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버리스(2)-브레임(6)
글쓴이 그라테우스
브레임은 나를 오두막에 눕히더니 쉬라는 말만 툭 던져놓곤 나갔다. 손에 목검을 잡고 있던 것으로 보아 검을 휘두를 생각 인 것 같았다. 실제 그가 뭘 하건 상관없기는 하지만 말이다.
어두운 오두막에 멍하니 누워있었지만 도통 잠이 오질 않았다. 그렇다고 몸을 움직이는 것도 여의치 않았기에 난 고개만 돌려서 주변을 살펴봤다. 오두막의 내부는 간단했다. 식탁과 의자, 가죽 모포를 쌓아둔 곳. 텅 빈 바닥과 집의 뒤편으로 통하는. 그 너머에 뭐가 있을지 의심스러운 문이 있을 따름이었다.
이것들을 발견하곤 뭔가 더 없는지 주변을 둘러보다가 오두막 구석에 있는 어떤 것을 발견했다. 처음 그것을 봤을 땐, 뭐가 있는지 없는지 헷갈렸는데 그곳을 집중해서 바라보니 점점 그 형태가 드러났다.
처음에는 까만 막대기인줄 알았다. 하지만 그것의 모습은 조금씩 변했고 종내에는 검 집에 끼워진 까만 검의 형태가 되었다. 기이하고 신기한 그 모습에 나도 모르게 일어나 그것을 향해 갔다.
마치 그림자와 같은 느낌이었기에 난 그것이 사라져버리지 않을까 걱정하며 조심스런 손길로 그것을 잡았다. 그러자 손에 묵직한 느낌이오며 비로소 그것이 현실감 있게 느껴졌다. 한 손에 단단히 그것을 쥐고 서서히 검 집에서 검을 뽑아냈다. 그러자 잘 느껴지지 않는 검정색 블레이드가 드러났다. 분명 보이는데 흐릿한 것 같기도 하고, 검의 날이 아예 없는 것처럼 느껴지기도 했다.
있는 듯 없는 듯한 그 묘한 일렁임에 시선을 돌릴 수가 없었다. 영혼까지 빨려들을 듯한 환영 같은 움직임. 그렇게 시간이 지나갔다. 검신에 집중해 있느라 얼마나 지났는지 모르겠지만 누워있을 때 막 떠올랐던 태양이 지금은 중천에 오른 듯 진한 빛을 토해낼 만큼의 시간이 지났다. 인기척이 들리더니 오두막의 문이 열렸다. 그리고 잿빛 머리칼의 익숙한 남자가 오두막으로 들어섰다.
분명 나는 오두막의 구석에 있었다. 빛이 들지 않는데다 구석이긴 했지만 한낮인 지금 브레임이 나를 발견하지 못할 상황은 절대 아닌 것이다. 하지만 그는 나를 발견하지 못하고 내가 누워있던 곳을 보더니 눈을 크게 떴다.
“이놈이 어디로 간 거지? 분명 움직이기엔 아직 무리가 있을 터인데.”
그리곤 오두막 내부를 주욱 둘러봤다. 하지만 내게 시선을 주지 않았다. 마치 내가 보이지 않는 것처럼 말이다. 순간 내가 유령처럼 보이지도 않는 존재가 된 것이 아닌지 덜컥 겁이 났다. 내가 여기에 있다고 입을 열려했지만 무언가 보이지 않는 힘이 목을 움켜잡고 있는 듯 말이 나오지 않았다. 팔이나 다리를 움직이려 했지만 진짜 귀신에 쓰인 듯 몸이 움직이지 않았다. 최대한 노력해서 움직이려 했지만 몸은 여전 움직이지 않았고, 그 순간 머릿속에 뭔가가 번뜩했다.
그리고 난 내 양손으로 꼭 잡고 있는 ‘이것’을 바라보았다. 보일 듯 말 듯 일렁이던 블레이드에는 불길한 빛의 검은 그림자가 이리저리 일렁이고 있었다. 마치 그것이 나를 향해 웃는 것만 같은 느낌. 그것을 발견한 순간 몸을 움직이지 못함에도 불구하고 전신에 소름이 쫙 돋았다.
