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witch & wizard
작성자 Corrupt Shine
The witch and wizard
prologue
내가 잘못했다.
지금까지 내가 해왔던 모든 일들...
모두 잘못되었던 것 같아.
그래... 니 말대로
나 역시 그저 허울 좋은 악당이었을 뿐...
하지만 난 후회하지 않아...
내가 왜 후회해야하지?
나는, 나는 적어도 나에게 충실했어.
억울한 일을 당하고도 힘이 없다는 이유로
그렇게 속좋게 그냥그냥 넘어가는...
그런 짓은 하지 않았어.
아니, 할 수 없었어.
후회하지 않아. 절대로.
이제 오히려 편해졌어.
어쩔 수 없었지만
하고 싶었던 건 아니니까.
이제 쉴 수 있는 거겠지.
두렵지 않냐고?
아니, 두려워.
심장 깊은 곳에서부터 떨려와.
공포, 삶에 대한 집착.
없을 리가 없잖아?
그저 인내하고 있을 뿐.
후회하지 않는 다는 건 두렵지 않다는 말이 아니야.
Chapter 1. 마녀의 하루도 그다지 특별하진 않다. 약간 색다를 뿐이다.
- 띠디디딕 띠디디딕
따뜻한 햇볕이 창을 통해 들어온다. 그리 크지 않지만 분홍과 하양으로 아기자기하게 꾸며진 방안에는 황금빛 태양의 부스러기가 부유하고 있다. 그런 나른한 분위기 속에서 그리 크지 않은 알람시계의 알람소리가 시끄럽게 울린다. 그 시끄러운 소리에 단잠을 방해받은 듯한 한 소녀가 팔을 들어 알람을 멈춘다.
그 방에 주인인 듯한 소녀는 한 17~18 살 정도 되었을까? 소녀는 상당한 미인이었다. 짙은 검은 색의 머리 결은 마구 흐트러져 있었지만 그 아름다운 윤기를 잃지 않았고 같은 색의 눈동자는 묘하게 사람을 빨아들이는 힘이 있었다. 그 아름다운 검은색이 소녀의 하얀 피부와 너무나 아름다운 앙상블을 만들어 내고 있었다.
또 입술은 너무 붉지도 너무 흐리지도 않은 핑크빛을 간직하고 있었는데 너무 아름다운 그것의 색에는 몽롱한 기운 마저 감도는 듯 했다. 게다가 유려한 콧날과 목선은 남성의 보호본능을 자극하고 있었다.
그러나 그녀의 아름다움은 지금 전혀 피어나지 못하고 있었다.
왜냐하면 바로 그녀의 잠버릇이 상당히 과격했기 때문이다.
목은 뒤로 제껴져 입이 헤 벌어져 있었고 머리는 매우 헝클어져 있었으며 잠옷 바지는 무릎 위까지 올라와 있었다. 이불은 침대 구석 다리 밑에 처박혀 있었고 게다가 그녀는 쭈욱 늘어뜨린 목을 한 손으로 득득 긁고 있었다. 그것도 신경질 적으로....
"쯔읍, 쯥."
무슨 꿈인지 입맛까지 다시면서.... 그것은 전혀 외모와 또 방의 분위기와 안 맞는, 소녀틱과는 거리가 먼 잠버릇이었다.
또 한가지 이상한 점을 꼽자면 이상하리 만치 그녀의 방에는 알람시계가 많았다. 그것도 몇 가지를 제외하고는 소리가 크기로 유명한 기종들이었다.
- 두두두두~! 일어나! 일어나! 아침이다 일어낫!
그 중 로봇 형태의 시계가 갑자기 팔을 들어올리더니 총을 갈겨대며(?) 살벌한(?) 기계음을 내었다. 정말이지 그녀의 성격이 궁금하다. 아침부터 총성(?)을 듣고 깨어나는 기분이.... 과연 좋을까?
갑자기 소녀의 인상이 팍 구겨졌다. 그러더니 그녀는 눈을 뜨지도 않은 채 손을 들어 잠시 더듬거리더니 곧 총성을 울리던 시계를 집었다.
- 퍼억!
갑자기 방안에 살벌한(?) 소리가 퍼졌다. 그녀는 시계를 그대로 방벽을 향해 휙! 던졌던 것이다. 그렇게 힘을 들인 것 같지도 않은데 시계는 정말이지 피박살(?)이 나 버렸고 잠시 방안에는 정적이 돌았다.
- 꼬끼오~ 일어나세용. 일어나세용
- 헤헤헤헤헤~ 헤헤헤헤헤~
- 띠리리리리리리
- RRRRRR
- 둥근해가 떳습니다.~~
잠시간의 정적을 견디지 못하겠는 듯 나머지 수많은 알람시계들이 알람을 울리기 시작했다. 그 소리의 종류가 너무나 각양각색이라 거부감마저 드는 듯 했다. 그녀는 시끄러운 불협화음에 짜증이 났는지 이마에 혈관마크가 몇 개 도드라지고 있었다. 그녀는 누운 상태에서 천장을 향해 손을 내뻗더니 순간 꽉~ 하고 주먹을 쥐었다.
- 퍼억~! 퍽 꽈지직!
순간 그 많은 시계들은 엄청난 압력과 함께 박살이나 버렸다. 또다시 방안에는 정적이 돌았다. - 보통사람들은 이런 것을 염력(念力) Telekinesis 이라고 한다.
얼마나 시간이 흘렀을까? 갑자기 그녀는 번쩍 눈을 뜨더니 벌떡 자리에서 일어났다. 근데 한가지 이상한 점은 그녀의 눈인 반쯤 몽롱하게 풀려있다는 점이다. 꼭 잠에서 덜 깬 것 같은 눈빛이었다. 그랬다. 그녀는 아직 잠에 취해 있는 듯 했다. 그녀는 침대에서 일어났다. 그녀는 왼손으로 머리를 박박 긁으며 오른손으로 방문을 열고는 거실로 나갔다. 엉켜있는 머리가 반짝 반짝 윤을 내는 것이 묘하게 언밸런스 했다.
"이제 일어났냐?"
그녀가 방에서 나오자 거실 식탁에서 커피를 마시고 있던 한 남자가 손을 들어 아는 척을 했다. 그녀는 그를 보더니 터벅터벅 걸어 그에게로 다가갔다.
"눈꼽부터 띠고 밥을 먹던지 하지?"
"......"
그러나 그녀는 그의 말에는 아랑곳하지 않고 앉아있는 그의 앞에 떡 하니 섰다.
"......"
잠시간의 짧은 침묵이 흐르고, 곧 그녀는 손을 뻗어 식탁 위에 놓여있던 커피잔을 잡았다. 그녀는 느릿하게 손을 들어올리다가 입가에 가자 빠르게 입을 향해 한번에 입안으로 털어 넣었다. 고개까지 한번에 넘기면서. 마치 아저씨들이 소주를 입에 털어 넣는 것과 비슷하다고나 할까?
남자는 그런 그녀를 띠껍게 쳐다보았다. 상당히 띠. 껍. 게.... 그러나 무언가를 상기했는지 남자는 곧 경악한 표정으로 변했다.
"현정하?! 너.... 안뜨거워? 그거 방금 따른건데?"
이유는 그것이었나 보다. 커피에서 김이 솔솔 나던 것이 상당히 뜨거운 것 같았는데.... 그녀는 그냥 한 입에 털어 넣은 것이다.
"......."
남자는 허탈한 표정으로 그녀를 쳐다보았다. 그러나 들었는지 못 들었는지 듣고도 모른 척 한 건지 그녀는 무표정하게 욕실로 향했다. 그녀의 등뒤에는 마치 그리스 석고상처럼 굳어 버린 한 남자가 있을 뿐이었다.
"오늘은..... 조금.... 아주 조금 더... 심하네....."
..... 바람결에 이런 말을 들은 듯도 싶다.
∮
- 터벅터벅
- 솨아아~
욕실의 타일로 된 밑바닥이 욕실 슬리퍼와 부딪혀 친숙한 소리를 내었다. 그녀는 세면기의 수도꼭지를 열었고 곧 물줄기가 쏟아졌다. 그녀는 두 손을 오므려 흐르는 물을 받았다. 그리고는 얼굴에 가져가 세수를 시작했다.
그렇게 한동안 세수를 하던 그녀는 갑자기 고개를 들었다. 그런데 그녀의 표정과 눈빛이 아까와는 사뭇 달라져 있었다. 좀 전의 눈빛이 몽롱하니 잠에서 덜 깬 눈빛이었다면 지금의 눈빛은 살아있는 눈빛이었다. 그녀는 천천히, 그러나 너무 느리지 않게 오른쪽을 향해 고개를 돌렸고 걸려 있는 시계를 보았다. 시침이 8과 9 사이에 있었고 분침은 6을 약간 넘어서고 있었다.
