-달러 환율은 더 높아질 것”이라며 “반도체 업황이 하반기(7∼12월)에 개선될지 여전히 불확실하기 때문에 경기 둔화 우려로 인한 고환율 상황이 지속될 수 있다”고 말했다.
반면 ‘안전자산’으로 인식되는 일본 엔화는 강세를 보이고 있다. 하나은행이 고시하는 엔-원 재정환율은 이날 오후 3시 반 기준 100엔당 999.51원으로 전날보다 6.26원 올랐다.
● 외환보유액 3년째 IMF 권고 미달
환율 변동성이 커지자 한미 통화스와프를 추진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다시 커지고 있다. 최근 이창용 한은 총재는 이 같은 주장에 대해 “한국은 순채권국으로 (통화스와프를 체결할 경우) 외환시장에 큰 문제가 있는 것처럼 비칠 수 있다”며 재차 선을 그었다.
하지만 한국의 외환보유액은 국제통화기금(IMF)이 권고하는 적정 수준을 3년째 밑돌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IMF가 집계하는 외환보유액 적정성 평가지수(ARA)에 따르면 지난해 한국의 ARA는 0.97로 2020년, 2021년(이상 0.99)에 이어 3년 연속 1보다 낮았다. IMF의 ARA 권고 수준은 1.0∼1.5다. 한국의 ARA는 외환위기 직후인 1998년(0.62)과 1999년(0.86) 1보다 낮았지만 2000년(1.14) 이후 20년 동안 IMF의 권고 수준을 유지해왔다.
국제금융센터는 “글로벌 경기 둔화, 지정학적 불안 등 위기 발생 가능성에 대비해 외환보유액 확충, 역내 금융협력 확대 등 금융안전망 강화를 위한 노력을 지속할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
한은에 따르면 현재 한국의 외환보유액은 3월 말 기준 4260억7000만 달러(세계 9위 수준)로 IMF는 대외부문보고서와 연례협의 등에서 한국의 보유액에 대해 “외부충격 대응에 적정하다”고 평가하고 있다.
박민우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