“호오.”
그 순간 바로 옆에서 탄성이 터져 나왔다. 약간 놀랍다는 듯한 감정이 담겨있는 그 소리에 시선이 절로 그곳으로 갔고, 그곳에서 내가 있는 곳을 바라보며 ‘찾았다’라는 표정으로 싸늘한 미소를 짓고 있는 브레임을 볼 수가 있었다. 분명 미소였건만 난 그것과 마주하자마자 양 팔이 부들부들 떨리며 등 뒤로 불길한 무언가가 스쳐가는 느낌을 받았다. 그리고 그의 입술이 벌어지며 실제로 그렇지는 않지만 소름끼치는 소리가 내 머릿속에 울려 퍼졌다.
“움직이지도 못하겠다는 놈이 이걸 발견하곤 여기까지 잘도 꾸역꾸역 와서 검을 잡고 숨어있나?”
양 팔이 더욱 심하게 떨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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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백구십칠……사백구십팔……사백구십구……오백!! 끝이다!”
마지막으로 목검을 움직인 순간 목검을 바닥에 내팽개치고 바닥에 털썩 주저앉았다. 양 팔은 아까 떨렸던 것보다 몇 배는 심하게 떨렸다. 땅에 팔을 짚고 있으면 후들후들 떨리는 팔로인해 몸까지 흔들리는 탓에 그냥 팔을 늘어트리고 누웠다. 힘을 주지도 않았지만 팔은 여전히 잔 경련을 멈추지 않았다. 마치 술을 많이 마셔서 손을 떨게 된다는 병처럼.
“드디어 다 끝났나.”
알면서 무슨 심술을 부리는 거냐! 그대로 소리치고 싶기는 했지만 여태 그가 목검을 휘두르는 것을 봐온 터라 감히 그런 소리를 입 밖으로 낼 수가 없었다. 별수 없이 그냥 대답할 수 밖에.
“예.”
대답하긴 했지만 왠지 억울하고 고까운 것이 있었기에 눈을 흘기는 것을 빼먹지 않았다.
“흐음, 오늘은 첫날이니 이정도로 끝낼까?”
그의 말을 듣는 순간 힘이 다 빠져나간 것 같았던 전신에 활력이 약간이나마 돌아왔다.
“워낙 약골이라 더 하면 죽을 수도 있으니까. 음. 관리하기 귀찮군.”
“…….”
그러곤 오두막으로 향했다. 점점 멀어져가는 그를 멍하니 바라보다가 하늘에 어둠이 깔리는 것을 발견하고서야 부랴부랴 그를 뒤쫓았다. 다리는 웬만큼 회복된 상태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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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날 이후로 나의 일과는 정해졌다. 단순한 반복의 연속. 달리고 목검을 휘두른다. 브레임에게 자세교정을 받으며 몸과 검을 단련 받았고 그 때마다 멍청하다는 소리를 듣거나 약골과 같은 내 몸이 둔하고 이해를 잘 못한다는 식의 타박을 받으면서 브레임과 대련. 두드려 맞는 것이 일과였다.
실력이 늘면 덜 맞을 줄 알았는데 오히려 그 반대였다. 내가 나름대로 강해져서 나름대로 위협적인 공격을 하면 브레임은 제법이라는 표정으로 무지막지한 반격을 선보였다. 그 덕분에 공격을 하면서도 그가 반격을 못하도록 최대한 신경 쓰고 연구했다. 그다지 큰 효과가 없기는 했지만 아예 쓸모없는 것도 아니었다. 가끔. 정말 가끔이기는 했지만 브레임의 반격이 들어오지 않거나 들어와도 막히는 경우가 생기기 시작한 것이다. 십년도 넘는 시간동안 검을 써온 자의 반격을 막았다는 것에 내 스스로도 만족스러운 것은 물론, 내게 칭찬보다 타박을 많이 하는 브레임도 ‘네가 하는 것 중에서 드물게도 마음에 드는군.’이라 평했다.