"8시....30분. 늦은.... 건가?"
"......."
그녀는 그렇게 중얼거리며 이마를 세면기에 가져다가 대었다. 말이 가져다가 댄거지 실은 쳐박았다고 표현하는 것이 더 적합하리라. 입술근육이 경직되었는지 끄녀의 입 끝이 파르라니 떨리고 있었다. 잠시 동안 그렇게 그녀는 굳어 있었다. 쏴아아아 하고 물소리가 유난히도 크게 들려왔다. 얼마를 그러고 있었을까? 세면기에서 머리를 든 그녀의 아직 굳어있는 얼굴에서 한 마디의 욕설아닌 욕설이 터져 나왔다.
".... 젠장할!!!"
∮
수하는 오늘 상당히 기분이 안 좋았다. 하지만 일어나자마자 처음부터 그랬던 것은 아니다. 아침 일찍 일어나서 토스트와 달걀 프라이로 간단히 아침을 떼우고 느긋하게 커피를 마시고 있었던 때까지만 하더라도 매우 기분이 좋았던 그였다. 원두의 향이 그의 코를 즐겁게 해 주었고 혀에 닿는 아찔한 커피 맛은 정말 일품이었다.
한 가지 아쉬운 점을 꼽자면 시계가 8시 30분을 넘어서고 있는데도 일어나지 않는 그의 여동생 현정하에 관한 것이 있었다. 그로서도 상당히 걱정이 되긴 했지만 그렇다고 무턱대고 깨울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그녀와 벌써 20년이나 함께 살아온 그였다. 그는 그녀의 버릇 정도는 훤히 알고 있었다.
그녀는 저혈압이 있었다. 자신도 잘 모르겠지만 저혈압들은 아침에 일어나는 것이 고역인 듯 했다. 혹 일어난다고 해도 한 동안은 제정신이 아니다. 그래서 그녀는 그녀의 학교에서 8시에 시작하는 보충 수업도 듣지 못하는 것이다. 물론 사유서를 제출하긴 했지만.....
그래서 그는 그녀를 깨운다는 것은 상상도 못하고 있었다. 혹시라도 괜히 들어가 깨웠다가 목조르기나 새우꺾기 등을 당한다면 그로서도 상당한 타격이 되는 것이다. 아침에 막 일어난 정하, ..... 그것은 공포였다. 어머니가 외국에 나가 계시는 2년 전부터 아침마다 절실하게 느꼈던 것 중에 가장 큰 것이 공포라는 감정이다. 바로 그의 동생 현정하 때문에....
그런데 이상하게도 오늘은 정도가 심했다. 보통은 8시 정도면 일어나는데 오늘은 30분이나 오버하고 있었다. 그때였다. 끼이익 하고 방문이 열리더니 그의 동생이 걸어 나왔다. 30분이나 더 잤으니 평소보단 덜 하겠지.... 그는 그렇게 생각했다.
"이제 일어났냐?"
그래서 수하는 손을 들어 아는 척을 했다. 평소라면 생각하지도 못할 행동이었으나 그는 정하가 약간 상태가 좋을 것이라 믿어 의심치 않았다. 그러나 정하는 그의 말을 깨끗하게 씹고는 터벅터벅 걸어 그에게로 다가왔다. 분위기가 좋지 않았다. 정하는 일어나면 먼저 욕실로 들어갔는데 오늘은 그에게 다가오는 것이다. 아무래도 평소보다 더 자도 정신이 돌아오는 시간은 비슷한 것 같았다.
"무슨 일이지??"
수하는 내심 궁금했지만 궁금함을 참았다. 물어 봤자 제대로 된 대답을 듣기는 틀린 것 같았다. 아직도 정신은 돌아오지 않은 듯 했다. 정신이 돌아왔다면 지각이네 어쩌네 하면서 수선을 떨었을 테니까.....
"눈꼽부터 띠고 밥을 먹던지 하지?"
빨리 피하는게 신상에 좋을 듯 싶었지만 수하는 눈꼽을 붙이고 있는 동생의 모습이 참 안쓰러웠다. 그래서 그는 그렇게 위험을 무릅쓰고 말을 걸었다.
"......"
다시 한 번 그의 말을 씹은채 정하는 수하의 앞에 떡 하니 섰다.
"......"
잠시 그렇게 서 있던 정하는 수하가 마시던 커피를 천천히 들어 올리다가 한번에 마셔 버렸다. 수하는 갑자기 기분이 나빠졌다. 커피가 맛이 좋아서 기뻐하고 있던 차였는데 커피를 뺏어 먹어 버리다니.... 그런데 갑자기 수하의 뇌리를 스치는 생각이 있었다.
"그거 상당히 뜨거웠는데?! 헉!"
그랬다. 그 커피는 커피포트에서 방금 따른 매우 뜨거운 커피였던 것이다. 수하는 경악해서 정하에게 물었다.
"현정하?! 너.... 안뜨거워? 그거 방금 따른건데?"
"......."
그녀는 여전히 묵묵 부답 이었다. 그러더니 그녀는 욕실로 향하는 것이었다. 수하는 상당히 이상한 기분에 사로잡혔다. 그것은 두려움이라고도 할 수 있었고 경악이라고도 할 수 있는 이상한 감정이었다. 이윽고 그는 입을 힘겹게 열어 한 마디를 내뱉었다.
"오늘은..... 조금.... 조금 더... 심하네....."
∮
"으다다닷!"
정하는 마음이 너무 급했다. 바로 지각을 하게 생긴 것이다. 그녀의 학교는 집에서 약 3Km 거리에 있었다. 정하는 아침 보충학습은 그녀의 지병(?)상 참석할 수 없었지만 적어도 본 수업 시작인 9시전까지는 어떻게든 맞추려고 지금까지 노력해 왔었다. 물론 항상 지켜졌던 것은 아니지만.....
그. 런. 데. 지금은 벌써 8시 30분이 넘었다. 당장 달려가도 시간에 맞추기가 힘들텐데 아직 교복도 안 입었고 밥은커녕 책가방도 챙겨 놓지 않았다. 이게 다 어제 친구들의 꼬득임 때문이었다. 어제 정하는 벌써 고 1인데 술 한 번 안 해 봤냐는 그녀의 친구들의 꼬득임에 넘어가 술을 먹었던 것이다. 맥주를 마셨는데 두 잔인가 마신 후부터 기억이 없다. 보통 말하는 대로 필름이 싹~! 끊겼던 것이다. 정하는 어떻게 집에 들어왔는지도 전혀 생각이 나지 않았다. 도대체 무슨일이 있었는지 원, 그녀는 그렇게 푸념을 하다가 곧 몸을 빠르게 움직이기 시작했다.
교복은 입었는데 어디에 내팽겨 쳤는지 목에 다는 리본이 보이지 않았다. 정하의 교복은 목에 리본을 매도록 디자인돼 있었던 것이다. 정하는 급한 나머지 그녀의 오빠, 수하에게 소리쳤다.
"오빠~! 내 교복 리본 어딨어?"
"니 방에 있겠지! 내가 그런걸 어떻게 아냐!!"
"이렇게 이뿐 동생을 둔 오빠로서 그 정도는 기본 아냐?"
"죽을래? 없으면 서랍장에 봐봐 예비 하나 정도는 있을꺼 아냐!"
"아하~! 있다. 땡큐~. 오라버니!!"
쳇. 오빠라는 사람이 식탁에 앉아 커피나 마시면서 동생은 바빠 죽던 말던 신경도 안쓰고 말이야!! 정하는 속으로 이렇게 생각했지만 입은 생각과 반대로 움직였다. 괜히 아침부터 수하의 신경을 긁어 봤자 좋지 않다는 것을 경험상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왜 그런지는 몰라도 수하는 아침에는 기분이 항상 나빴다. - 정하는 몰랐지만 수하가 항상 기분 나쁜 이유는 정하가 아침을 항상 시끄럽게 만들기 때문이었다. 수하는 개인적으로 아침에 느긋하게 커피 마시는 것을 좋아했는데 정하가 항상 지각이라며 아침을 망가뜨리기 때문이었다.
정하는 서랍장에서 리본을 찾자마자 손에 리본을 든 채로 가방을 들쳐 매고 집을 나서기 시작했다. 정말이지 오늘은 늦어도 너무 늦었다. 벌써 시계는 8시 40분을 가르키고 있었다. 엘리베이터를 보니 1층에 내려가 있었다. 젠장, 기다리면 너무 늦는다. 생각을 끝마치기도 전에 정하는 벌써 계단을 향해 몸을 날리고 있었다.
