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캘리포니아주 오클랜드에 사는 기업인 제임스 블라호스는 2016년 청천벽력 같은 소식을 들었다. 아버지가 말기 암 진단을 받은 것이다. 그는 남은 시간 아버지와 가급적 많은 시간을 보내려 노력했다. 그가 선택한 방식은 아버지의 인생 얘기를 육성으로 남기겠다는 것이었다. 몇 시간이고 아버지 얘기를 오디오로 담았다.
마침 제임스는 인공지능(AI) 분야에서 사업을 모색하고 있었다. 해서 아버지의 얘기를 구술 받는 일은 진화하게 됐다. "이 일로 상호작용할 뭔가가 만들어진다면 어떨까 생각했다. 아버지의 기억을 더욱 생생하고 풍부하게 아버지의 개성을 살려 들을 수 있다면 대단한 일이고 오래 붙들 수 있을 것이라고 믿었다."
그의 부친 존은 이듬해 세상을 떠났는데 그 얼마 전에 AI로 구동하는 대화형 로봇(챗봇)이 아버지의 삶에 대한 질문들에 대해 아버지의 목소리로 답할 수 있다는 것을 알게 됐다. 2019년에 제임스는 챗봇을 어플리케이션(앱)으로 개발하는 데 성공해 'HereafterAI'라 이름붙여 사업을 벌였다. 그는 이 챗봇이 아버지를 잃은 고통을 제거하지는 못하지만 "그렇게 하지 않으면 가질 수 없었던 기쁨 이상을 선사한다"며 "그가 이 흐릿한 기억 속으로 후퇴하는 것은 그가 아니다. 나는 내가 의지할 수 있는 이 멋진 대화형 개요를 갖고 있다"고 털어놓았다.
HearafterAI 이용자는 사랑하는 이의 사진을 업로드할 수 있고, 앱을 사용할 때 스마트폰이나 컴퓨터 스크린에 올릴 수 있다. 영국 BBC는 블라호스 부자의 사연을 전하며 사람들로 하여금 AI 챗봇으로 더욱 많은 일을 할 수 있게 한 다른 회사들을 16일 소개해 눈길을 끈다. 대표적인 것이 우리 기업 '딥브레인'(DeepBrain) AI로 동영상 기반의 아바타를 창출, 몇 시간이고 얼굴과 목소리, 몸동작 등을 동영상과 오디오로 쏴준다.
딥브레인의 최고재무책임자(CFO) 마이클 정은 "원래 인물과 96.5% 닮은꼴을 복제해 낸다. 대다수 가족은 AI 아바타라 해도 세상을 등진 가족과 대화하는 데 불편함을 느끼지 못한다"고 말했다. 이 회사는 이런 기술이 미리 죽음을 준비하고 가족의 역사를 남기며 얘기와 기억을 "살아있는 유산"의 한 형태로 가꾸는 "웰 다잉"(well dying) 문화를 발전시키는 데 도움이 될 것이라고 믿는다.
물론 싼 비용으로 가능한 것은 아니다. 이용자 스스로 아바타를 창출해낼 수 없기 때문이다. 대신 이 회사에 촬영 작업을 의뢰해 아바타를 만들어내는 데 5만 달러(약 6733만원)를 지불해야 한다. 비싼 값이지만 몇몇 투자자들은 인기를 끌 것이라고 확신한다. 이런 열기 덕에 딥브레인은 최근 펀딩을 통해 4400만 달러(592억원)를 모았다.
그러나 심리학자 래번 앤트로부스는 감정적으로 격앙된 시기에 이런 "추모 테크"(grief tech)를 이용하려면 상당한 주의가 필요하다고 지적한다. 그녀는 "상실은 우리를 사로잡는 어떤 것"이라며 "괜찮은 상태에 거의 가까워졌다고 생각할 수 있다. 그러면 그 뭔가가 당신을 제자리로 돌려놓을 수 있다"고 말했다. 이어 "그들 목소리를 들을 수 있고 그들의 말을 들을 기회가 있을지 모른다고 생각하면 매우 혼란스러울지 모른다"고 덧붙였다. 앤트로부스는 사랑하는 이를 잃었다고 급하게 챗봇을 이용하면 안된다고 조언한다. "이런 비슷한 것을 이용하기 전에 충분히 슬퍼해야 한다. 일들은 아주아주 느리게 진행되기 마련이다."