그와 있으면서 가끔씩 브레임이 사냥해온 짐승들의 가죽과 발톱 따위를 팔고 생필품을 사러 갈 때에만 오두막과 그 뒤의 공터를 벗어날 수 있었다. 나 역시 그를 따라 사냥을 해보고 싶기도 했고, 그것을 요청도 했었지만 ‘넌 그 시간에 단련이나 더 하도록. 괜히 다치면 귀찮아지니까.’라고 말함으로서 무산되었다.
시간은 빠르게 지나갔다. 아직 두 달밖에 안 지났나 하고 생각하던 것이 엊그제 같은데 벌써 3년이 지나갔다. 내 신체는 그동안 단련되고 단련되어 이전과는 비교할 수도 없으리만치 강해졌다. 그동안 한 일이라곤 자고, 먹고, 싸고, 맞고, 욕먹는 것을 제하곤 오로지 훈련, 단련뿐이었으니까. 하지만 지금이나 처음이나 하루 훈련을 마치고 오두막에서 잠을 청할 때면 지치고 지쳐서 바로 곯아떨어져 버린다. 훈련의 양이 몸이 발달하고 근력이 늘어남에 따라 더불어 늘었기 때문이다.
게다가 요즘에는 목검을 쓰는 것 말고도 잡다한 것을 배우느라 정신이 없을 지경이다. 맨손으로 싸우는 법. 창이나 봉, 곤봉을 대충이나마 쓸 수 있도록 브레임에게 배우는 것이다. 위급할 시에 검이 없어도 아무것이나 써야하니까. 가장 좋은 것은 여분의 검을 지니고 다니는 것이겠지만 사람 마음대로 되지 않는 것이 세상이라나?
그리고 오늘은 새로운 것을 하겠다고 브레임이 미리 말한 날이다. 보나마나 더 힘들 것이 뻔했지만 이 지루한 반복뿐인 생활에 변화가 생긴다는 것은 그것만으로도 환영할 만한 일이다. 약간의 기대를 안고 오두막 뒤의 공터로 향했다. 그곳에는 큰 키의 잿빛 머리칼 남자가 목검을 들고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왔나.”
“왔죠.”
열여덟이라는 나이가 된 나는 키가 부쩍 커서 이젠 그를 그리 많이 올려보지 않아도 될 정도가 되었다. 하지만 아직은 브레임에 비하면 한 뼘이나 부족하다. 키가 거의 2미터에 근접하니 당연한 것일지도.
“꽤나 컸는걸.”
그가 늘어트렸던 목검을 들어올렸다.
“와라.”
공터에서 날 기다리고 있을 때부터 알아봤지. 젠장! 봐주지도 않을 거 아냐! 속으로 열심히 궁시렁거리면서도 목검을 들어올렸다. 이제는 처음 그랬던 것처럼 엉성하게 검을 잡거나 크게 소리 지르지 않는다. 약간은 배운 게 있으니까. 검의 끝을 바라보던 것에서 시선을 옮겼다. 무너지지 않을 철벽처럼 굳건히 서서 나를 바라보고 있는 큰 키의 사내. 전혀 재미없는 상황이었음에도 미소가 지어졌다. 그럼 가볼까.
“흐읍!”
나직한 기합을 흘리곤 땅을 박찼다. 그리고 나와 그의 목검이 서로를 향해 쇄도했다.
뭔가 일생일대의 대적과 싸우는 분위기의 마무리 장면.
이상한가...
어쨌건 드디어 올렸습니다.
왜 이 간단한 것이 안 떠올랐는지...
흐음.
아, 이틀 후에 코믹 구경~~
뭔가 사와야 하는데... 또 아무것도 안 사올 것 같다. 으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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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코믹이라니, 부러워요. ;ㅂ;!