아씨. 오늘 아침부터 왜 이러지? 도대체 아직 술기운이 가시지 않은 건지 다리가 후들거리고 있었고 몸에서는 열이 확확 올라오고 있었다. 게다가 무슨 이유인지 입안이 따끔따끔 한 것이 무엇에 덴것도 같았다. - 아침의 그 사건을 정하는 모르고 있었다. 제정신이 아니었음으로 - 게다가 계단은 왜이리 좁은 건지.... 하나하나가 그녀의 신경을 확확 건드리고 있었다. 젠장!
이제 막 반 정도를 내려온 정하의 앞에 잔뜩 쌓인 자전거 더미가 눈에 보였다. 헉! 이 속도로 계속 달려내려 간다면 부딪힌다. 그리고 멈추자니 지금까지 달려온 속도에 의해 분명 멈추지 못하고 부딪히리라! 관성. 그것은 변하지 않는 중력계의 운동법칙 중의 하나니까. 정하는 다른 방법을 강구해야 했다.
"이런 걸 왜 여기에 세워 놓냐고!! 하압, Jump!!"
정하는 숨을 크게 들이쉬다가 그리 크지 않게 마법 시동어를 외치며 땅을 박차 올랐다. 결국 정하가 선택한 것은 마법을 쓰는 것이었다. 시전한 마법은 Jump마법!! 시전자의 도약능력을 높여주는 마법이었다. 덕분에 정하는 자전거 더미와 충돌하는 것은 가까스로 피할 수 있었으나 정하가 간과한 것이 있었다. 바로 고층 아파트의 계단은 그리 넓지 않다는 점이었다. 조금 심하게 뛰어올랐는지 코앞으로 점점 천장과 벽의 모서리 부분이 다가오고 있었다. 마법을 사용해서 자전거 더미는 피한 것 까지는 좋았지만 이대로 계속 날아가면 벽에 부딪힐 지경이었다.
"젠장, Air Fist!!"
정하는 다시 자신의 왼쪽 벽을 향해 오른손을 뻗으며 Air Fist의 마법을 시전했다. 정하의 오른손에서 마치 사람의 주먹 같은 모양의 강한 바람이 뻗어나갔고 그것은 벽에 부딪히며 반작용으로 정하의 몸을 왼쪽으로 날려 버렸다. 정하는 안전하게 바닥에 착지했고 다시 뛰어내려가기 시작했다. 마법실력 하나는 정말 놀라웠다.
주(註) - 아! 마법이라고 해서 어리둥절한 사람이 있을지도 모르겠다. 사실 정하는 마녀, 즉 Witch다. Witch, 일반적으로 자연에 퍼져있는 마나(Mana - 혹은 기(氣))라는 에너지를 일정한 형태로 가공하여 일정한 현상을 유도해 내는 사람을 마법사라 한다. 그 중에서 여자 마법사를 Witch라 칭하는 것이다. 남자는 보통 Wizard 라고 하고 말이다. 사실 정하의 모계는 유명한 마법사 집안이다. 정하가 마법을 쓰는 것은 전혀 이상한 일이 아닌 것이다. 물론 나이에 비해 실력이 상당한 수준이긴 하지만.
정하는 아무래도 지각은 피하기 어렵다는 생각이 들었다. 재수 옴 붙었다. 오늘 첫 수업은 그 지독한 하키의 수업이었다. 하키란 정하의 국어 선생을 가르키는 말이었는데 그는 하키채를 항상가지고 다니며 남자, 여자 할 것 없이 패기로 유명했기 때문이다. 물론 "Stone Curse(석화주문)" 마법으로 피부를 강하게 하면 되겠지만 남들에게 안 들키게 컨트롤하는 것이 매우 어렵기 때문에 괜히 썼다가 들통나는 수가 있다. 그래서 아무리 정하라 해도 몸으로 때우는 수밖에 없었다.
"야! 현정하!! 이거 먹으면서 가!!"
정하가 계단을 통해 15층에서 1층까지 1분만에 주파한 후 아파트 단지를 달려서 벗어나고 있을 무렵 갑자기 수하가 창문을 통해 무언가를 던졌다. 매우 빨랐지만 정하는 쉽게 잡아 냈다. 정말이지 운동신경 또한 대단한 듯 했다.
"뭐야?"
정하는 잽싸게 받아낸 물건을 보더니 피식 웃고 말았다.
수하가 던진 것은 요플레!! 였다.
∮
오늘은 늦잠을 자도 너무 잔 것 같다. 일준은 그렇게 생각하면서 있는 힘껏 대지를 박차고 달려나갔다. 어제 어머니가 시골에 내려가셔서 집이 빈다고 늦게까지 게임을 한 것이 이유였다. 괜히 맘놓고 게임을 한 것일까? 일준은 곰곰이 생각했지만 잘한 일이라고 생각했다. 이런기회는 흔치 않았으므로.
뒤아불로..... 참 짜증날 정도로 재미있는 게임이야! 하고 일준은 생각하며 한참 달리고 있었다. 아파트 단지를 빠르게 달려나가던 일준은 앞에 자신과 같은 학교 교복을 입고 달려나가는 사람을 볼 수 있었다. 물론 여자 교복인 걸로 봐서는 여학생인 것 같았다. 그의 학교는 남녀 공학이었다.
"이 시간에? 누군 지는 몰라도 여자애가 잠은 많아 가지고!!"
.........일준은 평소 여자는 부지런해야 한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그런데 달려가는 소녀의 모습이 이상하게도 어딘지 모르게 누구와 닮은 것 같았다. 그리고 한가지 더 덧붙이자면.... 빨랐다. 일준이 있는 힘껏 달리고 있는데도 차이는 쉽게 좁혀지지 않았다. 일준은 경악했다. 이렇게 빨리 달리는 여자가 있다니.... 사실 일준은 어려서부터 아버지에게 검술을 배웠다. 그리고 8년 전부터는 기(氣-Mana)를 사용할 수 있게 되었고 그 결과, 인간으로서는 내기 힘든 능력을 발휘하곤 했다. 곰도 때려잡는 괴력이라던가 엄청난 빠르기라던가..... 그리고 지금 그는 보통사람은 제대로 보기도 힘들 정도의 속도로 달리고 있었다. 그런데 그녀는 그런 그의 속도와 비슷하게 달리고 있었던 것이다. 그의 지금 속도는 장난아니게 빠른 - 100미터를 5초대에 주파하는 비현실적인 속도였던 것이다.
주(註) - 마나(Mana = 기(氣))란 대기, 물체속 물 심지어는 살아있는 생물체의 속에까지 존재하는 정신적인 에너지이다.(이세상 모든 물체, 비물체를 구성하고 있다.) 그러나 마나는 보통 물질을 이루게 되면 안정되어 물질의 성질을 띠기 때문에 마법사나 무술가가 사용할 수 있는 마나는 바로 자유마나라고 불리는 물질을 이루지 않은 마나이다. 자유 마나는 주로 공기 속에 용해되어 그 속에서 맹렬히 움직이는 생명력의 근원인 존재로 검사는 이를 이용해 신체적인 능력을 높이고(최대가 되면 기를 뿜어내 공격을 할 수도 있다.) 마법사는 마법을 사용하는 것이다. 아. 여기서 둘이 엄청난 속도로 달리는데도 다른 사람들이 이의를 제기하지 않는 것은 둘은 지금 마나를 이용해서 다른 사람이 보지 못하도록 - 혹은 보더라도 잊어버리도록 강력한 시각 방해를 하고 있기 때문이다.
오기가 생긴 일준은 있는 힘을 다해서 달리기 시작했다. 결과 그의 앞의 여자를 거의 따라 잡을 수 있었다. 그녀의 얼굴을 쳐다보았다. 일준은 곧 그 엄청난 스피드를 이해 할 수 있었다. 그의 앞에서 달리던 그녀는 바로....
현. 정. 하. 이었던 것이다.
∮
"어이! 현정하!!"
누군가가 옆에서 정하의 이름을 불렀다. 그러나 있을 수 없는 일이다. 그녀는 지금 Haste(신속 : 迅速)마법을 이용해 엄청난 속도로 달리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런 그녀의 옆에서 같은 속도로 달리며 말을 걸 수 있는 사람이 있을까? 없다. 아니... 몇몇 사람을 제외하고는 없다. 그래서 그녀는 잘못 들은 것이라 생각하고 계속 달리기 시작했다. Haste 마법은 상당한 고위급 마법이기 때문에 자칫 정신을 흐트러뜨리면 마나 카운터(Mana Counter - 마나 거스름) 때문에 그녀 또한 타격을 입을 것이기 때문이다.
주(註) - 마나 카운터란 마나를 이용해 마법을 사용하다가 정신을 흐트러뜨려 마나가 역으로 시술자에게 피해를 주는 것을 말한다.
"어이! 씹어??"
그녀의 옆에서 다시금 그녀를 부르는 소리가 들려왔다. 두 번씩이나...? 그녀는 자신의 귀를 의심하며 혹시나 하는 마음에 옆을 돌아보았다.
"헉!"
- 벌렁!