우리가 추모하는 방식은 각자에게 특정한 것이지만 공통의 경험은 있기 마련이다. 서구에서는 형식적 관료주의를 레드 테이프(red tape)라고 한다. 사랑하는 이가 이용했던 은행, 기업체, 소셜미디어 등은 계좌를 폐쇄하거나 캐시카드를 막거나 정기구독을 해지하는 일에 서류 작업을 해달라고 요구하기 마련이다.
영국 사우스 데본에 사는 엘리노어 우드(44)는 지난해 3월 지병을 앓던 남편 스티븐을 잃었다. 남편이 관계했던 24군데 기업을 찾아내 일일이 전화를 걸어 남편을 여읜 사실을 털어놓아야 했다. "몇몇 기업은 대단했고 솔직했다. 몇몇 기업은 노골적일 만큼 부적절했고 무감했다. 감정적으로 가장 처진 상태였는데 그들은 내게 스트레스와 감정적 우울을 더하게 만들었다."
영국 온라인 플랫폼 '세틀드'(Settld)는 사랑하는 사람을 잃은 이들의 행정적 부담을 덜어주기 위해 그들을 대신해 민간 기업과 조직들을 일일이 접촉한다. 이용자는 요구받은 서류작업과 접촉할 필요가 이들의 명단을 업로드하면 세틀드는 자동적으로 이메일을 작성해 제출한다. 그 뒤 당신은 문제가 된 회사들에게 제대로 답했는지, 문제들이 제대로 다뤄졌는지 확인하면 된다.
은행부터 소셜미디어 기업, 기업체 등 950곳이 회원으로 가입해 있다. 할머니를 잃은 비키 윌슨이 2020년 공동 창업했다. 그는 "기술을 이용해 행정적 부담을 덜어주면 줄수록 낫다"고 말한다. 누군가 사망하면 평균적으로 300시간에 걸쳐 146개 과제를 해결해야 한다. 다른 일도 하면서 해야 하므로 보통 9개월 정도 걸려 끝내기도 한다. 그런데 이 회사를 통하면 이런 일의 70%정도는 자동화할 수 있다고 주장한다.
테크 뉴스 웹사이트 테크라운드(TechRound)에 따르면 "죽음의 테크"라고도 불리는 추모 테크 시장은 현재 전 세계적으로 1억 달러 이상으로 평가받고 있다. 이 매체의 편집인 데이비드 소퍼는 코로나 팬데믹이 이 시장의 성장에 기름을 끼얹었다고 말한다. 그는 "코로나 바이러스가 해낸 일은 사람들에게 삶의 중요성을 두드러지게 한 것"이라며 죽음에 대해 얘기를 나누는 것을 금기로 여기지 않게 한 것이라고 강조했다. 이렇게 해서 차츰 기술을 추모 과정의 일부로 받아들이게 만들었다.
소퍼 편집인은 "많은 이들에게 한번에 알리는 일과 보이스 레코딩이나 비주얼 메시지를 통해 사람을 기억하는 일 모두 중요하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이런 트렌드는 훨씬 심오한의미를 지닌다고 믿는다고 했다. "테크놀로지가 기술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진화하는 것인데 좋은 일이다. 하지만 추모 과정과 같은 기술적이지 않은 문제를 해결하는 데 도움이 된다면 그것이 기술의 진짜 목적이다."
그러나 여전히 앤트로부스는 슬픔을 이겨내는 데 사람들의 응원을 대체할 만한 것은 없다고 경고한다. "나는 기술이 슬픔의 전통적인 측면을 이어받을 수 있는 여지를 상상할 수 없다. 슬픔의 전통적인 측면은 사람들과 가깝게 느끼고, 보살핌을 받고, 감사하는 느낌을 준다."