그녀는 갑자기 다리를 삐끗 하더니 휘청거렸다. 매우 빠른 속도로 달리고 있었기 때문에 잠시 휘청거린 그녀는 자세를 바로 잡지 못하고 휘청거렸다.
"이~런"
그녀가 휘청거린 이유는 간단했다.
그녀의 옆에는 서. 일. 준. 라는 사내아이가 웃으며 같이 달리고 있는 것이었다.
그것도 느뀌~이하게....웃으면서 말이다.
생각해 보라. 전력질주 하다가 누가 부르는 것 같아 무심코 옆을 돌아봤는데 생각도 못했던 사람의 얼굴이 코앞에 있다면..... 놀라지 않는 사람은 정말이지 대단하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게다가 얼굴은 느뀌하게 웃으면서 말이다.
"흑곰이 왜 여기 있지?"
휘청거리던 그녀를 잡아주려는 일준의 손을 뿌리치며 정하는 일준이 옆에 있어야 하는 이유를 생각했다.
없었다. 일준이 자신의 옆에 있어야 할 이유는 저~언혀 없었다. 앞에서 밝힌 바 있지만 정하는 그녀의 고질적인 지병 때문에 아침 보충 학습에 참여 할 수 없었다. 그러나 일준은 달랐다. 저~언혀 그런 병은커녕 보통 일찍 일어나 새벽 운동까지 하며 학교를 다니는 이른바 새!! 나!! 라!! 의 청!! 소!! 년!!! 이었던 것이다. 그런 그가 이렇게 늦게 이곳에 있어야하는 타당한 이유가 전혀 없었다. 게다가 정하 역시 평상시 보다 늦은 등교가 아닌가?
그래서 정하는 왠지 기분이 좋지 않았다. 지각해서 바쁜데 이렇게 아는 녀석을 만나게 되다니... 상당히 창피스러운 일이라 할 수 있었다. 보통 모르는 녀석이었거나 안다고 해도 여학생을 만났다면 웃으며 같이 등교 할 수도 있으련만 - 동병상련(同病相憐)?? 말도 안 된다. 정하의 속도를 따라잡는 일반인이라니 - 남자애를 만나다니. 사실 일준과 정하는 서로 상당히 안면이 있었다. 어렸을 때부터 같은 동네에 살았고 부모님도 같은 직종에 같은 기업에 근무하고 있어서 친한 바람에 자주 만나곤 했다. - 음... 퇴마사(退魔師 ; 귀신 쫓는 사람?)라고나 할까?
하여튼 그래서 정하는 더더욱 기분이 나빴다. 사실 정하는 자신의 저혈압과 관련된 조조정신착란증(朝朝精神錯亂症) - 물론 이런 말이 있는지는 필자도 전혀 모른다. - 에 상당한 컴플렉스(Complex)를 지니고 있었다. 물론 일준은 어려서부터 정하의 증세를 잘 알고 있었기에 그다지 큰 신경을 쓰지 않았지만 - 만약 정하가 발작을 일으킨다 하더라도 일준 정도의 괴력(?)이라면 충분히 막아내거나 진정 시킬 수 있다. 또 일준은 그런 방면으로는 자신이 있었다. - 정하으로서는 상당히 신경이 쓰이는 일이었다. 맨날 보충을 빠진다고 선입견을 가지고 보는 같은 반 친구들도 신경이 쓰였고 무언가 남들은 다 알고 있는데 자신은 모르는 것 같은 괴리감이 그녀는 싫었다. 실제로 아침 보충과 관련된 학교의 일은 자신만 모르는 일이 아닌가?
도무지 정하는 이 어처구니없는 상황을 - 일준이 자신의 옆에 있는 상황을 - 설명할 만한 배경 지식이 없었고 그래서 지금 상황에 가장 알맞고 쉬운 방법을 택해 그 지식충족의 욕구를 채우기로 했다. 그것은 바로....
"니가 왜 여기에 있냐?"
이렇게 대놓고, 속된말로 톡. 까. 놓. 고 물어보는 것이었다.
과연 정하는 현명했다.........?!
일준은 순진해 보이는 미소를 지으며 그녀의 그런 궁금함을 담은 발화의도에 맞는 대답을 주었다. 아주 당연하다는 듯이, 재빠르게...
"나는 늦잠도 못 자냐??"
"...."
정하는 순간 당황해서 입을 다물었다.
그랬다. 한동안 정하는 지각은 자신만 하는 것이라는 일종의 편견에 빠져 있었다. 지각이 무엇인가? 사전적 의미로 따지자면 지각(遲刻)이란 "정해진 시각에 늦는 일. Lateness"다. 그렇다면 지각은 왜하는가? 여러 가지 이유가 있을 수 있겠지만 몇 가지 예를 들자면 늦잠. 교통의 혼잡. 혹은 버스에서 졸다가 내릴 정거장을 지나친다든지..... 등 많은 이유가 있는 것이다. 정하의 반의 경우도 지각은 얼마든지 있었다. 물론 모두 수업이 시작하기 전에 도착하는, 다시 말해서 보충시간을 조금 넘긴다거나 하는 류의 지각으로 정하과는 급이 다른(?) 지각이기에 정하가 알지 못하는 것뿐이었다. 일준도 분명히 늦잠을 잘 수도 있는 일이었다. 게다가 부모님도 시골에 내려가셨으니 깨워줄 이도 없었을 테지...
"음, 그래. 그럼 갈 길 가봐. 나는 먼저 갈 테니까!! 안녕!! 흑. 곰."
일준이 정하의 집안사를 잘 알고 있듯 일준의 집안사를 잘 알고 있는 정하는 - 정하의 모친이 외국에 나가 계신 다음부터 일준의 모친과 부친은 수하와 정하를 친자식처럼 도와주고 있는 형편이었고 수하와 정하도 한집에 살지는 않지만 가까이 살면서 잘 따르는 편이었다. - 그렇게 납득을 해 버리고는 곧 다시 마법을 걸고 달려나가기 시작했다. 물론, 아까 자신을 놀라게 한 만큼의 빚은 갚고 말이다. 아주 날카로운 그녀 입 속에 들은 혀라는 무기로 말이다. 사실 그녀는 악녀(惡女)에 가까웠다.
"이~썅!! 아침부터 사람 기분을 긁어야 시원하냐!!!"
일준은 뒤늦게 대거리를 해 보았지만 이미 정하는 저 앞에 달려나가고 있었다. 왠지 일준은 자신이 당한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한동안 얼어있던 일준은 크게 말했다.
"야~! 이왕 늦은거 같이 가자."
∮
일준은 상당히 당황스러웠다. 달려가서 어떻게 인사를 하긴 했는데 깨끗하게 씹었다가 두 번째야 한 번 흘쩍 쳐다 보더니
"헉!"
하고 단발마의 소리를 지르는 것이었다.
또 그러면서 휘청거리길래 잡아주려고 손을 뻗었더니 손을 확 밀쳐내며 다시 한다는 소리가
"니가 왜 여기에 있냐?"
정말이지 일준이 보기에 정하는 자신의 여성관에서 멀어져도 한참 멀어진 여자였다. 자고로 여자는 사근사근한 맛이 있어야 한다고 생각하는 일준였다. 그런 관점에서 보자면 정하는 정말로 정나미가 떨어지는 여자였던 것이다. 넘어지려는 녀석 붙잡아 주려 했더니만은 뿌리치질 않나. 대뜸 한다는 소리가 그런 얘기라니....
하지만 일준은 오랫동안 있었던 친분을 생각하여 - 정하는 그리 신경쓰지 않는 것 같지만 - 성실히 답해 주었다.
"나는 늦잠도 못자냐??"
"...."
물론 원래 말주변이 별로 없으므로 별 재미없는 말이 되긴 했지만 말이다. 정하는 잠시 멍해있더니 고개를 한 번 끄덕이고는
"음, 그래. 그럼 갈 길 가봐. 나는 먼저 갈 테니까!! 안녕!! 흑. 곰."
그의 기분을 팍!! 긁어 놓았다. 기분 나쁘게 시리. 흑곰이 뭐냐! 내가 젤 실어하는 소리가 그건 줄 잘 알면서!! 그렇게 일준은 생각했다.
사실 흑곰이란 별명에 알맞게 일준의 생김새는 곰과 비슷했다. 키가 180이 넘고 잘 발달된 근육을 가지고 있는, 다시 말해 허우대가 아주 좋은 체격이다. 고등학생의 본분에 걸맞는 짧은 스포츠 머리나 약간 어리숙해 보이는 그의 표정은 "곰"이라는 명사에 상당히 어울리고 있었다.
평상시에도 털털한 성격이어서 왠만한 말은 흘려 듣는 일준였지만 이상하게 흑곰이라 부르는 것만은 참을 수가 없었다. - 그런데 이상하게도 일준은 같은 반 여자애들이 곰 흉내를 내보라면 곧잘 흉내내곤 한다. 아마 속이 없는 모양이다.
"이~썅!! 아침부터 사람 기분을 긁어야 시원하냐!!!"
일준은 대거리를 했는데도 왠지 자신이 당한 것 같은, 기분 나쁜 느낌이 들었다. 한동안 왜 그럴까 하고 얼어있던 일준은 곧 답을 얻어냈다. 정하는 그 말을 듣지 않고 달려가 버린 것이었다. 그래서 일준은 억울한 마음이 앞섰지만 정하와 같이 가야 복수도 할 수 있다고 생각해서 크게 말했다.
"야~! 이왕 늦은거 같이가자."
∮
결국 정하와 일준은 같이 학교에 등교하게 되었다. 일준이 전력으로 따라 붙은 까닭도 있었고 아무리 정하라고 해도 그 정도의 빠르기로 계속 달릴 수는 없었기에 속도가 느려진 까닭이었다.
어쨌든, 그리하여 둘의 등교길은 상당히... 이상한 분위기로 변해버렸다. 정하는 워낙 지기 싫어하는 성격에 강력한 말빨이 무기인 악녀였고 일준 역시 꼭 이기고 봐야 하는 성미였다. 물론 말빨은 정하보다 약했지만....
그래서 결국에 이상한.... 전투적인 분위기로 변한 등교길이었다. 일준이 시비 걸면 정하가 말빨로 눌러 버리고 화가 난 일준이 다시 시비 걸고.... 악순환의 연속이라고나 할까?
잠시 그 설전(舌戰) - 물론 실제로 혓바닥으로 찌르고 막고 하며 싸운 것은 절대 아님, 말로 싸웠다는 얘기임 -의 일부를 추리면
"야! 어떻게 가스나가 아침부터 남의 속을 긁고 지뢀이냐??"
화가 난 일준이 먼저 말을 걸면
"아침부터 재수 없게 면상부터 들이댄 건 누구시더라?"
정하가 대거리를 하고
"재수 없게??"
다시 일준은 대들고
"귀먹었냐? 그래. 재. 수. 없. 게!!"
쉽게 정하는 눌러버린다.
"내 면상이 뭐가 재수가 없어?"
울컥한 일준 다시 성질 내면
"후훗, 너는 그럼 니 얼굴이 뭐 정우선(?)이라도 되는 줄 아니?"
정하는 일준을 비참하게 만들고
"하! 그래 당연하지. 너의 마귀할멈 같은 얼굴보단 나아!"
일준이 강력한 반격을 시도하고
"그래. 나도 늙으면 당연히 마귀할멈...이 아니라!! 나는 보통의 마녀일 뿐이야!!"
정하가 움찔하고
"마녀가 보통이냐?"
추가 어택(Attack?)까지 당하자
"허! 그러는 곰을 맨손으로 때려 잡는건 인간이냐?"
정하는 말을 돌리고
"웃기네~. 난 절대 곰을 맨손으로는 때려잡아 본 적 없어!" - 장비 갖추고 잡아 본 적은 있음.
가까스로 넘기면
"그럼 코끼리 사건은 뭐냐?"
다시 정곡을 찌르고
"그건 조그만 녀석이었단 말이야!"
발악을 해보지만
"오! 요즘 코끼리의 평균 신장이 커졌다는 얘기는 못 들었는데? 그게 작은 거면.... 코끼리 엄~청 커졌네?!"
역시나 강력한 말발!!
"아냐 커졌데!!"
우겨 보지만
"증거는?"
"......"
정하는 강력한 어택으로 넉다운 시켜 버린다. 아무래도 아직 일준은 정하의 상대가 못되는 듯하다. 벌써 십여년 동안 당해 왔지만, 정하의 말빨은 일준의 그것보다는 강력했다.
"......"
잠시간의 침묵이 흐르고...
"근데.. 우리 이렇게 천천히 걸으면 안되지 않냐?"
"......"
둘은 다시 달리기 시작했다.
∮
- 딩동댕동, 딩동댕동
1교시 시작을 울리는 종소리가 나기 바로 직전에 둘은 가까스로 학교에 도착할 수 있었다. 물론 과도한 마법과 기의 사용으로 인해 흠뻑 땀에 쩔어 버린 후 였지만 말이다. 특히 정하의 경우에는 약간 강도가 심했다. 어쨌든 그 둘은 하키채에 희생양이 되는 일은 면한 것이다.
하지만 정하는 온몸이 노곤하니 힘이 하나도 없었다. 별로 컨디션이 좋지 않은 - 저혈압의 영향 - 아침부터 무리해서 마법 남발(濫發)하며 - Haste 마법은 상당히 어렵다. - 달린 데다가 쓸데없는 설전으로 인해 기운이 쪽 빠져 있었다. 그리고 술의 영향이 아직 미치는지 머리가 상당히 멍했다. 게다가 저 하키의 수업소리는 얼마나 나지막한지 남성 특유의 낮은 저음은 자장가를 듣는 듯 했다.
그래서, 결국, 정하는 잠이 들어 버렸다.
∮
- 드르렁, 드르렁
"그래서, 문학을 감상하는 방법은 크게 4가지로..... 얼씨구? 누가 감히 코까지 골면서 졸앗!!"
아침. 조용한 학교의 아침에 1교시 수업을 맡아 하고 있던 국어선생 하용대는 지금 어이가 없었다. 자신이 교단에 선지도 벌써 20여년. 그동안 그는 하키채 하나로 학생들 사이에서 전설이 되어왔고, 덕분에 수면자 0%, 담소자(?) 0% 라는 무시무시한 기록을 이어왔던 것이다. 그런데 그런 그의 교사 생활에 태클을 거는 소리를 들은 것이다. 코를 골다니.. 이것은 자신의 명성에 먹칠을 하는 것이었다. 게다가 지금은 학기초도 아닌 기합이 들대로 든 7월이었다. 그는 하키채를 든 채 몸을 풀기 시작했다. 여러 가지 운동으로 다져진 그의 근육이 다시 한 번 꿈틀했다. - 그는 50이 가까이 되도록 그런 몸을 가꿨고 그것이 자랑인 사람이었다 - 그는 하키채를 들어 엎어진 여학생 하나를 지목했고 학교가 떠나가도록 소리를 질렀다.
"현정하!! 기상!!!"
그는 정하의 이름을 외우고 있었다. 솔직히 그녀는 약간 유명했다. 아니 약간이 아니라 그녀는 상당히 유명했다. 전교에서 유일하게 아침 자습에 빠지는 인물이었고, 야간자율학습 - 속칭 야자. - 땡땡이도 엄청난데도 불구하고 성적은 최상위 클래스에서 놀고 있었으며 - 실제로 중학교 때부터 전교 3등 밖에서 논적이 없었다. - 또 엄청난 운동신경으로도 유명했다. 체육 실기 같은 경우는 선생이 놀랄 정도로 선생보다 훌륭하게 소화해내는 것은 기본이었고 운동부들을 간단히 눌러 보이는 엄청난 괴물이었던 것이다. - 물론 마법을 사용한 적도 있었지만 다른 이들은 몰랐다. - 그래서 꼬투리를 잡을 것이 없어 패기가 머했던 인물이었는데 현정하 너. 딱. 걸. 렸. 어. 용대는 그렇게 생각했다.
"....."
그 엄청난 괴성에 정하는 잠이 깬 듯했다. 그러나... 위험했다. 지금 그녀의 눈빛은... 아침의 그것과 같았다. 몽롱한 눈빛, 적신호였다. 그러나 그것을 아는 사람은 단 한사람도 없었다, 아니 일준을 제외한 모든 이가 몰랐다.
"크....큰일이다."
일준은 속으로 절규했지만 이미 엎질러진 물이었다. 정하는 원래 학교에서 절대 자지 않았다. 만약 잤다가 지금처럼 되면 엄청난 일이었기 때문이다. - 딱 한번 초등학교 때 정하가 잠이 든 적이 있었는데 그때 선생이 깨우려다가 정하에게 헤드락을 당해 병원에 실려간 적이 있었다. 그래서 그 뒤로 그녀는 절대 자지 않았다. -
"현정하! 이리 나와!"
용대는 손에 침까지 뱉어가며 말했다. 그러나 잠이 덜깬 정하는.... 간딩이가 붓는다. 무시무시한 스트레스성간장비대증(Stress性肝腸肥大症)!! 정하는 그냥 그 자리에 있었다. 그것도 용감하게 용대를 꼬려보며.
"이 녀석이!!"
흥분한 용대는 빠르게 정하의 앞으로 다가가서 꼬려보는 정하의 머리를 확 밀쳐버렸다. 순간 교실은 조용~. 해졌다. 이거 상당히 용대가 흥분해 있었다. 아이들은 용대가 일내리라 생각했다. 교장과도 안면이 있는 용대는 - 고향 선배란다. - 애들 패기를 대수로 알았다.
그런데 약간 이상하게 생각할지도 모르겠다. 애들을 그렇게 패도 학부모들이 가만히 있을 수가 있을까? 사실 다른 학교였다면 용대는 짤리고도 남았다. 사실 그렇게 애들을 패는 데도 학부모들도 어쩔 수 없는 것은 정하의 학교는 사!립! 명문고였다. 체벌도 허용이 되는 학교인 것이다. 그런 학교 왜 다니냐 하면 명문고이기 때문이고, 왜 명문고를 다녀야 하는 가 하면 좋은 대학에 잘 보내기 때문이고, 왜 좋은 대학에 가야 하냐면 사회구조가 그래야 출세가 가능하게 하는..... 관두자 끝이 없겠다.
"......."
아무 말도 하지 않았지만 치켜 올라간 정하의 눈에서 나지막한, 그러나 살벌한 분위기가 모락모락 피어올랐다. 그 짜릿한 충격에 용대는 섬찟했지만 곧 마음을 다잡고 말했다. 자신은 선생이다. 사립학교의 선생. 학생에게 쫄 필요는 없었다. 그런 식으로 쪼는건 힘없는 공립학교 교사들뿐인 것이다.
"어쭈? 어디서 고개를 빳빳히 들어? 아주 맞먹을라고 드네?"
"........"
정하는 계속 용대만 노려보고 있었다.
"젠장... 이거 단단히 잘못 걸렸다."
일준은 갑자기 속이 타기 시작했다. 저건 위험 신호다. 이거 뭔가 큰일이 벌어질 것 같았다. 언젠가 정하가 저런 증세 - 저혈압에 의한 광란(狂亂)증세 - 가 있는지 몰랐던 어릴적에 한 번 크게 쥐어 터진 적이 있다. 물론 그때도 일준이 더 힘이 쎘지만 무방비 상태였기 때문에 크게 당했었다. 그때의 일준과 마찬가지로 용대는 정하의 무서움을 몰랐다.
"이게? 어? 어이쿠!!"
황당한 표정을 짓던 용대의 표정은 급속도로 찌그러졌다. 그리고 둔탁한 소리와 함께 용대의 입에서는 신음소리가 터져나왔다. 왜 이런 일련의 상황이 벌어졌는가? 그것은 바로...
정하가 엎. 어. 치. 기.를 걸었기 때문이었다.
Chapter 2. 마녀, 마법사, 그리고...
∮
"야! 너 그렇게 선생을 패대기 쳐 놓으면 어쩌자는 거야?"
일준은 자신의 짜증이 위험수위를 지나고 있는 것을 느꼈다. 아니, 선생을 그렇게 패대기쳐 버리다니... 쯧. 어떻게 여자아이가.... 아니 여고생이 그런 일을 할 수 있는 것인가? 아무리 교권이 땅에 떨어졌다지만 선생을 패대기치다니!! - 그것도 정확하게 기술이 들어갔다. - 일준은 이 나라의 교육이 어떻게 될 것인가에 대해 생각하며 한숨을 푹 쉬었다.
.......물론 일준이 언제부터 교권에까지 관심을 기울였는지는 모르겠지만은 그냥 넘어가도록 하자. 어쨌든 그렇다 치고 그런 이유로 일준은 지금 매우 화가 나 있는 상태였다.
"가스나야! 자꾸 그렇게 눈에 띄면 어떻게 할라고 그래! 남들 이목을 좀 살피라고! 그렇게 찍히면 어쩌겠다는 거야? 그러다가 마법쓰는거 들통이라도 나봐! 너는 세계신문 표지모델이 될지도 몰라!"
"뭐... 그것도 그런데로 멋있을 수도 인잖아. TIME지에 내 얼굴이 실린다~~~. 캬!"
"......"
"야! 어쨌든 그만해라. 엉? 칭찬도 자꾸 들으면 기분 나쁘다. 그리고 그거 제정신에 한 것도 아니잖아"
"미친뇬. 아무리 정신이 없어도 그렇지. 할 일이 있고 못 할 일이 있는거야!!"
"이러~언 썅!! 그만 하랬지?"
제정신이 아니었다 손치더라도 본성이 이렇게 싸나우니까 선생을 엎어버리지!! 그러다가 퇴학이라도 당하면 어떻게 할려고! 게다가 퇴학을 안 당하더라도 자꾸 시선이 집중되면 까닥하다가 마녀인 것까지 들통날지도 모른다. 그렇게 되면 정말 큰일이지. 큰일이야. 아~암. 일준은 그렇게 생각하면서 정하에게 매섭게 따지기 시작했다. 그런데 그것이 잘못되었나 보다. 정하가 갑자기 뒤돌아 서더니 욕을 퍼붓기 시작했다.
"빌어먹을 새끼야, 누군 그런 짓 하고싶어서 해? 나도 모르게 잠이 들어 버렸다고, 난 잠에서 깰 때 원래 그렇다고!! 그렇게 생겨 먹은걸 어떻게 해!! 죽을래? 그만 좀 하라구. 그것 땜시 하루 종일 기분 안 좋은데 말이야! 신경 쓰지 말라구! 어떻게든 내가 수습할 테니까!"
"얼어죽을~! 니가 무슨! 쥐뿔도 없는 주제에 어떻게 해결하겠단 거야? 너 또 수하형 들들 볶아서 어떻게 해보려는 거지? 안 봐도 비디오다. 비디오!!"
"이게 정말~! 누가 오빠한테 손 벌린다는 거야~!"
정하와 일준은 투닥거리며 골목으로 들어섰다. 일준과 정하의 아파트는 이 단독주택들이 밀집한 골목을 지나야 나오는 것이었다. 물론 큰길도 있지만은 골목길이 더욱 빠르기 때문에 그들은 골목길을 이용해 오고 있었던 것이었다.
"당연히 너지! 형 아님 니 혼자 우째 수습할낀데?"
"인천에서 쭉 살아온 놈이 무슨 사투리야~?"
"갑자기 그게 무슨 상관인데? 지금 논점은 그게 아니잖아!"
"훗,,후훗. 니들 여전 하구나?"
그렇게 주거니 받거니 쓸모 없는 에너지 낭비를 하고 있던 둘 앞에 왠 남자가 서서 입을 열었다. 하늘색으로 염색한 머리를 치켜 새우고 이마에는 빨간 띠를 두른 가죽옷의 이상한 남자. 그러난 그 둘은 그 수상한 남자를 잘 알고 있었나 보다. 바로 그를 알아보고는 반가운 인사를 날렸으므로!
"영민형! 살아돌아왔네?"
"영민오빠~! 무사귀환을 축하할게!"
"....뭐...래는 거야?."
∮
"아~! 심심해라!!"
영민은 지금 상당히 심심했다.
그는 지금 아침부터 집에서 쫓겨나 거리를 배회하고 있었다. 하여튼 재수 더럽게 없었다. 그는 어제 오전부터 여태까지 꼬박 잠도 못자고 실험을 계속하고 있었다. 그것이 끝날 듯 하면서도 은근히 오래 끌고 있었다. 게다가 잠시 중단하고 할 수 있는 류의 실험이 아니였다. 한 번 시작하면 끝을 봐야하는 류의 실험이었다. 그런 것이 끝나지도 않고 질질 끄는 것이 정말 짜증을 있는데로 나게 하는 것이었다. 마치 세이브 포인트가 없어서 게임을 끝내지 못하는 기분이랄까?
그러던 것이 끝을 보이기 시작했고, 이제 거의 끝을 볼 수 있었던 참이었다. 그 실험이라는 것이 상당히 새로운 데다가 성공한다면 당장이라도 실용화가 가능한 실험이라서 잘만 된다면 큰 것 한 번 먹을 수 있었다. 아마 승진과 더불어 보너스까지 탈 수 있었을 것이었다.
주(註) - 알케미스트(Alchemist) : 연금술사. 연금술이란 사전적 의미로는 고대 이집트에서 시작되어 유럽에 퍼진 원시적 화학기술로 비금속을 금,은,동등 귀금속으로 변화시키고, 또, 불로불사의 영약을 만들려던 화학기술이라는 뜻이다. 이런 연금술을 익히고 탐구하며 사용하는 자가 연금술사라고 하는 것이다. 그러나 이 소설에서는 연금술사를 마법과 관련된 마법물품을 만들고 영능력자들을 보조하는 서포터의 역할을 하는 사람들로 설정하였다.
그런데 그랬던 것이 잘못해서 큰 폭발로 이어졌다. 빌어먹을.. 정말이지 아깝다! 영민은 속으로 계속 푸념에 푸념을 거듭하고 있었다. 게다가 탈의실 사건 이후 아직 누나와 사이도 안 좋은데... 폭발이라는 대형사고를 치다니...
"에이~! 썅!"
-깡! 와장창!
"어떤 새끼야! 누가 남의 가게 유리창을 깨고 지뢀이여?"
"...... 젠장, 튀자!"
..... 정말이지 재수 더럽게 없었다. 밀려오는 짜증에 걷어찬 돌멩이가 어느 가게 유리창을 깼나 보다. 한참 그렇게 도망가고 있는데 영민의 귀에 익숙한 목소리들이 들려 왔다.
"빌어먹을 새끼야, 누군 그런 짓 하고싶어서 해? 나도 모르게 잠이 들어 버렸다고, 난 잠에서 깰 때 원래 그렇다고!! 그렇게 생겨 먹은걸 어떻게 해!! 죽을래? 그만 좀 하라구. 그것 땜시 하루 종일 기분 안 좋은데 말이야! 신경 쓰지 말라구! 어떻게든 내가 수습할 테니까!"
"얼어죽을~! 니가 무슨! 쥐뿔도 없는 주제에 어떻게 해결하겠단 거야? 너 또 수하형 들들 볶아서 어떻게 해보려는 거지? 안 봐도 비디오다. 비디오!!"
"이게 정말~! 누가 오빠한테 손 벌린다는 거야~!"
한참을 그렇게 달리고 있는데 그의 귀로 반가운 목소리들이 들렸다. 정하와 일준. 녀석들은 아직도 시덥잖게 말장난이나 하며 투닥거리고 있었다. 저쪽 골목 끝에서 보이는 것이 50미터는 넘을 듯 보이는데 얼마나 목소리가 큰지 여기까지도 다 들리고 있었다.
"당연히 너지! 형 아님 니 혼자 우째 수습할낀데?"
"인천에서 쭉 살아온 놈이 무슨 사투리야~?"
"갑자기 그게 무슨 상관인데? 지금 논점은 그게 아니잖아!"
정말이지... 끊이질 않는구나. 영민은 웃음을 흘리며 그들을 응시했다.
"훗,,후훗. 니들 여전 하구나?"
그들이 영민의 앞에 거의 다 다다를 때까지도 말싸움은 끊이지 않고 있었다. 그런데 그들의 투닥되는 표정과 어투가 너무나 진지해서 영민은 웃음을 참을 수가 없었다. 그는 결국 웃음을 터뜨렸고 자신을 빤히 바라보는 둘에게 인사를 건넸다. 그러자 앞의 둘은 그제서야 자신을 확인했다는 듯 인사를 했다. 그 내용이 조금 기분이 언짢은 내용이긴 했지만은 말이다.
"영민형! 살아돌아왔네?"
"영민오빠~! 무사귀환을 축하할게!"
"....뭐...래는 거야?."
∮
-쪼르르륵
커피포트에서 따라낸 커피에서 진한 향이 배어나온다. 마시고 싶다는 충동이 불끈불끈 솟아오를 맛있는 향기가. 그리 분위기에 신경 쓰지 않고 머그컵에 그냥 따라놓았는데도 불구하고 창문을 통해서 들어오는 노란 일광에 섞여 분위기 좋은 카페에 들어온 듯한 분위기를 내었다. 손님에게 커피를 따라주고 같이 따라낸 커피를 자신의 입에 가져가며 청년은 기분 좋게 웃었다.
"어쩌다가 이 녀석들과 같이 왔는지는 모르겠지만, 잘 왔다."
"나도 같이 오고 싶어서 온 건 아니라고. 우연히 만났을 뿐이야."
"하하, 알아, 알아."
"잠깐! 뭐야. 방금 "나도 같이 오고 싶어서 온 건 아니라고."라는 말에서 느껴지는 짜증은 뭐지? 지금 이렇게 아름다우신 미녀가 같이 동행해 주셨는데 그게 마음에 안 든다는 소리야? 장난해?"
오랜만에 만난 친구간의 대화가 가히 기분이 좋지 않았는지 소파에 앉아있던 정하는 거칠게 쏘아붙였다. 그랬다. 손님이란 영민이었고, 청년은 수하이었던 것이다. 역시 식탁에 앉아 수하가 내준 커피를 홀짝이던 영민은 조용히,
"뭐, 그게.... 야! 이 커피 정말 맛있네? 비결이 뭐냐?"
하고 뒷꼬리를 흐리며 슬쩍 말을 돌렸고 그런 처절한 대꾸가 웃겼는지 수하는 싱글거리며 영민을 향해 말을 이었다.
"뭐, 비결이 뭐 있어? 그건 그렇고 축하해줘야 하나? 지난번 그 탈의실 사건이후에 거의 두 달 만인거 같은데. 그래도 생각보다 싸게 먹혔네. 이번에는 영아 누나가 맘 단단히 먹은 줄 알았는데. 그래도 동생이라 이건가?"
"쯧쯧, 어떻게 오누이가 하는 소리가 그리 똑같누! 잠깐만! 일준이도 그런 소리를 한 것 같았는데? 이... 이 인간들이 나를 어떻게 보고 있는거야?"
"어떻게 보긴 누나한테 꽉 잡혀사는 멍청이지!"
"아냐. 멍청이는 너무 어감이 약해... 쪼다 어때?"
"오! 네가 웬일이냐? 그런 맘에 꼭 드는 소리를 하고? 쪼다... 좋은데?"
"야. 내가 좋은 의견을 내면 웬일이 돼야 하냐?"
"그럼.. 아냐?"
"이게!"
일준은 리모컨으로 TV를 틀며 정하를 거들었고 영민은 정하와 일준이 자신을 놀리기 위해서 거의 전무했던 의견일치를 보이자 아예 포기한다는 듯 한숨을 푹 내쉬고는 손으로 얼굴을 감싸쥐었다. 영민의 그러한 마음을 모르는지 정하와 일준은 여전히 그들만의 세계 - 어떻게 하면 더 처참하게 놀릴 수 있을지...에 대한 - 빠져들고 있었다.
수하는.... 여전히 싱글거리고 있었다.
"그건 그렇고 또 일 때문에 온 거야? 할망구가 또 뭐 시키든?"
"어? 아니, 그런건 아니고... 헤헤. 그렇게 됐어. 폭발사고를 내서... 급히 수습할 돈이 필요하거든..."
"폭발? 너. 외출금지가 풀린게 아니라 완전히 쫓겨난거냐?"
"뭐. 꼭집어 말하자면 그렇게 되겠지.... 히~."
커피포트 앞에 서서 계속 웃기만 하며 어이없는 3인의 시간 보내기를 보고 있던 수하가 의자를 빼어 앉으며 말을 시작했다. 영민은 자신이 말하면서도 약간 민망했는지 실없이 웃으며 머리를 긁었다.
"하긴, 니가 시키지도 않은 일을 맡을 이유가 없지. 얼마나 대단한 일이 길래 혼자 해결 못하고 헬프까지 청하는 거야? 너무 굉장한 일 맡은거 아냐?"
수하는 영민의 방문이 일 때문이라는 것이 마음에 걸렸는지 한번 얼굴을 찌푸렸다가 곧 생긋생긋 웃으며 말을 꺼냈다. 그런데 그 말이라는 것이 어떻게 들으면 상당히 오만하다고 할 수 있는 것이어서 영민은 바로 말을 이었다.
"그 말 상당히 잘난척이 섞인 것 같다? 니가 어엄-청! 대단하단 소리로 들리네?"
"그럼 아냐?"
"...."
어딜가나 이런류의 사람은 존재하기 마련이다. 겸손을 미덕으로 삼는 한국에서 자신의 유능함을 저런식으로 뽐낸다는 것은... 그 것이 엄연한 사실이라 하더라도 눈총을 받기 마련이다. 한마디로 얄밉다고 해야 할까? 수하는 말을 마치고는 긴 앞머리가 눈을 간질이는 것이 신경쓰였는지 자연스럽게 뒤로 넘기며 한모금 커피를 마셨다. 그런 수하를 보며 영민은 순간 할 말을 잃어 버렸다.
"흠흠, 그건 그렇고 이번에 맡은 일은 일명 조폭킬러사건과 관련이 있는 일이야."
"오호, 그거? 그것도 영능력자가 개입한거야?"
"나도 직접 보지는 않았지만 지부에서 이미 몇 명을 파견해서 여러 가지 조사를 해봤던 모양이야. 영사를 한 결과 희미한 잔류 영력(靈力)이 발견되었다고 하는데... 그게 상당히 미세하게 남아 있는 걸로 봐서 상당한 능력자래 나봐."
"그래..."
잠시간의 침묵이 흐르고 영민은 이대로는 안되겠다고 생각해는지 무안함을 헛기침으로 숨기며 말을 시작했다. 영민은 그 순간이 상당히 무안했던 모양이었다. 물론 수하는 그 침묵의 시간동안에도 입 한켠에 미소를 지우지 않고 커피만 홀짝거리고 있었지만... - 한 마디로 그는 전혀 무안 같은 것은 느끼지 않았다는 것이다. - 참고로 정하와 일준은 어느샌가 김이 새버렸는지 이른바 "영민놀리기프로젝트"를 관두고 TV를 보며 심각한 토론을 나누고 있었다. 예를 들자면...
"앗! 쟤 왜 저런 색으로 염색했냐?"
"뭐가 어때, 멋있기만 하구만."
"하튼간 여자들이란... 좀만 생겼다하면 사족을 못쓰니. 너도 그런 빠순이였냐?"
"허! 지는..."
"내가 뭐 어쨌다고"
"아냐 아냐."
"말을 했으면 끝을 맺어야 할 거 아냐!"
이런 식이다.
"경찰의 지원은 받을 수 있는 거야?"
"어. 원한다면 지원도 해주겠다고 했어. 정부나 경찰도 이런일이 너무 지속되면 민심이 흉흉해 지니까 조속한 처리를 원하는 듯 해. 그러니까 이 정도의 고급인력까지 들이려는 거겠지. 뭐, 이해 될 것도 같아. 대선이 그리 많이 남은 게 아니니까. 괜히 민심 뒤숭숭해 지면 집권당으로서 이점이 사라지잖아."
이야기를 마친 영민은 커피를 한모금 들이 마셨다. 커피잔을 통해서 손으로 느껴지는 커피의 따뜻함을 더 느끼려는 듯 영민은 손잡이를 놔둔 채 원통형의 물체를 손으로 잡았다. 최대한 손에 닿는 면적을 크게 하며. 커피의 따스한 온기 하나에 몸이 나른하게 풀린 것 같다. 정말이지 수하가 커피 내리는 솜씨만은 일품이다. 영민은 수하의 커피에 대해 다시 한 번 감탄을 하며 다시 한 모금을 홀짝 마셨다. 보통 시중에서 구매할 수 있는 커피 포트를 이용하는데도 어떻게 이렇게 맛이 다를 수 있을까? 이건 거의 웬만한 카페들은 문을 닫아야 할 수준이다.
영민은 정말 수하란 인간에 대해서 궁금해지기 시작했다. 마법실력도 뛰어고 가사에도 뛰어난 재능을 보여서 어머니가 영국에 파견근무를 나간 3년간 가사일까지 도맡아 하고 있었다. 그것도 상당한 수준이다. 집안은 깔끔하고 단정하게 정리해 놓고, 항상 청소를 게을리 하지 않는다. 요리 실력 또한 상당해서 한식 중식 일식 프랑스 요리까지 자격증이 있는 상태다. 보통 가정에서라면 여동생이 살림을 도맡아 하는게 보통이겠지만, 어디 정하가 보통 인물인가? - 물론 둘뿐인 살림인데 얼마나 대단한 것이 있겠냐고 생각 할 수 도 있지만, 가사라는게 그리 녹록하지만은 않다는 것을 경험해 본 사람이라면 누구나 알고 있을 것이다. 또 하나 수하가 잘하는 것이 있는데 그것은 바로 컴퓨터였다. 일반적인 사용능력이 아닌 고급의 웹 검색이나 프로그래밍 같은 기술적인 분야까지 말이다. 물론 이것 역시 자격증이 몇가지 있을 정도였다.
얼굴도 잘생긴 자식이 못하는 게 없어요. 영민은 순간 뭔지 모를 열등감이 부쩍 솟아올랐다. 그러나 금방 가라앉았다. 저 놈이 유능해도 너무 유능한 것이다. 어느 정도 게임이 되야 열등감이란 것도 느낄 수 있지 않은가. 게다가 저놈은 친한 친구였다. 에휴, 내가 참아야지 못난 내가 잘못이지 누가 잘못이야? 영민은 생각했다.
"맡겠어?"
"흠, 좋아. 그럼 일은 내일부터 착수하기로 하지."
"뭐야~. 이거 급한 거야. 그러니까 너 정도씩이나 되는 녀석에게 권한 거라고. 하려면 지금 당장..."
"싫음 말고."
".... 배짱이냐?"
"알아서 생각하쇼."
수하는 상당히 마이페이스적인 인물이었다. 순간 분위기를 싹 바꾸며 안맡으면 그만이라는 투로 나가는 데.... 영민으로서는 힘이 없었다.
"......"
"......"
"흐음."
영민은 수하는 정말 자신으로서는 통제 불가능이라고 느꼈다. 이대로라면 수하는 일을 안맡는다. 수하는 상당히 주관 있는 인물이라 - 좋게 말할 때 주관이다. 나쁘게 말하면 X고집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 한 번 아니면 아니었다.
"그럼, 그렇게 해."
결국 영민이 한 발짝 물러설 수 밖에 없었다.
"오호! 그럼 내일부터 일 시작하는 거야?"
"아마도."
"예예예! 안 그래도 요즘 학교생활이 따분했었는데... 헤헤, 야자좀 빠지겠네"
정하와 일준도 들을 껀 다 듣고 있었나 보다. 영민의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언제 다가왔는지 식탁 위로 고개를 쑥쑥 내밀며 말한다. 영민은 그들의 등장니 갑작스러웠는지 머리를 포함한 상체를 뒤로 움직이며 눈을 크게 떠 보였고 정하는 그 모습이 마치 톰과 제리에 나오는 톰의 표정 같다며 깔깔대며 웃어댔다.
수하는 미소지으며 일준과 정하에게 말했다.
"니들, 학교 빠질 생각은 말라고, 나랑 영민, 둘이서만 할꺼야!!."
"...."
"뭐야! 그럼 별로 좋은 일도 아니잖아. 싫어! 학교 안가고 수사 할꺼야."
좀 기운이 빠지기는 했어도 고개를 숙이며 순순히 대답하는 일준에 반해, 정하는 날카롭게 반응했다. 수하는 빙긋 웃으며 입을 열었고 그 결과 정하는 입을 다물 수밖에 없었다.
"자꾸 그러면, 굶긴다."
"....."
이런, 젠장할. 밥이 무기다 무기야. 어떻게 맨날 치사하게 밥 가지고 협박이야 협박이! 정하는 그렇게 생각했으나 수하가 굶기기라는 최후의 카드를 꺼내들자 별 도리가 없었다. 정하는 상당히 먹을 것을 중요시하는 사람이라서 어쩔 수가 없었다. 겨우 밥가지고 그렇게 꼬리를 내리냐? 하고 생각 할 수도 있겠지만, 사람은 먹어야 사는 것이다. 밖에서 사 먹는 것도 하루 이틀이고 돈이 있어야 가능한 일이다. 정하는 경제권이 없었기에 눈물을 삼키며 수하의 협박에 넘어가는 수밖에 없었다. 좀 구차해 보이지만 이것 역시 목숨이 달린 일이다. 굶으면... 죽는다. 물론 그것이 저녁뿐이라는 전제가 붙음으로 해서 정하의 경우는 약간 다를 수도 있지만 말이다.
"하아...."
영민은 상당히 피곤함을 느끼며 한숨을 내쉬었다. 수하의 집은 재미는 있지만 상당히 피곤한 곳이다. 영민은 온몸이 나른해짐을 느꼈다. 정하와 수하, 일준은.... 사람을 피곤하게 하는데 뭔가 있는 것 같았다. 에휴, 힘들다. 집에 가서 쉬고 싶어. 하긴 거기도 여기 못지 않은 마녀가 있긴 하구나.... 영민의 감상이었다.
음.. 습작입니다.
계속 연재하기는 힘들다고 봐야지요...(아니 성실연재를 할 수 없다고 보는게)
왜냐면... 이게 이래뵈도 한 장 쓰는데 한달이 걸릴때도 있다는... 쩝.
아~주 예전에 자유연재란에 써서 올린적이 있는데... 수정판이라고는 하지만 모두들 처음 보실 듯.
올린 이유는... 정말 쓰레기인지 아니면 킬링타임용으로라도 볼 만한지 알고 싶어서요... 정말 짜증나게 이상하다 하면 메일을 주세요... 다시 쓰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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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n the Light I dream the Darkness. Corrupt Shin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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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앞의 내용과 뒤의 내용이 써진 시기가 다른 모양입니다. 아니, 이 분량을 쓰시는데 시간이 제법 걸리셨나봐요. 앞에서 ~이었다. ~인 것이다. 라고 귀결되던 문장이 뒤에서는 상당히 매끄러워진 느낌입니다. 물론 약간 경직된 느낌이 남아있기는 하지만 계속해서 쓰시다 보면 필력은 늘리라고 믿어 의심치 않습니다. 화이팅~
마녀라고 해서 순간 움찔. 전개가 약간 삐걱삐걱한 느낌이 있긴 하지만 흥미롭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